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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재산분할협의와 사해행위 취소 소송 제척기간
I. 사실관계 소외 망인은 이 사건 각 부동산의 소유자로 2011년 8월 9일 사망하였고, 망인의 배우자인 피고가 11분의3 지분의 비율로, 망인의 자녀 A, B, C, D가 각 11분의2 지분의 비율로 망인의 재산을 상속하였다. C와 피고, 그 밖의 망인의 상속인은 2011년 8월 9일 피고가 이 사건 각 부동산을 단독으로 상속하는 내용의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하였고, 위 각 부동산에 관하여 전주지방법원 전주등기소 2013년 6월 14일 접수 제40737호로 피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다. 원고는 C에 대한 채권자이며, 이 사건 상속재산 분할협의 당시 이 사건 각 부동산은 C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원고는 2018년 3월 28일경 이 사건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소를 제기하였다. Ⅱ. 판결의 내용 1. 원심의 판단(전주지방법원 2019. 4. 5. 선고 2018가단7544 사해행위취소 등) 가. 본안 전 항변에 관한 판단 피고는 본안 전 항변으로 "소외 주식회사 E와 원고가 서로 채무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이고, 소외 회사는 피고를 상대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며, 2014년 9월 30일 소 취하 간주로 사건이 종결되었으므로, 원고는 2014년 9월 30일 사해행위취소의 소의 취소원인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그로부터 1년을 도과하여 부적법하다"고 주장하였다. 1심은 제척기간 도과에 관한 증명책임이 사해행위취소 소송의 상대방에 있다는 종전의 대법원 판례의 태도(대법원 2018. 4. 10. 선고 2016다272311 판결 등)를 확인하면서, 제출된 증거만으로 원고가 소외 주식회사 E와 채무자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여 본안 전 항변을 배척하였다. 나.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1심은 "C가 이 사건 각 부동산에 대한 자신의 상속분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고, 이 사건 각 부동산을 피고로 하여금 상속하게 하는 내용으로 이 사건 상속재산 분할협의를 하였으므로, 이러한 행위는 채무자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을 증여한 것과 다르지 아니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자에 대하여 사해행위가 된다고 할 것이고, 채무자인 C, 피고의 사해행위도 추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망인 사망 이후 채무자인 C를 비롯한 자녀들이 홀로 남은 피고를 위해 상속재산분할협의 형식으로 지분을 이전받아 선의의 수익자라고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 결론 1심은 피고와 C 사이에 이 사건 각 부동산 중 11분의2 지분에 관하여 2011년 8월 9일 체결한 상속재산 분할협의는 사해행위에 해당하여 취소되어야 하고, 원상회복으로 피고는 C에게 이 사건 각 부동산 중 11분의2 지분에 관하여 전주지방법원 전주등기소 2013년 6월 14일 접수 제40737호로 마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으로 원고 청구를 인용하였고, 2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2.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민법 제406조 제2항 '사해행위취소의 소는 법률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 내에 제기해야 한다(민법 제406조 제2항)'는 규정을 직권으로 살폈다. 이는 제소기간이므로 법원은 그 기간 준수 여부에 관하여 조사하여 기간 경과 이후에 제기된 소는 부적법한 것으로 각하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해행위에 해당하는 법률행위가 언제 있었는가는 실제로 사해행위가 이뤄진 날을 기준으로 판단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문서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 등기부상 등기원인일자를 중심으로 사해행위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등기부에 기재된 등기원인일자와 다른 날에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있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취소 대상 법률행위인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있은 날을 등기부상 등기원인일자인 2011년 8월 9일(사망일)로 보았다. 그 결과 대법원은 이 사건 소가 법률행위가 있은 날(2011년 8월 9일)부터 5년이 지난 2018년 3월 28일경 제기된 것이란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 사건 소를 각하하였다. Ⅲ. 검토 이 사건은 사해행위취소의 소송 제척기간 기산점 판단이 원심과 대법원 간에 달랐다. 원심은 제척기간의 기산점을 '채권자가 취소원인을 안 날'로부터 1년이 도과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였으나, 대법원은 '취소원인이 있는 날'로부터 5년이 도과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이 사건 소제기는 2018년 3월 28일경인데, 원심은 사해행위취소의 소에서의 법률행위가 있은 날을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한 후 구체적인 행위로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 접수 시인 2013년 6월 14일로 보았으나, 대법원은 소외 망인의 사망일이자 상속재산분할협의 등기원인일자인 2011년 8월 9일로 보았다. 심급별로 제척기간 기산점 판단이 달라진 사안으로 원고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하였으나, 대법원에서 패소하게 되었다. 이미 이 사건 이외의 하급심에서도 사해행위에 해당하는 상속재산분할협의을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작성된 시점으로 보기도 하였고, 혹은 협의분할에 의해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뤄진 시점으로 인정된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혼란에 더하여 '상속등기와 그 경정등기에 관한 업무처리지침(등기예규 제1675호)'상 상속재산분할협의의 경우 '상속등기를 신청할 때에는 등기원인을 협의분할에 의한 상속으로, 그 연월일을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어, 이를 근거하여 상속재산분할협의 시점을 사망 시로 판단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상속인들 사이에 실제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이루어진 시점이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라고 하더라도 부동산등기부등본에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이 등기원인일로 기재되므로, 실제 상속재산분할협의일과 등기원인일자는 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실무상 혼선이 있었던 부분에 관하여 대법원의 입장을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의 태도는 사해행위 시점에 관하여 실질적 시점이 확인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명확한 등기부상 등기원인일자를 기준으로 판단함으로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상속세 처리를 비롯하여 변화하는 법률관계를 조속히 안정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척기간 기산점 판단에 관하여 ① 원심과 다르게 본 이유, ② 등기원인일자를 기초하는 처분문서가 있었는지 여부, ③ 상속재산분할협의의 경우 분할협의가 사해행위인지, 분할협의에 따른 등기신청이 사해행위인지, ④ 채권자 입장에서는 상속재산분할협의를 원인으로 한 상속등기를 한 다음에야 사해행위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닌지, ⑤ 상속재산협의분할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의 등기원인일자를 피상속인의 사망일로 기재하는 것은 단순한 등기기재 형식에 불과한 것이고, 악용의 소지는 없는 것인지, 나아가 ⑥ 등기예규상 협의분할에 의한 상속등기 시 '협의분할시'로 개정될 필요는 없는지 등에 관하여 좀 더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 않은 이유로 이 사건의 경우 상속재산분할협의 등기원인일자는 소외 망인의 사망일인데 반하여, 등기접수가 약 2년 남짓의 기간 이후에 이뤄졌음에도 제척기간 미준수를 이유로 부적법 각하판결 선고함으로써 채권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 결국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향후 상속개시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이후에 상속재산협의분할 상속등기를 하는 경우 사실상 사해행위를 이유로 취소를 구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구체적 사건에서 실질적 상속재산분할협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었던 경우라면, 등기원인일자인 망인의 사망 시가 아닌 채권자를 해할 의도를 가지고 행위를 하는 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상속재산협의분할을 원인으로 상속등기를 한 다음에야 사해행위여부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일본 민법에 비해 짧은 제척기간을 규정한 입법자의 의도는 법률관계의 조속한 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도리어 채무 면탈하고자 하는 악용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대상 판결의 견해에 더하여 민법상 제척기간의 적정성 여부까지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박성태 변호사 (대한법률구조공단)
대부업
상속포기
사해행위
채무자
상속
박성태 변호사 (대한법률구조공단)
2021-11-22
금융·보험
생명보험약관상 심신상실상태의 자살에 대한 보험자면책
Ⅰ 사건의 개요와 판결요지 1. 원심판결(광주지법 2017. 10. 27. 선고 2017나55151) 요지 2004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원고의 딸인 망인은 2006년 10월 학부모의 폭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2008월 10일 우울증 진단과 함께 약 2달간 치료를 받게 된 후부터 매년 가을 우울증을 호소하여 이듬해 봄까지 월 1회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아왔다. 망인은 2011년 9월말부터 홍반성 구진 등 피부병과 간수치 악화 등으로 입원·통원 치료를 하다가, 2011년 10월 12일 퇴근 후 집에서 목매어 사망하였다. 이에 원심법원은 망인이 사망 전날 정상적으로 출퇴근하였고, 사망 당일에 특이한 행동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오후 늦게 거주지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는 사정만을 들어 망인의 심리상태가 급격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거나 극도의 흥분상태나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자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망인의 사고는 고의에 의한 자살로서 약관상 보험자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2.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 요지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 신체적 및 정신적, 행동적인 변화로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심한 경우는 기분조절의 문제가 있는 우울장애라고 할 수 있고, 정신의학에서 우울한 상태란 사고의 형태나 흐름, 사고의 내용,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하며, 이렇게 기분의 변화와 함께 전반적인 정신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를 우울삽화(Depressive episode)라고 하며, 정도가 심한 삽화를 주요 우울삽화라고 하여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로 진단한다.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하루 중 대부분, 그리고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이 관찰될 것, 또는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또는 모든 일상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이 뚜렷하게 저하됨 등을 포함한 9개의 인지, 행동, 신체적 증상을 제시하면서, 위 증상이 포함된 5개 이상의 증상이 2주 연속으로 지속되며 이전의 기능 상태에 비해 변화를 보이는 경우를 주요우울의 진단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주요우울삽화의 발병과 한 해의 일정한 기간 사이에 규칙적인 시간관계가 있을 것 등을 계절성 동반의 주요우울장애의 진단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는 우울병 에피소드가 뚜렷하며 의기소침, 특히 자부심의 소실이나 죄책감을 느끼고 자살충동이나 행위가 일반적이며 많은 신체적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를 고도(중증)의 우울증 장애로 본다. 이를 종합하면, 망인은 2006년 학급 내 문제로 우울장애를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겪은 후 매년 10월경을 전후하여 우울삽화가 발생하는 등 망인이 자살할 즈음 계절성 동반의 주요우울장애 상태에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원심법원이 자살과 우울증 장애의 관련성에 관한 확립된 의학적 판단 기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망인이 우울증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단정한 것은 면책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하였다. Ⅱ. 심신상실 상태에서의 자살과 보험자면책 1. 서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 한편 생명보험 표준약관 제5조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동조 단서에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 특히 그 결과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살은 고의에 의한 사고로서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불확정성에 어긋나고, 자살사고의 경우에 보험금이 지급되면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선의의 보험계약자에게 손해가 전가되기 때문에 보험자면책사유가 된다. 그러나 피보험자의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쳐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에는 의사무능력 상태에서 감행된 사고로서 고의성이 없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한다. 2. 심신상실 또는 정신질환의 의미 정신질환이란 뇌세포의 손상으로 인하여 비정상적인 소인에 따라 정상적인 판단형성이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의지박약이나 우울 상태, 자살의 기도나 생활능력의 박약과 같은 수준의 정신병적 인격장애 정도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배제되는 정신질환으로 보기 어렵지만, 심각한 정신착란, 완전한 대취 정도의 명정 상태, 정신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을 정도의 심각한 정서적 우울증 등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정신질환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심신상실이란 심신장애로 사물에 대한 변별력이 없거나 의사를 전혀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심신상실 여부는 의학상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감정을 토대로 법관이 결정해야 할 법적·규범적 문제에 속한다. 2010년 표준약관이 '정신질환 등의 사유'를 '심신상실 등의 사유'로 변경하였는바, 정신질환은 의학적으로 정신장애, 의식장애 또는 정신병으로 한정 해석될 여지가 있는바, 책임능력과 연관이 있는 '심신상실'이란 개념이 더 광범위하게 자유로운 의사배제 상태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아 변경한 것으로 생각된다. 3. 심신상실상태에서의 자살에 대한 증명 심신상실상태에 대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면 법률 지식과 경제적 능력이 우월한 보험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입증의 정도를 완화하여 정신질환의 존재, 그 질환의 상당기간 계속 내지는 중증인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행위 당시 순간적으로 판단능력을 상실한 명정상태 등이 인정되면 자유로운 의사가 배제된 심신상실 상태로 법원이 간주한다. 망인이 시댁과 갈등에 시달렸고 출산 1년 만에 충수절제술을 받는 등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졌으며, 사건 당일 술취한 남편이 망인의 뺨을 자녀들 앞에서 때리고, 망인의 멱살을 잡아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망인이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린 사고는 극도의 흥분과 불안한 심리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순간적인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하지 아니하고 사망의 결과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다38438, 38445 판결). 하지만 우울성 에피소드인 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유서를 남긴 채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은 발병 시기가 짧았고, 당일 행적, 자살 전에 남긴 유서의 내용 등을 고려해 볼 때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다38438, 38445 판결). 한편 심신상실 등의 자살에 대하여 법원이 재해요건 중 우연성만을 판단하고 외래성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재해사망을 광범위하게 인정하여 유족보호만을 치중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있다. 즉, 보험금청구권자는 심신상실상태를 증명할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여 법관으로 하여금 확신에 이르게 해야 하고, 현출된 증거에 대한 증거능력과 증명력을 엄격하게 법원이 판단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심신상실 등에 대하여 보험금청구권자가 더 엄격한 증명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Ⅲ. 대상 판결의 평석 망인은 교사로서 학부모 폭언으로 첫번째 우울증이 발병하였고, 그 후 증상이 반복되어 계절성 양상의 재발성 주요우울병장애에 이르렀으며, 그 후 우울증을 호소하다가 2011년 가을 학교업무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던 차에 우울증이 재발하고 인지왜곡증상이 겹쳐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망인의 계절성 양상의 주요우울증세가 수년간 지속되어 고도(중증)의 우울증세에 해당되어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학적 소견과 일치된다. 그러므로 망인의 자살은 스스로 사망을 인식하지 못할 정신질환 상태, 즉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심신상실 상태의 자살에 대한 보험금지급규정은 남용될 소지가 있는바, 심신상실에 대한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고, 심신상실의 개념을 구체화시킨 객관적 기준을 약관에 명기하는 방향으로 표준약관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최정식 교수(숭실대 법학과)
생명보험
자살
보험자면책
최정식 교수(숭실대 법학과)
2021-11-15
국가배상
부동산·건축
공기연장 간접비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비판적 고찰
I. 대상 판결 국가계약법상 장기계속공사계약에서 총공사기간이 연장된 경우, 공사기간이 변경된 것으로 보아 계약금액 조정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235189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정하였다. "장기계속공사계약에서 이른바 총괄계약은 전체적인 사업의 규모나 공사금액, 공사기간 등에 관하여 잠정적으로 활용하는 기준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계약상대방이 각 연차별 계약을 체결할 지위에 있다는 점과 계약의 전체 규모는 총괄계약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 관한 합의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총괄계약의 효력은 계약상대방의 결정(연차별 계약마다 경쟁입찰 등 계약상대방 결정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없다), 계약이행의사의 확정(정당한 사유 없이 연차별 계약의 체결을 거절할 수 없고, 총공사내역에 포함된 것을 별도로 분리발주할 수 없다), 계약단가(연차별 계약금액을 정할 때 총공사의 계약단가에 의해 결정한다) 등에만 미칠 뿐이고, 계약상대방이 이행할 급부의 구체적인 내용, 계약상대방에게 지급할 공사대금의 범위, 계약의 이행기간 등은 모두 연차별 계약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4인의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개진하였다. Ⅱ.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의 문제점 다수의견은 총괄계약의 체결은 긍정하면서도 그 효력 발생의 범위는 제한한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법률행위가 성립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고 다만 그 법률행위의 목적이 불가능하거나 위법하거나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에만 효력이 제한된다. 민법의 기본 이념인 사적 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의사의 합치가 있는 경우에는 그 효력을 임의로 제한할 수 없고, 제한하려면 그에 합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더구나 효력을 전부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을 제한하고 있고, 그것도 공사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사대금과 공사기간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도 없이 제한하고 있다. 도급인의 입장에서는 일(총공사)의 완성이 중요하고, 수급인의 입장에서는 보수(총공사금액)의 지급이 중요하다. 확정된 총공사에 대해 총공사기간을 정하고 입찰을 진행하여 결정된 총공사금액에 대해 양측이 구속될 의사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권영준 교수, 민법판례연구1). 또한, 다수의견은 총괄계약의 효력이 계약단가에는 미친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계약단가에 확정적 효력이 발생하는데 이에 기초한 총공사금액에 대해 확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장기계속공사의 경우에 총공사에 대한 산출내역서가 계약도서의 하나로 작성되고, 산출내역서에는 총공사를 대상으로 하여 세부 공종별로 계약단가와 수량이 기재되어 있으며, 각 세부공종상 계약단가에 수량을 곱해서 산정된 금액의 그 총합이 바로 총공사금액이 된다. 그러므로 총공사에 대한 계약단가에 대해 확정적인 효력이 발생한다면 이를 토대로 계산되어 산출되는 총공사금액에 대해서도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계약단가와 총공사금액의 관계를 감안할 때 당사자가 계약단가에 대해서만 구속받을 의사였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럽다. 한편, 대법원은 상고심 진행 중 계약조건을 제정한 조달청과 국가계약법을 주관하는 기획재정부에게 당초 총공사기간이 연장되는 경우에 연차별 계약시 그 연장된 기간 중에 발생하는 간접공사비의 반영을 요청할 수 있는지를 질의하였다. 이에 대해 두 기관 모두 '계약상대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하여 당초 총공사기간 내 공사를 완료하지 못하여 총공사기간이 연장된 경우 계약상대자는 연장된 기간에 따른 간접공사비를 새롭게 체결되는 연차별 계약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취지로 회신하였다. 이 주무관청들은 총공사기간의 연장시 그 연장된 기간에 대해 추가 간접비를 청구할 수 있고 그 금액을 연차별 계약시 부기될 총공사금액에 반영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관련 법령과 계약조건을 마련한 측에서 자신이 어떤 의사로 제정한 것인지를 밝힌 것은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파악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이를 배제하고 독자적인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을 제시한 셈이다. Ⅲ. 건설공사 및 국가계약 법리상 문제점 공사원가 중 간접공사비는 대체로 '공사기간'에 연동하여 증감변동하는 고정비적 성격을 갖는다. 공사기간이 연장되면 간접공사비는 추가로 투입되기 마련이다. 공기연장 사유가 발생하여 공사기간이 연장되는 경우, 그 사유가 존속하는 기간을 포착하여 보상을 해 주거나, 연장된 공사기간에 대해 보상을 해 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국가계약법령은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장된 공사기간에 대해 보상을 할 경우에는 당초 입찰시에 전제로 하였던 총공사기간 이후의 연장된 기간(변경된 부분)을 대상구간으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 대법원 다수의견이 공사기간에 구속력을 인정하는 계속비계약의 경우 현재 법원의 실무는 위와 같이 연장된 기간을 대상구간으로 삼아 보상하고 있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연차별 계약상 연장된 공사기간을 대상구간으로 포착한다. 그러나, 계약당사자들 사이에 당초 총계약금액의 결정에 고려되지 아니한 사정은 당초 총공사기간의 연장이라는 점(입찰과정에서 미리 연차별 계약에 대한 고려를 할 수 없음), 연차별 계약상 계약금액은 그 공사내용에 상응하여 총공사금액이 배분된 것에 불과하고 연차별 공사기간을 고려하여 간접비가 책정되는 것이 아닌 점, 총공사기간이 수 년 연장된 상황에서 연차별 계약기간이 연장되지 않거나 수 개월 연장된 경우에 계약상대자에게 추가로 발생한 비용이 온전히 보상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다수의견과 같이 연차별 계약상 연장된 공사기간을 보상의 대상구간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한편, 국가계약법 시행령과 계약예규(공사계약 일반조건)는 물가변동, 설계변경, 기타변경에 대해서 요건이 충족될 경우 총공사금액의 변경을 명문화하고 있다. 입찰참가자들은 변경의 위험에 대한 대가를 포함하게 되면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므로 위 규정들을 신뢰하여 그 대가를 투찰금액에서 제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주자는 동일한 기준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을 제시한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아울러 발주자는 현실화되지 않은 위험에 대해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해당 사유가 발생하게 되면 발주자로서는 계약금액을 조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후적인 계약금액 변경 가능성은 계약체결 후에도 계약의 등가성을 확보하고 이로써 계약상대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인정된다(권영준 교수). 미국에서도 Equitable Adjustment(형평에 맞는 조정)이라는 명칭으로 인정하고 있다. 즉 계약금액의 조정을 통해서 계약상대자가 당초 누리기로 한 손익을 형평에 맞게 누릴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제시한 공기연장에 대한 계약금액조정 방식은 계약의 등가성을 해치고 당사자간의 형평에 맞지 않는다. 다수의견에는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위험을 일단 계약상대자가 인수하였다는 고려가 숨어 있고, 반대의견에는 계약상대자와 무관하게 발생한 위험을 계약상대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고려가 숨어 있다(권영준 교수). 위험 원인을 제공하거나, 위험과의 거리가 가깝거나, 위험을 좀 더 적은 비용으로 회피할 수 있는 자에게 위험을 부담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것을 감안하면, 발주자의 예산부족으로 인해 기본계획상 사업기간이 연장되고 이후 공사기간이 연장되었다면 총 공사기간 연장으로 인해 실현된 위험, 즉 간접비는 계약상대자보다는 발주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권영준 교수). IV.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영향 다수의견은 형식상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론으로 접근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당사자의 의사를 배제하였다. 아울러 다수의견은 건설공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메커니즘과 국가계약법령이 예정한 위험배분에 어긋난다.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공공건설의 영역에서는 총공사기간이 수 년 늘어나더라도 연차별 계약상 늘어난 수 개월이라도 보상 받으면 다행인 복불복의 상황이 초래되었다. 장기계속공사계약이 기획재정부의 예산운영의 자의성과 국회의 선심성 공사의 남발의 토대를 제공하는 가운데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이 계약상대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정당화하고 말았다. 그 부담은 계약상대자뿐만 아니라 하수급인 등의 관계자들에게도 순차로 전가될 것이다.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체제가 유지된다면, 건설공사에 대해서는 장기계속계약제도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김대인 교수, 행정법연구 제61호). 장기계속계약은 전기·가스·수도의 공급과 같이 장기간 공급하더라도 대상물에 변화가 없으며 단위 규격에 대한 대가가 단순하게 정해지 경우에 적합하지, 공사 목적물의 내용이나 대가에 변경에 노출되어 있는 건설공사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글은 2021년 8월 30일에 있었던 한국건설법학회(회장 윤재윤) 제25회 세미나 발표자료(지하철 7호선 공기연장 간접비 사건, 총괄계약의 구속력을 중심으로)를 정리한 것이다. 이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대림산업
공사대금청구
장기계속공사계약
서울시
이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2021-11-11
형사일반
공동 거주자 1인의 승낙을 얻어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
Ⅰ. 들어가며 불륜(혼외 성관계)의 목적으로 일방 배우자의 승낙을 받아 그 집에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에 대해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래 대법원 견해를 변경, 주거침입죄 성립을 부정하였다. 다수의견은 전체 판결문 90여 페이지 중 단 3페이지에 불과한 다소 기이한 판결이다. 그 결론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되는 구체적 사례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상세한 논증은 '공판알리미' 9월호(대구지검)에 실린 '공동 거주자 1인의 승낙을 얻어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의 성부'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Ⅱ. 대법원 판결의 요지 피해자의 처(妻) A와 내연관계에 있는 남성 피고인이 불륜 목적으로 피해자의 집에 (A가 문을 열어 주어) 3회에 걸쳐 들어간 사안에서 다수의견은 ①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은 '사실상의 평온', ② '침입'은 '사실상의 평온을 해치는 행위 태양'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③ 공동 거주자는 상호간 법익이 일정 부분 제약될 수밖에 없음을 용인한 것이므로,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 방법'에 따라 들어갔다면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는 사정만으로는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볼 수는 없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은 보호법익을 주거권으로 보고, 침입은 주거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는 것으로 보면서도 일방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다른 공동 거주자가 용인하여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안철상 대법관은 외부인의 출입을 반대하는 공동 거주자가 그 주거 내에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다른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용인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같은 결론이다). 반면,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종래 대법원 판례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의 승낙이 있더라도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 그 거주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결과가 되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Ⅲ. 평석 1. 일방 배우자의 불륜을 위한 외부인의 출입은 다른 일방 배우자의 추정적 의사가 아닌, 명시적·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거주자의 명시적·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만 주거침입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방 배우자의 불륜을 대비하여, 예컨대, 미리 '관계자 외(外) 출입금지'처럼 표시를 하거나, 배우자에게 (불륜을 예상하고) 사전에 '불륜 상대를 집에 들이지 말라'고 명시토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 하겠다. 2. 불륜을 위해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로 다른 일방 배우자의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은 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불륜을 위해 외부인이 들어와 거실, 주방, 욕실은 물론 내밀한 공간인 침실에 이르기까지 누빈(?) 사실을 알았다면 통상적인 출입 방법이라 하여 그 주거의 평온이 유지된 것인지 의문이다. 사실상의 평온은 현실적 평온뿐만 아니라 잠재적 평온(기대되는 사실상의 평온, 안철상 대법관 표현으로는 심리적 평온)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거주자 현존 여부 불문 그의 평온은 침해될 수 있고, 따라서 빈 집에 '평온하게' 들어가는 것도 주거침입이 됨을 설명할 수 있다. 3. '침입'의 의미는 거주자의 의사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거주자의 의사에는 반하지만 평온하게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 성립을 부정하게 되는데, ① 평소 자유롭게 드나들던 사람이라도 집주인은 언제든 그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② 외부인이 (특히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들어오는 것까지 수인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③ 빈 집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평온하게 들어가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점에서 '침입'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사실상의 평온을 침해하는 태양'으로 침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개념은 지나치게 불명확하다. '침입' 여부는 거주자의 의사에 따라야 하고, 그것이 사회통념상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렸는지 여부는 법률적·규범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공동 거주자의 일상생활의 경험칙상 사회상규의 범위 내라면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부부 일방이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것이나, 처(妻)가 부부간 불화 중 시댁 식구들의 출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시댁 식구들이 남편 허락을 받아 집에 들어가는 것 등은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4. 범죄 목적 또는 그에 준하는 가벌성 있는 행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생긴다. 목적이 불순하면 대체로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해석이며, 그 의사에 반한 침입은 대체로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범죄의 목적으로 타인의 주거 등에 들어가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종래 통설과 판례, 일본 판례). 다수의견에 따르면, 범죄 목적 침입 시 목적된 범죄를 실행하지 못한 경우 주거침입으로도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다. 범죄는 아니라도 공동 거주자의 명백한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 사실상 평온을 깨뜨릴 수 있는 경우도 가벌성이 있다(일본 판례도 주거침입죄 성립을 인정). 예컨대, ① 불륜의 증거를 잡으려고 타인의 주거에 들어간 경우(판례상 인정되었음). ② 룸메이트를 왕따시키려고 다른 일방 룸메이트의 동의를 얻어 집안에 들어가 몰카를 설치한 경우, ② 학생이 교사의 승낙을 얻어 교무실에 들어와 시험문제 답을 모두 암기하여 돌아가 암기한 내용으로 시험을 치른 경우 등도 가벌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주거침입죄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된다고 볼 수 없다. 범죄 목적 또는 거주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를 침입의 기준으로 삼더라도 이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고, 그것이 규범적으로 사회통념상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국민의 기준에서) 사실상 평온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통계상 2019년 한해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176만7684건임에 반해 주거침입 범죄 발생 건수는 1만7181건(0.97%)에 불과(이 중 공동거주자 일방의 승낙만을 받고 다른 일방의 의사에 반하여 침입한 사례는 더욱 소수일 것이다)하다. 과연, 가벌성의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6. 공동 거주자의 법익 보호 비교형량에 실패하였다. 공동 거주자 일방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음을 용인하거나, 어느 일방의 권리가 우선할 수 없다는 논리는 통상적인 공동생활에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사회통념상 허용된 범위를 넘는 경우에까지 적용된다고 보면 이는 수인한계를 넘는 것이다. 특히 부부 사이는 배우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자의적으로 주거 내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으며, 특히 가정 내 주거의 평온을 명백히 해친다고 볼 만한 경우까지 부부 일방이 용인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별개의견은 남편 허락으로 집에 들어온 친구를 처(妻)의 의사에 반한다고 하여 처벌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하나, 종래 대법원도 이러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취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불륜을 목적으로 집에 들어온 외부인을 용인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상식에 맞지 않는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그 와중에 상대방의 집까지 들어오는 극소수의 사람과 하루하루를 가정에 충실하면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중 누구를 더 보호해야 하는가? 의문의 아닐 수 없다. 7. 사회통념,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는 해석이다. 일반인들에게 "누가 당신 배우자랑 바람을 피우려고 집에 들어왔다면 나쁜 짓이긴 해도 그것이 당신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면 이를 수긍할 일반 국민들이 과연 있을까? 필자도 이 사건과 같은 상황을 실제로 직접 경험한다면 "내 사실상의 평온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니, 주거침입 고소는 어렵고, 손해배상이나 위자료나 많이 받으면 되겠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8. 퇴거불응죄와의 관계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다수의견(또는 별개의견)은 일방의 승낙이 있으면 현존하는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을 부정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에 따르면, 주거 내 현존하는 거주자가 명시적으로 퇴거를 요구한 경우 그 거주자의 사실상 평온은 이미 깨어진 상황임에도 불구, 이에 불응하더라도 퇴거불응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Ⅳ. 맺으며 다수의견은 이 판결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어느 범위에서 종전 판례가 변경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아 향후 혼란이 예상될 뿐이다. 처벌 범위를 오히려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가벌성 있는 행위조차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러한 행위로 처벌받는 사람이 극소수임에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예전에는 주거침입으로 처벌되지 않기 위해 그나마 은밀하게 자행되었지만)로 적발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이제는 당당하게 이를 저지르게 하면서까지 지금도 가정을 지키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의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결론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사건 주임검사가 되었을 때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기소할 수 없다"면서 과감히 불기소결정서를 쓸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백승주 부장검사 (대구지검 공판제1부)
주거침입
주거침입죄
내연녀
불륜남
유부녀
백승주 부장검사 (대구지검 공판제1부)
2021-10-21
민사일반
교통사고 휴유증과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기산점
Ⅰ. 대상판결 1.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A군은 생후 1년 3개월이던 2006년 3월 교통사고로 뇌 손상을 입었다. 이후 발달지체 등 증세를 보여 치료를 계속 받았고, 2011년 만 6세 때 처음으로 언어장애 등 진단을 받았다. 이에 A군의 아버지는 사고일로부터 약 6년 후인 2012년 Z보험사에 책임보험금을 포함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Z보험사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맞섰다. 제1심(서울중앙지법 2014. 8. 28. 선고 2012가단140889 판결)은 "Z보험사는 피보험자인 아버지의 차량에 타고 있던 A군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1억 1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하여 A군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제2심(서울중앙지법 2015. 12. 3. 선고 2014나52987 판결)은 "A군 측은 사고가 발생한 2006년 3월 사고로 인한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음에도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2년경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고 하면서 "A군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가 완성되어 소멸되었다"고 하여 Z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2. 대법원의 판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된다.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경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안 날은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던 손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손해가 그 후 현실화된 것을 안 날을 의미한다. 이때 신체에 대한 가해행위가 있은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치료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증상이 발현되어 그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된 사안이라면, 법원은 피해자가 담당의사의 최종 진단이나 법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기 전에 손해가 현실화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해행위가 있을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왕성하게 발육·성장활동을 하는 때이거나, 최초 손상된 부위가 뇌나 성장판과 같이 일반적으로 발육·성장에 따라 호전가능성이 매우 크거나(다만 최초 손상의 정도나 부위로 보아 장차 호전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 치매나 인지장애 등과 같이 증상의 발현 양상이나 진단 방법 등으로 보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등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대법원은 사건을 파기환송하였고, 파기환송심(서울중앙지법 2020. 12. 18. 선고 2019나45151 판결)에서 사건은 종결되었다). Ⅱ. 평석 1. 비교 대상 판례 비교대상의 판례로서 첫번째 판례(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다52359 판결)는 교통사고로 장해가 악화된 경우에는 그 장해 악화를 안 때로부터 보험금청구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는 취지로 판시를 하였다. 그리고 다른 판례(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8다209713 판결)에서는 사망 사고발생 이후, 유족보상금 거부 후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는 바, 후자는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아니라 사실 상의 장애사유로 보아 사망이라는 원래의 사고발생일을 보험금청구권의 시효기산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유사 취지: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기타의 다른 판결(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에서는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족보상금 지급을 신청하고 이어 행정소송도 제기하였던 경우, 대법원은 그 정도로는 과실 없이 보험사고 발생을 알 수 없었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여 원래의 사망이라는 사고가 발생한 때로부터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았다. 2.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 제도개선 논의 대법원 판례는 책임보험에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에 관한 것이다. 우리 대법원(대법원 1994. 5. 27. 선고 94다6819 판결, 1995. 7. 25. 선고 94다52911 판결, 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다86895, 86901 전원합의체 판결 등)은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의 법적 성질을 손해배상청구권으로 보므로 이 판례에서 소멸시효는 민법의 불법행위 시효의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는 그와 관련하여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상법 제662조) 및 그 기산점에 대한 개선 논의를 살펴본다.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해서는 많은 제도개선 요청이 있다. 소멸시효의 개시 시점과 관련하여 피보험자 측이 사고발생을 안 날로부터 기산하여야 한다는 제안, 소멸시효 기간의 연장 문제, 소멸시효의 정지, 보험금 지급에 대해 보험계약자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 그 협조 거부 시 보험금 지급의 문제 등이 있다. 우선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사고발생을 안 날로부터 하자는 개선안을 내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 민법 제166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기산하는 것을 충실히 해석·적용할 때 보험사고 발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대법원이 예외적으로만 피보험자가 과실 없이 모른 경우에 한하여 안 때로부터 기산하고 있으므로 이는 현재와 같이 판례로 해결함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를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고 본다(동지: 백영화,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제도 개선 법안 검토', KIRI리포트 2017년 4월 17일, 13면). 일본, 독일 등 주요국의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를 3년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상법 제662조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가 보험회사에 대하여 보험금 지급을 청구한 경우,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보험회사로부터 그 지급 여부에 대한 확정적 회신을 받을 때까지는 정지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상법 제658조도 개정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개정 제안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3. 대상판결의 평가 교통사고 후 처음에는 장해가 발현되지 않다가 상당 시간이 경과한 후 장해를 확인한 경우 책임보험에서 직접청구권을 위한 보험금청구권 행사의 기산점이 문제된다. 원래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는 영속된 사실상태 존중을 통한 법적 안정성의 확보,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소멸시효 존재이유에 비추어 대법원의 사건의 해결에서 객관적 사실상태를 통한 법적 안정성 도모와 피해자의 손해 인지 여부를 고려하여 조화를 찾아야 한다. 성장과정에 있는 피해자의 늦은 시점에의 증상발현 시, 손해 인정에 있어서는 사고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도에서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다52359 판결은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그 당시의 장해상태에 따라 산정한 보험금을 지급받은 후 당초의 장해상태가 악화된 경우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와 같은 장해상태의 악화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부터 진행한다"고 판결하였다. 이는 책임보험의 직접청구권에 관한 것이 아니고 일반 재해장해보험금 청구에 관한 것이지만 사고의 구도는 유사하다. 결국 기존의 판례 및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비추어 볼 때, 불법행위 피해자 측에서 손해를 알 수 없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한 보험금(직접)청구의 소멸시효는 그 손해를 알거나 알 수 있었을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손해를 확정함에 있어서는 전문적 소견에 의하여 원래의 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사건 대법원의 판시는 타당하다. 최병규 교수 (건국대 로스쿨)
손해배상청구권
언어장애
교통사고
최병규 교수 (건국대 로스쿨)
2021-10-12
형사일반
정당한 이유 없는 증언거부와 참고인진술조서의 증거능력
I. 사실관계 피고인 A는 2017년 3월 27일 오후 7시10분경 고양시 소재 노상에서 甲으로부터 640만 원을 지급받기로 하고 甲에게 필로폰 약 41.5g을 교부하여 필로폰을 매매하였다. 甲은 검찰 수사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필로폰을 입수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여 이 사건 참고인진술조서가 작성되었다. 甲은 2017년 4월 24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제1심은 2017년 10월 13일 징역 4년을 선고하였고, 제2심은 2018년 1월 31일 검사의 공소장변경을 이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甲이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상고하였으나, 2018년 5월 15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다. 한편 피고인 A에 대한 2017년 11월 24일 제1심 제5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甲은 선서 및 증언을 거부하였다. 현재 자신의 관련 사건이 항소심 계속 중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제1심은 2018년 2월 7일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사가 항소하였다. 검사는 원심에서 다시 甲을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甲은 2018년 6월 19일 원심 제2회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선서를 거부하기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선서를 거부한다"라고 진술하면서 선서 및 증언을 거부하였다. 이때는 이미 甲 사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어 甲의 증언거부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Ⅱ. 소송의 경과와 쟁점 1. 원심의 판단 甲의 원심에서의 증언거부는 자신의 관련 사건이 확정된 후이므로 형사소송법 제148조에 따른 증언거부권은 인정되지 않고, 형사소송법 제150조에 의하면 증언을 거부하는 자는 거부사유를 소명하여야 하는데 甲은 "선서를 거부하기로 판단하였다"라고만 하였다. 따라서 甲의 증언거부는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는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검사가 작성한 甲에 대한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설령 이와 달리 보더라도 형사소송법 제314조 단서에 따라 甲의 검찰에서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2. 대법원의 판단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참고인이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하여 피고인이 반대신문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도, 피고인이 증인의 증언거부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증인이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여 증언을 거부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에서 그 증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는 증거능력이 없다. 3. 쟁점 '피고인 유죄' 취지의 진술을 담은 참고인진술조서에 관하여 법정에서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여야 할 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 그 참고인진술조서를 법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Ⅲ. 평석 1. 증언거부를 다르게 보아야 하는 이유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진술조서를 작성한 후에 참고인이었던 증인의 법정증언을 확보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증인이 법정에 나올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이 바로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규정하고 있는 바다. 제314조는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야 할 자가 "사망, 외국거주, 소재불명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의 예외인정 요건을 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망이나 외국거주, 소재불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판례가 이미 자세하게 설시한 바 있다.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는 그와 같은 판례의 해석론에 기초할 때, 물리적으로 출석이 불가능한 경우나 출석하더라도 진술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기억능력 자체가 없어진 경우라면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 외에 증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제314에서 말하는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중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첫째, 사망, 외국거주, 소재불명이라는 사유와 증언거부는 불능의 정도와 의미가 다르다. 앞의 것을 사실적 불능이라고 하면 뒤의 것은 법률적 불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증인의 증언거부 상황은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위험에 속한다. 수사기관 앞에서 진술할 때처럼 증인이 법정에서 같은 진술을 해 줄 것인가는 수사기관의 부담이고, 책임이다. 진술증거만이 존재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특히, 증인의 진술 변경, 은닉 또는 도피뿐만 아니라 증언거부 등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수사기관의 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이는 법이 예정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셋째, 참고인이 나중에 진술 태도를 바꿀지 안 바꿀지는 수사기관이 그를 직접 증인으로 부를 때도 마찬가지로 부담해야 할 위험이다. 증인으로 나와서 진술하겠다고 했다가 정작 증언대에서는 증언을 거부하는 경우도 우리는 수사기관에게 불리하게 평가한다. 증언을 못 들은 것으로 간주한다. 증언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참고인진술조서라고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더라도 그 위험은 고스란히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한다. 조건을 못 맞추면 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다. 넷째, 제312조 제4항과 제314조에는 한편으로는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신문 결과도 증거로 쓰일 길을 열어두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입법자의 결단이 들어 있다. 두 조항을 해석할 때는 따라서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제312조 제4항 자체가 벌써 예외규정이다. 직접심리주의의 예외이다. 그런데 거기 덧붙여 또 하나 '진술 불능의 예외'를 둔 것이 제314조이다. '예외에 대한 또 하나의 중대한 예외'라고 본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입법자의 의사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요컨대, 증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정당한 증언거부권의 행사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제314조의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을 적은 참고인진술조서를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2. 판결의 취지 대상판결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증거는 참고인진술조서에서 수사 당시 참고인이었던 증인이 피고인으로부터 마약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법상으로 그 진술을 증거로 쓰기 위해서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그 진술자가 법정에 나와서 조서의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 주어야 할 참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는 때이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진술을 해 놓고도 그 진술의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지 않기로 변심한 참고인이 피고인만큼이나 괘씸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조서를 증거로 제출해 놓고 제314조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사기관의 주장은 우리 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 우리 법은 증인의 진술이 법정에 현출되고 이에 관해서 피고인이 반대신문할 기회를 주는 것을 원칙적인 증인신문의 모습이라고 본다. 참고인을 수사기관 앞에 소환해서 진술을 들은 다음 조서를 작성해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외다. 그래서 조건이 까다롭다.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반대신문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참고인의 진술을 듣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따라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참고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법정증언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판결처럼 조서를 작성해서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것이다. 둘 다 똑같이 위험부담이 있다. 증인이 나중에 진술을 거부할 위험이다. 이 위험은 피할 방법이 없다. 재판장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감치에 처하는 것은 별론이다. 어떻게 하든 실제로 그 증인의 증언을 들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당신은 말을 안 할 이유가 없어. 말을 해야 돼"라고 증언을 강제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증언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해서 미리 작성한 조서를 증거로 받아달라고 할 수는 없다. 검사가 참고인의 결정적인 진술을 들었다고 해서 유무죄 판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건 재판준비에 지나지 않고, 법정에서 잘해야 한다. 참고인진술조서의 준비가 다가 아니다. 제312조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마저 못 갖추면 제314조라는 더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제314조를 좁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314조를 직접주의의 예외에 대한 또 하나의 중대한 예외라고 대상판결이 설시한 것은 이런 취지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희균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증언거부
형사소송법제314조
형사소송법
마약류관리법
김희균 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2021-10-07
행정사건
국민건강보험법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이 과연 재량규정인가
Ⅰ. 판결요지 구 국민건강보험법(2011년 12월 31일 법률 제11141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2조 제1항은 "공단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자 또는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급여 또는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라고 규정하여 문언상 일부 징수가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 위 조항은 요양기관이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지급청구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바람직한 급여체계의 유지를 통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러나 요양기관으로서는 부당이득징수로 인하여 이미 실시한 요양급여에 대하여 그 비용을 상환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므로 침익적 성격이 크다.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 취지, 부당이득징수의 법적 성질 등을 고려할 때,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이 정한 부당이득징수는 재량행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기관의 개설명의인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Ⅱ. 논의현황 통상적으로 기속규정인지 재량규정인지 여부는 가능규정(Kann-Vorschriften)인지 의무규정(Muß-Vorschriften)인지 여부에 따른다. 그런데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 부당이득의 징수 규정은 '징수한다'고 하여 논란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 입법 취지, 입법 목적, 행위의 성질을 고려하여 재량행위, 기속행위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박균성, 행정법론(상), 2021, 328면), 다른 한편으로는 판례가 법정외 거부사유에 따른 거부가능성을 인정하는 상황을 기속재량행위로 받아들여 요양급여처분, 그 거부처분과 환수처분을 기속재량행위로 보고서, 요양급여 기준 위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예외적 정당화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초과한 금액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징수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선정원, 행정법연구 제29호, 2011, 19면)가 있으며, '속임수 기타 부당한 방법'을 형식적·기계적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기속행위로 본다면, 형평과 정의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서 '일부 징수'의 차원에서 재량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견해(현두륜, 의료법학 제8권 제2호, 2007, 108면~109면)도 있다. Ⅲ. 대상판결의 재량적 접근 및 그에 대한 비판 대상판결은 해당 규정이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부당이득의 징수 자체가 침익적 성격이 크다는 점이 든다. 그밖에 법 규정의 내용, 체제와 입법취지를 드는데, 구체적인 논거는 문현호(48·사법연수원 33기) 부장판사의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문 부장판사의 글(사법 제54호, 2020, 846면 이하)에서 전개된 논의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ⅰ) 먼저 문언적 해석의 차원에서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의 '일부'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상 재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전액 징수만 가능하다면 굳이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는데, 과연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지적하였다고 이를 재량의 논거를 삼을 수 있는지 수긍하기 힘들다. '부당이득의 징수'를 규정한 실정법의 현황을 보면, 부당이득의 징수를 의무로 설정할 때 징수권이 부당이득에 한하여 행사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면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속행위로 접근하는 것이 '일부'의 어의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수긍하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서의 '징수한다'의 표현을 중립적이라 지적하는데, 오히려 종래 민사적 방법으로 부당이득환수를 도모하는 것을 공법적으로 대체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ⅱ) 체계적 해석의 차원에서 동 규정은 적용 범위가 넓은 일반조항이기에 실질적 부당이득징수사유를 포착하기 위해서 재량규정이어야 함을 내세우는데, 이는 실제적인 부당이득이 되는지 여부의 문제이고 부당이득의 적정성의 물음이기에, 재량규정의 논거가 될 수 없다. ⅲ) 목적론적 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 중 일부 금액만 부당하면 그 금액만큼 행정청의 증명책임이 경감되는데, 만약 기속행위로 보면 부당한 일부 금액 특정의 증명책임까지 행정청이 부담하여 엄격하게 보면 처분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는데, 과연 이것이 목적론적 해석의 접근방식인지 의문스럽다. ⅳ) 엄격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이 유상급부에 대한 대가이어서 그것의 징수는 무상 보조금 환수보다 침익성이 가장 강하기에 재량이라는 것인데, 통상적으로 침익행위를 애써 재량행위가 아닌 기속행위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논증이다. 침익성이 크기에 행정청의 자의가 기속행위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개재될 가능성이 큰 재량행위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ⅴ) 합헌적 해석의 차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재량행위로 보아야 한다면서 헌재 2014헌바298 등의 결정이유(심판대상조항들은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당이득으로 징수하도록 정하고 있어, 구체적 사안에 따라 그 금액 전부의 징수가 부당한 경우에는 일부만 징수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금 징수처분으로 인한 의료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가 해당 규정을 재량행위설을 전제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일부'의 의미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가 수급한 요양급여비용 가운데 부당이득에 해당하는 것만을 징수하도록 입법자가 배려한 것임을 지적한 데 불과하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더해서 다양한 일률적인 전액징수가 불공평 또는 책임초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절차적·형식적 규정만 위반한 경우에는 요양급여기준위반보다 징수금액이 더 크게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회생파산절차에 의한 면책이 불가능한 의사들이 경제적 불능상태에 삐지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든다. 그런데 과도한 징수의 경우는 기속행위인 과세처분에서 일부취소와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당결부와 같은, 이런 식의 논증이 과연 재량행위적 접근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든다. ⅵ) 다른 법령과의 비교에서 부당이득 성격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기속행위로 볼 수는 없고, 입법정책적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는 동 규정의 재량행위성 여부의 논거와는 무관하다. 재량행위라도 전부 징수가 가능하며, 부당이득의 징수(박탈)의 성격이 징수의 재량행위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과연 본 사안에 통용될 수 있는 논증인지 의문스럽다. Ⅳ. 맺으면서-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이 사실상 용인된 셈이다 대상판결이 해당규정을 재량규정으로 접근하기 위해 내세운 논거 모두가 전혀 수긍하기 힘들다. 비록 익숙한 규정방식(…하여야 한다)을 취하지 않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취지(동 규정의 원형은 일본 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이다. 일본의 경우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기속행위로 접근하는데, 이는 '할 수 있다'의 의미를 일종의 권한규정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를 감안할 때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은 기속규정일 수밖에 없다. 징수(환수)처분규정을 기속규정으로 둔 것은 입법자가 연금지급의 적법성을 다른 여지 없이 실현하기 위함이다. 침익적 처분을 재량에 맡겼을 때 생길 수 있는,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법집행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기 위함이다. 부당이득 징수제도의 정당성을 고려하면, 애써 그것을 이익형량의 틀속에서 징수권자의 자의가 개재될 가능성이 있는 재량행위로 접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대상판결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을 사실상 용인한 셈이다(김중권, 행정판례연구 제26집 제1호(2021.6.30.), 3면 이하). 법령에서 규정하지 않은 장애를 바람직스럽지 않게 예시적 접근으로 등록장애종류로 확대 인정한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이 보여주듯이 최근 법원은 사회보장행정 분야에서 권리구제확대를 내세워 이해하기 힘든 전개를 한다(김중권, 사법 제55호(2021. 3. 15.), 955면 이하). 아무리 사회보장행정법이 일반행정법의 실험장인 동시에 혁신의 원동력이라 하더라도, 민주적 법치국가원리를 넘어갈 수는 없고, 사회적인 것 그 자체가 결코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의 예외를 정당화시키지도 않는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의사
병원
사무장병원
불법행위
요양급여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2021-09-30
가사·상속
이혼·남녀문제
출산경력의 불고지와 혼인 취소 사유
Ⅰ. 사실관계 피고는 베트남 소수민족 출신의 여성으로, 만 13세 무렵 옆 마을 남성들에 의해 납치당한 다음 A에게 감금, 강간당하여 약탈혼에 이르렀고 아이를 출산하였다. A의 사망 후 A의 부모가 아이를 데려갔고, 피고는 고향을 떠나 아이와 연락 등 일체의 교류가 단절되었다. 피고는 20세 무렵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을 통하여 원고와 혼인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베트남 중개업자에게는 자신의 출산경력을 알렸으나 원고에게는 이를 알리지 않았다. 혼인 후 피고는 원고의 계부로부터 수차례 강제추행 및 강간을 당하였고, 결국 집을 나와 고소하여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형사공판 과정에서 피고의 과거 출산경력이 드러나자, 원고는 피고에게 사기에 의한 혼인 취소 및 위자료를 청구하였고, 피고는 반소로 이혼 및 위자료를 청구하였다. Ⅱ. 판결의 요지 1심과 항소심법원은 피고의 출산경력은 원고의 혼인의사 결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피고가 이를 고지하지 않았고 원고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피고와 혼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들면서, 혼인 취소 청구 및 위자료 청구 일부를 인용하였다. 상고심법원은 불고지의 경우에는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위법한 기망행위로 인정할 수 있는바, 아동 성폭력 범죄에 의하여 출산하였으나 이후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면, 그 출산경력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하여 그 불고지를 혼인 취소 원인이 되는 위법한 기망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그러나 환송 후 원심판결은 증거조사를 통하여 새롭게 인정된 사실을 토대로, 피고가 성폭력으로 인해 바로 임신한 것이 아니라 그 후 혼인 생활을 하다가 임신·출산하였는바, 이러한 출산경력이 피고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통상 상대방의 출산경력은 혼인에 의한 의사결정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라는 등의 이유로, 다시 원고의 취소 청구를 인용하였다. 피고는 재상고하였으나 재상고심 판결은 이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였다. 원고의 혼인취소청구 인용에 따라 피고는 출입국관리법 등에 따른 결혼이민 자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 베트남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Ⅲ. 사기로 인한 혼인 취소 사기로 인하여 혼인 의사표시를 한 때에는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장래를 향하여 혼인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법적 효과는 이혼과 같지만, 대상사건과 같이 혼인관계 파탄에 있어 일방의 취소 사유와 상대방의 이혼 사유가 모두 존재하는 경우 취소 인정 여부에 따라 법 적용 결과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혼인 취소의 제척기간은 '사기를 안 날로부터 3개월'로서 총칙상 사기 취소와는 달리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기간 제한이 없다. 혼인 기간이 오래되었더라도 사기를 안 지 3개월 내에 취소를 청구하면, 실제 혼인 파탄의 귀책사유가 자신에게 있더라도 상대방의 과거 기망을 이유로 혼인관계를 해소시키고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고, 이혼사유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자신의 위자료 지급 의무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이에 혼인 취소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혼인의 성립을 희망한 나머지 사실을 과장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거짓약속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사기를 이유로 혼인을 취소하려면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있어야 하고 직업, 수입 등을 허위로 이야기하였더라도 다소 과장에 불과하다면 취소사유가 되지 않는다(서울가정법원 2004. 1. 16. 선고 2002드단69092 판결 등).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있었는지 여부는 개별적 사안마다 판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나, 기망 내용이 혼인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어서 당사자들의 혼인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해 당면의 혼인생활의 유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는지, 해당 사항이 과거의 지나간 일에 불과한지 아니면 현재 또는 장래에 영향을 주는 사항인지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Ⅳ. 출산경력의 고지 의무 피고는 자신의 출산경력에 관하여 원고를 적극적으로 기망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고지를 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부작위를 기망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에게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 위 상고심판결은 고지의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항이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인 부분에 해당하는지를 가려 사회 통념상 고지를 기대할 수 있는지, 그 불고지가 신의성실의 원칙상 비난받을 정도라고 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심리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아동기 성폭력 범죄 피해로 인해 출산에 이르렀으나 그 후 자녀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향후 양육이나 교류의 문제가 없는 경우라면, 이를 불고지하였다고 하여 위법한 기망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피기망자의 의사결정의 자유 뿐만 아니라 기망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아동성폭력 피해자에게 그 범죄의 경험은 단순한 정신적 고통을 넘어선 공포이자 내밀한 영역의 수치스러움이 될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에도 고지의무를 인정한다면 그 여성은 범죄의 피해자일 뿐인데도 혼인하고자 할 때 혼인이 무산되고 자신의 비밀이 외부에 알려질 위험을 각오하고 사전에 자신의 출산경력을 상대방에게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것이 싫다면 평생 혼인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범죄 피해자의 인간의 존엄성이나 사생활의 비밀 등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 상고심 판결의 판시는 타당하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출산경력을 불고지한 경우라면 어떠한가? 기존 판례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은데, 혼인 취소를 인정한 판결도 있고, 아닌 판결도 있다. 그런데 인정한 판결의 경우 불고지자가 법률혼을 하여 자녀를 두었던 경우로서 출산 경력뿐만 아니라 혼인 경력에 관해서도 불고지한 사안이었고(서울가정법원 2006. 8. 31. 선고 2005드합2103 판결 등), 이와 달리 법률혼 없이 자녀 2명을 출산한 경력을 불고지한 경우 혼인 취소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배우자의 과거의 이성 관계나 학력, 경제적 사정 등에 관하여 혼인 전에 속이거나 묵비하였다는 이유로 손쉽게 혼인의 취소사유로 인정한다면 가정평화와 친족상조의 미풍양속을 유지 향상하기 위한 가사관계법의 기초가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 근거였다(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 2008. 8. 22. 선고 2007드단30719 판결). 검토컨대 양육책임 등을 제외하고 오로지 '과거에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지'만을 문제 삼는 출산경력에 관한 묵비 또는 기망은 위와 같은 '혼인의 본질적인 내용'에 관한 중대한 기망이 되지 않아 혼인 취소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통상적으로 출산경력이 혼인 의사 결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는 하나 이는 결국 가부장적 관습 하에서 과거 출산 경험을 가진 여성에 대한 윤리적 평가절하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관념을 법이 정당한 것으로 승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출산경력을 불고지함으로 인해 당면에 있어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한 혼인질서에 합치되는 혼인생활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혼인 후 사정 변경으로 예기치 않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면 그 혼인은 이혼으로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Ⅴ. 판결에 대한 검토 위와 같이 상고심법원이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지만, 이를 환송받은 원심법원은 부족의 관습 및 피고 부모의 동의에 따라 혼인생활을 하다가 임신·출산한 이상 그러한 출산경위가 알려진다고 하여 피고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다시 원고의 혼인 취소 청구와 위자료 청구 일부를 인용하였다.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풍습일지라도 어쨌든 피고가 속하였던 소수민족 사회의 풍습에 의하여 혼인하여 생활한 이상 이를 '범죄에 의한 피해' 또는 '사생활의 비밀'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피고는 재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재상고를 기각하여 혼인 취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미성년의 여성이 당한 범죄 피해의 의미를 부당하게 축소하거나 왜곡한 것이다. 미성년자 납치 및 강간의 불법적인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처벌하지 않는, 약탈혼 풍습이 있는 소수민족 출신이었다고 하여, 그 범죄 피해자에게 범죄가 가지는 가벌성이나 피해의 의미를 제3자인 법원이 함부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그러한 출신이라고 하여 야만적인 범죄행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범죄 피해자로서 느끼는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이 적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 피고의 부모는 딸이 순결을 잃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혼에 동의하였지만 이를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고 본인의 진정한 의사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재상고심 판결은 환송 후 원심법원이 파기 환송 전 원심법원과 같은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유조차 설시하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확정시켰다.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김유진 변호사 (서울보증보험)
출산경력
혼인취소
기망
김유진 변호사 (서울보증보험)
2021-09-16
민사일반
입법 미비를 이유로 한 장애인등록 거부처분에 대한 사법심사
Ⅰ. 사안의 개요 원고는 14년 이상 뚜렛증후군[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불시에 통제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음성 틱) 목, 어깨, 얼굴, 몸통 등 신체 일부분을 매우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이상 증상(운동 틱) 모두를 1년 이상 앓는 병증으로서 의학적 원인은 미규명 상태임]을 앓아 오다가 2015년 7월 22일 관할 군수인 피고에게 장애인등록 신청을 하였다. 신청 당시에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의 위임에 의한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별표1](이하 '시행령 별표1'이라 한다)의 등록 대상인 장애인의 종류와 기준에 틱 장애나 뚜렛증후군은 규정되어 있지 않아 원고는 장애인등록용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고는 2015년 7월 28일 장애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신청을 반려·거부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원고는 뚜렛증후군을 장애인등록대상으로 명문화하지 않은 시행령 별표1은 평등원칙에 위반되어 위헌·무효이고 이에 기초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장애인등록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1. 헌법 제34조 제1항, 제5항, 장애인복지법 제1조, 제2조 제1항, 제2항,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별표 1]의 체계, 장애인복지법의 취지와 장애인등록으로 받게 되는 이익, 위임규정과 시행령 규정의 형식과 내용 등을 종합하면, 시행령 별표1은 위임조항의 취지에 따라 모법의 장애인에 관한 정의규정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가능한 범위 내에서 15가지 종류의 장애인을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 오로지 그 조항에 규정된 장애에 한하여 법적 보호를 부여하겠다는 취지로 보아 그 보호의 대상인 장애인을 한정적으로 열거한 것으로 새길 수는 없다. 2. 어느 특정한 장애가 시행령 별표1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행정입법의 미비가 있을 뿐이라고 보이는 경우에는, 행정청은 그 장애가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등록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 이 경우 행정청으로서는 위 시행령 조항 중 해당 장애와 가장 유사한 장애의 유형에 관한 규정을 찾아 유추 적용함으로써 위 시행령 조항을 최대한 모법의 취지와 평등원칙에 부합하도록 운용하여야 한다. 3. 원고는 뚜렛증후군이라는 내부기관의 장애 또는 정신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에 해당함이 분명하므로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장애인복지법을 적용받는 장애인에 해당하는 점, 위 시행령 조항이 원고가 가진 장애를 장애인복지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취지라고 볼 수도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행정청은 원고의 장애가 위 시행령 조항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을 들어 원고의 장애인등록신청을 거부할 수는 없으므로 피고의 위 처분은 위법하고, 피고로서는 위 시행령 조항 중 원고가 가진 장애와 가장 유사한 종류의 장애 유형(뇌전증·간질장애 또는 정신분열·반복성 우울장애)에 관한 규정을 유추 적용하여 원고의 장애등급을 판정함으로써 원고에게 장애등급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Ⅲ. 평석 1. 문제의 제기 행정쟁송 실무에서는 장애인등록 대상과 기준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분쟁이 흔히 발생하고 있으나, 이는 시행령 별표1에 열거된 장애 종류·유형의 해당성 여부를 다투는 경우이다. 본 사안은 시행령 별표1에 명시되지 않은 뚜렛증후군이라는 새로운 장애에 대해 장애인등록이 가능할 것인지를 다투는 사건으로서 차이가 있다. 대상판결은 시행령 별표1의 입법 미비와 그에 따른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선언에 그치지 않고, 행정청에게 유추 적용을 통한 장애등급 부여를 후속 조치로 지시한다는 점에서 적극적·파격적인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원고의 권익구제라는 결과에는 찬성하지만, 대상판결의 법리구성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2. 장애인등록대상을 한정·열거한 입법 미비와 처분의 위법성 문제 가. 예시적 열거로 본 대상판결의 문제점 대상판결은 시행령 별표1의 장애인의 종류와 기준 규정을 예시적 열거로 봄으로써 원고의 장애유형도 법원의 법해석을 통해 보호 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을 찾고 있다. 원고가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1항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장애인이 명백한 이상, 예시적 열거인 시행령 별표1의 명시적 규정 없이도 장애인등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의 입법취지와 장애인 보호의 당위성만으로는 특정한 장애유형을 가진 장애인의 복지수급권의 내용과 대상을 구체화하는 법령이 제정되기 전임에도 헌법규정, 일반조항이나 정의규정에서 장애인 복지수급권이 도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행령 별표1이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라는 문언을 두지 않은 점, 복지수급권의 내용과 대상은 재정상황이나 사회복지 정책의 우선순위 등에 따라 선별적·단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점, 새로운 장애유형에 대한 보호 여부는 신중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인 점 등을 고려하면 한정적 열거로 봄이 더 자연스럽다. 나. 복지급부에 관한 입법재량권과 입법 미비 여부 대상판결은 뚜렛증후군을 규정하지 않은 시행령 별표1을 단순한 행정입법의 미비로 보았다. 그러나 장애인 복지급부의 이행 시기, 방법 등의 구체적 내용은 복지정책별 우선순위, 전체적인 복지의 수준, 재정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할 광범위한 입법재량 사항이다. 이러한 입법재량으로 인해 특정 장애를 가진 대상자에 대한 복지급부 근거규정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더라도 쉽사리 해당 행정입법이 입법 미비 상태라거나 다른 장애에 비하여 평등원칙을 위반한 위헌·위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 입법 미비 상태에서의 거부처분의 위법 여부 시행령 별표1에 규정되지 않은 장애인등록신청에 대하여 담당 공무원이 -대상판결과 같이 신청인의 장애와 가장 유사한 장애 규정을 유추 적용하여- 장애등급을 판정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담당 공무원에게 시행령 별표1의 제·개정 권한이 없고, 재정부담을 수반하는 장애인등록을 통일적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임의로 처리할 경우 추후 징계책임이 우려될 수 있다. 행정기본법 제4조의 적극행정을 고려하더라도, 행정입법의 개선으로 해결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행정청이 복지급부의 근거가 되는 행정입법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는 거부처분을 할 수 없다는 대상판결의 판시가 일반화될 경우, 급부행정에서 공무원의 자의적 법해석과 복지급부의 임의집행 우려, 입법공백임에도 수급권의 무리한 주장과 신청의 남발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 장애인등록신청 거부가 불완전 입법상태, 즉 부진정입법부작위라는 객관적 위법상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3. 행정입법 미비상태에 대한 법원의 타당한 사법심사 방식 가. 명령·규칙 심사권에 의한 해결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의 본질이 처분 근거법령의 미비라는 객관적 위법상태에 있다면, 그 사법심사는 시행령 별표1에 대한 명령·규칙 심사권(헌법 제107조 제2항)으로 귀결됨이 타당하다. 법원은 판결 주문에서 별도로 명령·규칙의 폐지나 적용 배제를 선고함이 없이, 판결 이유에서 시행령 별표1 중 뚜렛증후군을 장애인등록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은 부분이 평등원칙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점을 선언하면 된다. 이러한 판단만으로도 시행령 별표1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 행정의 후속조치를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대상판결 판시의 문제점 대상판결이 유추 적용에 의한 장애등급 부여의 행정조치를 요구한 것은, ①장애인 복지행정에서의 입법재량권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이고, ②의무이행소송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법제에서 마치 특정행위 명령판결(Vornahmeurteil)을 선고한 것과 결과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③입법재량 영역임에도 법원이 독자적인 결론을 도출하여 적극 제시하는 것이어서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만을 심사하던 종래의 재량행정에 대한 판례와도 배치된다. 행정입법의 개선의무는 취소확정판결의 기속력을 통해서도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4. 결론 대상판결은 선고 후 1년 7개월 만에 시행령 별표1의 개정으로 뚜렛증후군이 정신장애의 한 유형으로 명문화되는 결실을 보게 되었다. 치료가 어렵게 된 장애인이 되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도 너무 힘들었을 장애인 본인과 그 가족이, 다음 단계로서 장애인등록의 문턱에서 또다시 쓰라린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장애인등록이 이루어지기까지 신청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엄중히 생각하고 적극적인 개선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의 가치는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다만, 행정입법 미비 상태에 대한 대상판결의 판시 논리와 사법심사 방식은 법리적 차원의 재검토가 필요하고, 그 문제점에 관하여 앞으로 대법원 판례의 정밀한 개선을 기대한다. 이은상 교수 (아주대 로스쿨)
장애인
장애등급
장애인복지법
이은상 교수 (아주대 로스쿨)
2021-09-13
노동·근로
민사일반
사내하도급과 근로자파견의 구별
Ⅰ. 대상판결의 내용 1. 사실관계 피고는 자동차용 엔진을 생산하여 완성자동차 회사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원고들은 피고와 자동차용 엔진 조립 업무에 관한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 피고의 평택 1공장 및 2공장에서 자동차용 엔진 조립 등 업무를 담당한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피고와 사내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도급계약의 실질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라 한다)'상의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는데, 원고들이 행한 업무는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사업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이고, 피고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거나 근로자파견사업 허가를 받지 않은 사내협력업체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이상 피고가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서 원고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1심은 원고들 청구를 전부 인용하였으며, 원심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피고는 상고를 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① 피고가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면서, ② 이들을 자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시켰다고 보이고, ③ 사내협력업체는 그 소속 근로자들의 전반적인 노무관리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며, ④ 도급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었거나 그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⑤ 사내협력업체가 이 사건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심 판단을 수긍하였다. Ⅱ. 평석 1. 근로자파견의 의의와 그 판단기준의 모호성 파견법 제2조 제1호에 의하면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은 사용사업주가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에 해당하는 아니하는 업무에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거나, 객관적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2년을 초과하여 계속해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등 다섯 가지 사례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직접고용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를 상대로 고용 의사표시를 갈음하는 판결을 구할 사법상의 권리가 있고, 판결이 확정되면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직접 고용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견해이다(대법 2016. 7. 22. 선고 2014다222794 판결 등 참조).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법률효과(사실상 직접고용관계의 강제)를 고려하면 파견법 제2조 제1호의 근로자파견 개념은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법률에 의한 근로관계 성립의 강제 또는 사용자의 일방적 교체는 당사자의 사적자치, 계약자유의 원칙이라는 헌법상의 요청과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계약자유에 대한 침해는 파견근로자의 보호 필요성이 그 이상으로 인정되어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 대법원의 판결 내용에는 이 점에 대한 고려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파견법은 근로자파견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대법원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와 제3자인 원청 사이에 직접 고용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근로자파견의 성립요건과 그 판단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그 판단기준으로 다섯 가지 요소를 병렬적으로 나열할 뿐, 각 요소가 실제로 근로자파견 판단구조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각 요소의 상호관계 및 개별 요소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무엇인지는 침묵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 검토가 필요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수급인은 언제나 그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어야 하고,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원청이 '부분적으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를 지휘·명령하는 경우에까지 파견법의 적용이 확대될 수 있는가? 원청의 지시가 계약의 목적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근로자를 상대로 노무제공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인지 나누어 검토하고 있는가? 2. 파견법의 취지와 도급계약의 목적 파견법은 '사용자'로서 신뢰도 낮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원청의 직접고용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 물론 전문성·기술성이 없거나 독립적인 사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지 않은 협력업체는 근로자의 고용안정이나 근로조건 보호에 미흡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같은 업무를 원청 소속 근로자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혼재되어 공동으로 수행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특정 업무를 분리시켜 협력업체에 발주하고 그 결과를 수취하는 도급계약이 다수라고 할 수 있다. 업무의 성격상 사업설비와 부품 등을 원청이 직접 제공하고 협력업체가 이를 완성하여 납품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도급계약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원청이 마련한 사업설비와 부품을 이용하여 원청의 사업장에서 도급업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도급계약이 부인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협력업체가 전문성·기술성이 있거나 독자적인 사업조직을 갖추고 있다면 사실상 도급계약의 실질을 가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전문성·기술성이 부족하거나 독립적인 사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도급계약관계가 쉽게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3. 사용사업주에 의한 지휘·명령권의 독점 원청과 협력업체가 도급계약 또는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고 협력업체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근로자를 이행보조자로 투입하였다면, 그 근로자가 고용주인 협력업체의 통제를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원청의 지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도급업무의 개별적 특성이나 사내하도급의 성격을 감안하면 협력업체가 도급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원청의 개입이나 지시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를 통해 불량률을 낮추고 작업속도를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도급계약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원청이 협력업체의 노무수행과정에 개입할 수 있고, 또한 어느 단계의 개입부터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사업주로서의 지위에 서게 되는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직접고용의무의 발생 등 법률효과를 고려하면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사용사업주의 사업조직에 전적으로 편입되어 오로지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하에서만 근로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분적으로 원청의 지시나 개입 또는 지휘·명령이 있다고 해서 근로자파견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파견사업주는 자신이 직접 이행보조자를 이끌고 사용사업주가 요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다. 이는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의 개념을 벗어나는 것이다. 원심과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4. 사용자의 지휘·명령권 행사 원청의 지휘·명령 또는 지시는 그 성격상 두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그 하나는 도급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합의된 계약의 목적을 좀더 구체화하는 것으로서 이를 계약목적을 구체화하는 도급인의 지시권(gegenstandsbezogene Anwesiungen)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근로자의 근로제공의무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노동법상의 지휘·명령권, 즉 직접 근로자에 대한 지시권(personenbezogene Weisungen)이다. 당연히 양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원청은 도급인의 지시권을 행사하여 도급계약의 목적인 급부의 내용을 세밀하게 정할 수 있다. 도급인의 지시가 원청과 협력업체가 합의한 계약목적의 구체화에 관련된 것이면 노동법적 관련성이 약화된다. 이 사건에서 원청이 작성한 작업표준서, 중점관리표, 작업공정 모니터 또는 부품조견표에 따라 조립공정에 투입할 부품 및 조립방법을 정하게 되는 바, 원심과 대법원은 이를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지휘·명령이라고 보고 있으나, 오히려 원청과 협력업체 간에 도급계약의 목적을 구체화하는 도급인의 지시로 볼 여지도 있으므로 좀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판단이 필요했다. 5. 맺음말 파견법의 법률효과를 고려하면 근로자파견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상의 요청에 부합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애초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서 같은 업무를 원청 소속 근로자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공동으로 작업한 사례에 대하여 근로자파견을 인정한 후 이른바 간접공정업무나, 비제조 업무에 대해서도 근로자파견을 인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근로자파견과 그밖의 법률관계를 구별하기 위해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기준이 지나치게 넓게 형성되어 있는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다수의 협력업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견법은 이와 같은 기업의 대응이 명백히 파견법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 때에 한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한편, 반복되는 불법파견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파견대상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입법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현대자동차
근로자
파견근로자
직접고용의무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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