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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평석
판결전문
항소심서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 가능한가
Ⅰ. 사안의 개요 1. 사실관계 X는 약속어음 배서와 대환대출 등으로 A에 대한 대여금 또는 구상금 등(이하 '이 사건 대여금'이라고 한다)으로서 3억 5,500만원의 채권을 갖고 있었다. 이를 담보하기 위하여 A는 X에게 A가 임대사업을 위하여 건축한 이 사건 아파트 중 아직 임대하지 않은 101동 802호를 비롯한 총 16세대의 아파트를 X가 임차인을 물색하여 임대한 후 그들로부터 임차보증금을 수령하여 이 사건 대여금의 변제에 충당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대물변제예약과 유사한 계약(이하 '이 사건 대물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그 후 A는 이 사건 대물아파트에 관하여 원고 및 원고가 지정한 X-2부터 X-16 총 15명을 임차인으로 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여 주었다. A는 1998. 10.경 부도를 내면서 자금난 등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회사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2004. 9. 10. 이 사건 아파트의 건축 등에 대한 연대보증사인 Y와 사이에 위 부동산에 대해 A가 가진 권리 및 의무를 지위 승계하고 양도·양수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양도계약'이라 한다). 2. 사건의 경과 (1) 제1심 X 및 X-2부터 X-16은 X를 선정당사자로 선정하여 Y에게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X(원고, 선정당사자)는, ① 피고는 위 임대보증금반환채무의 승계인으로서 원고 및 선정자들(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선정자들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게 각 임대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② 피고는 A의 원고에 대한 이 사건 대여금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였으므로 원고 및 선정자들에게 인수채무금(임차보증금 상당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① 주장에 대하여, 원고 및 선정자들이 A에게 현실로 임차보증금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하여, ② 주장에 있어서 원고에 대하여는, A가 이 사건 대여금채무를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선정자들에 대하여는 A가 부담하는 채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원고(선정당사자)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 원심(제2심) 제2심에 이르러 원고는 A에 대한 이 사건 대여금 청구를 추가하면서 이를 주위적으로 구하고, 원고 및 선정자들의 위 각 임대보증금반환청구는 예비적으로 구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원고의 대여금 청구를 전부 인용하면서, 원고 및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에 관하여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를 인용하는 이상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민사소송법 제70조 소정의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는 바(원고의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객관적·예비적 병합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은 동일한 법률관계에 관하여 모든 공동소송인이 서로간의 다툼을 하나의 소송절차로 한꺼번에 모순 없이 해결하는 소송형태로서 모든 공동소송인에 관한 청구에 관하여 판결을 하여야 하고, 그 중 일부 공동소송인에 대하여만 판결을 하거나, 남겨진 자를 위한 추가판결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민사소송법 제70조 제2항).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으로서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를 모두 인용하더라도 다른 공동소송인인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에 관하여도 판결을 하였어야 함에도 이와 달리 선정자들의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는 판결을 하지 않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Ⅱ. 평석 1. 관련 제도의 이해 (1) 2002년 개정 민사소송법에서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의 신설 2002년 개정 민사소송법에서 70조에서, 공동소송인 가운데 일부의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의 청구(원고 측)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거나 또는 공동소송인 가운데 일부에 대한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에 대한 청구(피고 측)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의 형태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는 특별규정을 신설하였다. 원고 측(능동형)의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도 허용하고 있고, 후발적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도(68조의 준용) 허용하고 있다(민사소송법 70조 1항, 이하 민사소송법 조문). 그리고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이더라도 모든 공동소송인에 관한 청구에 대하여 판결을 하여야 한다(70조 2항). (2) 선정당사자제도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사람은 선정당사자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53조 1항). 선정당사자는 선정자 모두를 위하여 당사자로서 소송수행을 할 수 있는 자격(당사자적격)을 취득하고, 동시에 자기 고유의 소송수행권도 보유한다. 선정당사자는 선정자의 대리인이 아니라 당사자 본인이다. 소송상의 청구는 선정당사자가 하는 것이고, 선정자는 소송상의 청구를 하는 당사자가 아니다. 선정행위는 선정자 자신의 권리에 대하여 관리처분권을 부여하는 사법상의 행위가 아니고, 단순히 소송수행권을 부여하는 소송행위이므로 선정자는 계쟁권리에 관한 실체적인 관리처분권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한편, 선정자가 그 소송에 관한 소송수행권을 상실하는가에 대하여는, 선정에 영향없이 선정자는 여전히 소송수행권을 보유한다는 견해(유지설)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는 견해(상실설)의 대립이 있다. 선정자의 권리·의무의 내용을 주문에 표시하는 방식은 개별적 기재방식과 포괄적 기재방식이 있는데, 모두 적법하다고 할 것이다. 포괄적 기재방식에 의할 때에는 판결의 이유(보통은 별지로 기재한다)에서 선정자별 권리 범위를 특정하여야 한다. 판결문의 당사자표시에 있어서는 선정당사자만을 표시하고, 선정자목록을 판결문 뒤에 별지로 첨부한다. 선정당사자가 받은 판결의 효력은 선정자에게도 미치게 된다(민소법 218조). 일부 선정자의 소변경과 일부 선정자의 청구에 대한 반소는 그 선정자가 선정한 선정당사자만이 또는 그 선정당사자에 대하여서만 하면 된다고 본다. 그렇게 새기지 않으면 선정에 의한 절차의 간이화는 의미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2. 대상판결에 대한 의문 (1) 사안을 예비적 공동소송 관계로 볼 것인가? 원고(선정당사자) 및 선정자들은 제1심에서는 각 임대차계약에 의한 각 임대보증금의 반환을 구하다가 제2심에 이르러 선정자들을 제외한 원고가 약속어음 배서와 대환대출 등으로 말미암은 A에 대한 대여금청구를 추가하면서 이를 주위적으로 구하고(이하 ①청구라고 한다), 원고 및 선정자들의 위 각 임대보증금반환청구(위 대여금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대물계약을 체결하였고, 대물아파트에 관한 각 임대보증금반환청구)는 예비적으로 구하는 것(이하 ②청구라고 한다)으로 변경하였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예비적 청구를 원고(선정당사자)의 청구 부분과 선정자들의 청구 부분으로 둘로 쪼개,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선정자들의 각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고, 원고의 임대보증금반환 청구는 원고의 대여금 청구와 객관적·예비적 병합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아래 그림 참조). 우선, 제기할 문제점은 선정자를 당사자로 볼 것인가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선정당사자만이 당사자이고, 선정자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 특별히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선정자들 ②청구 부분을 독립된 당사자의 청구로 보아 선정당사자의 ①청구와의 관계를 복수의 당사자(비록 예비적이지만, 공동소송) 관계로 포착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안에서 선정자들을 당사자로 포착하였기 때문에 선정자들의 ②청구에 대하여 선정당사자의 ①청구를 주위적으로 보면서 그 관계를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선정자를 위해 당사자로서 소송수행을 하는 선정당사자가 소송중에 자기 청구를 내세우는 형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초의 사안인 것 같다. 보통 선정당사자가 소송 중인데 선정자가 스스로 별도의 소를 제기하면 이는 중복된 소제기로(259조) 허용되지 않는 것 등이 이론적으로 문제된 경우인데, 위 사안은 이러한 경우와 다르다. 굳이 선정당사자의 ①청구와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을 복수의 당사자 내지는 공동소송의 관계로(즉,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 보려고 한다면, 선정자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위 경우는 실질적으로 소송의 목적이 되는 법률관계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 뒤,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의 원고가 선정당사자가 아니고 선정자들이라고 하여야 이론적 정합성이 있게 된다. (2)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을 항소심에서도 인정할 것인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원·피고 사이에 소송계속 중 후발적으로도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할 수 있다(70조 1항 본문, 68조 준용).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다가 다른 사람이 주위적 원고가 되고, 종전의 원고가 예비적 원고가 되는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도 가능하다. 그런데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의 원고가 선정당사자가 아니고, 선정자들이라고 보아 일단 공동소송의 형태를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사안에서 예비적 공동소송을 허용하는 것에 문제가 남는다. 왜냐하면, 민사소송법 68조를 보면,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할 수 있는 시점을 제1심 변론종결시까지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위 사안은 분명 항소심에서 원고(선정당사자)를 주위적 원고로 하는 주위적 청구를 추가하면서, 원고(선정당사자)와 선정자들을 예비적 원고로 하는(제1심에서 심판이 있었던 청구를 예비적 청구로 하는) 내용이다. 사안은 제1심 변론종결시까지만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할 수 있다는 68조 명문의 규정에 어긋난다. 물론 항소심에서도 상대방이 동의하면, 예비적 공동소송이 가능하다는 입장(강현중, 민사소송법(2002), 207면)도 없지 않지만, 판례가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고, 만약 명문의 규정과 달리, 항소심에서도 예비적 공동소송을 허용하는 입장이라면, 적어도 그에 대한 상세한 설시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는 것에 비추어 원심 및 대법원은 제1심 변론종결시까지만 예비적 공동소송이 가능하다는 명문의 규정을 간과한 듯하다. 3. 마치며 원심이 사안의 소송관계의 전제를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으로 보면서,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은, 2002년 신설된 예비적 공동소송과 별도로, 종전의 강학상 주장된 주관적·예비적 병합을 인정한 것(즉, 주위적 청구가 인정되면,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더 나아가 심판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 있지만, 그 보다는 신설된 예비적 공동소송에서 모든 공동소송인에 관한 청구에 대하여 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규정(70조 2항)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선정당사자 및 선정자의 지위에 관한 아무런 설시 없이 위 소송관계를 (예비적)공동소송 관계로 포착하였고, 또한 후발적 예비적 공동소송을 항소심 단계에서 허용한 원심의 판단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항소심에서 예비적 공동소송이 이루어진 것은 민사소송법 68조 명문의 규정에 어긋남에도, 나름의 이론 전개를 하여 시기적으로 항소심에서도 예비적 공동소송이 허용될 수 있음을 나타내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당연히 사안의 소송관계의 전제를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다. 사견으로는 사안에서 선정당사자의 ①청구와 선정자들의 ②청구 부분의 관계를 단일한 당사자 사이의 객관적·예비적 병합으로 포착하고, 객관적·예비적 병합에서는 주위적 청구가 인용되면,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더 나아가 심판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예비적 청구를 판단하지 않은 부분에 한정해서 본다면, 원심에서 예비적 청구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문제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2010-08-12
도산해지조항의 유효성
1. 들어가며 계약의 일방 당사자에 대한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 등을 계약해지권의 발생원인 내지 계약의 당연 해지사유로 정한 이른바 '도산해지 조항(ipso facto clause 조항)'의 효력이 실무상 문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은 임대차 계약, 리스 계약 등에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계약서에서도 널리 해지 내지 기한 이익 상실 요건의 하나로써 규정되어 있는 바, 기업회생 실무에서는 동조항으로 인해 채무자 회사(특히 고가의 장비를 리스하여 사업의 수행하는 기업의 경우 등)의 사업 유지나 회생계획에서 필수적인 자산을 반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채무자는 그 동안 사용, 수익하여 오던 계약 목적물의 사용수익권을 상실하는 반면 반대 당사자인 채권자는 환취권을 행사하여 계약 목적물의 점유를 회수할수 있게 되므로 그 목적물이 회생절차의 진행에 긴요한 경우 채무자의 회생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동조항의 효력에 대하여는 계약자유의 원칙을 우선하여 동 조항을 유효로 볼 것인지, 또한 어느 범위에서 유효한지여부, 특히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통합도산법')상의 미이행쌍무계약 관리인의 해지선택권(통합도산법 제119조)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으며 이에 대해 대법원 2005다38263 판결을 어떻게 해석할지 여부도 다툼이 있는 듯하므로 먼저 원심판결과 위 대법원판결을 비교한 후 그 유효성을 논하고자 한다. 다만 위 대법원 판결이 종국에 있어 문제된 정리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심판결과 동일하게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있으나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는 상이한 서술을 하고 있어 아래 2. 원심판결 및 대법원 판결의 요지에서는 판결 이유 중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관한 판결이유에 한정하여 서술한다. 참고로 판시 사안에서는 도산해지 조항에 관하여 계약 일방 당사자에 대하여 회사정리절차개시신청의 사유가 발생한 사실 이외에 18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소멸되지 않을 경우 해지권이 발생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원심판결 및 대법원 판결 요지 가. 원심판결(서울고법 2005. 6.10. 선고 2004나87017 판결) 원심판결은 합작투자계약의 일방 당사자에 대한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을 약정해지권 발생사유로 규정한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 현재 재정적인 파탄에 직면하고 있을지라도 향후의 계속기업가치를 따져 경제적으로 갱생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법원의 감독 아래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가면서 사업을 계속하게 하여 종국적으로 기업을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회사정리절차의 목적과 취지에 반하고 또한 회사정리법상 관리인의 회사재산에 대한 관리처분권(구 회사정리법 제53조, 제103조, 현 통합도산법 제119조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무효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또한 해지권이 발생하기 위하여 회사정리절차개시신청의 사유가 발생한 사실 이외에 18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소멸되지 않을 것을 추가요건으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나. 대법원 판결(2007. 9.6. 선고 2005다38263 판결) 이에 반해 대법원 판결은 도산해지 조항의 일반적 유효성에 대하여 "도산해지 조항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사정을 도외시한 채 도산해지 조항을 회사정리절차의 목적과 취지에 반한다고 하여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침해하고 상대방 당사자가 채권자의 입장에서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보호가치 있는 정당한 이익을 무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도산해지 조항이 구 회사정리법에서 규정한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효력이 부정되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 도산해지 조항으로 인하여 정리절차개시 후 정리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조항이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에 관한 관리인의 선택권을 부여한 회사정리법 제103조 취지에 비춰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무효로 보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리절차개시 이후 종료시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도산해지조항의 적용 내지는 그에 따른 해지권의 행사가 제한된다는 등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정리법 제103조에 정한 쌍무계약이라 함은 쌍방 당사자가 상호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채무를 부담하는 계약으로서, 본래적으로 쌍방의 채무 사이에 성립이행존속상 법률적·경제적으로 견련성을 갖고 있어서 서로 담보로서 기능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위 규정이 적용되려면 서로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계약상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이행되지 아니한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한 뒤, 도산해지 조항이 문제된 본 사건 합작투자계약은 조합계약에 해당하고, 계약당사자들로서는 상호 출자하여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조합 구성에 관한 채무의 이행을 마친, 즉 미이행쌍무계약이라고 볼 수 없어 제103조가 적용된다고 할 수 없고, 조합계약은 일반적인 재산상의 계약과는 달리 서로 간에 고도의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므로 일방 당사자에게 지급정지 등의 사유가 발생하고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어 장차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관리인이 상대방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다른 당사자로서는 그로 인해 초래될 상황에 대비할 정당한 이익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따라서 위와 같은 사유에 의한 도산해지 조항을 약정한 경우에는 이를 무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요컨대, 대법원은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는 구 회사정리법에서 규정한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효력이 부정되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으며 다만 미이행의 쌍무계약의 경우는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할 여지가 적지 않다고 판시한 뒤, 종국적으로는 판례 사안처럼 합작투자계약의 경우 조합계약이고 미이행쌍무계약이 아니므로 판시 계약상의 도산해지 조항이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3. 학설의 대립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에 대하여 긍정설은 계약 자유의 원칙, 위 대법원 판결이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을 부정하게 되면 상대방 당사자가 채권자의 입장에서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보호가치 있는 정당한 이익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한다. 반면 부정설의 경우 동 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하게 되면 기업회생 신청이라는 사실만으로 채무자 회사의 사업 유지나 회생계획에서 필수적인 자산을 반환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회생절차의 목적과 취지에 반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4. 입법례, 외국의 판결례 미국 연방파산법 제365조 (e)(1)은 불이행(혹은 미확정) 계약 또는 만료 되지 않은 임대차계약은 채무자의 파산 혹은 재정적 상황, 파산법상의 절차의 개시시작 등의 사유만으로 종료되거나 변경될 수 없고, 그러한 계약 혹은 임대차 계약상의 권리나 의무는 종료되거나 변경될 수 없다고 규정하여 도산해지 조항을 무효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최고재판소는 회사갱생절차에서 회사갱생절차 개시신청 사실을 약정해제사유로 한 소유권유보부 매매계약상의 해제권유보 특약조항은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5. 검토 및 결론 위 대법원 판례는 도산해지 조항을 어떤 경우에도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통합도산법에서 규정한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반된다는 등의 이유로 그 유효성이 부정될 수 있으며 특히 미이행쌍무계약의 경우, 도산해지 조항을 무효로 해석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을 한 바, 미국 연방파산법처럼 도산해지 조항을 무효로 규정한 명시적인 강행규정이 없는 이상 이러한 해석을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있어 미이행쌍무계약의 경우 도산해지 조항이 무효가 되는 범위를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업회생절차의 취지가당사자 사이의 계약 자유원칙을 제약하면서도 법원의 감독 아래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가면서 사업을 계속하게 하여 종국적으로 기업을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 이러한 도산해지 조항은 자칫 통합도산법상 관리인의 처분권 내지 해지선택권을 무용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도산해지 조항으로 인하여 기업회생신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핵심적인 자산을 반환하게 되면 기업 경영자가 회생절차 신청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는 점, 채권자가 악의로 채무자에 대한 도산절차 신청을 한 후에 도산해지 조항에 따라 계약해지를 하는 부작용도 상정할 수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건대, 특히 미이행쌍무계약의 경우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을 엄격히 해석해야 할 것이며 도산법에 있어서 국제적 동조화경향 등에 비추어 궁극적으로는 통합도산법상에도 미국연방도산법과 같이 도산해지 조항의 유효성여부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09-12-07
합병철회, 주주총회 결의 취소
1. 사실관계 가. 합병 전 주식회사 국민은행(이하 ‘구 국민은행’이라 함)과 주식회사 한국주택은행(이하 ‘구 주택은행’이라 함)은 2000. 12.22.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두 은행의 합병선언을 한 후 합병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위 합병추진위원회에서 구 국민은행과 구 주택은행을 합병하여 신설은행 ‘국민은행(신 국민은행)’ 설립하되 합병비율은 구 주택은행 보통주식 1주당 구 국민은행 보통주식 1.688346 비율로 하고 신설 은행의 은행장은 관련 법령 절차에 따라 선임한다는 내용의 합병계약을 마련, 두 은행의 이사회 의결을 거쳐 2001. 4.23. 위와 같은 합병계약(이하 ‘이 사건 합병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나. 구 국민은행은 2001. 9.29. 10:00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여 발행주식 총수의 83.19% 주를 소유한 주주들 참석하에 99.16%(발행주식총수의 82.49%) 찬성으로 위 합병계약 승인을 하였고 구 주택은행도 임시주주총회를 개최, 위 합병계약을 승인하여 두 은행은 금융감독위원회의 합병인가를 받고, 2001. 11.1. 구 국민은행과 구 주택은행을 해산하고 피고 주식회사 국민은행(신설 합병은행) 합병등기를 필하였다. 다. 피고은행(신설된 국민은행)의 이사회는 2001. 11.1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행장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받아 소외 김정태를 신설 국민은행 은행장으로 선임하였다. 원심은 상고인(원고)가 청구한 합병무효와 김정태를 은행장으로 하는 피고의 2001. 11.1.자 이사회 결의무효확인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으며, 그 이유는 2001. 11.1. 이후에 피고 신설 은행장을 사임하고 새로운 주주총회에서 후임 은행장이 다시 선임되어 그 등기를 필하였다면 과거의 권리, 법률관계 확인이므로 소의 이익이 없고, 합병무효 청구도 관련 주주총회 등에 무효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2009. 4.23. 선고 2005다22701, 22718 판결 구 국민은행, 구 한국주택은행 합병사건) 가. 판결요지 ① 구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5조는 합병 당사자 회사 일방 혹은 쌍방이 부실금융기관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② 주주의 의결권행사를 위한 대리인 선임의 한계는 주주의 자유로운 의결권행사 보장을 위하여 의결권행사를 대리인에게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주주총회 개최가 부당하게 저해되거나 회사이익의 부당한 침해의 염려 등 특별한 사정이 유할시 회사가 이를 거절 할 수 있다. ③ 상법 제368조 제3항(의결권대리행사방법)의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이라 함은 보통 위임장을 말하는 것으로 회사가 위임장과 함께 인감증명서, 참석장 등을 요구하는 취지는 대리인의 자격을 보다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한 것일 뿐이므로 다른 방법으로 주주본인을 확인 할 수 있는 경우에는 회사는 주주본인의 의결권행사를 거부 할 수 없다. ④ 상법 제368조 제3항은 주주의 대리인 자격의 제한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 정관의 규정에 의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정도의 제한은 가능하다. “대리인 자격을 주주로 한정 한다”는 정관의 규정은 무효가 아니며 정관에 그와 같은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주주인 국가, 지방공공단체, 주식회사 소속 공무원, 직원 등은 주주권을 대리 행사를 할 수 있다. ⑤ 구 증권업무감독규정(2001. 10.4. 금감위공고 개정되기 전의 것) 제1항은 외국인은 보관기관 중에서 상임대리인을 선임 할 수 있고 상임대리인 이외의 자는 취득 유가증원의 권리행사를 대리 또는 대행할 수 없다고 되어 있으나 상임 대리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의결권행사의 취지에 따라 제3자에게 대리행사를 재위임 할 수 있다(복대리 가능). ⑥ 상법 제368조의2 제1항은 주주의 의결권 불통일행사에 주주는 3일전에 회사에 그 통지를 도달시켜야 하나 회사가 그 기한을 도과하여 도착한 통지도 회사가 총회운영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여 받아들여 의결권 불통일행사가 이루어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법하다. ⑦ 증권예탁원에 대한 의결권대리행사 신청이 비록 구 증권거래법(2002. 1.26. 개정 전의 것) 제174조의6 제5항에 정한 주주총회 5일전이라는 시한을 넘겼다 하더라도 증권예탁원이 의결권대리행사를 승낙하고 그 신청취지에 따라 대리행사가 이루어졌다면 대리행사는 유효하다. ⑧ 구 증권거래법 제174조의8 제2항은 예탁원에 예탁된 주권의 주식에 관한 실질주주 명부에의 기재는 주주명부에의 기재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규정에 의하여 회사는 증권예탁원 이외에 실질주주에게 주주총회 소집통지 등을 하면 면책된다. 해외예탁기관이 국내법인의 발행신주, 당해주식발행인 소유 자기주식을 원주로 하여 이를 국내에 보관하고 해외에서 발행하는 주식예탁증서(D.R)의 경우 해외 예탁기관이 발행회사의 실질주주 명부에 실질주주로 기재되므로 발행회사로서는 실질명부에 기재된 해외예탁기관에 주주총회소집 통지 등을 하면 면책된다. 발행회사는 예탁증서의 실제 소유자에 일일이 통지할 필요가 없다. ⑨ 합병비율이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합병할 각 회사 주주 등이 상법 제59조에 의한 합병무효의 소를 제기 할 수 있으며 합병비율이 현저하게 불공정한지 여부는 자산가치 이외에 시장가치, 수익가치, 상대가치 등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하고 그 제반요소가 고려된 합리적 범위에서 이루어졌다면 합병 비율은 현저하게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합병회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주권상 상법인인 경우 증권거래법과 그 시행령 등 관련 법령이 정한 요건과 방법 및 절차 등에 의하여 합병가액을 산정하고 이에 의거하여 합병비율을 정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하다. ⑩ 상법 제527조 제4항, 제528조 제1항 규정 해석상 신설, 합병의 창립총회 자체를 이사회의 공고로 갈음 할 수 있으며, 상법 제524조 제6호에 의하여 합병에 의하여 설립되는 회사의 이사, 감사 등을 정할 때 신설, 합병계약서에 그 인적사항이 기재되고 각 합병당사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승인됨으로 신설, 합병의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합병으로 설립되는 회사의 이사와 감사 등 선임절차를 새로이 거칠 필요가 없으며 이사회의 공고로서 갈음 할 수 있다. ⑪ 상법은 신설, 합병의 창립총회에 갈음하는 이사회 공고 방식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이 경우 이사회 공고는 상법 제289조 제1항 제7호에 의하여 합병 당사 회사의 정관의 규정에 의한 일반적인 공고방식에 의하여 할 수 있다. 나. 대법원 판결이 기초로 한 배경 사실 이 사건은 합병당사 회사의 노동조합이 이 사건 원고의 실질적 주체이고 동 노동조합은 합병에 대한 주주총회의 소집 및 회의진행을 수천명의 소속 노동조합원을 동원하고, 주주로 가장하여 주도면밀하게 주주총회장에 진입시켜 주주총회장을 장악하고 소란을 피워 회의자체를 무산시키고 정당한 다수 주주들을 주주총회장 입구에서 협박하여 출석을 못하게 할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하였으나, 사전에 이를 안 은행측에서 주주총회방해금지가처분 결정을 법원으로부터 얻어내고, 이를 근거로 관할 경찰에 협조를 요청하여 출동한 경찰의 엄중한 경계하에 노동조합의 총회방해를 간신히 방어하고 비밀통로로 대주주들을 총회장에 입장시켜 출석 주주의 거의 전원 찬성으로 합병 결의를 통과시킨 사안이다. 위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원 명의로 신설은행에 대한 합병등기가 경료 된 후 이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3.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석 가. 이 판결은 주주총회와 합병에 대한 무려 11개의 논점에 대하여 상세히 판시하였으나 결론은 은행간의 합병에 대한 유효성이라 본다. 이 판결은 다소 무리한 상법 등 관련 법조의 해석이 엿보이나 사실관계에 기초한 합병을 둘러싼 합병에 대한 주주총회결의의 하자의 소와 합병무효의 소의 구체적 요건에 대하여 일응 지침이 되는 판결이라 본다. 나. 결론 금융위기 후 우리나라 은행 등 금융기관의 구조개혁, 재정 건전성 확보와 세계화, 선진화 등 과정에서 현재의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판결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으며, 앞으로 회사법 등과 금융에 대한 더 많은 선구적 판례의 누적과 발전을 대법원에 기대해 본다.
2009-11-05
국제물품매매협약 다룬 최초 우리 판결의 항소심판결
Ⅰ. 사안의 개요 중국 회사인 매도인(원고)과 한국 회사인 매수인(피고)은 2005. 6.11.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오리털을 공급하기로 하는 계약(‘이 사건 계약’)을 체결했다. 피고는 제3자에게 오리털을 전매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원고도 계약 체결시 그 사실을 알았다. 원고는 일정 기간에 걸쳐 피고에게 오리털을 공급했으나 그 중 일부는 선박운항회사의 실수로 환적되지 않아 싱가포르항에 묶이고 도착 예정일이 지나도록 공급되지 않았다. 이를 이유로 피고는 이 사건 계약을 해제하고 대금의 지급을 거부했다. 원고는 미지급대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피고는 ① 원고가 일부 공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계약을 해제했다고 주장하면서, ② 소송 중에 가사 원고의 미지급대금채권이 있더라도 피고가 원고에 대해 가지는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기하여 상계한다는 항변을 제출했다. 위 판결은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Ⅱ.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CISG)(이하 ‘협약’)이 발효했으므로 이 사건 계약에는 협약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은, 원고가 이 사건 계약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피고에게 물품을 공급했으므로 피고는 미지급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나 원고는 물품 일부의 공급을 지연했으므로 피고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피고의 상계항변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피고에게 잔액과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했다. 대상판결은 지연손해금의 이율의 준거법을 중국법이라고 보아 상계적상일 익일부터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22%, 그 익일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11.52%의 비율을 적용했다. 대상판결은 상계의 준거법을 중국법이라고 보고 合同法상 상계에 해당하는 抵銷(저소)의 법리에 따라 피고의 상계항변을 받아들였다. 한편 계약 해제에 관하여는, 대상판결은 원고가 미얀마 양곤에서 공급하기로 한 오리털이 환적되지 않아 싱가포르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를 양곤으로 운송해 달라는 피고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한 것과 그 후 원고가 2005. 9.29. 작성된 구매계약서에 따른 오리털을 공급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본질적 계약위반임과 아울러 장래의 분할부분에 대한 본질적 계약위반의 발생을 추단하는 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보아 당해 분할인도부분과 장래 분할인도부분은 해제되었다고 보았다. 이 결론은, 원고의 일부 오리털에 관한 납기부준수만으로 본질적 계약위반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1심판결과 정반대이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1980년 국제연합에서 채택된 협약은 2005. 3.1.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발효되었다. 대상판결의 1심판결, 즉 서울동부지법 2007. 11.16. 선고 2006가합6384 판결(이하 ‘1심판결’)은 필자가 아는 한 협약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우리 판결이었다. 그 밖에도 2008년에 하급심 판결이 모두 4개가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1심판결에 대해 간단한 평석을 발표했는데(법률신문 제3754호(2009. 6.15. 15면) 대상판결은 필자가 지적한 논점 전부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고 보다 충실히 판단했다. 필자의 평석에 관심을 보여준 담당재판부에 경의를 표하면서 대상판결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한다. 2. 계약의 해제 이 사건 계약은 여러 차례에 걸쳐 물품을 인도할 의무를 부과하므로 이는 협약(제73조)이 말하는 ‘분할인도계약(instalment contracts)’인데, 원고는 그 중 일부에 대해서만 이행지체에 빠졌으므로 피고의 계약해제는 협약(제73조 제1항)이 규정하는 분할인도부분의 계약해제이다. 필자는 1심판결이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는데 대상판결은 이를 정면으로 인정했다. 나아가 1심판결은 협약상 부가기간의 설정에 의한 계약해제가 가능함을 언급하면서도 이 사건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에 대해 필자는 원고가 인도기일을 맞출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오리털의 재생산과 항공편에 의한 인도 및 도착지의 변경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불응했다면 피고의 부가기간 설정과 원고의 이행거절이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사실관계를 좀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상판결은 원고가 양곤에서 공급하기로 한 오리털이 환적되지 않아 싱가포르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를 양곤으로 운송해 달라는 피고의 요구에 불응한 것과 그 후 원고가 2005. 9.29. 작성된 구매계약서에 따른 오리털을 공급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본질적 계약위반임과 아울러 장래의 분할부분에 대한 본질적 계약위반의 발생을 추단하는 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보아 당해 분할인도부분과 장래 분할인도부분이 해제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대체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나 문제된 분할인도부분에 관한 원고의 지체를 이유로 본질적 계약위반을 인정한 것은 의문이다. 다만 피고의 부가기간 설정과 원고의 불이행이 있었다고 본다면 계약의 해제를 인정한 결론은 정당화될 수 있다. 3. 상계 1심판결은 피고의 손해배상채권과 원고의 미지급대금채권은 피고의 상계에 의하여 대등액 범위에서 소멸했다고 보았다. 원고와 피고의 채권은 모두 이 사건 계약으로부터 발생했는데, 협약은 상계를 규율하지 않으므로 상계의 준거법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1심판결이 상계의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보았다면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우리 국제사법(제26조)에 따르면 이 사건 계약의 보충적 준거법은 중국법일 개연성이 크므로 상계적상의 존부는 중국법에 의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대상판결은 이 지적을 받아들여 이 사건 계약의 준거법은 국제사법 제26조에 의하여 중국법이므로 상계의 준거법도 중국법이라고 보고 중국 합동법(合同法)상 상계에 해당하는 ‘抵銷’의 법리에 따라 피고의 손해배상채권과 원고의 대금채권은 상계적상에 있었으므로 원고의 채권은 상계적상일에 소급하여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1심판결에 대해 협약상(또는 중국법상) 피고의 손해배상채권의 통화가 미달러화인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종통화간에도 피고의 대용급부청구권이 인정되어 상계적상이 인정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상판결이 이 점을 판단하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4. 외화채권과 채권자의 대용급부청구권 원고의 대금채권은 미달러화채권인데 원고는 원화지급을 청구했다. 1심판결은 민법 제378조의 해석상 채권자인 원고가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진다고 보아 원화지급을 명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① 협약의 해석상 채권자가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지는지, ② 만일 부정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378조가 이 사건 계약에 적용되는 근거를 밝혔어야 한다는 점과 그 맥락에서 의무이행지도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대용급부는 채무의 내용의 구체적인 이행방법에 관한 것이고 환산의 시기 및 환산율은 채무의 실질적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의 대금채권이 실제로 이행되는 장소 혹은 그 이행을 구하는 소가 제기된 장소인 한국 법이 준거법이라 보고 대용급부청구권을 긍정했다. 대상판결이 논거를 제시한 점은 높이 평가하나, 우선 환산의 기준시기 및 환율은 채무의 실질적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1심은 미화 1달러 당 916.6원으로, 항소심은 1236.7원으로 각 환산했다), 국제사법상 채무이행의 방법에 대해 이행지법을 적용할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민법 제378조의 ‘이행지’는 법률(또는 계약)상 이행지인지, 사실상 이행지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우리 법원이 지급을 명하면 이행지가 한국이 되는지 나아가 한국에서 제소되었다는 이유로 한국법을 적용할 근거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5. 손해배상의 범위 협약(제74조)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은 이익의 상실을 포함하여 위반의 결과 상대방이 입은 손실과 동등한 금액이나, 그 범위는 위반 당사자의 예견가능성에 의하여 제한된다. 대상판결은 협약 제74조와 제75조를 기초로 ① 피고가 다른 곳에서 대체물품을 구하느라 지급한 대금과 이 사건 계약상 대금의 차액, ② 대체물품의 항공운송비용, ③ 피고가 전매수인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 중 일부의 합계를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이는 1심판결과 같다. 대상판결은 1심판결과 달리 이 사건 계약의 해제를 긍정하였으므로 협약 제74조를 적용한 것은 자연스럽다. 6. 지연손해금의 비율 1심판결은 피고에게 판결 선고일까지는 상법 소정의 연 6%, 그 익일부터 완제시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특례법’) 소정의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했다. 필자는 그에 대해 첫째, 연 6%의 지급을 명한 것은 우리 상법을 적용한 것으로 짐작되나 협약이 적용되고 보충적으로 중국법이 적용될 개연성이 큰 이 사건에서 상법을 적용할 근거가 없고 둘째,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한 것도 지연손해금은 준거법에 따라 판단할 사항이라고 보는 대법원판례에 위반됨을 지적했다. 대상판결은 원고의 대금채권에 관한 지연손해금의 준거법은 중국법이라고 판단하고 중국의 합동법(제207조), 민사소송법(제229조), 중국 최고인민법원의 ‘중국 민사소송법의 적용에 관한 약간의 문제점에 관한 의견’(제293 및 제294) 등을 적용하여 상계적상일의 다음날부터 판결 선고일까지는 중국인민은행의 금융기관대출 최고이율인 연 5.22%, 그 익일부터 완제일까지는 그 기간에 대한 위와 같은 최고이율인 연 5.76%의 2배인 연 11.52%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의 설시는 필자의 지적을 전면 반영한 것이다. 7. 맺음말 대상판결이 1심판결에 대하여 필자가 제기한 거의 모든 논점에 대해 판단하고 설시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중국법상 피고의 손해배상채권의 통화와 중국법상 채권자가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지는지를 판단하지 않은 점은 아쉽고, 이 사건에서 본질적 계약위반을 인정한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원고의 대용급부청구권을 긍정한 논거는 설득력이 약하다. 지난 8월1일자로 협약은 일본에서도 발효되었으므로 이제 한중, 한일 및 중일기업간에도 협약이 적용되는 사안이 증가할 것이다. 상계의 준거법, 대용급부(청구)권, 지연손해금의 준거법과 특례법의 적용 여부는 협약의 주요 쟁점은 아니지만 협약이 적용되는 사건, 나아가 채권의 준거법이 외국법인 사건에서 통상 제기되는 기초적 쟁점인데 앞으로 법원이 그에 대해 만연히 한국법을 적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사건처럼 우리 법원이 중국법을 적용할 사건이 점증하고 있으므로 중국법에 대한 연구역량을 제고할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필요시 한중민사사법공조조약(제26조)에 의한 법정보공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09-09-28
상업(商業)어음할인(割引)의 법률관계
1. 서언 상업어음은 상거래가 원인이 되어 거래상 대금결제를 위하여 발행 또는 교부된 어음을 말한다. 그래서 상업어음을 상거래에 수반하여 발행된 어음이라는 의미에서 진정어음 또는 진성어음이라고 한다. 반면에 실제 상거래 없이 오직 자금융통의 목적을 위하여 발행된 어음을 융통어음이라고 한다. 융통어음은 상거래 없이 발행된 어음이므로 남발되기 쉽고 따라서 부도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은행이 상업어음의 할인을 통하여 기업에게 단기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은행의 중요한 업무이고, 또 은행은 한국은행에서 이 할인어음에 대하여 재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은행은 상업어음할인 과정에서 할인의뢰인 또는 어음발행인의 신용이 부족할 경우 물적 담보의 제공이나 연대보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대보증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공적 기관이 바로 신용보증기금이다. 다만 신용보증기금은 은행의 상업어음할인의 경우에 한하여 유효한 보증을 제공하고 융통어음의 경우에는 보증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할인은행과의 보증계약서에서 특약을 맺고 있다.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특약과 관련한 할인은행의 주의의무에 대하여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2. 사실관계 가. 사실관계 (1) 피고 1 주식회사(어음할인 의뢰인겸 신용보증 의뢰인)는 2002년 5월15일 보증원금 1억 6,000만원, 보증기한 2003년 5월14일까지로 정하여 원고(신용보증기금)와 신용보증약정을 체결하고(이 사건 신용보증약정) 피고 2, 4는 위 신용보증약정에 기하여 피고 1이 원고에게 부담하는 구상금채무에 연대보증하였다. (2)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의 내용은, 원고가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에 따라 보증채무를 이행한 때에는 피고 1은 원고에게 그 대위변제 금액과 이에 대하여 원고가 정한 지연손해금, 위약금, 구상채권의 행사 또는 보전에 지출된 법적절차 비용을 지급하는 것 등이다. (3) 피고 1은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에 의한 신용보증서를 보조참가인(할인은행)에게 제출하고 보조참가인과 2억원을 한도로 한 어음할인 대출약정을 체결한 후, 피고 5 주식회사가 발행한 액면금 9,850만원, 지급기일 2003년 3월5일로 된 약속어음(이 사건 약속어음)에 배서하여 이를 보조참가인에게 교부하고 대출금(어음할인금)을 지급받았다. (4) 보조참가인은 그 후 이 사건 약속어음의 지급기일에 그 지급을 위한 제시를 하였으나 어음금의 지급이 거절되자, 원고에게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하였고, 이에 원고는 2003년 10월23일 대출원금 78,800,000원과 이자 금 3,756,493원을 합한 금 82,556,493원을 보조참가인에게 대위변제하고 보조참가인으로부터 이 사건 약속어음을 교부받았다. (5) 원고가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을 체결하고 보조참가인 앞으로 발행한 신용보증서에 특약 제2항으로 “본 보증서는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은 업체 간에 당해 업체의 사업목적에 부합되고 경상적 영업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재화 및 용역거래에 수반하여 발행된 상업어음(세금계산서가 첨부된) 할인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합니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6) 피고 2는 2002년 12월5일 그 소유인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같은 일자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하여 피고 3 앞으로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를 해 주었다. 나. 당사자의 주장 원고는, 피고 2, 4는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의 연대보증인들로서, 원고가 보조참가인에게 대위변제한 금 82,556,493원과 위약금 260,570원, 법적절차비용 금 970,940원을 합한 금 83,788,003원 및 그 중 위 대위변제금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연대하여 원고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 2, 4는, 원고는 상업어음의 할인에 대하여서만 보조참가인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하기로 하였는데, 이 사건 약속어음은 융통어음이므로 원고는 위 어음에 관한 어음할인 대출금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원고가 보조참가인에게 그 대출금을 임의로 대위변제하였더라도 피고 2, 4에 대하여 이 사건 신용보증약정에 따른 구상청구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3. 쟁점과 법원의 판단 이 사건의 경우 신용보증기금이 상업어음 할인대출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보증을 하였는데, 금융기관이 할인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니라 융통어음인 것으로 판명된 경우 그래도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 주된 쟁점이다. 가. 항소심의 판단 위 신용보증서 특약 제2항은 그 문언상 보증책임을 부담하는 주채무의 내용을 한정하는 취지로 되어 있고, 달리 대출 금융기관인 보조참가인이 보증채무의 성립 후에 취하여야 할 조치나 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며, 보조참가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 특약을 준수하기 위하여 상업어음인지를 확인할 필요성은 주채무인 대출채무의 성립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일 뿐이지 그 성립 후에 어떠한 조치나 의무의 이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이 사건 특약은 보조참가인이 이 사건 신용보증에 기하여 어음할인 대출을 한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니라면 그 대출채무는 이 사건 신용보증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그 대출채무에 관하여는 신용보증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어음할인 대출을 한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닌 이상 원고는 위 특약에 기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대출 금융기관인 보조참가인이 신용보증에 기하여 어음할인 대출을 할 당시 어음이 상업어음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에 있어서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하여 원고가 보증책임을 부담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 나. 대법원의 판단 신용보증기금이 발급한 신용보증서에 신용보증 대상이 되는 ‘대출과목’이 ‘할인어음’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한편, “본 보증서는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은 업체 간에 당해 업체의 사업목적에 부합되고 경상적 영업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재화 및 용역거래에 수반하여 발행된 상업어음(세금계산서가 첨부된)의 할인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내용의 특약사항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 신용보증서에 기재된 대출과목과 특약사항의 내용, 신용보증기금의 설립 취지, 신용보증이 이루어지는 동기와 경위, 신용보증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신용보증에 의하여 인수되는 위험 및 상업어음 할인대출 절차의 엄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위 신용보증서의 상업어음할인 특약에 의해 신용보증을 한 당사자의 의사는 금융기관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하여 정상적인 업무처리절차에 의해 상업어음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상업어음할인의 방식으로 실시한 대출에 대하여 신용보증책임을 진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합리적이고, 따라서 금융기관이 상업어음으로서 할인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님이 드러났다 하여도 그 할인에 의한 대출과정에서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면 그에 대하여는 신용보증기금이 신용보증책임을 부담한다. 금융기관이 이 사건과 같은 상업어음할인 특약이 있는 신용보증서에 기하여 할인을 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경우 그 어음할인 대출채무에 대하여는 신용보증관계가 성립되지 아니하고, 금융기관이 어음할인대출을 할 당시 할인 대상 어음이 상업어음인지 여부에 관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신용보증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2001년 11월9일 선고 2000다23952 판결, 대법원 2002년 1월22일 선고 2001다57983 판결, 대법원 2003년 2월11일 선고 2002다55953 판결, 대법원 2003년 10월10일 선고 2003다38108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4. 결어 기존 대법원 판례 위 2003다38108 판결 등은 “이 사건 신용보증조건에 관한 특약은 그 문언상 보증책임을 부담하는 주채무의 내용을 한정하는 취지로 되어 있고 달리 대출 금융기관이 보증채무의 성립 후에 취하여야 할 조치나 의무에 관한 것은 아니며, 대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이 사건 특약을 준수하기 위하여 상업어음인지를 확인할 필요성은 주채무인 대출채무의 성립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일 뿐이지 그 성립 후에 어떠한 조치나 의무의 이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이 사건 특약은 대출 금융기관이 이 사건 신용보증에 기하여 어음할인대출을 한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니라면 그 대출채무는 이 사건 신용보증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그 대출채무에 관하여는 신용보증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 사실심 판결은 이러한 기존 판례의 취지에 맞춰 할인은행이 상업어음이 아닌 융통어음을 할인한 경우에는 그 은행이 할인해 준 어음이 상업어음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신용보증기금은 신용보증서 특약 제2항에 의하여 신용보증책임은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판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할인은행이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여 정상적인 업무처리절차에 의하여 상업어음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상업어음할인의 방식으로 실행한 대출에 대하여는 신용보증책임을 부담하여야 하고, 가령 할인은행이 상업어음으로 할인한 어음이 사후에 상업어음이 아니라 융통어음임이 드러났다고 해도 그 할인과정에서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였다면 그에 대하여 신용보증기금이 신용보증책임을 진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위 특약은 할인은행에 대하여 사실상 무과실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채무자의 책임은 과실책임이 원칙이고, 이 사건의 경우 신용보증기금이 할인은행에 대하여 무과실책임을 부담시킬 하등의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특히 신용보증기금이나 할인은행 모두 금융기관으로 신용보증기금 역시 신용보증기금법에 의하여 할인 의뢰인의 신용상태·경영상태·사업전망 등을 공정·성실하게 조사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모든 책임을 할인은행에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는 점에서 위 특약은 그 타당성이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신용보증기금은 일종의 공공기관으로서 우월적 지위에서 부당한 특약을 할인은행에 강요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소수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타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009-01-01
회사 경영권 분쟁과 업무방해
1. 사안의 개요 피고인은 1998년 9월경 피해자로부터 2,000만원을 투자받아 피해자 및 공소외 7 등과 동업해 공소외 5 회사를 운영하면서 1999년 1월1일부터 2001년 12월31일까지 철원군의 폐기물 수집, 운반사업을 대행해 왔는데, 철원군과의 위 사업대행기간이 만료되어 자동으로 재계약이 되면 피해자를 공소외 5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후 위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 몰래 자신이 설립한 공소외 1 회사 명의로 철원군의 입찰에 참여해서 낙찰을 받는 등 배신적 행위를 했고, 약속 위반이 드러날 때마다 권리양도 계약서, 포기각서 등을 작성해 주었으나 새로운 약속도 전혀 이행하지 않자 피해자는 2004년 3일경 피고인을 사기죄로 고소했고 그 무렵 공소외 1 회사의 명목상 대표이사인 공소외 6, 이사인 공소외 10 및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나 공소외 1 회사에 대한 모든 권한을 피해자에게 양도하기로 구두로 합의한 다음, 이에 따라 2004년 4월8일 위와 같은 내용의 이행합의서를 작성해서 공소외 6, 공소외 10이 이에 날인했고 이에 비로소 피해자가 위 고소를 취소했다. 피고인은 2004년 7월15일경 여전히 피고인을 공소외 1 회사의 사실상 대표이사로 알고 있는 회계책임자 공소외 3에게 요구하여 공소외 1 회사 법인통장 5개와 법인인감을 받은 후 같은 달 19일 및 23일 그 중 3개의 통장에서 합계 3,347만원을 인출해 피고인 혼자만 알고 있는 공소외 1 회사의 다른 법인계좌에 입금했고, 같은 해 8. 2. 위 회사 사무실 출입문을 오토바이 자물쇠로 잠가 공소외 2 등 직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검사는 피고인에 의한 위 자금 이체 행위를 위계에 의한 업무집행방해죄로, 직원들의 회사 출입을 방해한 행위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행위로 각 기소했다. 검사의 기소에 대해 1심 법원인 의정부지방법원은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했고, 항소심인 동 법원 항소부는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불복해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했다. 2. 대법원의 판단의 요지 대법원은 먼저,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라 함은 직업 또는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으로서 일정기간 사실상 평온하게 이루어져 사회적 활동의 기반이 되는 것을 말하며, 그 업무의 기초가 된 계약 또는 행정행위 등이 반드시 적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위법한 행위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한 후, “따라서 어떠한 업무의 양도양수 여부를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양수인의 업무에 대한 양도인의 업무방해죄가 인정되려면, 당해 업무에 관한 양도·양수합의가 존재해야 함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그 합의에 따라 당해 업무가 실제로 양수인에게 양도된 후 사실상 평온하게 이루어져 양수인의 사회적 활동의 기반이 됨으로써 타인, 특히 양도인의 위법한 행위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업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회사 운영권의 양도·양수 합의의 존부 및 효력에 관한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 양수인이 비정상적으로 회사의 임원변경등기를 마친 것만으로는 회사 대표이사로서 정상적인 업무에 종사하기 시작했다거나 그 업무가 양도인에 대한 관계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워, 양도인의 침해행위가 양수인의 ‘업무’에 대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이와 결론을 달리한 원심 판결을 업무방해죄의 법리오해, 채증법칙 위반을 이유로 파기, 환송했다. 3. 쟁 점 이 사건 판결은 회사 운영권 양도가 중도에서 좌절되고 양수인이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양도인을 형사고소한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회사 운영권 양도시 보호되는 양수인의 업무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판시하고 있다. 이하 업무방해죄에 있어서 보호되는 업무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그 요소별로 검토한 후 이 사건 판례의 타당성 유무를 살펴보기로 한다. 4. 검 토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업무’는 행위의 객체인 동시에 보호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업무라 함은, 사람이 사회적 지위에 기해 계속 행하는 사무의 일체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통설적 견해이다. 대법원은 종래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라 함은 직업 또는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을 말하는 것으로서 타인의 위법한 행위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면 되고, 그 업무의 기초가 된 계약 또는 행정행위 등이 반드시 적법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어떤 사무나 활동 자체가 위법의 정도가 중해서 사회생활상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에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1996. 11. 12. 선고 96도2214 판결, 2001. 11. 30. 선고 2001도2015 판결, 2002. 8. 23. 선고 2001도5592 판결 등 참조). 업무방해죄의 ‘업무’는 어느 정도 계속성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1회성의 업무는 여기의 업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1회 한정 업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어느 정도 계속 행해질 것이라면 업무로서 보호된다. 같은 취지에서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업무란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해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의 일체를 의미하고, 그 업무가 주된 것이든 부수적인 것이든 가리지 아니하며, 일회적인 사무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어느 정도 계속하여 행해지는 것이거나 혹은 그것이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서 계속적으로 행해 온 본래의 업무수행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경우에도 이에 해당한다 할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4도8701 판결). 업무방해죄의 ‘업무’는 직업 등과 같이 사회적 활동의 기반으로서의 업무일 것이 요구되므로 개인생활상의 행위는 설사 그것이 계속 반복적으로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여기의 업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법인이나 단체는 원래 특정한 사회활동을 할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고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활동은 대체로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초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개인의 경우에는 사회생활과 개인생활의 구분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그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가정에서의 일상생활 활동, 취미오락으로서의 활동은 반복적으로 행해지더라도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업무방해죄는 사실상 평온하게 행해지는 타인의 사회적 활동의 자유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그 업무의 적법성에 관해서는 공무집행방해죄에 있어서의 공무의 적법성만큼의 엄격함이 요구되지 아니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업무개시의 원인이 된 계약의 민법상의 유·무효, 업무에 관해 필요한 행정상의 허가의 유무 등은 반드시 업무의 보호 가치성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6. 3. 9. 선고 2006도382 판결). 따라서 현재의 권리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원이 없다 하여도 업무방해죄의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정당한 업무가 될 수 있다. 5. 이 사건 판례의 검토 이 사건에 있어서 대법원은 회사 운영권 양도·양수와 관련한 분쟁이 발생한 상황에서 양수인의 업무가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 업무가 되기 위하여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될 것이 필요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첫째, 양도·양수 합의의 존재가 인정돼야 할 것, 둘째, 양도·양수 합의에 따라 당해 업무가 실제로 양수인에게 양도된 후 사실상 평온하게 이루어져 양수인의 사회적 활동의 기반이 됨으로써 타인, 특히 양도인의 위법한 행위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업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에 이를 것이다. 이 사건에 있어서 대법원은 피고인과 피해자 간에 공소외 1 회사의 운영권 양도·양수에 관한 합의가 존재함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달리 판단한 점을 지적하면서, 설사 양도·양수에 관한 합의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피고인이 2004. 6.경부터 이미 공소외 1 회사 사무실 출입문에 ‘소송관계로 인하여 본 사무실을 무단침입하는 자는 형사고발됨’이라는 경고문을 붙이고 이중잠금장치를 한 바 있으며, 피고인으로부터 법인인감 등을 건네받지 못한 피해자는 공소외 1 회사의 명목상 대표이사였던 공소외 6의 협조를 얻어 인감분실신고를 한 후 새로 만든 법인인감을 이용해 법무사 사무실에서 주주명부, 임시주주총회 의사록 및 이사회 회의록 등 각종 서류를 작성한 다음 주식양도신고 및 임원변경등기신청 등을 했고, 이와 같은 사실을 2004. 7. 말경에게 피고인에게 통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 “사정이 그러하다면, 공소외 1 회사의 운영권 양도 양수 합의의 존부 및 그 효력을 둘러싸고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 적법한 양수인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에 의하여 비정상적으로 임원변경등기가 이루어진 것만으로는 피해자가 공소외 1 회사 대표이사로서의 정상적인 업무에 종사하기 시작했다거나 그 업무가 공소외 1 회사의 기존 운영자인 피고인과의 관계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우며, 또 그와 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이 피해자 등의 공소외 1 회사 사무실 출입을 막은 것이 공소외 1 회사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6. 결 론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종래 판례, 학설상 인정되어 온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인 업무의 개념을 기초로 회사 운영권 분쟁의 상황에 있어서 업무의 사회적 활동 기반성, 보호 가치성 유무를 판단하고 있는바, 그 결론에 있어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회사의 운영권이 이전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고 이를 둘러싼 분쟁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분쟁이 발생한 경우 회사 운영권 양도를 실현하려고 하는 측과 이를 저지하려고 하는 측은 충돌할 수 밖에 없고 이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형사상 가능한 법적 조치를 취하기 마련이다. 특히 경영진의 진퇴와 관련하여 전, 현 경영진이 상대방을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 사건 판결은 종래 통설, 판례에 의해 인정되어온 업무방해죄의 업무의 개념을 회사 운영권 관련 분쟁에 적용한 것으로서 향후 회사 운영권의 양도나 M&A와 관련된 분쟁에 있어서 참고가 될 사례라고 생각된다.
2008-05-12
갑판적 자유약관
1. 판결의 요지 가. 사실관계 2005년 4월1일 부산에서 선적된 컨테이너 화물 7대는 같은 달 6일 나고야에 도착했는데, 같은 달 14일 개봉해 보니 갑판적 컨테이너 4대에 적입됐던 화물에 침수손과 녹손이 발견됐다. 이는 갑판적 운송 중 해수노출로 인해 발생된 것으로 밝혀졌고, 선창 내 적부 운송된 컨테이너 3대의 화물은 손상을 입지 않았다. 피고 1은 복합운송업자이고 피고 2는 해상운송업자였는데, 피고 1, 2의 선하증권 표면에는 화물을 갑판적 운송한다는 유보문구가 기재돼 있지 않았다. 피고 2가 발행한 마스터 선하증권 이면약관에는 “제15조. 갑판적: (1) 운송인은 컨테이너 화물을 선창 이외에 갑판 위에 선적할 권리가 있다. (2) 화물이 갑판적 운송될 때, 운송인은 선하증권 표면에 이를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명시돼 있었다. 피고 1 발행의 하우스 선하증권에는 갑판적 관련 규정이 없었다. 나. 판결요지 법원은 피고들이 화물을 선창에 안전하게 적부해서 운송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하면서 피고들의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피고들은 포장당 책임제한을 항변했으나, 법원은 (1) 화물이 로봇으로서 정밀하고 예민했고, (2) 갑판적은 강한 바람이나 파도, 비, 해풍, 직사광선, 태양열, 극심한 온도변화에 의해 용기나 화물이 손상될 위험이 크며, (3) 갑판적 화물이 손상된 경우 이를 공동해손액에 산입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별도 갑판적 약정없이 화물을 갑판적 운송한 것은 무모한 행위에 해당해 포장당 책임제한 배제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피고 2는 갑판적 자유약관이 있으므로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1) 피고 2가 피고 1이나 원고에게 갑판적 자유약관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았고, (2) 피고 2 발행의 선하증권 표면에 갑판적 규정이 없으며, (3) 피고 1이 원고에게 발행한 선하증권 표면과 이면에 갑판적 규정이 없으므로 피고 2는 원고에 대해 선하증권 이면약관을 원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피고2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의 청구 중 물건 가액에 대해서는 전부 인용하고, 원고 직원들의 해외출장비용 부분은 기각했다(현재 본 사건은 쌍방이 항소해 서울고법에 계속 중이다). 2. 평 석 가. 갑판적의 의미 갑판적은 화물을 선박의 갑판에 적부하는 것으로서, 선창 내 적부하는 것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갑판적 운송은 다수 국가의 법률에서 금지돼 왔고, 다만 운송인이 운송물을 갑판적으로 할 수 있다는 당사자의 특약이 있거나 관습이 있는 경우 등에 인정돼 왔다. 최근 컨테이너 운송과 더불어 갑판적이 일반화되고 있으나, 컨테이너 형태에 따라 갑판적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나. 운송약관 조항 설명의무 법원은 피고 2가 갑판적 자유조항에 대해 화주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그간 이면약관의 내용이 상관습 내지 그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운송약관에 대한 설명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던 운송업계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통상 갑판적의 경우 적하보험에서 담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화주들이 사전에 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또한 운송업계 종사자들은 약관에 대한 설명의무가 비교적 광범하게 인정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상판결에서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특수한 성격의 제품(고가의 정밀 제품)이면 단지 이면약관에 의존하지 말고 개별 운송계약서를 별도로 체결해서 쌍방간 권리의무 관계를 명확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 판례의 경향 대법원은 운송인이 화주의 동의 없이 로우어 쉘 1상자를 갑판적으로 운송한 사안에서 운송인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가 있다고 보아 운송인의 책임제한을 배제한 바 있다(대법원 2006.10.26. 선고 2004다27082 판결). 위 대법원 판결의 원심법원에서는 화주가 갑판적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 점을 중요한 논점으로 언급하고 있다. 영국법원은 화주의 동의없는 갑판적을 근본적 계약위반의 유형으로 논의해 왔으나, Photo Production v. Securicor Transport 판결이 근본적 계약위반의 이론을 폐기하고 개개의 계약내용의 의미를 해석해서 운송인의 면책여부나 책임제한 적용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한 이후 확립된 견해가 없는 듯하다. 다만 하급심판결로 화주의 동의없는 갑판적 운송에 대해 헤이그-비스비규칙에 규정하고 있는 포장당 책임제한 조항을 원용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있으나(Wibau Maschinenfabric Hartman v. Mackinnon Mackenzie(챤다호 사건)(1989) 2 Ll.R.494.), 영국법원(The Commercial Court of London)은 운송인이 임의로 갑판적 하여 항해하던 중 황천으로 화물이 멸실된 사건에서 헤이그규칙상의 책임제한권을 인정해 위 챤다호 판례의 취지와 다르게 판단한 바 있다(The Kapitan Petko Voivoda [2002] EWHC 1306 COMM). 한편 함부르크규칙 제9조에는 갑판적에 대한 화주와 운송인의 계약관계나 관습이나 법령의 존재 여부에 따라 그 법률 효과를 달리 규정하고 있다. 즉 당사자의 의사나 갑판적 관습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고의나 무모성 등을 판단해 책임면제 또는 책임제한 여부를 정하고 있으며, 운송인이 화주와 명시적으로 선창에 선적해 운송하기로 한 약정에 반해 갑판적 운송을 한 경우에는 운송인은 포장당 책임제한규정을 원용할 수 없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함부르크규칙이 화주의 입장을 고려한 국제협약임에 비추어 볼 때, 향후 갑판적의 효과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특히, 당사자간의 명시적인 갑판적 약정이 없는 경우 개별사안에 따라 책임제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영국법원의 판례경향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라. 평 가 대상판결의 경우는 당자자간에 명시적으로 갑판적으로 운송할 것으로 또는 운송하지 않을 것으로 약정한 경우가 아니므로, 함부르크규칙과 관련해 살펴본 바와 같이,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해 운송인의 책임면제 또는 책임제한 배제여부를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우리 상법 책임제한규정은 화주에게 심히 불리해 책임제한 배제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운송인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필요가 있다는 점, 통상의 컨테이너에 비해 Flat-Rack 컨테이너의 경우 갑판적에 적합하지 않아 화물이 손상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 본 건 화물이 정밀한 제품이라는 점, 갑판적의 경우 보험에 부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대상판결에서 설시하고 있는 갑판적으로 인해 증가하는 위험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운송인이 갑판적 자유조항을 이면약관에 부동문자로 인쇄하는 것만으로 책임제한 항변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화주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이 운송인의 책임제한을 배제한 것은 타당하다. 마. 결 론 이 판결은 이전의 대법원 판결과 비교해 볼 때, 갑판적을 이유로 고의 또는 무모성이 인정된다고 설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그 외에도 설명의무나 갑판적 표시방법 등을 다루고 있어 실무상 의미있는 판결이다. 입법론적으로는 갑판적과 관련하여, 함부르크 규칙과 같이 각 당사자들의 합의나 관습의 존재 등을 고려해 사안별로 나누어 상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함부르크규칙에 의하더라도 개별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바, 판례 축적 등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2008-04-07
‘송유관이설협약’의 법적 성질에 관한 소고
Ⅰ. 사안의 개요 피고(주식회사 대한송유관공사)는 고속국도법과 도로법에서 정하고 있는 도로부지와 접도구역에 송유관을 매설하기 위하여 1991년 10월8일 원고(한국도로공사)와 그 매설에 관한 협약(이하 ‘이 사건 협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그 협약 중 송유관 시설의 이설 및 그 비용부담에 관한 내용은 ‘고속국도의 유지관리 및 도로확장 등의 사유로 도로부지 및 접도구역에 매설한 송유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의 이설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원고는 피고에게 송유관시설의 이전을 요구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발생되는 이설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로 돼 있었다. 원고는 1992년 5월18일 피고에게 ‘도로점용 및 접도구역 내 공작물 설치허가’를 하였는데(이하 위 허가를 ‘이 사건 허가’라 한다), 그 허가조건 중의 하나로 피고가 이 사건 협약을 위반하였을 때에는 원고가 임의로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을 부가하였다. 피고는 위 허가에 따라 송유관매설에 착수하여(경부고속도로 영남권 제3공구는 1992년 10월경 착공하였다), 1995년 3월31일 매설을 완료하였는데(접도구역의 토지소유자들과는 따로 토지사용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였음), 위 매설완료 전인 1994년 2월1일 도로법시행규칙이 개정되어 접도구역에는 관리청의 허가 없이 송유관을 매설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초순경 경부고속도로 청원~증약 사이 구간의 도로확장공사계획에 따라 그 구간에 매설되어 있던 송유관의 이설이 불가피하게 되자, 원고는 1997년 4월14일 피고에게 ‘송유시설 이설비용 부담주체 등에 관한 업무협의 요청’을 보내면서 위 구간의 도로부지 및 접도구역 내에 매설되어 있는 송유관을 이 사건 협약에 따라 피고의 비용으로 이설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피고는 1997년 4월29일 원고에게 ‘송유시설 이설비용 부담 주체 등에 관한 의견 회신’을 보내면서 “이 사건 협약에 따라 도로부지 및 접도구역 내의 송유관 이설 비용은 피고가 부담하고, 도시계획구간 등 기타지역 내의 송유관 이설비용은 원고가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답신하였다. 한편, 건설교통부는 고속국도 접도구역에 건축허가 또는 형질변경허가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허가신청서에 ‘보상비청구포기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접도구역관리지침’을 시행하여 오다가 1998년 8월1일 재산권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위 지침에서 보상비청구포기서 징구에 관한 부분을 삭제하였는데, 피고는 이를 이유로 하여 종전의 입장을 바꾸어 1999년 2월24일 원고에게 “위 지침이 개정되어 이 사건 협약 중 접도구역 내 송유관 이설비용을 피고가 부담키로 한 조항의 근거규정이 소멸되었으므로 이 사건 협약도 변경되어야 한다”는 뜻을 통보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 협약은 그 성질상 허가에 붙일 부관안(附款案)에 대한 협약이라 보아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허가가 실효되면 그 부관이 실효되는 것과 같이 이 사건 협약 역시 허가가 실효되면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당연히 실효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 허가는 도로부지에 관한 부분과 접도구역에 관한 부분으로 나뉘어서 효력을 달리 할 수 있는 허가가 아니라 그 전체가 효력을 같이 하는 일체불가분의 허가라고 봄이 타당하고, 따라서 이 사건 허가에 붙은 부관안에 관한 협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 사건 협약 역시 도로부지에 관한 부분과 접도구역에 관한 부분으로 나뉘어져 효력을 달리 할 수 없는 일체불가분의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사건 송유관 매설사업의 특성상 그로 인하여 이 사건 허가 및 그에 부가된 이 사건 협약의 전부 또는 일부의 효력이 상실되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어서, 이 사건 협약은 위 시행규칙 개정 이후에도 그 효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할 것이다. 이 사건 협약에서 이 사건 허가에 따라 매설된 송유관의 이설비용을 전부 피고가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는 이상, 이 사건 공사구간에 관한 송유관 이설비용은 피고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Ⅲ. 대상판결의 문제점 송유관이설과 관련해선, 대상판결의 원심인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03.3.21. 선고 2002가합2382판결이외에,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06.1.11. 선고 2003가합6145판결이 있다. 지면관계상, 논의의 출발점인 1991.10.8.에 체결한 협약의 법적 성질만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 당해 협약의 법적 성질의 문제 당해 협약의 법적 성질에 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원심과는 달리, 대상판결은 그 협약을 ‘허가에 붙일 부관안에 대한 협약’으로 보되, 구체적인 부관의 종류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2003가합6145판결은 그 협약을 대상판결과 동일하게 ‘허가에 붙일 부관안에 대한 협약’으로 보면서, 동시에 그 내용에 있어서는 피고에게 송유관 이설비용의무를 명하는 점에서 부담에 해당한다고 구체적인 부관의 종류를 적시한다. 허가이전엔 당해 협약을 ‘부관안에 대한 협약’으로 보고, 허가이후엔 부관 그 자체로 보는 것은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부관적 접근의 문제점은 후술함). 그러나 시간적 흐름과 사안의 경과에 비추어, 여기서의 협약이 부관 가운데 부담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비록 허가에 협약위반에 따른 허가취소를 규정하고 있긴 하나, 이는 일종의 철회권유보 또는 철회사유의 확인일 뿐이고, 당해 협약은 실질적으로 당해 허가발급의 기초(전제조건)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체인 행정행위의 효과를 보충·보조하는 부담의 본래적 기능을 여기선 발견하기 어렵다. 2. 실효논증의 문제 2003가합6145판결처럼 당해 협약을 부관 특히 부담으로 볼 때, 그 자체를 직접적인 소송대상으로 삼아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도 검토될 수 있지만, 당해 협약의 부관적 접근은 결국 그것의 유효성여부를 본체인 행정행위의 존부에 의존시킨다(부관의 부종성에 따른 실효논증). 원심이 “송유관 이설공사의 비용부담에 관한 문제는 허가의 요부나 허가신청시 보상비청구포기서 제출의무의 유무와는 무관한 별개의 문제라 할 것이며, … 위 규칙 및 지침의 개정은 이 사건 협약의 효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한 반면, 대상판결은 실효논증을 전개하였다. 즉 대상판결은 당해 허가 및 협약의 가분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도, 송유관매설사업의 특징을 들어 당해 허가 및 협약의 가분성을 부정하고, 이를 근거로 법령개정에도 불구하고 당해 허가 및 협약의 효력을 인정한다. 반면 2003가합6145판결은 당해 허가를 도로구역상의 점용허가(송유관매설허가)와 접도구역상의 점용허가(송유관매설허가)로 나누어, 관련 법규정의 개정을 근거로 후자의 실효를 논증한 다음, 당해 협약의 접도구역과 관련된 부분이 실효됨을 논증하였다. 행정행위의 실효사유로, 대상의 소멸, 해제조건의 성취, 목적의 달성을 들지만, 이 밖에 발해진 규율의 대상상실을 초래하는 중대한 사실·법상황의 변경에 의해서도 행정행위는 실효될 수 있다(Kopp/Ramsauer, VwVfG Kom. 2003, § 43 Rn. 41, 42). 이 점에서 대상판결이 취한 실효논증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는 반면, 행정행위의 기초가 되는 법률적 근거의 소멸을, 곧바로 그 행정행위의 실효로 연계시킨 2003가합6145판결의 논증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실효적 접근의 경우, 당해 허가의 가분성 여부가 관건이다. Ⅳ. 관 견 1. 당해 협약에 관한 행정계약적 접근 당해 협약에 대한 부담적 접근이 의문스러울 경우, 조건에 의한 부관적 접근도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조건적 부관은 본체인 행정행위의 성립여부의 차원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부관의 본질적 징표인 부종성으로 말미암아, 부관론의 궁극적 지향점은 부관이 아니라, 본체인 행정행위의 성립과 존속 그 자체이다. 일종의 계약서와 같은 당해 협약서의 내용 및 새로운 변경합의의 성립 등의 일련의 사정을 고려할 때, 부관적 접근은 협상을 기조로 한, 사안의 실체와 어울리지 않는다. 부관적 기능의 수행을, 곧바로 부관으로서의 법적 성질로 환치시킬 순 없다. 기왕의 도로점용 등의 허가와의 관련성은 견지하되, 논증의 무게중심은 당해 협약 그 자체에 두어야 한다. 여기선 법적 규율의 합의적 생성의 측면을 앞세우면서, 아울러 허가에 대한 준비행위로서의 의미와 독립적인 존재의미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법제도가 관건이다. 행정행위의 발급과 관련이 있는, ‘종속적 행정계약’이 해결책이다(여기서의 행정계약은 공법적 계약으로서의 그것을 의미한다. 참고: 김남진, 행정계약·공법상계약·행정법상계약, 고시계 2007.7.) 그런데 당해 협약의 주된 내용은 피고의 일방적인 급부의무에 초점이 모아져 있을 뿐, 원고의 급부는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궁극적으로 원고의 급부에 해당하는 이 사건 허가의 발급이, 묵시적으로 예정되어 있다 하겠다(급부의무와 행정활동의 기대간의 의존관계). 요컨대 일방의 주된 급부만을 규율하고 타방의 반대급부는 명시하지 않은, 독일에서의 행정계약의 일종인 ‘불완전 교환계약’(Hinkende Austauschvertrage)이 이에 해당한다. 결국 당해 협약은 ‘불완전 교환계약’이자, ‘종속적 계약’으로서의 행정계약에 해당한다. 체약강제의 경우가 아니라면, 자유와 재산권에 계약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에 법률유보원칙은 원칙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독일처럼 행정계약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이상의 계약을 인정하는 데 이론적 문제는 없다. 그저 낯설음과 외면의 문제이다. 2. 당해 협약에 대한 사정변경의 원칙의 적용 행정계약적 접근에 따른 이점은, 협약의 수정(변경)가능성을 허가의 가분성 여부가 아닌 사정변경의 원칙에서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행정절차법 제60조 제1항은 “계약내용을 확정함에 있어 결정적이었던 관계가, 계약체결 이후 당사자 일방으로부터 그 계약의 원래 규율을 고수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본질적으로 바뀐 경우”에 타방에게 계약내용변경요구권과 해지권을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변경되는 ‘관계’에는 당연히 법적 변경 역시 고려되며, 이에는 법규정은 물론 판례의 변경까지도 포함된다고 한다. 반면 행정규칙상의 변경은 제외되고 있다(Kopp/Ramsauer, VwVfG, § 60 Rn. 9a). 우리의 경우 이상과 같은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서 사정변경의 원칙의 통용이 문제된다. 동 원칙에 관한 일반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판례의 기조와는 달리) 국내 민법학계의 통설은 그것을 신의칙에 근거하여 계약법의 일반원칙으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불예견론’이 민법에선 부정되는 데 대해서, 행정계약에선 1916년의 ‘Bordeux 가스사건’이래로 인정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76년 행정절차법제정당시부터 동법 제60조 제1항을 통해 ‘행위기초론’(일종의 독일식 사정변경의 원칙)을 성문화한 반면, 민법에선 2001년의 채권법현대화법에 의한 민법개정에서 비로소 그것이 명문화되었다. 우리 역시 2004년 민법개정안 제544조의4를 통해서 동원칙에 관한 일반규정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행정법의 경우 행정의 탄력성과 현실조응성을 기조로 한 행정행위의 철회제도를 통해서, 사정변경의 원칙에 대해서 더 호의적이다. 따라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일반원칙으로 설정하면, (국회 통과 전이라도) 민법개정안의 내용을 당해 협약에 투영시켜 논증하는 데 어려움도, 문제도 없다(交互的 포용질서로서의 공법과 사법). 이를 통해서 행정계약에 관한 행정절차법상의 입법공백을 메울 수 있으며, 나아가 행정계약의 법리의 일단을 형성할 수 있다(참조: 김대인, 행정계약법의 이해, 2007). 요컨대 당해사안에선 계약 구속력의 원칙과 사정변경의 원칙의 조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협약의 수정(변경)의 능부가 관건이 되어야 한다.
2007-12-24
부가가치세 포탈에 있어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I. 사실관계 및 사건경과 1. 사실관계 피고인들은 1999. 4. 수출계약서를 위조하여 외화획득용 원료구매승인서를 발급받고 이를 기화로 영세율로 금지금(순도가 1000분의 995이상 금괴)을 매입하고 이를 가공?수출하지 아니한 채 매입 즉시 전량 구입단가보다 낮은 가격에 국내 업체에 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라 함)를 부과, 판매하여 부가세 63억원을 징수하자마자 그 즉시 법인계좌에서 전액 인출하여 사용한 후 이중 15억원에 대하여는 부가세 신고조차 하지 않고, 나머지 48억원에 대하여는 신고만 한 채 제1기분 63억원 상당을 납부하지 아니하고, 이어 1999. 7. 동일한 수법으로 징수한 부가세 5억원 역시 임의 소비하고서도 신고는 하고 곧바로 폐업신고를 하는 등으로 제2기분 부가세 5억원을 납부하지 아니하였다. 2. 사건경과 가. 공소 제기(신고?미신고 불문 미납부 전액 조세포탈로 의율, 기소) 검찰은 2004. 9. 7. 피고인들이 위와 같이 미납부한 부가세 68억원 전액에 대하여 조세범처벌법 제9조제1항의 조세포탈행위로 의율,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조세)죄로 공소를 제기하였다. 나. 1심 판단(신고부분 무죄, 무죄이유는 조세포탈이 아닌 조세체납 문제라는 취지) 1심 법원은 2004. 11. 18. 미신고분인 제1기분 15억원에 대하여는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나머지 신고분 53억원에 대하여는 부가세의 조세채권 확정에 관하여 신고납부방식을 취하고 있는 현행 조세법체계하에서 부가세는 납세의무자의 신고로 일응 그 조세채권이 확정되는 것이므로 피고인들이 부가세액을 신고한 이상 이를 납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즉 신고한 이상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조세체납의 문제일 뿐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다. 원심 판단(원심파기, 신고부분도 조세포탈에 해당한다고 전부 유죄 선고) 검찰은 2004. 11. 20. 무죄부분에 대하여 항소하였고, 원심(서울고등법원)은 2005. 11. 23. 정상적으로 신고한 부분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처음부터 영업활동을 통하여 이득을 얻을 목적이 없고 부가세를 납부할 의사 없이 사위적인 방법으로 영세율의 적용을 받아 금괴를 구입한 다음 이를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여 부가세액이 포함된 판매대금에서 구입가격(부가세가 포함되지 않는 가격)을 제한 나머지 금액을 이득으로 취하려 한 것이므로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조세범처벌법규가 예정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고, 비록 피고인들이 신고절차를 마쳤다 하더라도 조세포탈행위 성립에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1심 일부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신고한 53억원을 포함, 68억원 전액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II. 법적 쟁점 이건의 주요 쟁점은 위와 같이 수출계약서를 위조, 영세율인양 가장하여 영세율로 금지금을 매입하고, 부가세의 거래징수 제도를 악용, 구입단가보다 낮은 가격에 국내업체에 부가세를 부과, 판매하여 마치 징수한 부가세액을 납부할 것처럼 가장, 공급을 받는 자를 기망, 징수한 부가세액 전액을 그 즉시 임의사용한 다음 세무관서를 기망, 신고한 경우 조세포탈죄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임 즉 이건처럼 기망징수하여 기망신고한 경우 설령 신고는 하였더라도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임 Ⅲ. 대법원 판결요지(전원합의체 판결) 1. 다수의견 (8인의 대법관, 원심판단 정당) 대법원은 2007. 2. 15. 전원합의체 판결로 조세범처벌법 제9조 제1항이 규정하는 조세포탈죄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인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의 확정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경우뿐만 아니라 비록 과세표준을 제대로 신고하는 등으로 조세의 확정에는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하지만 조세범처벌법 제9조의3이 규정하는 조세포탈죄의 기수시기에 그 조세의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고 그것이 조세의 징수를 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 인하여 생긴 결과인 경우에도 조세포탈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시하면서, 다만, 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조세의 징수를 회피할 목적으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그 재산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은닉 또는 탈루시킨 채 과세표준만을 신고하여 조세의 정상적인 확정은 가능하게 하면서도 그 전부나 거의 대부분을 징수불가능하게 하는 등으로 과세표준의 신고가 조세를 납부할 의사는 전혀 없이 오로지 조세의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의도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를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실질에 있어서는 과세표준을 신고하지 아니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이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위와 같은 거래방식은 처음부터 정당한 세액의 납부를 전제로 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서, 거래상대방으로부터 거래징수하는 한편 과세관청에 대하여는 책임재산의 의도적인 산일과 그에 이은 폐업신고에 의하여 그 지급을 면하는 부가세 상당액이 위 거래의 유일한 이윤의 원천이자 거래의 동기이었음을 알 수 있는바, 본 사안은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피고인들은 처음부터 부가세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의도로 거래상대방으로부터 징수한 부가세액 상당 전부를 유보하지 아니한 채 형식적으로만 부가세를 신고한 것에 불과하고 그 실질에 있어서 부가세를 신고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것이어서 조세포탈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신고한 부분까지 유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2. 소수의견 (5인의 대법관) 이에 대하여 5인의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제시하였는데, 별개의견은 부가세와 같은 신고납세방식의 조세에 있어서는 납세의무자의 신고에 의하여 조세채무가 확정되므로 과세표준 및 세액을 실제 그대로 신고하여 조세채권 확정에 어떤 방해나 지장도 초래하지 않았다면 설사 납세의무자가 조세체납의 의도로 과세표준 신고 이전에 재산을 은닉?처분하였다 하더라도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의하여 조세포탈의 결과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수의견과 같이 본다면 조세징수만을 불가능 또는 곤란하게 한 행위가 있는 경우에도 조세포탈죄가 성립한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럴 경우 신고납세방식의 조세에 있어서 조세포탈범의 구성요건에 책임재산 은닉행위와 무납부 또는 과소납부행위를 포함시키고 징수권의 침해 여부에 따라 구성요건해당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되어 신고납세방식 조세의 본질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둘째, 대법원은 그동안 사전소득은닉행위를 과세표준 자체를 은닉하는 행위로 보아왔는데 다수의견에 의하면 책임재산 일반을 감소시키는 부정행위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게 되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다. 셋째, 다수의견과 같이 납세의무자의 책임재산을 은닉?탈루시키는 행위가 있으면 신고여부와 상관없이 조세포탈죄가 성립하는 것이라면 조세범처벌법 제9조의3에서 신고?납부기한이라는 기수시기를 따로 두고 있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넷째, 다수 의견에 따를 때 과연 어떠한 경우가 납세의무자의 과세표준 및 세액의 신고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여 실질적으로는 과세표준을 신고하지 아니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인지 알기 어렵다. 다섯째, 다수의견에 의하면 부과과세방식의 조세에 있어서도 확정과는 상관없이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는 적극적인 부정행위와 징수불능이 있으면 조세포탈범이 성립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바, 종래에는 납세의무자가 기망행위를 하였으나 과세관청이 이에 속지 않고 정당한 상속세액을 부과한 경우 조세포탈범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으나 앞으로는 납세의무자가 부과된 세액을 납부하지 아니한 경우 조세포탈범이 성립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어 조세포탈범의 구성요건적 행위를 종전보다 확장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여섯째, 우리 세법은 조세채무의 확정과 징수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고 일단 조세채권이 확정되면 그 조세채권에 대하여는 일반채권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바, 조세포탈죄는 정당한 조세채권의 확정을 방해하거나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이해하여야 하고, 다수의견과 같이 정당한 조세채권의 확정에는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하더라도 조세의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규정으로 볼 수는 없다. Ⅳ. 판례 평석(이건은 기망징수에 기한 기망신고이므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의 전형임에도 다수의견 이유란에 이에 대한 판시가 누락된 점) 1. 다수의견 의의 조세범처벌법 제9조제1항의 조세포탈범은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함으로써 성립한다. 대법원은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대하여 “조세의 부과?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케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라고 일관되게 판시하여 왔다. 또한 적극적 행위가 수반되지 아니한 단순한 미신고 또는 과소신고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여 왔다. 그리하여 이번 판례는 기한 내에 신고하되 납부만 하지 아니하면 포탈이 아니고 체납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1심 판단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고, 또한 단순 무신고나 허위 신고만으로 조세포탈죄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종전 판례(대법원 1998. 6. 23. 선고 98도869, 2000. 4. 21. 선고 99도5355 판결)가 있음에도 부가세 포탈에 관한 한 비록 확정 신고를 하였다 하더라도 거래 실질에 있어 징수불능 의도로 거래징수한 부가세를 유보하지 아니한 채 형식적으로 신고하여 조세채권이 정당하게 확정되는 경우 이는 실질에 있어 부가세를 신고하지 아니한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조세포탈에 해당한다는 판시로 부가세 포탈에 있어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신고납세방식에서 신고는 조세채권을 확정시키는 준법률행위이고, 부과과세방식에서 신고는 단순한 세액결정자료 제출에 불과하므로 신고납세방식 세목(법인세, 소득세, 부가세 등)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범위가 부과과세방식 세목(상속세, 증여세 등)보다 넓고, 일본 역시 우리의 부가세법에 해당하는 소비세법 제64조에서 조세포탈행위를 ‘사위 기타 부정한 행위’로 규정하고 판례도 부정행위를 “포탈의 의도로써 세금의 부과?징수를 불능 혹은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것 같은 어떤 위계 그 밖의 공작을 행한 것”(최고재판소 1968. 11. 8. 선고)이라고 우리 대법원과 같은 취지로 판시하고 있는바, 이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례는 향후 자기부과조세제도의 확립 등과 괘를 같이하여 신고납세방식 세목의 경우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범위에 대해 종전보다 넓게 해석하겠다는 경향을 밝힌 획기적인 판례다. 여하튼 위 다수의견에 의해 2003. 7. 1. 이전에는 영세율제도, 그 이후에는 면세금제도를 악용하여 금지금 변칙거래를 통해 2조원 이상의 부가세를 포탈하여 국고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조직적, 지능적 조세포탈사범에 대한 법리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이들을 하나같이 조세포탈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2. 다수의견 평석 다만 다수의견 유죄이유 판시내용과 관련, 아쉬운 점은 크게 네 가지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다수의견 판시 미흡에 기인하여 소수의견이 있었기에 이하 내용을 다수의견에 추가하여 판단하였으면 소수의견도 불식하고 세법엄격해석 원칙에 맞는 판시였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법해석 판시와 관련하여 일부 간과한 부분이 있다. 대법원 판례는 하나같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를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라고 판시하는데 그치고 있는 바, 사기는 부정한 행위의 주요 태양으로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고, 여기서 기망이라 함은 ‘널리 재산상의 거래행위에 있어서 서로 지켜야 할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적극적 및 소극적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를 해석함에 있어 이건처럼 세무행정당국이나 공급을 받는 자를 기망하여 납세의 의무(헌법 제38조)를 감면받거나 공제받고, 징수한 부가세액마저 위 거래의 유일한 이윤의 원천이기에 징수불능케 하여 납세의무 이행을 면탈하여 세무행정의 적정성을 침해할 직접적인 위험이 있는 단계에 이르는 행위 즉 기망신고, 기망징수 행위는 당연히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해석에 포함하여 판시해야 함에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조차 이러한 기망신고, 기망징수 행위를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의 대표사례로 포함시켜 판시하지 아니하고 만연히 종전 판시에만 그친 아쉬움이 있다. 참고로 헌법상 납세의무를 침해하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와 유사한 병역법 제86조에 정한 ’사해행위‘의 의미 및 그 실행의 착수시기와 관련되어 대법원 판례(2005. 9. 28. 선고 2005도3065판결)는 ’사위행위‘라 함은 “병역의무를 감면받을 조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그러한 신체적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병무행정당국을 기망하여 병역의무를 감면받으려고 시도하는 행위를 가리키고 다른 행위 태양과 상응할 정도로 병역의무의 이행을 면탈하고 병무행정의 적정성을 침해할 직접적인 위험이 있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사위행위의 실행을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는 점에서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해석과 관련하여 기망신고, 기망징수 부분까지 포함하여 판시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둘은 이건에서 피고인들은 조세부과측면에서 수출계약서를 위조하여 영세율인양 기망신고하여 조세부과를 불가능하게 하였기에 전형적인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사전소득은닉행위)임에도 이에 대한 판단이 누락되었다는 점이다. 기망신고인 이유는 첫째 수출계약서를 위조하여 영세율로 지금을 양수한 사실이다. 둘째 영세율제도를 악용하여 영세율로 양수받은 지금을 하나같이 국내에 과세판매하여 거래를 위장한 사실이다. 셋째 그럼에도 마치 적법하게 영세율로 지금을 양수받은 양 매입세액을 영세율로 기망신고하여 공제받은 사실이다. 넷째 일부는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고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위 네 가지 측면에서 피고인들은 영세율 적용대상이 아님에도 영세율로 매입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 영세율인양 기망신고하여 매입세액을 부당하게 공제받아 조세 부과를 불가능하게 한 것에 해당하므로 이건 신고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태양인 기망신고에 해당함에도 위 다수의견에서 이에 대한 판시가 누락되었다. 사단법인 한국세무학회의 원심법원에 대한 사실조회 회신에 따르면 “피고인들이 처음부터 수출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출할 것처럼 수출계약서를 위조하여 영세율로 부가세 신고를 함으로써 납부세액을 축소시키거나 환급받았다면 그와 같은 행위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므로 조세포탈범으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참고로 일본의 통설이나 판례(최고재판소 1973. 3. 20. 선고)에 의하면 기망신고 일종인 허위신고 자체만으로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셋은 피고인들은 조세징수측면에서 마치 부가세를 지급할 것처럼 공급을 받는 자를 기망, 징수하고 이를 전액 임의사용하여 조세징수를 불가능하게 하였기에 전형적인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징수불능)임에도 이에 대한 판시내용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기망징수하여 징수불능인 이유는 첫째 현금과 같고, 당일 매입하여 바로 매출하므로 시세변동이 없는 영세율 지금을 하나같이 매입가보다 저가로 과세매출하여 마치 징수한 부가세를 납부할 듯한 태도로 기망징수하는 등 구조적으로 부가세를 납부할 수 없는 거래를 한 사실이다. 둘째 징수한 부가세 전액을 사적으로 임의로 사용, 횡령하여 징수를 불가능하게 한 사실이다. 셋째 궁극적으로 피고인들의 행위는 수출업체의 부정한 환급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 위해 수입가격보다 저가수출을 하여야 하고 저가수출을 위해 반드시 저가 과세매출할 수밖에 없는 거래를 통해 징수를 불가능하게 한 사실이다. 넷째 납부능력이 없는 자를 대표이사로 내세우고, 주범은 해외로 도주하고 사무실을 폐업하여 영업을 중단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설령 견해를 달리하여 신고를 하였기에 조세부과측면에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도 종전 대법원 판례 즉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는 “조세의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케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라는 판시에 의하더라도 이건에서 피고인들은 거래징수제도를 악용하여 처음부터 조세징수가 불가능한 거래를 하였기에 그 행위 자체만으로 신고여부와 무관하게 조세징수 측면에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즉 기망징수에 해당함에도 위 다수의견에서 이에 대한 이유 설시가 분명하지 않은 점이다. 넷은 기망신고, 기망징수인 경우 부가세 신고가 본건 조세포탈범 성립을 배제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누락된 점이다. ‘사기 기타 부정행위’는 단순한 하나의 행위일 수도 있지만 일련의 행위가 복합적으로 해당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행위만으로는 적극적인 침해의사를 인정할 수 없더라도 여러 개의 행위를 종합하여 조세포탈의사에 의한 적극적인 행위인 부정행위를 인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1심 판결과 같이 부가세 신고를 한 부분과 신고를 하지 않은 부분을 나누어 피고인들이 부가세 신고를 한 부분은 조세채무가 확정되었으므로 단지 조세 확정 이후의 체납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범행의 전체적 기망과정을 도외시한 것이다. 본건에서 피고인들의 신고는 조세의 확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당국의 즉각적인 세무조사를 피하여 제1기분 부가세 포탈에 그치지 아니하고 제2기분까지 이어가기 위해 시간을 확보하거나 조세포탈 의도를 은폐하기 위한 기망신고로 대표적인 위계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살핀대로 기망신고, 기망징수 의도하에서 행해진 신고는 본건 부가세 포탈 성립을 방해하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음에도 다수의견에서 이에 대한 판단이 누락되었다. 그리하여 이건 신고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조세체납 문제로 판단한 1심은 어떠한 적극적 부정행위, 즉 기망신고, 기망징수가 없는 단순 체납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3. 소수의견 비판 소수의견은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 다수의견을 비판하고 있는데, 결국 그 핵심은 다수의견과 같이 볼 경우에 조세포탈범의 구성요건에 책임재산은닉 후 무납부 또는 과소납부한 행위까지 포함시키게 되는데 이는 구성요건이 확장되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고, 신고납세방식 조세의 본질에도 어긋나며, 조세가 확정된 이상 조세포탈범으로 처벌할 수는 없고 조세채권 징수의 문제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의견은 정상적인 영업활동 후 체납을 위해 책임재산을 은닉하고 무납부한 경우를 상정하여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정상적으로 신고까지 마친 후 단지 세금을 면하기 위하여 책임재산을 은닉하고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경우까지 조세포탈범으로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있었던 경우와는 다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업활동이 아닌 조세포탈 일련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다수의견은 애초부터 세금을 낼 의도없는 형식적인 부가세 신고는 비록 금액에 있어서 허위, 과소신고가 아니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보아 허위, 과소신고와 마찬가지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책임재산은닉행위를 구성요건의 하나로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이 역시 형식적 신고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단서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일 뿐이다. 부가세 신고가 있었다 하더라도 사실상 신고가 없는 경우나 다를 바 없는 경우에 신고가 있었음을 이유로 조세포탈범의 성립을 부정한다면 무신고를 통해 1회성 거래를 통하여 단기간에 걸쳐 조세를 포탈하려고 기도하는 자보다 이건처럼 계획적?지능적 범의 하에 신고를 하면서 마치 징수한 부가세를 납부할 듯한 태도로 세무관서를 기망, 현실적으로 세무조사를 받지 아니한 채 최대한 시간을 확보하여 더 많은 조세를 포탈하려고 하는 자가 더 유리하게 되는 결과가 되는바 이를 막기 위하여 실질적으로 신고가 없는 경우와 같이 보겠다는 것이고 소수의견이 말하는 것처럼 조세포탈범의 행위 정형성이 무너질 만큼 구성요건을 확장한 것은 아니다. 이는 추상적인 법률을 해석하여 구체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법관의 법률 해석의 권한 내에 있는 것이지 명문의 규정을 넘어서 가벌성을 확장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다수의견 평석에서 밝힌 대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기망신고, 기망징수를 포함하여 해석, 판시하였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의견 없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여 신고납세방식 세목에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해석을 보다 넓고 명확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향후 이에 대한 해석의 엄격성을 유지하는 등 헌법상 원칙인 조세법률주의도 한 차원 더 구현하는 기념비적인 판례가 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Ⅴ. 결 론 대상판결은 피고인들과 같이 부가세의 영세율제도, 거래징수제도를 악용하여 징수한 부가세를 횡령하고 저가매출로 구조적으로 조세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고 기망신고한 경우에는 과세표준 신고여부와 무관하게 조세포탈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검찰측 주장을 전면 수용한 것으로서 부가세 포탈에 있어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의 범위를 확대한 획기적인 판례라 할 것이다. 다만 오랜만에 조세포탈행위 해석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인 만큼 이번 다수의견에서 종전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해석에 기망신고, 기망징수까지 추가하여 포함됨을 명확하게 판시하였다면 세법 엄격해석에도 부합되면서 부가세 포탈에 관한 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범위와 관련하여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시금석과 같은 판례가 되었을 것이 확실함에도 이를 포함하여 판시하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건은 검찰에서 종로일대 금시장 부가세포탈 수법을 포착, 서울고검 주재로 특별대책본부를 편성하고 국세청과 공조수사를 착수하고, 공판까지 직관하여 사단법인 한국세무학회 의견조회, 국세청 유권해석(각 조세포탈에 해당한다는 취지), 의견서를 통한 적극적인 의견개진 등을 통해, ① 포탈규모 2조원 이상의 사상최대 탈세범죄를 적발하고, 연간 5천억원대 부가세 부정환급, 금지금 수출입 과정에서 수입가보다 저가 수출을 통해 590억원 상당에 이르는 국부해외유출을 차단하게 되었고, ② 이건 수사 이전 금 수입물량이 정상보다 6배나 상회하는 등 금시장이 조세포탈의 온상이었으나 수사착수이후 금 수입물량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등 금시장내 조세포탈사범을 발본색원하여 금 수출입질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③ 단순한 수사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공판에 이르기까지 검찰, 국세청 등 유관기관간에 실질적인 공조체제가 이루어낸 대표적인 수사, 공판성공사례로 새로운 판례를 개척하여 탈세사범에 대한 수사를 보다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조세포탈범은 국가의 조세행정을 부정하게 저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건의 경우 국고의 해외유출을 야기하는 등 반사회적인 범죄로 지탄을 받고 있으며 그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 국제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더욱이 경제의 발전, 정책 및 세제변화 등에 따라 불확정개념인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해석에 대한 판례 축적 등을 통해 이러한 범죄의 추세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법률이 제 역할을 못하도록 방치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상판결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향후 조세사범 수사실무에 있어서 갖는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2007-08-06
이사 해직보상금 약정의 주주총회 결의여부
I.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원고 A는 2002. 1. 23. 피고의 대표이사로, 원고 B는 부사장으로 각 선임되면서, 2002. 3. 23. 원고 A는 피고를 대표한 원고 B와, 원고 B는 피고를 대표한 원고 A와 각 고용계약서를 작성하였고, 2002. 3. 25. 개최된 이사회에서 위 각 고용계약의 승인이 의안으로 제출되어 나머지 이사 C가 위 각 고용계약을 승인하였다. 위 고용계약 제8조에는 보너스, 퇴직수당과 함께 “회사가 이 계약 기간 중 일방적으로 피고용인과의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경우 또는 피고용인이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해임을 당하거나(회사의 지분변동 또는 회사의 지배관계를 변동시키는 지주회사의 지배관계 변동에 관계없이), 회사의 지주회사의 이사회로부터 사임요구를 받아 사임하는 경우를 포함하여 비자발적으로 이사직에서 해임되는 경우에는 피고용인은 해직보상금을 제공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피고의 정관에는 이사의 임기를 3년으로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였다. 그 후 2002. 12. 20. 개최된 피고의 임시주주총회에서 원고들에 대한 이사 해임안이 가결되자, 피고는 임원퇴직위로금지급규정에 따른 퇴직위로금을 각 지급하였으나 고용계약서 제8조에 규정된 해직보상금 등은 지급하지 않았다. II. 대상 판결의 요지 주식회사와 이사 사이에 고용계약에서 보수에 관한 약정과 함께 이사가 그 의사에 반하여 이사직에서 해임될 경우 퇴직위로금과는 별도로 일정한 금액의 해직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경우, 이러한 해직보상금에 관하여도 이사의 보수에 관한 상법 제388조가 준용 내지 유추적용되어, 정관에서 그 액를 정하지 않는 한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어야만 회사에 대해 이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III. 대상 판결의 검토 1. 해직보상금의 법적 성질 먼저 대상 판결에서는, 주식회사와 이사 사이에 고용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수에 관한 약정과 함께 퇴직위로금과 별도로 이사가 그 의사에 반하여 이사직에서 해임되면 일정한 금액의 해직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경우, 이러한 해직보상금을 상법상 이사의 보수로 보아 상법 제388조를 직접 적용할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이사의 보수는 그 명칭여하를 불문하고 이사가 수행하는 경영활동의 대가로서 회사로부터 받은 일체의 급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 지급형태, 정기적인지 여부등을 불문하고 그것이 이사의 직무수행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된 것이라면 모두 이사의 보수에 포함됨이 원칙이다. 판례는 이사의 퇴직시에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퇴직위로금도 상법 제388조에 규정된 이사의 보수에 포함된다고 보아 정관 또는 주주총회결의에 의해서만 지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97다38930판결 등). 그러나, 대상 판결은 이 사건 해직보상금은 이사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해임되는 경우에 한하여 지급되는 것이므로 퇴직위로금과 같이 직무집행의 대가로 지급되는 보수의 일종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사의 보수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이사의 재직 중 직무집행과의 대가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나, 이 사건 해직보상금은 이사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해임되는 것을 요건으로 할 뿐만 아니라 계약기간 중 비자발적으로 이사직으로부터 해임당하는 경우 입게 되는 각종 유·무형적인 손해를 보상하여 주기 위해 미리 회사와 이사간에 약정한 보상금의 성격을 지닌다고 보이므로, 이와 같은 대상 판결의 판시는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해직보상금은 이사의 보수와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회사와 이사 사이에 미리 이사의 비자발적 해임이 있는 경우에 회사가 지급하여야 할 보상금을 정한 일종의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유사한 성질의 금원으로 판단된다. 2. 해직보상금에 대한 주주총회 결의의 요부 그런데, 대상 판결은 이 사건 해직보상금이 보수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해직보상금에 대해서도 이사의 보수에 관한 상법 제388조가 준용 내지 유추적용되어, 정관에서 그 액수를 정하지 않는 한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어야만 회사에 대해 이를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1) 첫째로, 위와 같은 해직보상금은 형식상으로는 보수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여도 보수와 함께 같은 고용계약의 내용에 포함되어 그 고용계약과 관련하여 지급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상 판결이 이미 이 사건 해직보상금은 직무집행의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보수의 일종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음에도, 그것이 단지 보수와 함께 같은 고용계약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이를 보수와 마찬가지로 취급하여야 한다고 설시한 것은 충분한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된다. (2) 둘째로, 회사는 이사를 임기 중에 해임하는 경우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하는 때에 한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뿐인데(상법 제385조 제1항), 위 해직보상금은 의사에 반하여 해임된 이사에 대해 정당한 이유의 유무에 관계없이 지급하도록 되어 있어 이사에게 유리하도록 회사에 추가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데도, 단지 보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주총회 결의를 요하지 않는다고 달리 보게 된다면, 이사들이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과다한 해직보상금을 약정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됨으로써, 이사들의 고용계약과 관련하여 그 사익 도모의 폐해를 방지하여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상법 제388조의 입법 취지가 잠탈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상법 제385조 제1항의 정당한 이유란,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하였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또는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경우 등과 같이, 당해 이사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04다25611판결). 또한 상법 제385조 제1항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은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책임과는 달리 고의, 과실을 요건으로 하지 아니하는 상법상의 법정책임으로서, 그 손해는 이사로서 잔여임기 동안 재직하여 얻을 수 있는 상법 제388조 소정의 보수상당액인 정기적 급여와 상여금 및 퇴직금이 되는 한편 임기만료 전 해임된 이사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포함되지 않는다(서울고등법원 89나46297판결). 이와 같이 상법 제385조 제1항에 의한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은 그 발생요건으로 “해임에 대한 정당한 이유의 부존재”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어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이 인정된 경우에도 판례는 그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 사건 해직보상금 약정은 “정당한 이유의 부존재”라는 손해배상책임 발생요건을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도 상법 제388조 소정의 보수상당액인 정기적 급여와 상여금 및 퇴직금 이상으로 확장하는 특약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직보상금 지급약정을 엄격한 요건(예를 들어, 주주총회 결의)없이 체결할 수 있다고 보게 된다면, 상법 제388조의 입법 취지 뿐만 아니라 상법 제385조 제1항 후문의 취지 역시 잠탈될 우려가 있다고 보인다. 물론 이 사건 해직보상금을 이사들의 비자발적 해임에 따른 일종의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한다면,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른 법원의 감액이라는 법적 통제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고, 또한 이사가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를 게을리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회사에 대해 별도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므로(상법 제399조), 굳이 해직보상금에 대해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하여야만 이사들이 사익을 위해 거액의 해직보상금을 정하는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사들의 고용계약과 관련하여 그 사익 도모시 폐해의 심각성 및 회사와 주주의 이익 보호의 필요성을 고려하면, 상법 제388조와의 균형상 이 사건 해직보상금에도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인다. (3) 마지막으로, 회사로서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로 언제든지 이사를 해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해직보상금액이 특히 거액일 경우 회사의 자유로운 이사해임권 행사를 저해하는 기능을 하게 되어 이사선임기관인 주주총회의 권한을 사실상 제한함으로써 회사법이 규정하는 주주총회의 기능이 심히 왜곡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이다. 학설은 상법이 주주총회에 일방적인 이사해임권을 부여한 취지에 관하여, 이사는 주주의 출자로 형성된 회사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이사의 지위 유지 여부는 주주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의해 경영을 전담하는 이사가 부적정한 경영을 할 때 주주가 신속히 자신의 출자로 형성된 회사재산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취지를 고려하면, 대상 판결이 이 사건 해직보상금이 이러한 주주총회의 이사해임권 행사를 저해하는 기능을 하게 될 수 있다고 보아 이를 정관의 정함이나 주주총회 결의를 요구한 것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Ⅳ. 결 론 주주총회는 상법 또는 정관에 정하는 사항에 한하여 결의할 수 있으나(상법 제361조), 이 사건 해직보상금과 유사한 약정은 상법에 그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법적 성격이 이사의 보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모호하였기 때문에 주주총회 결의사항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었다. 대상 판결은, 상법 제385조 제1항 후문과 달리 해임에 정당한 이유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의사에 반하여 임기만료전 해임된 이사에 대해 해직보상금을 지급하도록 약정을 하는 경우, 회사에 대해 해직보상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그 액수를 정관에서 정하거나 주주총회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사들의 고용계약과 관련하여 그 사익 도모의 폐해를 방지하여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상법 제388조의 입법 취지상 이 사건 해직보상금에 정관의 정함이나 주주총회 결의를 요구한 것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200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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