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가 주가연계증권(ELS) 수익금을 지급 받기 전에 금융사의 주식 대량 매도로 손해를 본 사건을 놓고 대법원이 같은 날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금융사가 불법시세조종을 시도해 주가를 떨어뜨릴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 주식 대량 매도의 적법성 여부를 따졌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김모(61)씨 등 개인투자자 20명과 기관투자자 6곳이 ELS 만기 직전에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상환원리금 청구소송(2013다2740)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24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ELS는 투자자에게 상환될 금액이 기초자산의 상환기준일 종가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인데, 기준일 당시 KB금융 보통주의 가격이 손익분기점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해 도이치은행으로서는 종가를 낮춰 수익 상환 의무를 피하려고 한 동기가 충분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도이치은행이 투자자들에게 수익 상환여부가 결정되는 만료일에 ELS 상품의 기초 자산인 KB금융 보통주를 대량으로 판 행위는 시세조종행위 내지는 부당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씨 등은 2007년 8월 삼성전자와 KB금융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한국투자증권 ELS 상품에 투자했다. 2년 후 만기상환시 기초자산의 평가가격이 최초 기준 가격의 75%를 넘을 경우 28.6%의 수익률을 보장받고, 한 종목이라도 75% 미만이면 원금이 손실되는 상품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해야 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도이치은행과 ELS와 같은 구조의 '주식연계 달러화 스와프계약'을 맺었다. 만기일인 2009년 8월을 앞두고 그동안 75%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KB금융 주가는 장 마감 직전 주가가 떨어지더니 ELS 상환조건 기준가격인 5만4750원에 못미치는 5만4700원에 종가가 결정됐다. 김씨 등은 원금의 74.9%만 돌려받게되자 "도이치은행이 장마감때까지 10분간 KB금융 주식 12만8000주를 집중 매도해 주가가 내려갔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김씨 등 투자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시세조종행위가 아니라 위험회피와 상환재원 마련 목적의 정당한 거래"라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한편 대법원 민사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이날 현대증권과 스와프계약에 따라 같은 방식으로 위험회피 거래를 한 BNP파리바은행에는 반대로 은행의 승소를 확정했다(2012다108320).
BNP파리바은행은 현대증권이 2007년 10월 발행한 ELS의 기초자산인 신한은행 주식으로 델타헤지를 했다. 델타헤지란 기초자산의 주가 변동에 따른 ELS 상품의 가치변동분을 계산한 델타 값을 기준으로 삼아 기초자산을 사거나 팔며 위험을 피하는 금융기법이다. BNP파리바은행의 델타헤지 결과 만기평가일 주가가 기준가격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현대증권 ELS에 2억원을 투자한 삼성새마을금고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델타헤지의 원리에 부합해 거래했고 만기기준일에 매도한 신한은행 주식 규모가 전체 거래량의 20% 이하여서 한국거래소가 정한 'ELS 헤지거래 가이드라인' 요건을 충족한다"며 "만기일 전날과 이틀 전 주가가 상환기준 아래에 형성돼 있는데도 대량의 주식을 추가 매수한 점을 봐도 시세조종이나 상환조건 충족을 무산시킬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시세조종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시세조종 유인 동기가 있었는지, 주식매도 형태가 어땠는지에 따라 손해배상책임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