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통화 버튼이 잘못 눌리는 바람에 연결된 전화 너머로 들리는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했다면 이를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안양에 있는 군부대에서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던 A(46)씨는 2012년 3월 부대 회식을 마친 뒤 2차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여성 장교 B(39)씨와 단 둘이 노래방에 갔다가 B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당시 노래방에는 A씨와 B씨 단 둘만 있었기 때문에 A씨의 결백을 증언해줄 사람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추행을 당할 때 들려온 소리를 녹음한 통화 내용이 있다"며 B씨의 남편이 제출한 휴대전화 녹음 파일까지 증거로 나왔다. 이 녹음 파일은 B씨의 휴대전화 버튼이 우연히 잘못 눌려 통화가 연결된 상태에서 B씨의 남편이 1시간40분 동안 녹음한 것으로 A씨와 B씨의 대화 내용과 숨소리, 마찰음 등이 담겨 있었다. B씨의 남편은 조사과정에서 "아내와 A씨의 불륜을 의심해 녹음을 했는데 아내가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검찰도 문제의 녹음파일을 근거로 A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2014도6362)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1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제14조 2항 및 제4조는 이렇게 위반한 녹음으로 취득한 내용을 재판 또는 징계절차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A씨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증거로 제출된 녹음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고, 그 외 피해자의 진술과 상해진단서 등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