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공모자들이 위조수표를 만들어 제3자에게 교부하지 않고 서로 주고받은 행위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위조수표를 만들어 공동피고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해 피해자에게 보증을 하게 하고 이후 피해자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빌미로 보증금을 편취하려고 한 혐의(위조유가증권행사 등) 등으로 기소된 남모(35)씨에 대한 상고심(2010도12553)에서 위조유가증권행사 혐의에 유죄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최근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위조유가증권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서로 위조를 공모했거나 위조유가증권을 행사해 이익을 나눠가질 것을 공모했다면 그들 사이의 위조유가증권 교부행위는 그들 이외의 자에게 행사함으로써 범죄를 실현하기 위한 전 단계의 행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남씨와 원심에서 공동피고인이었던 김모씨는 김씨가 남씨로부터 1,500만원을 빌리는 것처럼 가장해 김씨의 연인인 강모씨에게 차용금 채무를 보증하도록 한 후 김씨와 강씨가 마약을 투약하는 모습을 촬영해 이를 미끼로 강씨의 가족들에게 보증금 채무를 갚으라고 협박하기로 공모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남씨는 제3자를 통해 위조된 수표가 들어있는 봉투를 김씨에게 전해주고 차용증을 받아오라고 했고 김씨는 건네받은 봉투에서 10만원권 수표를 꺼내 강씨에게 보여줬으나 위조된 100만원권 수표 14장은 봉투에서 꺼내지도 않았고 강씨에게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재판부는 "김씨가 위조된 자기앞수표를 강씨에게 제시하는 등으로 이를 인식하게 했다고 할 수 없고 김씨가 봉투를 들고온 제3자와 위조된 자기앞수표가 들어있는 봉투를 강씨 면전에서 주고받은 행위는 위조된 자기앞수표를 행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씨는 2009년11월께 서울시 양천구 일대 노래방에서 김씨와 강씨가 마약을 투여한 사실을 알고 김씨와 짜고 위조수표를 만들어 남씨가 김씨에게 1,500만원을 빌려주는 것처럼 해 강씨에게 보증을 하게 했다. 이후 남씨는 마약 투여사실을 빌미로 강씨에게 보증금 1,500만원을 편취하려고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은 남씨의 혐의 중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등에는 유죄판결했지만 위조유가증권행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해 징역 1년6월에 벌금 500만원, 추징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남씨의 행위는 위조된 100만원권 수표 14장을 마치 진정하게 작성된 것처럼 강씨에게 제시해 위조유가증권 행사에 해당한다"며 같은 혐의에 유죄판결했다. 하지만 형량은 1심과 같은 징역 1년6월에 벌금 500만원, 추징금 40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