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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6.25 당시 미군 포격 피해자 유족에 국가배상 책임 없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포항지역 미군함포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에게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진실규명결정이 국군이 아니라 미군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소멸시효 기산점을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10년 6월이 아닌 사건이 발생한 1950년 9월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미 태평양함대 소속 구축함 헤이븐호가 경북 포항시 북구 환여동 송골해변에 10여분간 함포 15발을 쏴 100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이곳은 북한군이 아니라 피난민 1000여명이 모여 있던 곳이었고 미군 포격으로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포격 당시 사망한 민간인의 유족인 방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1억1900여만원을 달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5다217829)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방씨는 2010년 6월 22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후 만 3년이 되기 직전인 2013년 6월 21일 "미군의 포격 사실을 미리 알고도 방치한 국군의 책임도 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를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면 피해자나 그 유족이 그 결정에 기초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경우, 국가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피해자 등에 대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며 "다만 피해자 등이 이같은 신뢰를 가질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과거사위에서 피해자가 '국가 내지 국가 소속 공무원의 가해행위'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한 경우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당시 과거사위의 진실규명 결정은 이 사건이 '아군의 전선으로 접근하는 피난민이 적군 편이 아닌 것이 분명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적으로 간주하라'는 미군의 피난민 정책 등 피해자들이 '국가 내지 국가 소속 공무원의 가해행위'가 아니라 미군의 가해행위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취지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유족인 방씨는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한 신뢰를 가질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1심은 "함포 사격이 국군 소속 장교가 아닌 미군 측 장교에 의해 이뤄졌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당시 미군이 표적 중 피난민이 있는 것이 아닌지 재확인을 요청했지만 국군은 북한군이 섞여 있다며 재차 함포사격을 요청했다"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소멸시효와 관련해서도 "방씨는 피해자들이 사망한 1950년 9월로부터 한참 지난 2013년 6월에야 소송을 제기했지만, 과거사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려 국가가 소멸시효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2010년 6월 22일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인 2013년 6월 21일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방씨가 진실규명 결정 이후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국전쟁
포항지역미군함포사건
진실규명결정
국군
미군
태평양함대
헤이븐호
송골해변
북한군
홍세미 기자
2016-03-02
전문직직무
[판결] '과거사 수임 논란' 변호사 5명 가운데 2명 유죄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한 뒤 관련 사건을 불법 수임한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 5명 가운데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부장판사 현용선)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 김준곤(61·사법연수원 20기) 변호사에게 17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2015고합620). 재판부는 "김 변호사가 문제가 된 15건 중 공소시효가 완성된 2건을 제외한 13건에 대해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증거 역시 인정돼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민변 소속 이명춘(57·33기) 변호사에게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변호사의 범행은 변호사의 직무집행 공정성·품위·신용 등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려는 변호사법 입법취지를 훼손한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고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사건을 수행함으로써 얻은 수임료가 통상적으로 지급받는 변호사 수임료보다 과다하다고 보이지도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민변 소속 김형태(60·13기)·이인람(60·군법4회) 변호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 면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변호사법 위반죄는 의뢰인과 계약을 체결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며 "김형태, 이인람 변호사는 범죄행위가 종료된 뒤 각각 3년, 5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민변 소속이 아닌 강석민(46·군법14회) 변호사에 대해서는 "법정 증언 등 증거에 의하면 강 변호사가 군의문사위원회 재직 당시 조사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강 변호사가 당시 사건을 취급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준곤 변호사는 2008~2010년 과거사위에서 활동하며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의혹 사건 15건을 조사한 뒤 위원회 활동 후 관련 소송 40건(소가 513억원)을 수임하고 24억7500만원의 수임료를 받은 혐의(변호사법·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김 변호사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과거사위 전직 조사관 노씨와 정씨를 통해 사건 7건을 수임한 대가로 2억7500여만원을 준 혐의 등도 받았다. 이명춘 변호사는 2006~2010년 과거사위에서 삼척고정간첩단 사건조사에 참여한 뒤 관련 사건 9건을 수임해 1억4100만원을 수임료로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김형태 변호사는 2000~2002년 의문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사한 뒤 관련 사건 5건을 수임해 5억4000여만원을, 과거사위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이인람 변호사는 2008~2010년 재일유학생 간첩조작의혹 사건을 조사한 뒤 관련 사건을 수임해 3500여만원을, 전직 군의문사위원회 법무팀장인 강석민 변호사는 2006~2008년 군인 사망사건 조사에 참여한 뒤 관련 사건을 맡아 수임료 770만원을 받은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과거사진상규명
변호사법
민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군의문사위원회
과거사위
납북귀환어부간첩조작의혹사건
부패방지권익위법
신지민 기자
2016-02-17
선거·정치
형사일반
[판결] 부마항쟁 때 손학규 前의원에 유언비어 유포 혐의 서점주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에게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옥살이를 한 서점 주인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대학교 앞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노모(65)씨는 당시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유인물을 보관해주는 등 시위를 도왔다. 부산과 마산 지역에는 계엄령이 떨어졌고, 경찰을 비롯해 2600여명의 군인들이 시위진압에 동원됐다. 학생들과 친분이 있던 노씨는 시위 상황 등을 전해들었고, 인권침해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당시 한국기독교연합회 간사였던 손 전 고문에게 "데모하던 여학생이 배가 찢어져 도망을 가는데도 경찰이 쫒아가 몽둥이로 머리를 때리고, 마산 데모서 학생 3명이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노씨는 유언비어를 유포해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와 계엄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고 1981년 1월 징역 2년이 확정돼 옥살이를 하다 같은해 3월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했다. 노씨는 2015년 5월 재심을 신청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강영수 부장판사)는 최근 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5재노154). 재판부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부마항쟁 진압 과정에서 군경의 물리력 행사로 다수의 시민이나 대학생들이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고 일부 여학생들은 옷이 찢긴 채 연행되면서 맨살이 다 드러나기도 했다"며 "노씨가 손 전 고문에게 전달한 말은 어느 정도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거나 충분히 사실에 바탕을 뒀다고 믿을 만한 상태에서 이를 특정인에게 소극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여 유언비어 유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마항쟁
유언비어
손학규
긴급조치
계엄
특별사면
시위
이장호 기자
2016-01-25
민사일반
[판결] 원폭 피해자,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 2심도 패소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여미숙 부장판사)는 사단법인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원 7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5나2036271)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2011년 헌법재판소가 원폭피해자 배상과 관련해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해결 또는 중재회부를 통한 해결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곧바로 중재회부절차를 통한 분쟁해결의무가 있다거나 외교적 노력에도 해결되지 않은 경우 반드시 중재회부를 통한 분쟁해결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 이에 의해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중재절차에 회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또 "한·일 양국간에는 원폭피해자 문제 외에도 강제징용 피해자, 과거사 문제 등 외교적 현안이 산적해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원폭피해자 문제에 관해 외교적 교섭이 장기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더라도 곧바로 정부가 청구권협정의 중재회부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외교적 교섭을 통한 분쟁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점, 최근 한·일 사이에 합의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비춰 보더라도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외교적 교섭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원폭피해자들은 헌재의 위헌결정이 나왔음에도 정부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2013년 8월 소송을 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피해
원폭피해자
청구권협정
중재회부의무
외교적교섭
분쟁해결
위헌결정
이장호 기자
2016-01-14
국가배상
민사일반
정부에 구로공단 땅 뺏긴 농민들 '재재심' 50년 만에 승소
1960년대 박정희정부 때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 명목으로 국가에 농지를 뺏긴 농민들이 2번의 재심을 거친 끝에 50년 만에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이 재심 판결에 대해 다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당시 농지를 강제로 수용당한 농민의 유족 채모씨 등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의 재재심(2013다17124)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1961년 국가는 구로공단을 조성한다며 구로동 일대 토지를 강제수용하면서 거주하고 있던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민들은 1964년 "농지개혁법에 따라 구로동 토지 중 4526평을 적법하게 분배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소송을 냈고 1966년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968년 당시 서울지검은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며 수사에 착수, 농민들을 연행하고 가혹행위를 해 권리 포기나 소 취하 동의를 받아냈다. 일부 농민은 소송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6명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이 유죄판결을 근거로 주민들이 승소한 민사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승소했다. 1984년부터 진행된 '1차 재심'이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7월 "농민들을 집단적으로 불법연행해 가혹행위를 하고 권리포기와 위증을 강요한 것은 재심 사유"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유죄를 확정받았던 농민들은 형사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2011년 무죄가 확정됐다. 이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채씨 등은 2012년 '1차 재심'의 취소를 구하는 '2차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대해 서울고법은 "정부가 '1차 재심' 사유로 들었던 형사판결은 재심 무죄 확정판결로 근거를 잃었다"며 농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이번에 "확정된 재심 판결에 관한 재심 재판의 법리에 관해 오해한 위법이 없다"며 "정부가 1차 재심에서 주장했던 재심 사유들은 근거를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토지 소유권을 농민들에게 이전하라"는 1966년의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채씨 등이 실제 땅으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996년 시행된 농지법이 분배농지 등기를 3년 이내에 마치도록 규정한 데다 현재 토지 소유주의 등기부 취득시효가 완성됐는지 등도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땅을 되찾는 대신 별도의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통해 배상금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정희정부
구로공단
농지
강제수용
불법연행
과거사
과거사정리위원회
홍세미 기자
2016-01-04
국가배상
민사일반
[판결] "국가, '구로공단 농지강탈' 피해자에 위자료 줘라"
박정희 정권 당시 '구로공단 농지강탈'에 맞섰다가 불법수사를 받은 농민 피해자의 유족에게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임태혁 부장판사는 구로공단 농지강탈 사건의 피해자 이모씨의 아내 김모씨와 자녀 등 이씨의 유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9680만원을 달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4가단5344901)에서 "국가는 김씨 등에게 3480만원을 지급하라"며 지난 8일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임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국가가 이씨를 불법체포하고 감금하면서 위법한 수사를 진행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국가는 이씨와 가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는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사법적 구제를 청구하는데 객관적 장애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씨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주장하지만 이씨가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이씨의 가족들이 손해배상청구를 하는데는 사실상의 장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이씨의 유족이 이씨의 재심 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내에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국가는 이미 지급한 형사보상금을 공제한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1년 정부는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일대 땅 99만㎡(30만평)를 강제수용하면서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민들은 소유권을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정부가 패소하지 않도록 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농민들에게 소송사기 혐의가 씌워지며 불법수사가 이뤄졌다. 농민들은 형사재판을 받았고, 결국 소송을 취하했다. 이씨도 이때 기소돼 1979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씨는 1998년 사망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8년 "국가가 민사소송에 개입해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했다"며 이씨에 대한 재심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씨의 유족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11월 이씨의 무죄가 확정되자 위자료를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과거사
박정희
강제수용
불법체포
형사보상금
객관적장애사유
사법적구제
유족
구로공단농지강탈
안대용 기자
2015-12-16
국가배상
민사일반
[판결]과거사 피해자 위자료 산정때 형평성 및 일반적 법감정 고려해야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는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 및 일반적인 법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보다 월등히 많거나 적은 금액을 위자료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간첩죄로 복역했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재일동포 유모씨 형제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4다235172)에서 "유씨 형제와 가족의 위자료 등으로 22억6000만원을 인정한 것은 과다하다"며 지난달 19일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씨가 북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의 편지를 작성해 육군 포병학교장에게 교부하는 등 스스로 수사의 단서를 제공하는 부정적 사유가 있었는데도 원심은 다른 과거사 사건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위자료로 인정했다"며 "이는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해 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른바 과거가 사건은 그 피해가 발생한 때부터 장기간이 경과했고 과거사정리법은 그 피해의 일률적인 회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숫자도 매우 많은 등 특수한 사정이 있다"며 "따라서 그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정할 때는 피해자들 사이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피해자 가족의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정할 때 사실심 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해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할 수 있지만 그럴 때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하는 액수로 정해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재일동포인 유씨 형제는 1976년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이들은 '교포학생은 대학원을 졸업해도 교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듣자 반감으로 북한 방송을 듣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의 편지를 작성해 육군 포병학교장에 전달하는 등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형은 1978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84년까지 복역했고, 동생은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1979년까지 복역했다. 이후 유씨 형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해 동생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형도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과거사
재일교포
과거사정리법
간첩
법감정
홍세미 기자
2015-09-11
형사일반
[판결]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사건' 강종헌 교수 38년만에 무죄 확정
1970년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종헌(64) 와세다대 객원교수가 38년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977년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 교수에 대한 재심(2013도1830)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지난 13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강 교수가 간첩활동을 했다고 말한 증인 김모씨의 법정진술은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나머지 증거들도 수사권한이 없는 육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에 의해 장기간 불법 구금, 폭행, 협박 등을 통해 취득된 것인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1970년대에 서울대 의대에서 유학중이던 강 교수는 1976년 북한 공작지도원의 지령을 받고 임무수행을 위해 국내에 잠입한 뒤 국내 기밀을 탐지해 공작지도원에게 보고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돼 이듬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후 1982년 무기징역으로, 1984년 징역 20년으로 감형 받았다가 1988년 12월 가석방됐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문제연구소를 만들고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민통) 조국통일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이 사건을 '고문에 의한 조작'으로 결론 내렸고, 강 교수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2013년 1월 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 소속 수사관들이 수사를 담당해 관련 법령에 위반한 불법수사에 해당된다"며 "보안사 수사관들이 수집한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증거"라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위법수집증거
과거사정리위원회
재일교포유학생간첩사건
강종헌
홍세미 기자
2015-08-21
국가배상
[판결]과거사 피해자 국가배상 며느리·형수도 해당된다
과거사 사건 피해자의 며느리와 형수도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시신 등을 수습하며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의 며느리인 신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3다215614)에서 최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신씨는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시아버지와 시동생의 시신을 직접 수습했고 이들의 사망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타인의 불법행위로 생명을 잃은 피해자의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그 정신적 고통에 관한 증명하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한) 민법 제750조, 제751조에 따라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란 1950년 상부의 지시를 받은 경찰과 군인들이 전국 각지에 있던 국민보도연맹원을 강제로 구금한 뒤 집단 총살한 사건이다. 신씨의 시아버지와 시동생은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로 인정됐다. 신씨는 다른 유족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2심은 "신씨가 피해자들의 사망으로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를 넘어 금전으로 위자해야 할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신씨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보도연맹
국가배상책임
과거사사건
과거사정리위원회
불법행위에대한손해배상
홍세미 기자
2015-07-17
국가배상
[단독] [판결] 과거사 피해자, 배우자·자녀와 먼저 배상금 받았다면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가 배우자, 자녀와 함께 먼저 배상금을 받았다면 피해자의 부모와 형제는 국가로부터 위자료를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부모·형제에게도 피해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미 지급한 금액이 많아서 추가로 위자료를 주게 되면 다른 피해자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 법조계 일부에서는 "법원이 국가 배상책임을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982년 교사로 재직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금됐다가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강모(68)씨와 그의 형제 등 6명이 "불법구금 등에 대해 부모와 형제들 몫의 위자료 또는 그 상속분을 지급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3다200315)에서 원고일부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지난달 14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른바 과거사 사건은 그 피해가 발생한 때부터 장기간이 경과했고, 과거사정리법도 그 피해의 일률적인 회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숫자도 매우 많은 등 특수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위자료의 액수를 정할 때는 피해자들 사이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희생자 유족의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강씨와 그 배우자, 자녀들이 이미 모두 13억원의 위자료를 인정받았는데 다시 강씨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에게 모두 4억5000만원의 위자료까지 인정한다면 이는 유사한 과거사 사건 위자료 액수의 합계보다 훨씬 많아 불공평하다"고 밝혔다. 이어 "강씨의 가족들이 유사한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들과 비교해 훨씬 더 큰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차별 등 불이익을 받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원심이 이들에게 추가 위자료를 인정한 것은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씨는 1982년 11월 구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동료 교사들과 함께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가 2007년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강씨는 2009년 부인, 자녀와 함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13억원을 배상받았다. 2년 뒤에는 형제들과 함께 부모와 형제들 몫의 위자료와 상속분을 청구하는 이번 소송을 냈다. 1·2심은 "국가가 강씨 가족들에도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김지미(40·사법연수원 37기) 변호사는 "과거사 피해자 가족들의 피해를 인정하고도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배상을 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은 부당하다"며 "법원이 피해자들의 아픔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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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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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미 기자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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