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법률문제에 관한 것으로 사실관계는 매우 단순하다. 즉 후순위 근저당권자가 저당부동산에 관하여 경매신청을 한 경우, 경낙으로 소멸하게 되는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피담보채권은 언제 확정되는가가 문제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판지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민법에는 규정이 없다. 먼저 원심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경매개시를 안 날의 다음날에 확정된다고 판단하였다. (1)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순위 근저당권자로서는 후순위 근저당권자에 의해 근저당권의 목적물에 대하여 경매절차가 개시된 사실을 안 이후에는 신용이 악화된 채무자와 더 이상 거래관계를 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점, 및 (2)구체적인 이익고량의 근거는 나와 있지 않지만 경매개시를 안 시점을 기준으로 그 후에는 선순위 근저당권자보다 후순위 근저당권자의 이익을 더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 확정시기를 경낙인이 경낙대금을 완납한 때라고 하고, 원심판결을 파기촵환송하였다.
【판 지】
「당해 근저당권자는 저당부동산에 대하여 경매신청을 하지 아니하였는데 다른 채권자가 저당부동산에 대하여 경매신청을 한 경우 민사소송법 제608조제2항, 제728조의 규정에 따라 경매신청을 하지 아니한 근저당권자의 근저당권도 경낙으로 인하여 소멸한다. 그러므로 다른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하여 경매절차가 개시된 때로부터 경낙으로 인하여 당해 근저당이 소멸하게 되기까지의 어느 시점에서인가는 당해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도 확정된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중 어느 시기에 당해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확정되는가 하는 점에 관하여 우리 민법은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 부동산 경매절차에서 경매신청기입등기 이전에 등기되어 있는 근저당권은 경락으로 인하여 소멸되는 대신에 그 근저당권자는 민사소송법 제605조가 정하는 배당요구를 하지 아니하더라도 당연히 그 순위에 따라 배당을 받을 수 있고, 이러한 까닭으로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부동산에 대하여
근저당권을 취득하는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은 선순위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 만큼의 담보가치는 이미 선순위 근저당권자에 의하여 파악되어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거래를 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절차가 개시되었음을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안 때 이후의 어떤 시점에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액이 증가하더라도 그와 같이 증가한 피담보채무액이 선순위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 한도 안에 있다면 경매를 신청한 후순위 근저당권자가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된다고 볼 수 없는 반면, 선순위 근저당권자는 자신이 경매신청을 하지 아니하였으면서도 경락으로 인하여 근저당권을 상실하게 되는 처지에 있으므로 거래의 안전을 해치지 아니하는 한도 안에서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파악한 담보가치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함이 타당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후순위 근저당권자가 경매를 신청
한 경우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은 그 근저당권이 소멸하는 시기, 즉 경락인이 경락대금을 완납한 때에 확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연 구】
판지와 원심의 판단 모두에 반대한다.
1.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경매신청을 하지 않은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피담보채권의 확정시기에 관한 최초의 판결로써, 선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판례이다. 앞서 지적했지만 민법에는 이에 관한 규정이 없다. 우리 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본 민법에는 그 제398조의 20에 자세한 규정이 있지만, 근저당권에 관한 규율이나 이용사정이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그냥 일본법에 追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상판결은 구체적인 논거를 통해 우리의 독자적인 논리를 전개한 것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2.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의 확정시기에 관한 판례와 학설 판례는 경매를 신청하지 않은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경우에 관해서는 대상판결이 처음이지만, 스스로 경매를 신청한 근저당권자의 경우에 관해서는 이미 판단을 내린 바 있다(여기서 피담보채무의 변제기가 도래하면 이 때 당연히 피담보채권이 확정되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경우이건 변제기도래전의 저당목적물에 대한 경매신청이 있을 때의 확정시기인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 리딩케이스는「근저당권자 자신이 그 피담보채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경매신청을 한 때에는 그 경매신청시에 근저당권은 확정된다」라고 한 대판 1988. 10. 11., 87다카545이고, 이것이 그 후의 판례(대판1989. 11. 28., 89다카15601〔이에 대한 해설로 閔亨基, 대법원 판례해설 제12호329면 이하가 있다〕; 대판1993.3.12., 92다48567; 대판1997. 12. 9., 97다25521; 대판1998. 10. 27., 97다26104, 26111 등)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에는 구체적인 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단 판례의 논거를 간접적으로 추측케 하는 전기 판례해설336면에는「개별적인 채권에 대한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해지의 의사표시 없이 곧
바로 경매를 신청함으로써 근저당권을 실행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고, 그 근저당권에 의하여 우선변제받을 채권의 범위를 명확히 하여 이해관계인에게 불측의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그 경매신청시에 근저당권, 따라서 피담보채권이 확정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견해는, 경매신청이라는 권리의 실행은 당연히 해지의 의사를 포함하는 것이고, 나아가 근저당권자가 해지와 경매신청과의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두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므로, 근저당권자의 권리실행시를 피담보채권의 확정시로 보는 입장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학설에서는, 통설은 근저당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에는 경매개시결정시를 피담보채권의 확정시로 풀이한다(근저당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한 경우에는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권리실행시인 경매신청시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 그 구체적인 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통설의 태도는 근저당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하는 경우인가 아닌가를 불문하고, 근저당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한 경우에 관한 앞의 판례의 태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근저당권자의 해지기, 해지에 따른 경매신청시와 경매개시결정시는 모두 시간적으로 사실상 동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유력설(민법주해Ⅶ23면이하[박해성])은 대상판결과 동일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유력설도 근저당권자가 스스로 경매신청을 하는 경우에는 경매신청시에 피담보채권이 확정된다고 해석한다). 이 유력설의 논거는 대상판결과 거의 같고, 아마도 대상판결은 이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3. 사견
먼저 근저당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판례나 학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담보채권의 확정시기를 권리실행시로 보는 점에 문제가 없다. 이러한 해석이 근저당권의 권리실행은 그 전제가 되는 거래관계의 해소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근저당권자와 채무자 기타 이해관계인의 의도와도 일치한다. 여기에 또 하나 이유를 추가하자면 경매신청시에 피담보채권은 집행채권으로 그 금액이 특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특히 민사소송규칙 제204조2호 참조). 또한 위와 같은 이유에서 만일 경매개시결정시가 경매신청시보다 늦어지더라도, 후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다음은 대상판결의 문제점이다. 대상판결의 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즉 (1)근저당권은 설정등기를 하여야 하는 이상, 후순위 근저당권자는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채권최고액을 충분히 예측한 후 거래를 하므로 자신의 손해를 예상할 수 있다는 점, 및 (2)선순위 저당권자는 타의에 의해 자신의 근저당권이 소멸하므로, 근저당권이 소멸하는 시점인 경락대금 완납시에 그 피담보채권이 확정되고, 이것은 거래의 안전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라는 점이다. 이러한 두 가지 논거는 원심의 논거보다 설득적이고 일리가 있다. 특히 논거(1)자체는 당연하며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이나 원심 모두 경매를 통한 근저당권의 권리실행이라는 점에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지 않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경락대금완납시에 확정된다면 애당초 경매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민사소송법 제728조에 의한 제608조와 제616조의 준용에 의해, 집행법원은 경매부동산의 매각에 따른 잉여의 여부를 그 매각전에 판단해야 하는데,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액이 확정되지 않는 한, 그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점 때문에, 근저당권자는 자신의 채권에 관한 계산서를 특정기일까지 집행법원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민사소송법 제728조에 의한 제653조의 준용). 이에 따른 구체적인 집행절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즉, 집행법원은 경매개시결정을 한 때에는 근저당권자에게 채권신고의 최고를 하여 경매개시사실을 통지하게 되는데, 실무는 채권신고의 최고서가 근저당권자에게 도달하는데 소요되는 일수를 참작하여, 그 예상 도달일로부터 약2주 뒤의 일자를 제출시한으로 특정하여 최고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민사소송규칙제205조와 제147조 및 송민91-5. 그 외 법원실무제요 강제집행법(상)318면 참조).
이러한 집행절차에서 본다면, 스스로 경매를 신청하지 않은 근저당권자의 권리실행은 채권신고서의 제출시 또는 그 제출기한의 만료시에 한 것에 해당하고, 따라서 이 때 피담보채권도 확정된다고 풀이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은 또한 근저당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한 때의 피담보채권의 확정의 경우와 동일한 기준(권리실행시)으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원심판단의 문제점은, 채권신고의 최고를 통해 경매사실을 알게 된 선순위 근저당권자에게 자신의 권리실행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경매를 신청하지 않은 근저당권자에게는 적정한 채권신고기한까지 거래관계의 정리 등 자신의 권리실행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상판결에서 지적하는 근저당권의 소멸의 의미에 관해서는 약간의 해석적 보충이 필요하다. 경매에 있어서의 근저당권의 소멸에 관해서는 민사소송법 제608조(제728조에 의해 임의경매에서도 준용)에서 규정하고 있다. 동조에서는 저당권(해석상 당연히 근저당권을 포함)은 경락으로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소멸이라는 의미는 용익권의 경우와 담보권의 경우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즉 저당권의 소멸이란 우선변제권을 보장(배당을 통한 우선변제권의 존속)받는 기한도래전의 소멸을 의미한다. 반대로 용익권의 경우에는 배당의 문제가 없는 단순한 권리의 실효를 의미한다(따라서 용익권의 경우에 경락으로 소멸한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판결에서 말하는 「후순위 근저당권자가 경매를 신청한 경우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은 그 근저당권이 소멸하는 시기, 즉 경락인이 경락대금을 완납한 때에 확정된다」라는 경우의 경락대금의 완납을 기준으로 한 근저당권의 소멸이란, 이미 확정된 우선변제권(피담보채권)에 대한 집행절차상의 배당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의 근저당권의 말소를 가리킨다. 우선변제권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경매부동산의 매각조건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담보채권의 확정시기를 근저당권의 소멸시기로 하는 것은 타당한 해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