대법원이 23일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기소된 두 사건 중 한 사건의 피고인은 유죄, 다른 사건의 피고인에게는 무죄를 확정했다. 모두 가장 중요한 증거인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피고인의 범죄가 확실하다고 볼 정황 증거 유무가 유무죄 판단을 갈랐다.
◇피고인이 자백하는 등 정황 뒷받침되면 유죄 인정=대법원 형사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이날 2000년 11월 회사 사장 강모(당시 40세)씨를 다른 직원들과 짜고 살해해 암매장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김모(58)씨의 상고심(2012도6405)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경우 진술 내용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띠고 있는지, 그리고 자백 이외의 다른 증거 중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은 없는지 등을 고려해 신빙성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비춰보면 김씨 자백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지난 17일에는 같이 범행을 저지른 서모씨 등 2명에게도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최동렬 부장판사)도 지난달 19일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는 동업자를 땅에 묻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박모(41)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징역 13년을 선고했다(2012고합360). 재판부는 "피고인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피해자가 사라졌음에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등 행동과 정황을 고려하면 유죄로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2008년 대법원이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살인등)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08도2792)에서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취지도 마찬가지다. 당시 A씨 부부가 살던 아파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A씨의 아내가 실종 당일 집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고, 이틀 뒤 새벽에는 A씨가 집에서 쓰레기 봉투 5개를 들고나와 승용차에 싣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찍히는 등 정황증거가 인정됐다.
◇피고인 혐의 부인하고 정황증거 없으면 무죄=하지만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고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등 정황증거가 불충분할 때는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 형사3부는 이날 동료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방글라데시인 M(37)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M씨는 2010년 5월 동료인 B(50)씨를 살해한 뒤 승용차 뒷좌석에 실어 내다버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2심 모두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피를 흘렸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옷과 가방이 없어진 점 등을 고려할 때 누군가에게 납치됐을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8년 3월 대법원이 동거생활을 반대하던 동거녀의 언니를 감금하고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한모(54)씨에 대한 상고심(2007도10754)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낸 사건도 같은 입장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사실이 추가적·선결적으로 증명돼야 하고,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