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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전문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정성립의 요건
1. 사실관계 가. A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연구소 소속 상근연구원인 피고인은 과학기술부 선정의 ‘핵의학기기제품화 및 기반기술개발’ 과제 중 ‘핵의학방사선계측 소품 장비기술개발’이라는 세부공동연구과제에 대한 공동연구기관인 A대학교와 B주식회사의 연구책임자로 있으면서, 피해자인 한국과학기술원에 대하여 ‘연구비를 지원받아 공동연구기관의 책임자로서 1999. 4. 1.부터 1년간 위 연구과제를 수행하겠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4회에 걸쳐 105,608,000원을 교부받아 편취하였다는 내용 등으로 공소제기 된 사안이다. 2. 재판요지 가. 원심판결 피고인은 제1심 제1회 공판기일에서 검사 작성의 제3회 및 4, 5회 각 피의자신문조서 중 일부의 진술기재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진술 취지와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실질적 진정성립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제1심법원에서는 다른 범죄사실과 더불어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이 선고되었고, 원심법원(항소심)에서는 오히려 피고인이 검찰 제3회 피의자신문 당시 연구비만 수령하고 연구를 전혀 하지 아니하였고, 연구의사가 없었다고 진술한 점, 검찰 제4, 5회 각 피의자신문 당시에도 처음부터 이 사건 연구과제를 연구할 의사가 없었고, 연구비만 받아서 쓰려고 하였다는 점 등의 검사 작성의 피고인이 된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을 받아들여 항소를 기각하였다. 나. 대법원판결 대법원은 피고인이 제1심 제1회 공판기일에서 다투고 있는 공소사실 중 위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중 일부 진술기재 부분에 대하여 2004. 12. 16.에 있었던 대법원 2002도537판결(이하 ‘지난 해 판결’이라 한다)을 원용하여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위 진술기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채용 증거들을 종합하여 위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일부 사기의 점(B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인 피해자 K에 대한 사기의 점)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고 있다. 3. 평석 가. 대상 판결의 일차적 의미 대상 판결은 우선 지난 해 판결을 재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위 지난 해 판결에서 원진술자인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간인과 서명, 무인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하여 형식적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거기에 기재된 내용이 자신의 진술내용과 다르게 기재되었다고 하여 그 실질적 진정성립을 다투더라도 그 간인과 서명, 무인이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 제3항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된 것이라고 볼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 한 그 실질적 진정성립이 추정되는 것으로 본 종전의 대법원의 견해(1984.6.26.선고 84도748판결 이래 다수 판결)를 변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 판결이 기초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성립의 진정에 대하여 재판기관과 수사기관이 제각각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는 불협화음을 보여 왔다. 이는 대법원이 위 84도748판결 이래 20여년간 판례에 의하여 거의 법칙으로까지 굳어진 듯 하게 보였던 이른바 ‘단계적 추정론’(형식적 진정성립의 인정 → 실질적 진정성립의 추정 → 특신상태의 추정)을 일순간 변경함에 의한 해석기준의 혼란에서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상 판결은 우선 위 지난 해 판결에 대하여 있을 수 있는 제각각의 해석을 잠재우고 그 의미를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공판정에서’, ‘당사자의 구두에 의한 주장과 입증에 의하여’, ‘법관이 직접’ 그 진실을 가리겠다는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하고자 하는 대법원의 분명한 의지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대상 판결이 굳이 해당 공소사실을 파기하지 않으면서도 판결이유에서 분명하게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있음은 이러한 사실을 더 명확히 해준다고 할 수 있다. 나. 대상 판결의 특별한 의미 대상 판결은 겉으로 보기에는 위에서와 같이 단순히 지난 해 판결을 재확인하는 차원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의 이유에서 지난 해 판결의 ‘C(피고인)와 D(참고인으로서 보험회사 직원)는 제1심 법정에서… 자신들의 진술과 달리 기재되었다고 진술하였고, … 검사가 작성한 조서들 중 피고인들에 대한 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부분의 기재는 자신의 진술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고 진술하여 그 실질적 진정성립을 부인하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고 있는 반면에, 대상 판결은 ‘피고인이… 각 진술기재 부분에 대하여는 그런 취지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하였음이 명백하므로, … 그 실질적 전정성립이 인정되지 아니하여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에 따라 성립의 진정함을 인정할 수 없어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고 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추상적 언어해석의 차원을 떠나서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이 행하여지는 실무현실의 태도와 관련지어 보면 지난 해 판결은 피고인이 된 피의자가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내용이 ‘자신이 진술한대로 기재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대상 판결은 ‘자신이 진술한 취지대로 기재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동일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앞의 말은 ‘진술의 내용과 달리 기재된 것’을 의미한다면(예를 들어 금전차용사기사건에서 ‘동업자금 명목으로 금전을 받았다’는 피의자의 진술을 ‘금전을 차용한 것이다’로 기재하는 경우) 뒤의 것은 ‘진술의 내용은 일치하지만 그 취지가 잘못 기재된 것’이라는 의미로(예를 들어 금전차용사기사건에서 ‘차용 당시 갑자기 실직하여 특별한 수입이 없었다’는 피의자의 진술을 마치 ‘변제자력이 없었다’는 취지로 기재하는 경우) 이해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대상 판결은 수사기관이 진술언어 자체를 다른 것으로 바꾼 것은 아니나 진술의 취지(그 진술이 의미하는 바)를 달리 해석하여 조서에 기재한 수사기관의 태도를 문제 삼아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피의자를 한낱 수사의 객체로 파악하여온 우리 형사절차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실제로 수사기관이 범죄구성요건 언어에 대한 피의자의 무지(無知)를 수사의 합목적성에 이용하거나 혹은 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대상 판결은 매우 의미 깊은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인권의식이 향상된 오늘날의 형사절차에 있어서 수사의 목적달성은 고전적 방법인 육체적 가혹행위에 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조서작성의 기술적 방법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서작성의 방법은 필연적으로 수사기관의 범죄혐의자필벌주의(犯罪嫌疑者必罰主義) 사고와 결합되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죄자를 유죄자로 둔갑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상 판결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진술을 일견 유사한 취지로 보이는 듯하나 사실은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의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언어로 바꾸어 기재하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서 단순히 지난 해 판결을 재확인하는데서 나아가 또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 소결 대상 판결은 피의자와 피고인의 지위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고 방어권이 피고인에 편중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피의자의 그것이 소홀히 다루어질 수 있는 우리 형사절차에서 피의자의 지위를 더욱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지극히 세심하고도 타당한 판결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대법원이 진정성립의 인정요건을 더욱 엄격히 함으로써 이제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진술을 그대로 기재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진술의 취지를 기재함에 있어서는 그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취지대로 조서를 기재하여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아울러 피의자의 진술취지와는 달리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는 식의 수사관행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5-04-11
검면조서등의‘성립의 진정’의 의미와 인정방법
Ⅰ. 사안 D1은 D3(병원장)와 공모하여 ‘사기·허위진단서작성·동행사죄의 공범’을 범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 중 사기의 혐의사실은 “1999년 4월경 D1이 D3에게 ‘기존 질병인 허리디스크를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인 것처럼 허위의 후유장해진단서 발급을 부탁하여 D3 로부터 허위의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보험회사를 기망하여 1700만원의 교통사고 보험금을 편취”한 보험사기죄 혐의가 중심이다. D1은 수사절차와 공판절차에서 일관되게 공소사실을 부인(“D3에게 허위의 후유장해진단서 발급을 부탁한 사실이 없다”)하였는데 검사가 D1의 유죄증거로 제출한 결정적인 증거는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내용(자백)이 기재’되어 있는 ‘D3의 검사면전 피의자신문조서·진술조서’와 ‘W(보험회사 직원, 참고인=피의자 아닌 자)의 검사면전 진술서·진술조서’였다. 무죄를 주장하는 D1은 전문증거인 ‘D3의 검사면전 피의자신문조서·진술조서’와 ‘W의 검사면전 진술서·진술조서’를 증거로 함에 부동의 하였다. 이제 ‘D3의 검사면전 피의자신문조서·진술조서’와 ‘W의 검사면전 진술서·진술조서’가 증거로 사용될 수 있으려면 전문법칙의 예외를 규정한 법 제312조 제1항의 요건(‘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이 구비되어야 한다. D3와 W는 제1심 법정에서 각각 ‘D3의 검사면전 피의자신문조서·진술조서’와 W의 ‘검사면전 진술서·진술조서’의 ‘형식적 성립의 진정’은 인정하였지만 ‘실질적 성립의 진정’을 부인(D3와 W는 제1심 법정에서 검사가 자신들에 대하여 작성한 조서들의 間印·署名은 인정하면서도 ‘D1에 대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부분의 기재들은 자신들의 진술과 달리 기재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제1심과 항소심은 종래의 대법원 판례(원진술자가 실질적 진정성립을 다투더라도 형식적 진정성립을 인정하면 실질적 진정성립이 추정된다)를 근거로 ‘D3의 검사면전 피의자신문조서·진술조서’와 ‘W의 검사면전 진술서·진술조서’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을 인정하여 유죄(징역 8월과 벌금 3백만원)를 선고하였다. D1은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의 ‘성립의 진정’이란 “원진술자가 공판정에서 구술로 형식적 성립의 진정과 실질적 성립의 진정을 모두 인정”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의 ‘성립의 진정’의 의미와 인정방법이 쟁점이 되었다. Ⅱ. 재판요지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본문의) ㉮ ‘성립의 진정’이라 함은 간인·서명·날인 등 조서의 형식적인 진정성립과 그 조서의 내용이 원진술자가 진술한 대로 기재된 것이라는 실질적인 진정성립을 모두 의미하는 것이다(대법원 2002. 8. 23. 선고 2002도2112 판결, 1990. 10. 16. 선고 90도1474 판결 등 다수). ㉯ 그리고 위 법문의 문언상 성립의 진정은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실질적 진정성립도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서만 인정될 수 있[다]. 위 법문에 따르면, 검사가 ‘피의자 아닌 자’에 대하여 작성한 조서의 경우도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어야 증거로 할 수 있고,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만일 원진술자가 그 진술조서의 형식적 진정성립은 인정하면서도 그 ‘기재내용이 진술내용과 다르다’고 하여 실질적 진정성립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그 진술조서의 진정성립은 인정되지 아니하여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하여 왔[다](대법원 2001. 10. 23. 선고 2001도4111 판결, 2003. 10. 24. 선고 2002도4572 판결 등). ㉰ 그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우리 형사소송법이 취하고 있는 직접심리주의 및 구두변론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공판중심주의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다. Ⅲ. 평석 1. 본 판결의 내용분석 본 판결의 ㉮ 부분은 종래의 판결을 재확인한 것이고 ㉯ 부분이 새로운 것이다. 본 판결은 피고인의 상고를 認容하여 “원진술자가 실질적 진정성립을 다투더라도 형식적 진정성립을 인정하면 실질적 진정성립이 추정된다”는 종래의 판례[특히 대법원 1984.6.26. 선고 84도748 판결(공1984, 1378)]를 폐기하고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의 ‘성립의 진정’이란 “원진술자가 공판정에서 구술로 형식적 성립의 진정과 실질적 성립의 진정을 모두 인정”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본 판결의 내용 분석에서 주의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종래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의 ‘성립의 진정’의 의미해석 문제는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었다. 그런데 본 판결은 이 문제를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에 한정하지 아니하고 ‘검사 면전에서 작성된 조서 일반(예를 들어 참고인 진술조서=검사가 피의자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진술조서)’과 ‘검찰조사단계에서 작성된 진술서’에 대하여 까지 확장시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법 제312조 제1항의 문리에 합치되는 해석이므로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둘째, ‘성립의 진정’의 의미에 관한 본 판결의 새로운 해석은 ‘성립의 진정’이 문제되는 다른 문맥(예를 들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검증의 결과를 기재한 조서, 제313조 제1항의 진술서등, 제313조 제2항의 감정의 경과와 결과를 기재한 서류)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긍정적으로 예측된다. 2. 직접심리주의·구두변론주의와 공판중심주의 본 판결은 ‘성립의 진정’의 의미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우리 형사소송법이 취하고 있는 직접심리주의 및 구두변론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공판중심주의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판시(㉰ 부분)하고 있다. 이하에서 이 판시의 의미를 천착하여 보자. 현행법과 법실무상 직접심리주의와 구두변론주의는 대단히 취약하다. 그 이유는 조서의 증거능력이 넓게 인정되고 있고 법실무상 조서의 증명력이 높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인정자(법원)가 ‘자유심증주의’를 근거로 하여 ‘소송관계인의 공판정에서의 진술’ 이외에 ‘각종의 조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재판현실’을 개탄하는 취지의 용어가 ‘조서재판’(調書裁判)이다. ‘조서재판’이 활발히 작동하면 그만큼 직접심리주의·구두변론주의와 공판중심주의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본 판결의 판례사안을 예로 들어보자. 제1심 공판정에서 D1은 공소사실을 부인하였고, D3, W의 공판정 진술·증언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내용의 진술·증언이었다. ‘D1의 형사사건’에 초점을 맞출 때 제1심과 항소심이 D1의 유죄증거로 사용한 증거는 공범자로 기소된 공동피고인 D3의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D3의 검사면전 피의자신문조서·진술조서와 ‘W(보험회사 직원)의 검사면전 진술서·진술조서’였다. ‘공판정 진술·증언’과 ‘수사절차상 작성된 조서의 기재내용’이 상치되고 있는 정황인데 제1심과 항소심은 ‘수사절차상 작성된 조서의 기재내용’을 신뢰하여 D1의 유죄를 선고하였다. 더구나 ‘D1의 형사사건’에 초점을 맞출 때 본 사안은 검사 앞에서 자백한 자(D1)가 공판정에서 번복한 사안이 아니라 검사 앞에서도 부인하고 공판정에서도 부인하였는데 오직 ‘공범피의자(D3)의 검사 면전 피신조서’에 불이익 진술(D3가 ‘D1과 함께 범행을 수행하였다’는 자백)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고 그나마도 공범피의자(D3)는 ‘조서의 기재내용이 자신의 원진술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안이다. 검사 앞에서 자백한 자가 공판정에서 번복한 사안에서 법 제312조 제1항이 종래의 판례이론처럼 해석되어도 오판의 위험성이 있는데 하물며 본 판례사안과 같은 경우의 오판의 위험성은 대단히 높다. ‘조서재판의 극복’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형사사법 개혁’ 논의의 핵심화두이므로 본 판결은 ‘조서재판을 극복’하고 ‘공판중심주의를 강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3. 조서재판 해체의 결정적 계기 ‘조서재판의 극복’을 문제 삼을 때 ‘조서재판이 왜 문제인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반문은 ‘실체적 진실발견과 재판의 신속·효율적인 진행’을 이유로 조서재판의 정당성이나 불가피성을 변호하려는 논증이다. 그런 분들에게 필자는 다음과 같이 재반론하고 싶다. 그럴 바에야 ‘일제강점기의 조선형사령 체제‘로 돌아가서 검사와 사법경찰관에게 예심판사에 버금가는 강제처분권을 부여하고 전문법칙을 폐지하고 모든 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편이 더 편리하지 않겠는가? 독일법계의 직접심리주의와 구두변론주의, 영미법계의 전문법칙은 모두 조서재판을 극단적으로 회피하려는 발상에서 출현한 근대적 원리이다. ‘공판정에서 피고인이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면 검면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법 제312조 본문은 일제강점기의 조서재판과의 단절을 의미하는가’가 문제된다. 공판정에서 피고인이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는가 여부와 상관없이 무제한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었던 일제강점기의 상황과 비교하면 단절의 측면이 없지 않지만 ‘성립의 진정’의 의미를 협소하게 책정할수록 연속의 측면이 생기거나 증가하게 된다. 독일 형사소송법이 ‘자백이 포함되어 있는 피신조서’는 검면피신조서이든 사경피신조서이든 예외 없이 증거능력을 박탈하고 있는 점을 부가하여 검토하면 법 제312조 본문은 대단히 후진적인 조항임을 알 수 있다. 전문법칙의 핵심은 ‘조서에 관한 증거법’에 있지 않고 ‘전문진술에 관한 증거법’에 있다. 영미식 가치관에 입각하면 일제강점기의 조서재판은 재판으로서의 품격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이었고 현행법의 혁신성도 그다지 크게 평가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1954년 법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이 “직접주의의 바탕 위에 영미법계의 전문법칙을 받아 들여 공판중심주의의 철저를 기하였다”고 높게 평가[헌법재판소 1994.4.28. 선고 93헌바26 결정]하고 대법원[대법원 2001. 9. 14. 선고 2001도1550 판결(공2001, 2296)]도 형사소송법 제161조의2와 제310조의2의 입법취지를 헌재와 거의 동일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매우 修辭的인 평가’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誇張된 평가’이다. 1954년 법이든 현행 형사소송법이든 일제강점기의 조서재판으로부터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본 판결로 말미암아 조서재판이 약화되고 공판중심주의는 강화될 수 있는 획기적인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본 판결은 ‘조서재판의 점진적 해체’와 ‘공판중심주의 강화’라는 최근의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하다.
2005-01-13
포괄일죄와 일사부재리의 효력
Ⅰ.사안의 개요 (1)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1998년 3월 6일 피고인 甲에 대해서 동 피고인이 피해자 G로부터 신공항구조물공사 동업자금 등 명목으로 돈을 편취하였다는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로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으며 그 유죄판결은 확정되었다. (2)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는 피고인 甲을 동 피고인이 1996.12.30부터 1998.1.17까지 사이에 피해자 A, B, C, D, E, F 등으로부터 신공항구조물공사 동업자금 또는 토지분양대금 등 명목으로 합계 1억원 남짓의 금원을 상습으로 편취하였다는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로 서울지방법원에 공소를 제기하였다. (3) 서울지방법원은 2001년 5월 25일 피고인 甲에 대하여 면소판결을 선고하면서 이미 확정된 유죄판결(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이 선고한 유죄판결)의 범죄사실(단순사기죄의 범죄사실)과 서울지방법원에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상습사기죄의 범죄사실)은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으며 단순사기죄의 유죄판결(확정판결)에 의한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그 범죄사실과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미친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1호에 의해서 면소판결을 선고하였다. (4) 위 면소판결에 대해서 검사가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서울지방법원 항소부는 제1심의 면소판결이 정당하다는 이유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검사는 위 항소기각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후 상고이유서에서 단순사기죄의 유죄판결(확정판결)에 의한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미치지 아니하므로 제1심의 면소판결을 유지하고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 원심판결(항소심판결)은 파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의 다수의견은 검사의 상고이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항소부)으로 환송하였다. 이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대법관 윤재식의 반대의견과 대법관 이용우의 별개의견이 있다. Ⅱ.대법원판례(다수의견) 포괄일죄인 상습사기죄의 범죄사실(공소사실)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때에 한하여 그 확정판결에 의한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확정판결이 있는 범죄사실과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에 미치는 것이며 단순사기죄의 범죄사실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경우에는 그 확정판결에 의한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그 유죄판결이 선고되기 이전에 행하여진 범죄사실(상습사기죄의 범죄사실)에 미치지 아니한다. 따라서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은 유죄판결을 선고하여야 하며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서는 안된다. 대법원판례(다수의견)의 앞부분은 종전의 대법원판례와 동일한 견해이나 뒷부분은 처음 나온 대법원판례이다. Ⅲ. 반대의견과 별개의견 (1)반대의견 윤재식 대법관은 단순사기죄의 범죄사실(공소사실)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후 그 유죄판결이 선고되기 전의 수개 사기범죄사실이 상습사기죄(포괄일죄)로 공소제기된 경우에는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대한 확정판결(유죄판결)의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미친다고 해석하여야 하며 따라서 법원은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대해서 유죄판결을 선고하여서는 안되고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표명하면서 공소불가분의 원칙(형소법 247조 2항), 일사부재리의 원칙(헌법 13조 1항), 피고인의 이익 등을 논거로 내세우고 있다. (2)별개의견 이용우 대법관은 상습사기죄는 실체법상 수죄에 해당하므로 상습사기죄를 포괄일죄에 해당시키는 다수의견은 부당하며 또한 원심(항소심)의 면소판결의 시정을 구하는 검사의 상고이유는 이유있으므로 면소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은 파기되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내놓고 있다. Ⅳ.학설 (1) 수개의 범죄사실이 상습범, 연속범과 같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되어 유죄판결이 선고되고 그 유죄판결이 확정된후에 유죄판결이 확정된 범죄사실과 포괄일죄(상습범, 연속범)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이 공소제기된 경우에는 포괄일죄의 범죄사실에 대한 확정판결의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에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에 미치므로 법원은 그 범죄사실(공소사실)에 대해서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1호에 의하여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며 타당하다. 이 통설에 대해서는 반대설이 없다. 이와같이 유죄판결이 선고되지 아니한 범죄사실에 대해서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이론적 근거는 ①포괄일죄의 일부에 대한 공소제기의 효력은 공소불가분의 원칙(형소법 247조 2항)에 의해서 포괄일죄의 전부에 미친다는 점 ②포괄일죄의 일부에 대해서만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도 포괄일죄의 전부가 심판의 잠재적 대상으로 된다는 점 ③포괄일죄의 일부에 대해서만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는 일죄의 전부로 공소장의 변경(공소사실의 추가)이 허용된다는 점(형소법 제298조제1항) 등이다. 통설에 의하면 포괄일죄(상습범?연속범)의 일부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에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이 포괄일죄의 주요부분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그 공소사실(포괄일죄의 나머지 범죄사실)에 대해서 면소판결을 하여야 하며 유죄판결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예컨대 사기죄의 전과자가 2개월 동안 피해자 20명을 상대로 사기죄를 범한 후 맨 나중에 범한 사기죄(상습사기죄)로 공소제기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그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엔, 나머지 범죄사실(19개의 사기범죄사실)로 처벌하는 것이 허용되지 아니하며 만약 19개의 범죄사실이 상습사기죄로 공소제기된 경우에는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6조제1호에 의하여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이 경우는 有罪者 不罰의 결과를 초래한다. (2)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 그 범죄사실과 경합범(형법 제37조)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이 공소제기되고 그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은 유죄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이 경우 유죄의 확정판결의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그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에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에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에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이 유죄판결이 확정된 범죄사실보다 먼저 행하여진 범죄사실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3)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그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 그 유죄판결이 선고되기 전에 행하여진 수개의 사기범죄사실이 상습사기죄(포괄일죄)로 공소제기된 경우에는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대한 유죄판결(확정판결)의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미치지 아니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에 관한 유죄판결(확정판결)의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죄사실에 대해서만 미치는 데(통설) 상습사기죄의 범죄사실과 단순사기죄의 범죄사실은 동일한 범죄사실이 아니고 별개의 범죄사실이기 때문이다. ⅴ. 판례평석 1. 다수의견의 지지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 그 유죄판결이 선고되기 전에 행하여진 수개의 사기범죄사실을 상습사기죄(포괄일죄)로 공소제기한 경우에는 단순사기죄의 유죄판결(확정판결)의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상습사기죄의 공소사실(범죄사실)에 미치지 아니한다는 대법원판례(전원합의체판결의 다수의견)는 타당하다고 본다. 단순사기죄의 범죄사실과 상습사기죄의 범죄사실은 범죄의 일시·장소·방법, 범죄의 상대방(피해자), 피해액수(편취액수) 등이 다르므로 별개의 범죄사실이기 때문이다.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그 확정판결의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단순사기죄의 공소사실과 단일성 및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내이다(통설). 2. 반대의견에 대한 비판 (1) 반대의견은 공소불가분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247조제2항을 논거로 내세우고 있으나 단순사기죄로 고소제기한 경우에는 공소불가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아니한다. 일죄의 일부만을 공소제기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2) 반대의견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3조제1항 후단을 논거로 내세우고 있으나 헌법 제13조제1항 후단은 동일한 범죄인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데 이 사건의 경우 단순사기죄의 범죄사실과 상습사기죄의 범죄사실은 동일한 범죄가 아니고 별개의 범죄이다. (3)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에 의하면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유죄판결이 확정된 범죄사실과 별개의 범죄사실(예컨대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로 처벌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4) 반대의견은 「검사의 부주의로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범행중 일부만을 단순범으로 공소제기하거나 검사가 상습범으로 공소제기 하였음에도 전소에서 법원이 단순범으로 잘못 인정한 경우를 상정해 보면 법원 및 검사의 부주의로 인한 위험을 피고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되어 도저히 찬성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검사가 포괄일죄의 일부만을 공소제기 하는 주된 원인은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므로 반대의견의 이론구성에 대해서는 그 이론적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3. 별개의견에 대한 비판 상습범은 포괄일죄이며 포괄일죄는 단순일죄(單純一罪)에 해당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형법학계의 통설이다. 그러나 상습범은 수개의 범죄행위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상습범은 단순일죄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수죄에 해당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백형구 형사소송법강의 제8정판 210면). 따라서 공소장에 상습범의 범죄사실을 기재함에 있어서는 상습범을 구성하는 개개의 범죄행위를 특정하여야 하며(백형구 강의 212면) 상습범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습범을 구성하는 각개의 범죄행위에 관하여 보강증거가 있어야 하고(백형구 강의 213면)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도 상습범을 구성하는 개개의 범죄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백형구 강의 211면). 그러나 현행법상 상습범은 수죄가 아니고 1죄이다. 즉 상습범은 법률상 일죄이며 포괄적 1죄이다(통설). 따라서 상습범이 실체법상 수죄에 해당한다는 별개의견에 대해서는 그 이론적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상습범을 실체법상 수죄로 보게 되면 상습범의 일부에 대해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후에도 그 상습범의 다른 부분에 대한 유죄판결이 허용된다는 불합리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즉 상습범의 공소사실에 대해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후 그 공소사실(범죄사실)과 상습범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이 공소제기된 경우에는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6조제1호에 의해서 그 공소사실에 대해서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통설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현행형법상 상습범은 포괄일죄이나 실질적으로 수죄에 해당한다는 이론구성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윤재식 대법관이 지적한 바와 같이 상습범에 관해서는 길고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므로 상습범과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에 관해서 학계와 법조계의 깊이 있는 논의가 요청된다. 헌법 제13조제1항 후단이 규정하고 있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지니고 있는 인권보장적 기능을 경시하여서는 안된다.
2004-10-18
금융기관종합보험(BBB)의 성격
Ⅰ. 사안 및 판결의 검토 1. 사안의 요약 원고 보험회사의 영업소 소장으로 근무하던 甲은 보험가입자들에게 실제로는 원고의 보험상품 중 가입 후 1년 만에 해약할 경우 고율의 이자를 붙여 해약환급금을 지급하는 상품이 없음에도 “원고의 보험상품 중 가입일로부터 1년 후에 해약을 하더라도 납입한 보험료에 연 15퍼센트 내지 17퍼센트의 이자를 가산한 금액을 해약환급금으로 지급받게 되는 복지상해보험상품이 있으니 가입하라”고 거짓말을 하여 이에 속은 25명의 보험가입자들(이하 피해자들로 약칭함)로부터 보험료 명목으로 합계 16억 원 정도를 받아 원고에게는 전혀 입금하지 아니한 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였다. 위와 같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원고를 상대로 주위적 청구로는 보험계약 해지환급금을 예비적 청구로는 원고가 甲의 사용자로서 사용자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담당재판부는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기각하고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 피해자들의 과실을 30퍼센트로 인정한 뒤 원고로 하여금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도록 하는 강제조정결정을 하여 원고는 최종적으로 합계 금14억 7천만 원 정도를 피해자들에게 보상하였다. 한편 원고는 사건 당시 피고가 판매한 금융기관종합보험(Bankers Blanket Bond, 약칭하여 실무상으로는 BBB라고 함)에 가입되어 있었고 위 보험은 금융기관 종업원의 비행행위로 금융기관이 피해를 입은 경우 이를 보상하여 주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피고는 위 손해배상금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본 건 보험금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 판 결 요 지 - 금융기관종합보험(BBB)은 비행담보보험의 일종으로서 책임보험이 아니고 담보조항 제1조에서 말하는 '피용자의 사기적 행위 등으로부터 전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발생된 피보험자와 그의 재산손해'에 상당인과관계가 되는 손해가 전부 포함되는 것이 아니어서 간접적인 손해는 포함될 수 없다 - 연 구 요 지 - 금융기관종합보험이 종업원의 부정행위로 인한 금융기관의 직접적 손해를 담보하기 위한 비행행위보험이고 금융기관의 손해배상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책임보험이 아니라고 본 판례의 취지에 동의한다. 금융기관이 그 직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사용자 책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배상책임보험가입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2. 제1심 및 항소심의 판단 본 사안에서 쟁점은 원고의 피용자인 甲의 사기에 의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甲의 사용자로서 피해자들의 손해를 배상한 것이 본건 금융기관종합보험의 담보대상이 되는가 여부이었다. 원고는 금융기관종합보험에서 담보하는 보상에는 원고의 물질적 피해 및 유가증권을 포함한 모든 재산상의 피해가 포함되며 재산상 손실에는 본 건과 같이 피용자의 잘못으로 부담하게 되는 손해배상책임도 포함되므로(결국 책임보험적 성격을 갖고 있다) 피고는 원고가 피해자들에게 보상한 금전적 손실에 대하여 당연히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피고는 반대로 위 보험약관상 담보대상은 피용자의 전적이고도 직접적인 범죄행위로 인한 손실만을 보상하는 것으로서 본 건과 같이 피용자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그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지는 것은 간접적ㆍ부차적 손해에 불과하므로 위 보험의 담보대상이 아니어서 면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심 및 항소심은 금융기관종합보험약관 제1조에 의하여 위 보험이 담보하는 대상은 “피보험자의 고용인이 피보험자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기가 재정적 이득을 얻을 명백한 의도로 부정직한 행위 또는 사기적 행위로부터 전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발생된 피보험자의 손해(Loss resulting solely and directly from dishonest or fraudulent acts by Employees of the Assured committed with the manifest intent to make and which results in improper financial gain for themselves...)”를 규정하고 있고 한편 위 보험의 면책약관 제18조는 “피보험자가 법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모든 형태의 손해-징벌적 징계적 성격의 손해배상을 포함한다- 단 이 증권이 담보하는 직접적인 재정적 손실에 대한 배상을 의미하는 손해는 제외한다(Any and all damages of any type(whether punitive, exemplary or other) for which the Assured is legally liable, except damages representing reimbursement for direct financial loss covered by this Policy)" 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함께 살펴보면 본 건 원고의 손해는 피용자의 행위로 인하여 피보험자에게 직접적으로 발생한 손해라고 보기에는 곤란하고 또한 위 면책약관 18조상의 본문에는 해당하나 같은 조 단서의 담보조항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먼저 “금융기관종합보험은 비행담보보험(fidelity bond)의 일종으로서 책임보험이 아니고 담보조항 제1조에서 말하는 피용자의 사기적 행위 등으로부터 전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발생된 피보험자와 그의 재산손해에는 간접적인 손해는 포함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피용자가 재3자의 재물을 사기적인 방법으로 가져간 경우 그로인한 직접적 손해를 본 사람은 바로 그 제3자이지 피보험자가 아니며 제3자가 피보험자를 상대로 제기한 사용자 책임을 묻는 소송의 결과 피보험자이자 사용자인 원고가 지출한 손해배상금은 간접적ㆍ결과적 손해에 속하는 것이어서 이 사건 보험에서 보상하는 직접 손해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보험금청구를 기각하였다. Ⅱ. 금융기관종합보험의 성격 1. 보험탄생과 도입경위 금융기관종합보험은 1887년 영국 로이드(보험자의 조합에 가까움)의 한 보험자에 의해서 범죄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여 주기 위하여 강도보험증권을 만들면서 그 기초를 제공하였고 정식명칭인 Bankers Blanket Bond 의 약관은 1907년 미국은행협회의 주도하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 후 1933년경 경제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에서 연방예금공사가 동 공사로부터 보험의 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해당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금융기관종합보험 가입을 강제한 때부터 위 보험이 본격적으로 보험상품으로 상업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그 후 약관의 정비를 거쳐 현재 사용되는 보험약관은 1981년 영국 로이드의 보험자인 K.F Alder에 의해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위 보험의 영문약관을 그대로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위 보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게 된 경위는 1995년 2월 233년의 역사를 가진 영국 최고(最古) 베어링 은행의 싱가포르 지점에서 근무하던 주식거래담당직원 닉 리슨이 일본니케이지수 선물거래행위의 실패로 인하여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고 결국 위 은행자체가 파산에 이르게 되자 금융기관이 단 한 사람의 종업원의 부정에 의하여도 파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었고 이에 대비책을 찾던 금융기관들이 위 보험에 적극적으로 가입하였다고 한다. 한편 국내에 위 보험약관의 국문 번역본은 있으나 약관조항의 해석에 있어 영문약관과 차이가 있을 경우 위 영문약관을 해석의 원칙으로 삼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2. 책임보험의 성격유무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금융기관종합보험은 고객이 맡긴 금전 및 유가증권을 다루는 금융기관은 자연스럽게 금전 등을 노린 금융기관 내부 및 외부로부터 각종 범죄행위에 노출되게 되는데 이를 대비하기 위하여 탄생한 보험이다. 따라서 위 보험의 담보대상은 사업장내에서의 절도ㆍ강도행위(이는 강도보험에서 유래한 것이다)로 인하여 금융기관이 피해를 입은 경우와 금융기관 종업원의 횡령 및 사기행위로 금융기관이 직접피해를 입는 경우 이를 담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 보험의 탄생시 금융기관 직원의 잘못으로 회사가 그 손해를 대신해서 배상하는 책임을 지는 경우(직원이 고객을 구타하거나 직원의 사업장내 관리소홀로 고객이 부상을 당한 경우 등)를 보험의 담보대상으로 정한 것은 아니라고 보이며 이는 후자와 같은 경우까지도 위 보험의 담보대상으로 한다면 그 사고의 발생태양의 다양성과 발생빈도 및 발생 손해액의 예측자체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Ⅲ. 판결에 대한 입장 1. 보험의 성격 먼저 금융기관종합보험이 종업원의 부정행위로 인한 금융기관의 직접적 손해를 담보하기 위한 비행행위보험(fidelity bond)이고 금융기관의 손해배상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책임보험(liability insurance)이 아니라고 본 판례의 취지에 동의한다. 따라서 금융기관이 그 직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사용자책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배상책임보험가입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2. 사건의 법률구성과 특이점 본건의 경우 원고의 직원인 甲이 보험가입자들로부터 금원을 받은 뒤 이를 사적으로 사용한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그 피해를 전부 보험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지 여부가 달려 있었다. 즉 원고가 종전소송에서 보험가입자들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보험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인정하고 해약환급금에 일정이자를 합쳐서 지급하였다면 이는 위 甲이 원고에게 정상적으로 입금된 보험료를 횡령한 행위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이는 금융기관종합보험에서 담보하는 “피용자의 전적이고도 직접적인 행위로 인한 손실”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원고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종전소송에서 보험계약의 성립을 부정하였고 결국 피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지게 되었으며 피해자들의 과실참작으로 30퍼센트 정도의 손해배상액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원고의 이러한 손실감경이 결국 본 건 소송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자료가 되어 원고가 받을 수도 있었던 거액의 보험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된 것이 특이하다고 보인다.
2004-03-22
기소전 체포·구속적부심사단계에서의 수사기록열람·등사청구권
I. 사건 개요 및 판결 요지 사기죄로 구속된 청구외 김○억의 변호인으로서 그로부터 구속적부심사청구의 의뢰를 받은 청구인이 피청구인인 인천서부경찰서장에게 위 김○억에 대한 수사기록 중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의 열람 및 등사를 신청하였다. 피청구인은 위 서류들이 형사소송법 제47조 소정의 소송에 관한 서류로서 공판개정전의 공개가 금지되는 것이고, 이는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 제7조 제1항 제1호소정의 이른바 다른 법률에 의하여 비공개사항으로 규정된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위 비공개결정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이유로 그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이에 2003년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결정을 내린다. 즉, (1) 형사피의사건의 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의 변호를 맡은 청구인으로서는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과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하여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를 충분히 조력할 수 없으므로, 위 서류들의 열람·등사는 변호인인 청구인에게 그 열람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 권리로서 청구인의 기본권이며, 또한 이는 변호인의 알 권리에 속한다; (2)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열람이 헌법상 변호인의 변호권 내지 알 권리로 보호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제한이 가능하지만, 이 사안에서는 이 권리를 제한해야 할 사정이 없다; (3) 피청구인은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라는 형사소송법 제47조를 근거로 하여 열람·등사를 거부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동조의 입법목적은 형사소송에 있어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을 받아야 할 피의자가 수사단계에서의 수사서류 공개로 말미암아 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구속적부심사를 포함하는 형사소송절차에서 피의자의 방어권행사를 제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 결 정 요 지 - 변호사가 구속적부심 절차에서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과 경찰의 신문조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피구속자를 충분히 변호할 수 없으므로 수사기록 열람·등사는 변호인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 권리로서 변호인의 기본권이며 또한 변호인의 알 권리에 속한다 II. 논의의 전제―소송기록열람·등사권과 공소장일본주의의 긴장 형사소송법 제35조는 “변호인은 소송계속중의 관계서류 또는 증거물을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의 기록열람·등사권은 변호인이 피고인의 혐의 내용, 수사결과 및 증거를 파악하여 검사의 공격을 대비하여 피고인을 변호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권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열람·등사권은 피고인의 권리이기도 하다(법 제55조 1항, 제292조 2항, 규칙 제30조 1항). 근래까지 이러한 소송기록열람·등사권은 ‘공소장일본주의’(규칙 제118조 2항)와의 관련 속에서 볼 때, 공소제기후 증거제출 전까지의 기간 동안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에 대하여도 인정되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다. 특히 검찰측은 ‘공소장일본주의’의 취지를 강조하며 열람·등사권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1997년 헌법재판소는 공소장일본주의는 “어디까지나 법원에 대한 예단 배제의 한도 내에서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소송기록열람·등사권열람·등사권가 헌법상 보호되는 권리임을 분명히 하였다(헌법재판소 1997.11.27. 선고, 94헌마60 결정). 공소제기후 증거제출전 단계의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 등사권을 규정한 명문의 법률규정이 없는 입법의 미비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기초로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을 도출하였던 것이다. 이후 검찰도 이 결정의 취지에 따라 1997년 대검예규를 개정한 바 있다. - 평 석 요 지 - 1977년 결정이 공소제기 후 증거제출 전 검사 수중에 있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여 '실질적 당사자주의'를 강화시켰다면 2003년 결정은 이 권리를 일정한 조건하에서 기소 전 단계로 확대시켰다. 현시점에서 두개의 결정과 대검예규의 내용을 취합하여 형사소송법에 열람·등사청구권의 허용범위, 예외, 절차, 구제방법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III. 대상판결 분석 대상판결인 2003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기본적으로 1997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입장에 서 있다. 2003년 결정은 수사기록의 열람·등사청구권이 “피구속자를 조력할 변호인의 권리”이자 “변호인의 알 권리”임을 명시적으로 재확인하였고,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에 의거한 피청구인의 수사기록공개거부에 대해서도 1997년 결정에서 제시한 열람·등사의 제한사유에 기초하여 그 정당성을 판단하고 있다. 또한 1997년 결정이 공소장일본주의를 이유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할 수 없다고 밝힌 것처럼, 2003년 결정은 형사소송법 제47조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03년 결정에서 심판청구 자체의 적법성 판단 문제가 선결적으로 검토되지만 이 점에 대한 검토는 생략하고, 이하에서는 본안 결정의 의미를 1997년 결정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평석하기로 한다. 1. 열람·등사권의 공소제기 이전 단계로의 ‘부분적 확장’ 상술한 1997년 결정은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는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고 공소가 제기된 이후”에 한하여 허용되며, “공소제기 이전의 수사단계에서도 열람·등사를 허용한다면 수사기밀의 누설 등으로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현저히 방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판시내용을 반대해석하면 공소제기 이전의 수사단계에서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될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대상판결인 2003년 결정은―구속적부심사청구를 의뢰받은 경우에 한하지만―기소전에 구속된 피의자의 변호인에게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권을 인정함으로써, 수사기관에 대한 증거개시청구권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렇게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권이 인정되는 시간대를 기소전의 단계로 앞당긴 것은, 향후 헌법재판소가 구속적부심사청구라는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도 피의자의 변호인에 대하여 수사기록에 열람·등사권의 인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는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2. 열람·등사의 대상―고소장에 대한 열람·등사의 허용 확인 1997년 결정은 열람·등사의 대상에 대하여 상세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에 대해서는 “제한없이” 열람·등사가 허용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997년 결정은 고소장의 허용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3년 결정에서는 구속적부심사건 피의자의 변호인이 고소장을 열람·등사할 권리가 있느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송인준 재판관은 자신의 반대의견에서, 고소장에는 사실관계 외에도 주요한 증거방법까지 기재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고소장의 열람 및 등사를 피의자나 그 변호인에게 허용하게 되면 수사기관이 아직 조사하지 아니한 증거방법까지 피의자측에 미리 알려주게 되는 결과가 되고, 그로 인하여 주요 참고인이 소재불명이 된다거나 기타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인멸할 경우 실체적 진실발견이 어려워지고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현저히 방해받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수사 초기단계에서 피청구인이 고소장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러한 우려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고소장에 증거방법이 나열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나열되어 있다 하여도 이를 제외하고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며, 증거방법에 대한 불법적 작용은 변호사의 윤리와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인데 변호사와 같은 고도의 윤리적 주체가 범죄적 행위에까지 나아갈 것을 전제로 하여 제도를 설정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위에서 본 우려는 고소장을 피의자신문조서와 달리 취급할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라고 파악하여, 고소장에 대한 열람 및 등사를 거부한 피청구인의 정보비공개결정은 청구인의 피구속자를 조력할 권리 및 알 권리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고소장에 열거된 증거방법이 공개되면 변호인측에 의한 증거인멸 등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고소장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구속적부를 심사하는 수사의 초기단계에 피고인을 충분히 조력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다수의견이 지적하였듯이 문제가 되는 증거방법을 제외하고 공개함으로써 극복해야지, 고소장 자체의 열람·등사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1997년 결정은 ‘참고인 진술조서’에 대하여 증인에 대한 신분이 사전에 노출됨으로써 증거인멸, 증인협박 또는 사생활침해 등의 폐해를 초래할 우려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명시하였던 바, 고소장을 ‘참고인 진술조서’에 준하여 허용할 수 있다고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1999년 대검예규 제296호가 “피고소인·피고발인 또는 변호인은 필요한 사유를 소명하고 고소장 또는 고발장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담당 검사는 청구인에게 그 요지를 고지함으로써 열람에 갈음할 수 있다”(제3조 제3항)라고 규정하고 있는 마당에, 헌법재판소가 고소장의 열람·등사를 막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할 것이다. IV. 맺음말 1997년 결정은 공소제기후 증거제출전 검사의 수중에 있는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여 ‘실질적 당사자주의’를 강화시켰다면, 2003년 결정은 이 권리를 일정한 조건 하에서 기소전 단계로 확대시켰다. 한편 현 시점에서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두 개의 결정과 대검예규의 내용을 취합하여 형사소송법에 열람·등사청구권의 허용범위, 예외, 절차, 구제방법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헌법적 권리로 인정된 수시기록열람·등사권이 대법원규칙이나 대검예규에 의하여 제약되고 있어 헌법 제12조 제1항 위반이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2004-02-20
의무장교(醫務將校)의 의무복무기간
Ⅰ. 대상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1991. 1.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2. 4. 25. 군의(軍醫) 22기로중위로 임관하여 근무하던 중 장기복무신청을 하여 1992. 12. 14. 장기복무 의무장교로 임용된 후, 1993. 3. 23.부터 1997. 3. 2.까지 국군 수도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학과정수습을 받았다. 임관일 이후 군인사법 제7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장기복무기간 10년이 경과하자, 2002. 5. 23. 전역희망일자를 같은 해 6. 30.로 하여 피고(대한민국)에게 전역지원서를 제출하였는데, 피고는 원고가 법 제7조 제3항(이하 “이 사건 조항”)에 따라 의무장교로서 전문의학과정을 수습하여 의무복무기간에 가산되는 ‘3년 11월 9일’을 추가로 복무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같은 해 8. 22. 원고의 전역신청을 거부하는 처분을 하였다. 원고는 위 전역거부처분을 취소하여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한 제1심과 항소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1심은 서울행정법원 2003. 1. 23. 선고 2002구합31701 판결,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누3460 판결). 원고와 피고가 상고를 제기하지 않아 위 항소심 판결은 확정되었다. - 판 결 요 지 - 군인사법 제7조 제3항의 취지는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 과정중 하나의 기간만이 의무복무기간에 산입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과정 모두 산입대상이 되며 가산되는 의무복무기간을 어느정도로 할 것인지 법무장교와 의무장교의 경우 차이를 둘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에 따른 합리적 재량의 범위내에 있는 차이라 할 수 있다 2. 항소심 판결요지 1) 이 사건 조항 중 의무장교에 관한 부분은 법규 전체의 취지를 살펴보면 이는 기초의학과정이나 전문의학과정 중 어느 하나의 기간만이 의무복무기간 산입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과정 모두 산입 대상이 된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고, 특히 국가의 예산으로 경제적인 혜택을 부여받아 교육을 받은 이상 반드시 두 과정 모두를 수습한 경우에만 산입 대상이 된다고 볼 근거는 없다. 2) “단기복무장교로 임용된 자”라는 문구에 이미 법무장교 또는 의무장교로서 임용되어 시보 또는 전문의학과정을 수료한 자는 포함되지 않고 군장학생 중 장교로 새로이 임용된 군장학생만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3)가산되는 의무복무기간을 어느 정도로 정할 것인지, 한도를 둘 것인지, 법무장교나 의무장교 등 각 경우에 차이를 둘 것인지 등의 여부는, 국가의 재정상태, 군의 수급상황, 부여되는 혜택의 정도, 각 제도에 관한 사회적 인식 등 재정적, 군사적?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입법형성재량에 기초한 정책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는 입법정책에 따른 합리적 재량의 범위 내에 있는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이 그 가산 기간의 차이로 인하여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4)이 사건 조항이 군내 수습을 받은 의무장교에게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Ⅱ. 의무복무기간 및 가산제도 1. 제도의 취지 군인사법 제7조 제1항에서는 장교?준사관?부사관의 의무복무기간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의무복무기간은 다른 공무원법과 다른 군인사법의 특징으로 헌법 및 병역법에 의한 병역의무의 일환으로서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의무복무기간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 기간은 반드시 복무하여야 한다(졸저, 「군인사법」, 법률문화원, 2003. 214면). 또한 군인사법 제7조 제2항, 제3항에서는 군인으로서 외국에서 유학하거나 군외 교육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자는 일정기간 가산하여 복무하도록 하는 의무복무기간 가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누구나 부담하여야 하는 국방의무를 이행하는 중에 특정 개인에 대하여 국가예산을 투자하여 특별한 능력개발기회를 부여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기간을 의무복무기간에 가산하여 복무하게 함으로써 통상의 군대 교육훈련과정을 통하여 확보하기 어려운 우수한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그 인력의 조기유출을 막고 군인의 사기를 진작하는 데에 있다(서울행정법원 2003. 1. 23. 선고 2002구합31701 판결). - 연 구 요 지 - 국가예산으로 교육을 받은 이상 반드시 기초의학과 전문의학 과정 모두 수습한 경우에만 의무복무기간에 산입이 된다고 할 근거는 없고 또 그 대상은 각 과정을 수습한 자 중 장기복무 장교가 아닌 단기복무 장교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며 법무장교와 의무장교가 제도의 목적이나 선발기준, 자격 등에서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가산대상 기간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이는 입법적 재량에 따른 합리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 2. 가산복무의 유형 및 법적성질 군인사법 제7조 제2항에서는 외국에서 유학하거나 국내에서 군외의 교육기관의 위탁교육이나 군 교육기관의 학위과정의 교육을 받은 자를, 동조 제3항에서는 법무장교, 의무장교, 군인사법 제62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군장학생을, 동조 제5항에서는 특수장비 운용을 위하여 외국에 유학자는 그 이수기간을 의무복무기간에 가산하여 복무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의무복무기간에 가산하여 복무하는 기간의 성격은 「의무복무기간의 일종으로 광의의 의무복무기간에 포함된다」고 하였다(국방부, 국방관계법령해석질의응답집 제23집, 1997. 20-21면). Ⅲ. 쟁점 1. 쟁점의 소재 군인사법 제7조 제3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첫째로, 그 문언상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과정을 모두 군에서 수습한 의무장교에게만 전용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둘째로, 위 각 과정을 수습한 자 중 ‘장기복무장교’가 아닌 ‘단기복무장교’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는지의 여부 셋째로, 다른 장기복무자와의 형평의 문제 넷째로, 위 조항이 군외 기관에서 수습을 받은 경우에만 적용되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2.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과정을 모두 군에서 수습한 의무장교에게만 적용되는지 여부 이 사건 조항은 그 문언상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과정을 모두 군에서 수습한 의무장교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 즉 문언상의 표현 중 의무장교에 관한 부분은 “의무장교로서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과정을 수습한 자는 그 수습한 기간에 해당하는 기간을 의무복무기간에 가산하여 복무한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므로 문언상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과정을 모두 군에서 수습한 의무장교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항소심은 「‘및’이라는 어휘의 용법에 관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지는 않으나, 법규 전체의 취지를 살펴보면 이는 기초의학과정이나 전문의학과정 중 어느 하나의 기간만이 의무복무기간 산입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과정 모두 산입 대상이 된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고, 원고의 주장과 같이 기초의학과 전문의학과정 모두를 수습한 의무장교의 경우에만 산입 대상이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보여지며, 특히 국가의 예산으로 경제적인 혜택을 부여받아 교육을 받은 이상 반드시 두 과정 모두를 수습한 경우에만 산입 대상이 된다고 볼 근거는 없다.」라고 하였다. 3. 이 사건 조항이 단기복무 의무장교에게만 적용되는지 여부 이 조항의 문언해석상 위 각 과정을 수습한 자 중 ‘장기복무장교’가 아닌 ‘단기복무장교’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 즉 이 사건 조항은 의무복무기간 가산 대상자로서 “법무장교로서 군법무관시보로 실무를 수습한 자, 의무장교로서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과정을 수습한 자와 제62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군장학생으로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한 자 중 단기복무장교로 임용된 자”를 규정하고 있는바, 그 내용 중 “의무장교로서 기초의학 및 전문의학과정을 수습한 자”가 뒤의 “단기복무장교로 임용된 자”에 연결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항소심은 「①우선 문리적 해석에 의하더라도 그러하고, ②또한 “단기복무장교로 임용된 자”라는 문구는 군인사법이 1989. 12. 30. 법률 제4158호로 개정되면서 삽입된 것으로, 그 개정취지는 군장학생 출신 장교 중 장기복무장교에 대하여 장학금 수혜기간 가산복무제도를 폐지하여 다른 장기복무장교와의 형평을 유지하는 한편 군장학생 출신 장교의 장기복무를 유인하기 위한 것일 뿐 법무장교나 의무장교와는 관련이 없다 할 것인바,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의 기재에 의하더라도 명백하며, ③나아가 법 제62조 제1항, 군장학생규정 제2조에 의하면, 군장학생은 대학교에 재학중인 자로서 군에서 시행하는 전형에 합격하여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침으로써 장교로 임관될 수 있는 것이므로, “단기복무장교로 임용된 자”라는 문구에 이미 법무장교 또는 의무장교로서 임용되어 시보 또는 전문의학과정을 수료한 자는 포함되지 않고 군장학생 중 장교로 새로이 임용된 군장학생만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4. 형평의 문제 군장학생으로서 의과대학 및 전문의학과정 등 10년의 혜택을 받은 후 임관한 단기복무장교의 의무복무기간이 13년이고 사관학교 출신자의 의무복무기간이 10년인데 비하여, 장기복무 지원후 전문의학과정만 수습한 원고의 경우 의무복무기간이 14년이 되므로 형평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해 항소심은「①기본적으로 군장학생이나 사관학교 졸업생은 그 제도의 목적, 선발기준과 자격, 혜택, 복무조건 등이 의사시험에 합격하여 단기복무 의무장교로 임용되었다가 장기복무를 신청한 원고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적 자원이라는 점, ②가산되는 의무복무기간을 어느 정도로 정할 것인지, 한도를 둘 것인지, 법무장교나 의무장교 등 각 경우에 차이를 둘 것인지 등의 여부는, 국가의 재정상태, 군의 수급상황, 부여되는 혜택의 정도, 각 제도에 관한 사회적 인식 등 재정적, 군사적.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입법형성재량에 기초한 정책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입법의 내용이 헌법상 규정된 기본권이나 기본원칙, 기본권제한의 입법 한계, 그리고 당해 법률의 입법목적 등에 비추어 자의적이거나 임의적이 아닌 합리적 범위 내의 것이라면 이를 위헌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 점등에 비추어 보면, 이들의 의무복무기간에 다소 차이가 있고 가산 대상 기간이 다르다 하더라도, 본건에 있어서 이를 비합리적인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형평에 반한다고 볼 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는 입법정책에 따른 합리적 재량의 범위 내에 있는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이 그 가산 기간의 차이로 인하여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5. 이 사건 조항이 군외 기관에서 수습을 받은 경우에만 적용되는지 여부 이 사건 조항은 전문의학과정을 군외 기관에서 수습을 받은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즉 군병원에서 수습한 전문의학과정은 의무장교로서의 기본업무와 같으므로 의무복무기간에 가산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 항소심은 「①원고가 군 병원에서 전문의학과정을 수습하면서 진료, 검사, 수술 등 의무장교로서의 업무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하더라도, 이 역시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자격을 갖추기 위한 임상수련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전문의학과정 수습기간을 수혜적인 기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고, ②법 제7조 제2항이 군내의 위탁교육기간을 의무복무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하는 것과 법 제7조 제3항은 그 해석상 아무 관련이 없다 할 것이며, ③또한 이 사건 조항이 법무장교의 경우 군외에서 군법무관시보로 수습한 기간만 의무복무기간에 가산하는 등 의무복무기간을 달리 정하는 것 역시, 법무장교와 의무장교가 제도의 목적이나 선발기준, 자격 등에서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가산 대상 기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입법재량에 따른 합리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Ⅳ. 결론 이 사건 조항은 그 동안 4차례의 개정이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조문의 애매한 표현으로 말미암아 해석상 혼란이 있었는데 위 항소심의 판결로 명확한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의무장교들이 법무장교에 비해 복무기간 계산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여 왔는데 위 판결로 인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2004-01-29
연지급신용장의 만기전 매입 또는 지급
I.事案의 槪要 프랑스의 잘텍스(“잘텍스”)는 주식회사 일경교역(“일경”)에게 직물을 주문하고, 대금 지급을 위해 피고은행(비엔피파리바은행) 본점에게 연지급신용장(“이 사건 신용장”)을 개설케 했다. 일경은 서류를 위조하여 신용장상 물품을 선적한 것처럼 원고(중소기업은행)에게 서류 매입을 요청했고, 원고는 1997. 7. 이를 매입하여 피고에게 제시하고 인수를 요청했는데, 피고는 1997. 8. 원고에게 “… 서류를 다음과 같이 인수했다: 인수금액: ... ”라고 통보했다. 파리상사재판소는 1997. 9. 피고에 대해 신용장대금의 지급금지를 명하는 가처분명령을 내렸고, 위 재판소는 그 후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신용장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원고는 매입은행임을 주장하면서 피고에 대해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II.訴訟의 經過 1. 1심판결 서울지법 2000. 10. 27. 선고 97가합95143 판결은, 연지급신용장의 매입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이 사건 신용장을 일반매입신용장으로 보았다. 1심법원은 일경의 기망행위가 있었지만 원고가 매입 당시 이를 알았거나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에게 매입대금을 상환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대부분 인용했다. 2. 원심판결 서울고법 2001. 9. 18. 선고 2000나58783 판결은, 환어음과 같은 매입수단이 없으므로 연지급신용장의 매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나, 예외적으로 개설은행의 수권이 있는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이 사건에서 매입의 수권의 유무를 심리했는데, 수권이 없으므로 원고는 매입은행이 아니라 수익자로부터 신용장상의 권리를 양수한 자의 지위에 있을 뿐이고, 매입은행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보고 원고의 청구를 대부분 기각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했다. (1) 신용장의 적법한 매입 후 신용장거래가 사기거래로 밝혀지더라도, 매입은행은 사기의 당사자로서 관련되거나 매입 당시 사기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또는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개설은행에게 대금의 상환을 구할 수 있으나, 적법한 매입이 아닌 경우에는 신용장통일규칙(공표 제500호. “UCP”)상의 ‘매입’이 될 수 없고, 개설은행은 신용장의 만기에 서류를 제시하는 은행에 대해 수익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모든 사유로 대항할 수 있고, 수익자의 사기행위가 밝혀진 경우 대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2) 신용장 개설은행의 지정은행(확인은행도 마찬가지이다)에 대한 수권 및 상환의무에 관한 UCP(제10조 a항, b항 ⅰ호, c항, d항, 제14조 a항)의 취지와, UCP상 지정은행에 의한 연지급신용장대금의 만기 전 지급과 매입을 금하는 규정이 없는 점, 국제거래에서 신용장이라는 독립적이고 추상적인 결제수단을 사용하는 기본취지가 수익자의 대금결제에 대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독립추상성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개설의뢰인이 부담함이 공평의 원칙에 부합하는 점 등에 비추어, 연지급신용장의 경우에도 대금을 지급할 수 있는 은행이 지정된 때에는 특별한 반대 약정이 없는 한 개설은행의 수권 속에는 연지급신용장의 만기 전에 지정은행이 매입하더라도 만기에 대금을 상환하겠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고(다만 개설은행은 만기 전까지는 대금 상환을 거절할 수 있다), 연지급신용장의 개설에 환어음의 발행이 수반되지 않았더라도 매입이 가능하므로 연지급신용장도 지정은행이 있는 한 매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3) UCP 제10조 b항 ii호는 “매입이란 매입을 수권 받은 은행이 환어음 및/또는 서류(이하 “서류”라 한다)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규정하므로 개설은행에 의한 수권이 있는 은행이 서류에 대한 대가를 지급한 경우에 한하여 ‘매입’으로 인정되고, 수권이 없는 은행의 경우에는 대가를 지급했더라도 ‘매입’으로 인정될 수 없으며, 이는 연지급신용장이라 하여 달리 볼 것이 아니다. - 판 결 요 지 - 연지급신용장의 경우 대금을 지급할 수 있는 은행이 지정된 때에는 개설은행의 수권 속에는 연지급신용장의 만기 전에 지정은행이 매입하더라도 만기에 대금을 상환하겠다는 취지가 포함되고 연지급신용장 개설에 환어음의 발행이 수반되지 않았더라도 매입이 가능하므로 지정은행이 있는 한 매입대상이 될 수 있다. III.硏 究 1. 문제의 제기 이 사건의 쟁점은, 연지급신용장의 개설은행인 피고가 원고의 신용장대금청구에 대하여, 매입 후에 밝혀진 수익자의 사기를 이유로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가이다. 만일 원고가 적법한 매입은행이었다면 피고는 지급을 거절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의 핵심쟁점은 원고의 만기 전 서류 매입이 적법한 매입인가인데, 이는 연지급신용장의 경우 만기 전의 서류 매입이 허용되는가와 관련된다. 대상판결은 매입은행이 지정된 때에는 매입이 가능하나, 이 사건의 경우 매입은행이 지정된 바 없으므로 원고는 매입은행이 아니라고 보았다. 대상판결이 주목을 받은 것은, 대상판결은 UCP상 연지급신용장의 경우 만기 전 매입이 가능하다고 보고, 확인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 데 반해, 영국 항소법원의 Banco Santander SA v. Banque Paribas 판결([2000] Lloyd’s Rep Bank 165)(“영국판결”)은, 확인은행이 연지급신용장의 만기 전에 지급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이 다투어진 사안에서 상이한 견해를 취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상판결에 대하여는 상세한 판례평석(채동헌, “연지급신용장 대금의 만기전 지급과 매입의 법률관계”, 인권과 정의 2003. 9.(제325호), 166면 이하)이 있다. 필자의 상세한 평석은 서울지방변호사회, 판례연구 제17집(上)(2003)에 게재될 예정이다. 2. 연지급신용장의 개관 UCP(제2조)에 따르면, 신용장이란 대체로 “개설은행이 신용장의 제조건에 일치하는 소정의 서류와 상환으로 수익자에게 지급하거나 수익자가 발행한 환어음을 인수하고 지급하거나, 다른 은행에게 이를 수권하거나, 또는 다른 은행에게 매입하도록 수권하는 모든 약정”이다. 연지급신용장이란 서류 제시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때 대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신용장이다. 연지급신용장의 경우 매도인은 대금지급을 유예하고 매수인은 물품을 수령하여 전매함으로써 받은 대금으로 만기에 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 연지급신용장에 관한 규정은 1983년 제4차 개정시 UCP에 처음 도입되었다. 도입 당시 은행들은 우려를 표명하였는데, 이는 매수인이 대금의 지급기일 전에 물품을 수령하므로 신용장에 따른 지급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지급을 금하는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연지급신용장은 기한부신용장(usance credit)과 유사하나 환어음이 발행되지 않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연 구 요 지 - 대상판결은 이 사건에서 매입의 수권이 없었다고 보았지만 연지급 신용장의 경우에도 매입의 수권을 받은 은행은 만기전에 서류를 매입할 수 있음을 인정한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확인은행에도 동일한 법리를 적용할 것이라고 판시한 점은 의문이다. 3.연지급신용장의 매입의 가부 (1) 환어음의 부존재와 매입의 가부 : 과거에는 매입은 화환어음의 매입을 의미했으나, UCP (제10조 b항 ii호)는 환어음이 아니라 “환어음 및/또는 선적서류”의 매입으로 개념을 확대했다. 따라서 환어음이 없다는 이유로 매입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상판결은 타당하다. (2) 연지급신용장의 매입의 가부 판단의 準據規範: 연지급신용장의 매입의 가부는 UCP의 문제인가 準據法의 문제인가. 이 사건 신용장에는 準據法에 대한 약정이 없으므로 客觀的 連結에 의하여 準據法이 결정된다. 1심법원과 원심법원은 신용장 개설 당시의 涉外私法을 기초로 이 사건 신용장의 準據法을 프랑스법이라고 보았다. 연지급신용장의 매입의 가부, 보다 정확히는 연지급신용장에 따른 서류를 수익자로부터 매입한 은행이 매입은행의 지위를 가지는가는 UCP의 문제이다. 사견으로는 이 사건에서 ① 개설은행의 수익자에 대한 사기의 항변의 가부는 準據法의 문제이고, ② 연지급신용장에 따른 매입은행이라고 주장하는 은행이 매입은행의 지위를 가지는지와 ③ 準據法상 수익자의 청구가 사기적 청구라고 할 경우, 연지급신용장에 따른 매입은행이라고 주장하는 은행이 선의라면 수익자의 사기에도 불구하고 매입은행으로서 보호되는지는 UCP의 문제이며, ④ 만일 매입은행이라고 주장하는 은행이 매입은행으로서 보호되지 않을 경우 가지는 지위는 거래의 내용과 準據法에 따를 사항이다. 쟁점별로 準據規範을 따지는 것은, 프랑스의 판례가 연지급신용장에 있어 확인은행이 만기 전에 대금을 지급한 경우 만기 전에 수익자의 사기가 판명되면 확인은행이 선의이더라도 개설은행은 확인은행에게 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쟁점은 UCP의 문제이므로 우리 법원은 프랑스법원의 해석에 구속되지 않고 UCP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판단할 수 있고, 이 결론은 신용장에 따른 법률관계에 UCP가 적용되는 한, 그것이 당사자의 합의에 기한 것인지, UCP의 법적 성질에 기한 것인지와 관계가 없다. (3) 연지급신용장의 매입의 가부: 연지급신용장의 경우에도 개설은행이 매입은행을 지정한 때에는 매입은행이 서류를 매입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정은행이 없는 경우에는 매입의 수권이 없다. 문제는, 확인은행이 지정된 경우 동 은행이 만기 전에 지급할 수 있는가이다. 이 사건에서 문제는 원고가 지정된 매입은행이었는가였지만, 대상판결은 방론으로 확인은행에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반면에 영국판결은, 확인은행은 연지급신용장의 만기에 대금을 지급하도록 수권 받았을 뿐이므로 만기 전에 지급한 경우 후에 수익자의 사기가 판명된 때에는 개설은행은 확인은행에게 상환의무가 없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은 매입은행에, 영국판결은 확인은행에 관한 것이므로 양자가 반드시 상치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판결은 당사자들의 합의를 중시한 데 반해, 대상판결은 매입이 널리 행해지는 우리 신용장거래의 실무를 고려하여, 선의의 은행을 보호함으로써 신용장거래를 원활히 하려는 정책적인 판단을 중시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신용장거래에 관여하는 당사자들, 특히 은행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미국의 통일상법전(제5-109(a))에 따르면 영국판결의 사안의 경우 확인은행인 Banco Santander는 수익자의 권리의 양수인으로서 또는 확인은행으로서 보호된다. 정책적으로는 대상판결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UCP의 해석으로는 확인은행의 경우 영국판결의 입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연지급신용장은 지급시기가 연기된 것인데, 지급시기는 수익자뿐만 아니라 개설의뢰인에 대한 관계에서도 준수되어야 한다. 연지급신용장의 경우 개설은행이 연지급을 수권한 것이지 매입을 수권한 것은 아니므로 그에 반하는 지급은 적법하지 않다. 연지급의 수권에도 불구하고 확인은행이 만기 전에 지급할 수 있다면, 서류의 수리 후 지급기일 사이에 수익자의 사기가 확정될 경우, 개설은행이 사기의 항변을 제출할 가능성이 봉쇄된다. 그러나 매입은행을 지정한 경우 매입은행은 만기 전에 매입할 수 있다. 필자는 확인은행과 매입은행을 구별하자는 것이다. 4. 비지정매입은행에 의한 매입의 효과 적법하게 매입한 은행은 매입은행으로서 개설은행에 대해 서류를 제시하고 신용장에 따른 지급을 요구할 수 있다(UCP 제14조 a항). 매입은행은 수익자가 가지는 권리의 단순한 양수인이 아니라 UCP에 기하여 매입은행으로서 독자의 권리를 취득한다. 그런데 실무상 지정된 매입은행이 아닌 은행(“비지정매입은행”)이 수익자로부터 서류를 매입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은행이 매입은행의 지위를 가지는가이다. 만일 비지정매입은행이 단순한 양수인이라면 채권양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개설은행은 수익자에 대한 모든 항변으로써 비지정매입은행에 대항할 수 있다. UCP상 특정신용장의 개설은행은 지정된 매입은행에 대해서만 지급을 확약한 것이므로 비지정매입은행은 매입은행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 대상판결은 이를 확인한 타당한 판결로서 큰 의미가 있다. 원심법원의 사실조회결과에 대하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국내외 은행이 연지급신용장의 매입에 응하고 있다고 회신했지만, 비지정매입은행은 매입은행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 종래 우리나라 은행들은 수권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매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부분 대금이 지급되지만 사기가 있으면 보호받지 못한다. 만일 비지정매입은행이더라도 선의로 매입한 이상 매입은행으로서 보호된다면 좋지만 UCP하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5. 맺음말 대상판결은 이 사건에서 매입의 수권이 없었다고 보았지만, 추상적인 법률론으로는 연지급신용장의 경우에도 매입의 수권을 받은 은행은 만기 전에 서류를 매입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이는 확인은행에 관한 영국판결과는 다른, 은행에 우호적인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매입은행과 확인은행을 같이 취급할 것이라고 판시한 점은 의문이다. 사견으로는 연지급신용장의 경우 매입은행은 만기전 매입이 가능하지만, 확인은행은, UCP하에서는 원칙적으로 만기 전에 지급할 수 있는 수권은 없다고 본다.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장래 UCP의 개정을 통해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대상판결은 비지정매입은행은 UCP에 따른 매입은행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음을 명확히 한 대법원판결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2003-12-29
부당이득반환청구사건
공동명의예금의 경우 그 예금주가 누구인지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이 시행된 이후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에 의하여 금융거래를 하여야 하므로 금융기관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명확인을 한 예금명의자를 거래자로 보아 그와 예금계약을 체결할 의도라고 보아야 하고, 공동명의예금계약의 경우에도 공동명의자 전부를 거래자로 보아 예금계약을 체결할 의도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공동명의자 중 일부만이 금원을 출연하였다 하더라도 출연자만이 공동명의예금의 예금주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실무관행이다. 일본에서도 이 점에 관한 다수의 판례가 집적되어 왔는데, 종래의 견해를 유지하는 최근판례가 있어 이를 소개한다. 의뢰자로부터의 보관금 구좌라는 뜻을 표기하여 변호사가 개설한 예금구좌에 의한 예금채권은 변호사에 귀속되며 당해 의뢰자에 대한 채무명의에 의한 압류 인정안해 원고인 변호사 X는 A의 사기피고사건의 변호를 수임하였다. X는 스스로 100엔을 출연(出捐)하여 B은행에 「X A 보관금구좌」명의의 보통예금구좌를 개설하였다. A는 자기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이건 예금구좌에 변호사 예상보수액 및 피해자들에 대한 변상금으로 합계 7700만엔을 입금하였다. 신청용 도장에는 X의 성이 각인된 도장을 사용하였고, 신청용 도장 및 통장은 X가 보관, 관리하고 있었다. X는 변상금의 지급을 자기의 판단으로 행하고, A에게는 사후적으로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가(Y)는 A에 대하여 약 1억 8000만엔의 조세채권을 가지고 있었다. Y는 이건 조세채권을 징수하기위해 이건 예금구좌의 잔고지급청구권을 압류하여 B은행으로부터 징수하고, 그 전액을 조세채권에 충당하였다. X는 이건 예금구좌는 A가 아니라 자기에게 귀속한다고 주장하면서, Y에 대하여 압류 당시의 예금잔고 상당액의 부당이득금반환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건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이 예금이 X와 A의 어느 쪽에 귀속하는가라고 하는 점이다. 원심에서는 ‘A의 「X A 보관금구좌」명의의 보통예금구좌에 입금한 행위는 X에 대한 착수금 및 위임사무처리(변상금의 지급)비용의 선급의 취지이며, X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위임의 취지에 따라 그 비용을 사용 처분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으며, A는 자신의 예금을 개설하기 위해 송금한 것이 아닌 것이 명백한 점, 이건 예금구좌는 X 자신이 개설하고, 그 후의 출금도 X 자신의 판단으로 행하고, 통장 및 신청용 도장도 X가 관리하고 있었던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본다면 이건 예금은 X에게 귀속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항소심에서도 원심의 견해를 유지하면서, ‘이건 예금구좌에 입금된 대부분은 A가 불입한 것으로서 A를 출연자, 즉 예금자라고 볼 여지도 있으나, 그 내역은 착수금과 선급비용으로써 선급비용은 교부시에 위임자의 지배를 떠나 수임자가 그 책임과 판단에 따라 지배관리하고, 위임계약의 취지에 따라 이용하는 것으로서 수임자에게 귀속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따라서, 착수금뿐만 아니라 선급비용도 X가 자기의 재산으로서 취득하였다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더 나아가 ‘X가 A로부터 착수금 및 선급비용을 받아 그 비용을 위임의 취지에 따라 관리할 목적으로 이건 예금구좌를 개설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재산이 될만한 금전을 예금한 것이라고 해야 하고, A를 위하여 예금구좌를 개설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예금구좌에 관한 예금채권은 X에게 귀속된다’는 이유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예금의 현실적인 출연자와 예입행위자, 예금명의인이 다른 경우, 예금채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논쟁이 되어 왔다. 대표적인 견해로서는, ①스스로의 출연에 의해 자기의 예금으로 할 의사로 은행에 대하여 스스로 또는 대리인, 사자(使者)를 통하여 예금계약을 한 자가 예금자로 하는 설(객관설), ②예입할 때에 예입행위자가 특히 타인의 예금이라는 뜻을 표시하지 않거나 또는 은행이 실질상의 권리자를 모르는 한, 예금예입행위자를 예금자로 하는 설(주관설), ③원칙으로서 객관설에 의해 출연자를 예금자로 하는데, 예입행위자가 자기를 예금자라고 명시, 묵시로 표시하였을 때는 예입행위자가 예금자로 하는 설(절충설)로 대별된다. 최고재판소 1973년3월27일 선고 민집27권 2호 376페이지 판결에서, 무기명 정기예금에 대하여 객관설을 취할 것을 명언하였다. 그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출연자의 이익보호(무기명 정기예금 계약이 체결된 것에 지나지 않은 단계에서는 은행은 예금자가 누구냐에 대하여 각별한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출연을 한 자의 이익보호를 관철하여도 은행에게는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이다. 그리고, 최고재판소 1982년3월30일 선고 1979(オ) 제803호에서는 기명식 정기예금에 대해서도 객관설을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최근, 예금자의 인정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최고재판소 판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손해보험대리점이 보험계약자로부터 수수(收受)한 보험료만을 입금할 목적으로 개설한 보통예금구좌에 의한 예금채권에 대하여 손해보험회사에게 귀속하는 것으로 한 사례, 채권정리사무의 위임을 받은 변호사가 위임사무처리 목적으로 위임자로부터 수령한 금전을 예입하기 위하여 변호사의 개인명의로 개설한 보통예금구좌에 의한 예금채권에 대하여 당해 변호사에게 귀속하는 것으로 한 사례가 그 예이다. 위 사안들에서도 수임자(보험대리점, 변호사)가 보통예금구좌의 개설절차를 행하고, 통장, 신청용 도장을 관리하고 있었던 점, 구좌명의에 수임자의 성명이 포함되어 있었던 점이 중시되었다. 그리고, 변호사가 채권자를 위하여 채무조정사무를 행하는 것은 위임에 해당하고, 그 사무의 비용으로 충당하기 위하여 미리 교부된 금전은 선급비용에 해당하고, 선급비용은 수임자가 그 책임과 판단에 의하여 지배관리하고 위임계약의 취지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임자에게 귀속하는 재산이라고 명백히 판시한 바 있다. 동경지방재판소는 의뢰자로부터의 보관금구좌라는 뜻을 표기하여 변호사가 개설한 예금구좌에 의한 예금채권은 당해 변호사에게 귀속하는 것으로 보고, 당해 의뢰자에 대한 채무명의에 의한 압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실무상 처리하고 있다. 따라서, 예금채권의 귀속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예금구좌의 개설 경위나 명의, 통장, 신청용 도장의 관리 양태, 현실의 출금상황 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할 것이다. 〈법무·특허법인 다래 대표변호사〉
2003-12-04
신용카드의 부정사용과 형법해석정책
Ⅰ. 대상판결 1. 사안 피고인은 S 카드회사로부터 신용카드를 정상적으로 발급 받아 2년여 동안 사용하여 오다가 변제능력에 문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화에 의한 무보증카드론 방식으로 7백만 원을 대출받고, 3천여만 원 가량 카드를 사용한 후 대출금과 카드대금을 제대로 납입하지 않았다. 제1심 법원은 피고인에게 사기죄로 유죄판결(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03.6.18. 선고 2003고단276판결)을 하였으나 항소법원은 무죄판결(대전지방법원 2003.8.29. 선고 2003노1492)을 하였다. - 판 결 요 지 - 신용카드를 정상적으로 발급받아 사용해 오다가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 대금결제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위 신용카드를 이용 하여 카드론 대출 또는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가맹점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그 대금을 결제하지 못한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2. 항소법원의 판결요지 카드회원이 신용공여의 범위 내에서 자기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기망행위가 아니며, 카드회사에게 카드사용 당시의 재산상태를 고지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불고지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며, 전화자동응답시스템에 의한 카드론의 이용도 공여된 신용의 범위 내에서 대출이 기계적으로 처리될 따름이므로 기망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맹점도 그런 신용의 범위 내에서는 카드 소지인과 명의인이 동일한 이상, 지급능력의 유무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망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카드 발급 당시의 약정에 고지의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여 ‘국가의 형벌권이 사경제영역에 속하는 금융질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영역이 과도하게 침해되고 신용조사 등에 관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초래된다’는 점에서 사회상규에 기초한 고지의무는 인정될 수 없다. - 연 구 요 지 - 항소법원이 사기죄의 해석과 내적으로 연관시킨 형법정책은 해석 론 이상으로 타당성이 있으며, 이 사안에 대한 무죄판결은 바로 이 성적인 형법정책을 형법해석에 내재화시킴으로써 법원에 의해 형 성되는 구체적 형법규범의 정당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준다 Ⅱ. 평석 위 사안에 대한 항소법원의 무죄판결은 대금결제의 능력과 의사가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해 온 대법원 판례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고, 사기죄 해석과 신용카드체계의 기능보호에 대한 형법정책, 두 차원에서 각각 의미있는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1. 사기죄의 해석론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기망, 착오, 재산처분행위, 재산상 손해발생, 재산상 이익취득의 다섯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판례에서 항소법원이 주로 문제 삼은 요건은 기망과 착오 부분이므로 평석도 이에 국한한다. ① 흔히 작위범 성립을 검토하고 부작위범 성립을 검토해야 한다는 이론에 의하면 결제능력의 상실을 고지하지 않고 자기신용카드를 계속 사용한 것이 作爲의 기망행위인지가 문제된다. 항소법원은 카드사용행위를 표시중립적 행위로 보았지만, 그 행위는 독일학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설명가치 있는 행동’(schluBiges Verhalten)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다수의 학자들과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법원 판례는그런 행위를 작위범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항소법원의 판단처럼 일단 결제능력과 의사가 있는 상태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를 신용공여의 범위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적어도 카드신청을 할 때처럼 회원이 자신의 재정상태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담은 서류를 제출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작위의 기망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이 사안에서 피고인의 계속된 카드사용행위는 일단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로 취급되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판결의 정당성에 의문이 강하게 제기될수록 법원은 자신의 결정을 더욱 자세히 근거지워야 하고, 따라서 작위범에 비해 논증부담이 더 무거운 부작위범의 형태로 논증해야 한다는 필자의 견해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② 이 사안에서 카드사용행위가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가 되려면 제18조의 결과방지의무(保證人義務)가 피고인에게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카드회원가입계약에 그런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거나, 보통거래약관으로 정해져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런 특약이 불공정거래약관의 하나로 취급될 수 있는 이상, 계약상 유효한 고지의무는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위법성조각사유인 정당행위(제20조)와 다소 혼동될 여지를 무릅쓰고 항소법원이 사용한 표현인 사회상규, 그러니까 학계에서 말하는 條理나 신의칙에 의한 결과방지의무(保證人義務)로서 고지의무를 인정할 여지는 있다. 항소법원은 이 신의칙에 의한 고지의무를 형법정책과 내적으로 연결짓는 탁월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해석은 단지 인식이 아니라 정책과 착종되는 것임을 통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뒤에서 보듯이 적절한 방향의 형법정책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항소법원의 해석에 대해서는 정책과 해석은 별개라는 전통적인 법인식론이 비판을 가해올 수 있다. 그러나 한 걸음 양보하여 그런 전통적인 법인식론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카드회원에게 그런 고지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해석은 가능하며, 또한 더 타당하다. 즉, 결과방지의무에 대한 機能說의 해석론으로 제18조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에는 국가기관이나 사경제기구와 거래하는 개인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론을 들 수 있다. 거대기구는 일반 개인에 비해 우월한 조직적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과 거래하는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신뢰 속에서 스스로 위험을 방어하는 태세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이론에 의하면 신용카드회사와 거래하는 개인에게도 그 회사에 대한 “위험발생을 방지”할 의무로서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의 변경을 적극적으로 알릴 의무(즉 국가나 사경제기구의 재산손해방지의무)가 신의성실원칙에 의해 인정될 수는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해석과 정책을 분리하더라도 항소법원의 판단은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③ 만일 이 사안을 삼각사기로 본다면 회원의 고지의무는 피기망자인 가맹점에 대해서도 인정될 여지가 있다. 가맹점은 카드회사와 같이 거대한 조직력과 지배력을 갖지 못한 작은 상점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신의성실원칙에 의해 고지의무를 인정할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가맹점은 카드사용자의 지급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계약상 카드회사로부터 대금을 지급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카드소지인과 명의인의 동일성을 확인할 계약상 의무마저 무관심한 것이 거래현실이다. 이 현실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고지의무를-따라서 항소법원이 판시하듯 기망행위를-인정할 필요도 근거도 없게 된다. 하지만 다시 한 걸음 양보하여 카드회원에게 법적으로 고지의무를 인정하더라도 피기망자인 가맹점은 지급능력에 관해 무관심과 무의식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가맹점에게 사기죄의 두번째 요건인 착오가 발생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이럴 경우 (삼각)사기의 미수가 성립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가맹점이 착오를 갖지 않는 현실이라면 고지의무위반이라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는 불능범(제27조)으로 처리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④ 카드회원이 결제능력 없이 전화자동응답시스템으로 대출을 받은 행위도 가맹점에서 물품과 용역을 제공받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지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한, 기망행위로 파악될 수 없다. 설령 기망행위로 인정한다 해도, 피기망자가 사람이 아니라 정보처리장치이므로 착오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착오요건의 충족은 기계를 의인화하는 수사학적 차원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또한 기망행위 요건의 충족은 인정하더라도 가맹점을 피기망자로 하는 삼각사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카드론이용행위는 사기미수범이 아니라 사기불능범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2. 신용카드체계와 형법정책 이 사안에서 항소법원이 사기죄의 해석과 내적으로 연관시킨 형법정책은 해석론 이상으로 타당성이 있다. 특히 항소법원이 지적한 카드회사의 모럴헤저드는 자기신용카드의 부정사용과 타인신용카드의 부정사용이 불법유형에서 차별적임을 전제로 한다. 후자는 외부로부터 신용카드체계의 기능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로서 그 불법유형이 절도나 사기 등과 매우 유사하다. 이에 비해 전자는 신용카드체계에 참여하는 내부자의 일탈행위이며, 그 불법유형은 계약위반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그런데 세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는 3가지 종류의 신용카드계약에 내재된 도덕원칙(Moralprinzip)은 그런 계약과 거래를 통해 모두가 권리와 의무, 기회와 부담을 형평있게 누리게 된다는 점에 있다. 회원은 포괄적 신용을 얻되 회비와 결제대금이자를 부담하고, 가맹점은 수수료를 부담하되 대금지급을 안정적으로 제공받고 회원의 소비성향증대에 터 잡은 매출의 증가라는 이익도 얻는다. 이에 비해 카드회사는 가맹점에게는 대금지급을 보장하되 수수료를 얻으며, 회원에게는 포괄적으로 신용을 공여하되 회비를 얻는다. 그런데 이때 카드회사가 누리는 이익은 무엇보다도 포괄적인 신용공여를 경제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 기초한다. 바꿔 말해 카드회원자격의 부여는 카드회사가 스스로 자신의 거대조직을 활용하여 합리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위험은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카드회사는 신용공여실패의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는 신용공여로부터 어떤 이익도 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항소법원이 펼친 해석정책은 바로 이런 도덕원칙에 지향되어 있다. 카드회사의 신용카드남발은 불량회원과 부실채권을 증가시키고, 결국에는 카드회사가 스스로를 재정위기에 빠뜨림으로써 신용카드체계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만든다. 그러므로 자기신용카드의 부정사용을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은 도덕원칙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체계의 기능보호라는 목적에서 보더라도 역기능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형법해석은 그와 같은 모럴헤저드를 촉진시키는 카드회사의 후견인 역할을 거두어들이고, ‘스스로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피해자학적 관점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또한 거시적으로 신용카드형법은 카드체계에 참여하는 내부자들이 스스로 일탈행동을 예방하고, 손실위험을 조정하는 자율적 조절메커니즘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구조정책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형법의 보충성원칙은 그런 방향의 형법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형법정책이 그런 요구에 응할 때 형법의 정당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항소법원의 무죄판결은 바로 그와 같은 이성적인 형법정책을 형법해석에 내재화시킴으로써 법원에 의해 형성되는 구체적 형법규범의 정당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2003-10-27
절취한 타인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경우의 죄책
I. 사실관계의 요지 피고인이 절취한 타인의 신용카드들을 정보처리장치인 현금자동인출기에 투입하고 그 단말기에 미리 알아둔 정보인 위 신용카드들의 비밀번호를 권한 없이 입력하여 정보처리를 하게 함으로써 현금서비스를 받은 사실들에 대해 원심은 무죄를 선고. - 판 결 요 지 - 절취한 타인의 신용카드로 현금자동지급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가 재물에 관한 범죄임이 분명한 이상 이를 컴퓨터등사용사기 죄로 처벌할 수는 없고, 입법자의 의도가 위 죄로 처벌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거나 유사한 사례와 비교하여 처벌상의 불균형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달리 볼 수 없다 II. 대법원 판결의 요지 우리 형법은 재산범죄의 객체가 재물인지 재산상의 이익인지에 따라 이를 재물죄와 이득죄로 명시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형법 제347조가 일반 사기죄를 재물죄 겸 이득죄로 규정한 것과 달리 형법 제347조의2는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객체를 재물이 아닌 재산상의 이익으로만 한정하여 규정하고 있으므로, 절취한 타인의 신용카드로 현금자동지급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가 재물에 관한 범죄임이 분명한 이상 이를 위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입법자의 의도가 이와 달리 이를 위 죄로 처벌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거나 유사한 사례와 비교하여 처벌상의 불균형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와 달리 볼 수는 없다(타인 명의로 무단발급받은 신용카드에 의한 사안에 관한 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2134 판결참조). - 평 석 요 지 - 재물의 취득에 해당하고, 재산상 이익의 취득으로 볼 수 없어 컴퓨터 등사용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는 문언의 형식적인 의미에 얽매인 것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컴퓨터등사용사기죄 성립을 인정 하는 것이 타당 III. 판례평석 (1) 컴퓨터등사용사기죄는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변경’하여 정보처리를 하게 하고 이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47조의 2). 오늘날 은행업무를 비롯한 금전거래분야에서 자금의 관리·결제·이동 등은 사람을 개입시키지 않고도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의해 자동처리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만약 은행의 온라인시스템의 단말기를 조작하여 허위의 입금데이터를 입력하여 예금원장파일의 잔고를 함부로 증액시킨 경우, 기존의 재산죄 구성요건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여기에는 사람에 대한 기망행위가 없기 때문에 사기죄가 되지 않으며, 재물의 점유이전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절도죄도 성립할 수 없다. 또한 행위자에게 타인을 위한 사무처리자라는 신분이 없기 때문에 배임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개정형법은 자동화된 정보처리장치에 의한 거래형태를 악용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꾀하는 행위를 규율하기 위하여 본 죄를 신설한 것이다. 이 죄는 사기죄의 보충규정이다. 따라서 만약 사무처리과정에 사람이 직접 개재하기 때문에 그를 피기망자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직접 사기죄가 적용된다고 해야 한다. 컴퓨터등사용사기죄는 `새로운 법익’을 창설했다기보다는 이미 형법상 사기죄가 보호하고 있는 법익(재산)에 대해 지금까지 형법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행위행태’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 때문에 신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2) 원래 개정형법은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는 경우만을 규정하고 있었다. 1995년의 형법개정으로 도입된 제347조의2 컴퓨터등사용사기죄는 독일형법 제263a조에서 착상된 것인데, 이 조항의 도입과정에서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는 행위만을 규정하고 ‘진정한 정보의 무권한 사용’이나 ‘변경’이 구성요건에서 누락되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사건과 같이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현금자동지급기 등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를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의율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절도죄로 의율해야 할 것인지 또는 단순히 여신전문금융업법상의 죄로 평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한 법리논쟁이 벌어졌었다. 이 문제에 대해 대법원 판례는 일관되게 절도죄의 입장을 고수하였고(대법원 1998.5.21, 98도321; 1995.7.28, 95도977 판결 참조), 학설은 절도죄설, 컴퓨터등사용사기죄설, 형법상으로는 무죄라는 설 등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입법자는 근래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는 행위가 다수 발생하였으나 기존의 법문언으로는 이러한 행태를 포괄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절도죄로 의율하기에도 법리적으로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을 받아 들여, 형법개정법률(2001.12.29, 법률 제6543호)을 통해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변경’하는 경우를 구성요건에 추가함으로써(시행일 2002.6.30) 행위태양을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3) 그런데 개정작업에 있어서 입법자의 세심하지 못한 법문언작성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행위객체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본 죄는 법문언상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행위객체로 하는 순이득죄의 형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본 사건과 같이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현금자동인출기에서 현금을 인출한 경우에, 현금은 일반적으로 재물로 평가되기 때문에 과연 순이득죄인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의율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본 대상 판례는 이에 대해 부정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고, 역시 학설의 다수설도 입법론적으로는 행위객체에 재물을 추가할 필요는 있으나 현행법규의 해석상으로는 본 죄가 순수이득죄이기 때문에 재물인 현금의 인출은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의율할 수 없다는 부정설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판례와 다수설의 입장에 서게되면 타인의 신용카드와 비밀번호를 이용하여 현금을 먼저 자기계좌에 이체시킨 뒤 인출하면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보게 되나, 직접 현금을 인출하면 본 죄의 적용가능성은 부인되고 결국 절도죄나 학설에 따라서는 무죄(여신전문금융업법의 적용 가능성은 남아 있음)로 귀결되는 결과가 된다. 반면 본 죄의 행위객체에 재물도 포함되기 때문에 현금인출이 본 죄에 의해 의율될 수 있다는 견해는 소수설에 불과하다. (4) 생각건대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성질과 조문체계 그리고 입법자의 의사 등을 고려할 때 본 죄의 행위객체인 재산상의 이익에는 재물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즉 본 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은 재물을 포함하는 일반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컴퓨터등사용사기죄는 금전거래분야에 있어서 컴퓨터의 사용으로 인한 새로운 행위태양의 출현으로 기존의 사기죄 규정이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관계들을 의율하기 위하여 사기죄의 보충규정으로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모법인 사기죄가 재산상의 이익 외에 타인의 재물을 행위객체로 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유독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서만 행위객체로서 재물을 제외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현금이나 재물은 재산범죄의 종류에 따라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순수한 이익죄인 배임죄(제355조 제2항)에서 행위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고 취득한 대상이 현금일 경우, 이 때의 현금은 재물이 아니고 당연히 재산상의 이익으로 취급된다. 반면 도박죄(제246조)는 법문언상 ‘재물’로써 도박한 경우에 성립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 때 재물의 개념에는 재물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이익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하는 것이 통설적 견해이다. 따라서 재물인 현금뿐만 아니라 부동산·동산·채권은 물론 유가증권·무체재산권을 걸고 도박한 경우에도 도박죄는 당연히 성립한다. 이와 같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개념의 폭은 문언의 형식적 의미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해당 범죄의 성질과 관련조문과의 체계를 고려한 합리적 해석을 통해 신축성 있게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본 판례는 본 죄의 해석에 있어서 입법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있으나, 반면 대법원은 본 죄가 개정되기 이전(즉 2002.6.30 이전)에 타인의 진실한 정보를 권한 없이 이용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 사례에서, 본 죄의 입법취지와 목적을 고려하여 권한 없는 자에 의한 명령 입력행위를 ‘명령을 부정하게 입력하는 행위’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는 행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죄형법정원칙에 반하는 유추해석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도 있다(대법원 2003.1.10, 2002도2363 판결 참고). 따라서 본 죄를 해석함에 있어서 입법취지와 목적, 조문의 체계와 범죄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재물을 포함하는 일반 개념으로 해석한다고 하여 이를 금지된 유추해석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문언의 가능한 의미 내에서의 합리적 해석에 의해 입법자의 올바른 의사를 확인하는 허용된 확장해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넷째, 만약 판례의 입장과 같이 본 사례에서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의율하지 않게 되면 결국 절도죄의 적용을 고려하게 될 것인데(대법원 2002.7.12, 2002다2134; 1999.7.9, 99도857; 1998.11.10, 98도2642; 1995.7.28, 95도997 판결 참조), 판례의 절도죄설에 대하여는 현금의 점유자인 은행이 현금지급기를 설치할 때 은행의 의사는 누구든지 카드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금을 인출해가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지 진정한 권리자의 현금인출만 허용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무권한자의 현금인출이 점유자의 의사에 반한 절취라고 보기 어렵다는 강력한 이의가 제기되어 있어, 절도죄의 적용에 법리상 많은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사실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행위자가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즉석에서 현금을 인출하면 절도죄가 성립하고, 반면 먼저 계좌이체를 한 뒤 현금을 인출하면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성립한다는 서로 상이한 결론을 취하는 것도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또한 계좌이체 후의 현금인출은 금융거래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추적이 용이하나, 현금인출은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오히려 후자를 가벼운 절도죄로 의율하는 것이 형사정책적으로도 합리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본 죄를 순수한 이득죄로 바라보고,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권한 없이 현금자동지급기에서 현금을 인출한 경우에는 재물의 취득에 해당하고 재산상 이익의 취득으로 볼 수 없어 본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와 다수설의 견해는 너무나 문언의 형식적인 의미에 얽매인 것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본 죄에서 재산상 이익은 재물을 포괄하는 일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본 죄에서 현금은 재물일 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이익에도 속하는 것이다. 참고로 독일 형법도 컴퓨터사용사기죄(제263조a)에서 행위객체를 재산상의 이익으로 규정해 놓고 있으나,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현금을 인출한 경우 컴퓨터사용사기죄가 성립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학설의 견해가 일치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본 사례에서는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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