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律新聞
2521호
법률신문사
他人의 이름을 任意로 사용하여 체결한 契約의 當事者 決定
宋德洙
梨花女大法大副敎授·法學博士
============ 14면 ============
【事實關係】
자신의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던 A가 평소 친분이 있던 B 모르게 그의 명의로 문구류 판매업을 시작하면서 피고(서울코피아사무기주식회사)와의 사이에 피고가 공급하는 사무기기 등에 관한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 위 대리점계약상의 영업보증금의 지급담보를 위하여 B의 승낙도 없이 마치 자신이 B인 것처럼 임으로 B의 명의를 사용하여 원고(대한보증보험주식회사)와의 사이에 피보험자를 피고로 하는 지급계약보증보험계약(보험금액 1천 만원)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그 후 A가 위 영업보증금의 지급을 지체하자 피고가 위 대리점계약을 해지하고 원고에게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여 원고는 피고에게 보험금(1천 만원)을 지급하였다. 그 뒤 원고는 피고가 수령한 보험금은 법률상 효력이 없는 계약에 기한 것으로서 부당이득이라는 이유로 피고에 대하여 그것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判決理由】(발췌)
…이 사건과 같이 타인의 이름을 임의로 사용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누가 그 계약의 당사자인가를 먼저 확정하여야 할 것으로서, 행위자 또는 명의인 가운데 누구를 당사자로 할 것인지에 관하여 행위자와 상대방의 의사가 일치한 경우에는 그 일치하는 의사대로 행위자의 행위 또는 명의인의 행위로서 확정하여야 할 것이지만, 그러한 일치하는 의사를 확정할 수 없을 경우에는 계약의 성질, 내용, 목적, 체결 경위 및 계약체결을 전후한 구체적인 제반사정을 토대로 상대방이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행위자와 명의인 중 누구를 계약당사자로 이해할 것인가에 의하여 당사자를 결정하고, 이에 터잡아 계약의 성립 여부와 효력을 판단함이 상당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원고와 A사이에 A를 이 사건보험계약의 당사자로 하기로 하는 의사의 일치가 있었다고 볼 여지는 없어 보인다.
또한…객관적으로 볼 때 원고는 A가 제출한 청약서상에 보험계약자로 되어 있는 B를 보험계약의 상대당사자인 주채무자로 인식하여 그와 이 사건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알았으리라고 인정된다.
그렇다면 원고와 이 사건보험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A가 아니라 B라고 보아야 할 것이데, 실제는 A가 B로부터 아무런 권한도 부여받음이 없이 임의로 B의 이름을 사용하여 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계약 내용대로 효력을 발생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評 釋】
1. 序 說
거래관계에 있어서 어떤 자가 자신으로서는 행위를 할 수 없거나 자신을 숨기기 위하여 또는 기타의 이유로 타인의 이름(본 판결 이전의 판결에서는 「명의」라고 표현하였다)을 사용하여 법률행위(또는 그 밖의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행위자는 명의인을 위하여 행위한다는 것을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자신의 이름으로) 행위한다고 표시한다. 그러나 그럼에 있어서 자신의 명의가 아닌 다른 이름을 언급하고 자신이 마치 그 명의인인 것처럼 행동한다. 즉 보통의 대리행위와도 다르고 또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통상의 법률행위와도 다르다. 여기서 우선 그와 같은 법률행위가 행위자의 행위인지, 아니면 명의인의 행위인지가 문제된다. 그리고 명의인의 행위라고 할 경우에는 거기에 대리에 관한 법률규정이 적용되는 지도 문제된다.
뒤에 보는 바와 같이, 본 판결 이전에도 우리의 대법원은 유사한 사건에 관하여 여러 차례 판단을 해왔다. 그런데 판례는 통일적·일반적 원칙을 세워 놓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우리의 문헌은 그 문제에 관하여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필자는「타인의 명의를 빌려 토지분양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관하여 명의 신탁의 법리를 확대적용한 대법원판결을 비판하면서,「타인의 명의를 사용하여 행한 법률행위」에 관한 나름의 이론을 전개하고 위의 경우를 그에 따라 해결할 것을 제안하였고(「민사판례연구」제14집, 1992년 71면 이하), 그 후 그 이론만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사법연구」 제2집, 1994년 3백 35면 이하), 필자의 이 이론은 독일의 「타인의 명의하의 행위」(Handeln unter fremden Namen)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의 그 이론은 완전히 정비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러던 것을 필자가 필자 자신의 법률행위 해석 이론에 기초하여 체계화한 것이다. 이처럼 필자의 이론이 국내에는 물론이고, 그 모습 그대로는 외국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필자로서는 그 이론을 처음 발표할 때 매우 조심스러워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필자의 의견에 동조하였고, 이제는 본 판결에 의하여 그 이론과 적용이 대법원판례로 적용되기에 이르렀다(「사법연구」 제2집, 3백50면 참조). 그리고 후속판결(대판 1995년 10월 13일, 94다55385, 법원공보 1005호 3천7백69면)까지 나와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정이 이러한 만큼, 필자는 본 판결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하여 본 평석에서는 본 판결의 의미를 되새기고, 또 본 판결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시키는데 주력하기로 한다. 아울러 본 판결과 관련된 문제도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 관하여 효과적으로 논의하자면, 먼저 종래의 판결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2. 從來의 判例
타인의 명의를 사용하여 법률행위(또는 기타의 행위)를 한 경우에 관하여 종래 우리의 판례는 통일적·일반적 원칙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판례 중에는 명의 신탁의 법리를 적용한 것이 있는가 하면, 대리의 관점에서 처리한 것도 있고, 또 개별적으로 단순한 당사자확정의 문제로 해결한 것도 있다(자세한 것은 「사법 연구」 제2집, 3백37∼3백 45면 참조).
우리 대법원은 타인 명의로 임야를 사정 받거나 귀속재산을 불하 받은 경우, 타인 명의로 전화가입청약을 한 경우, 다수의 자가 그 중 1인의 대표자명의로 입찰한 경우, 또는 타인 명의로 부동산을 매수한 경우에 관하여 명의 신탁의 법리를 적용하였다. 이는 대체로 공부(公簿)내지 명부(名簿)가 존재하고 있는 경우들이다.
그런가 하면 대리권 있는 대리인이 직접 본인의 이름을 표시하여 법률행위를 한 경우는 대리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대리인이 대리권의 범위 안에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상대방이 대리인으로서 행위 하였음을 몰랐더라도 그 법률행위의 효과가 직접 본인에게 귀속한다고 한다. 이 때 대리인이 본인으로부터 본인 명의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는가(본인 명의의 사용허락)를 묻지도 않는다. 그에 비하여 대리인이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서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특별한 사정(가령 대리의사의 묵시적인 표시)이 없는 한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는 성립할 수 없으나, 동조의 법리를 유추 적용하여 본인에게 그 행위의 효력을 미치게 한다.
그밖에 대법원은, 명의 신탁의 성립을 인정할 수도 없고 또 대리권 있는 자가 법률행위를 하지도 않은 경우는 개별적으로 해결하였다.
3. 本判決의 檢討
본 판결사안에서 A는 명의인인 B의 허락 없이 임으로 B의 이름을 사용하여 원고와 보증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러한 경우는 종래의 판례에 의하여 「원칙 없이 개별적으로 당사자 결정의 문제로 해결하던 경우」에 해당한다. A와 B사이에 명의신탁에 관한 합의를 인정할 여지도 없고 또 등기부에 상당하는 명부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B가 A에게 대리권을 수여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같았으면 대법원이 여러 사정만을 고려하여 계약의 당사자를 확정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본 판결은 바람직하게도 그러한 경우의 당사자결정에 관한 원칙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그 원칙에 입각하여 본 판결사안의 경우에 당사자를 결정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본 판결이 채용한 당사자 결정의 원칙은 용어에 있어서도 사건과 일치한다. 그런 만큼 그에 관한 필자의 의견표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본 판결이 그 원칙을 본 판결사안에 적용한 결과도 타당하다. 본 판결도 설시하는 것처럼, 행위자와 명의인 가운데 누구를 당사자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행위자와 상대방의 의사가 일치한 경우에는, falsa demonstratio non nocet(잘못된 표시는 해가 되지 않는다)원칙에 준하여 그 일치하는 의사대로 행위자의 행위 또는 명의인의 행위로서 확정되어야 하나, 그러한 일치하는 의사가 확정될 수 없는 경우에는 규범적 해석을 하여야 한다. 즉 구체적인 경우의 제반사정 위에서 합리적인 인간으로서 상대방이 행위자의 표시를 어떻게 이해했어야 하는 가에 의하여 당사자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본 판결사안의 경우에는 당사자에 관한 행위자와 상대방의 합의는 인정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이제 규범적 해석에 의하여 제반사정에 비추어 상대방이 누구를 그의 상대방으로 이해했어야 하는가에 따라 당사자를 결정하여야 하는 바, 본 판결사안에서의 지급보증보험계약과 같이 신용행위이면서 동시에 계속적 거래관계의 설정의 경우에는 보험자는 명의인을 당사자로 생각했어야 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본 판결이 행위자인 A가 아니고 명의인인 B에 관하여 지급보증보험계약이 성립했다고 판단한 것도 옳다. 그리고 그 결과로 피고가 수령한 보험금은(B의 추인이 없는 한) 효력 없는 계약에 기한 것으로서 부당이득이므로 원고는 그것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 본 판결의 판시도 적절하다.
그러나 본 판결에 대하여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우선 본 판결은 「타인의 명의를 사용하여 행한 법률행위」일반에 관한 원칙의 모습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있다(이는 판결의 한계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사견으로는 본 판결의 원칙은 타인의 이름을 허락 없이(임의로) 사용한 경우 외에 허락을 받아 사용한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칙적용의 결과 구체적인 행위가 명의인의 행위로 인정되어야 하는 때에는, 대리의 문제가 생기고, 그리하여 거기에는 대리법이 적용(또는 유추적용)된다고 하여야 한다. 물론 행위자에게 대리권이 없으면 무권대리규정이 적용(또는 유추적용)될 것이다. 이에 의하면, 본 판결사안의 경우에는 계약이 확정적 무효가 아니고 유동적 무효이다.
그런데 본 판결의 문언으로는 그러한 의미가 짐작되지 않아서 다소 불만이다. 다만 본 판결의 후속판결(대판 1995년 10월 13일, 94다5538)은 대리에 관하여 판단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론은 올바르지만 역시 대리법의 적용이 불필요한 듯이 판시하고 있다. 한편 본 판결은 법률행위의 해석에 관한 새로운 이론(「민법주해Ⅱ」, 1백70면 이하 참조)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해석에 관한 우리의 판례가 새로운 이론과 같지 않아서 또한 문제이다.
요컨대 본 판결은 「타인의 이름을 임의로 사용하여 행한 법률행위」에 있어서 당사자 결정에 관한 원칙을, 그것도 지극히 타당하게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것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그 원칙은 타인의 허락을 얻어 타인의 이름을 사용한 경우에까지도 널리,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앞으로 그 원칙에 입각한 당사자 결정의 판례의 축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