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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항공운송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과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
Ⅰ. 사안의 개요 피고(중국국제항공공사)는 한국에도 영업소를 둔 중국 법인으로 이 사건 항공기의 운송인이고, 한국인인 망 A, 그 자녀들인 망 B와 C('망인들')는 출발지를 베이징, 도착지를 부산으로 하는 항공운송계약을 피고와 체결하고 항공기에 탑승했다. 항공기는 2002. 4.15. 베이징을 출발하여 김해공항에 착륙 시도 중, 항공기의 꼬리부분에서 부는 바람(배풍)의 강도가 커서 선회비행 시 활주로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면 즉시 이를 중단하고 고도를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선회비행을 계속하다가 김해공항 부근 돗대산 중턱에 부딪혀 추락했다. 망 A의 모이자 망 B와 C의 외조모인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망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단독 상속인으로서 손해배상을 청구함과 동시에, 유족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Ⅱ. 각급 법원의 판단 1. 1심판결 1심판결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한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사고에 관하여 항공여객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이므로 국제사법(제32조)에 의하여 한국법이 적용된다. 또한 한국은 1967년 1월 '1929. 10.12.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의 통일에 관한 협약('바르샤바협약')을 개정하기 위한 의정서'('헤이그의정서')에 가입했으므로 바르샤바협약은 헤이그의정서에 의하여 개정된 내용대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개정협약'), 국제항공운송에 관한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일반법인 민법에 대한 특별법으로 우선 적용되는데 중국도 바르샤바협약에 미가입한 채 헤이그의정서의 체약국이 되었고, 이 사건 항공운송계약은 헤이그의정서가 적용되는 국제항공운송이므로 이 사건에는 개정협약이 적용된다. 피고는 자신 및 그 고용인 또는 대리인들이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거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점에 관하여 주장·입증이 없으므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망인들과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피고는, 개정협약(제22조 제1항)에 따른 책임제한(승객당 250,000 프랑스 골드프랑)을 주장하나, 사고경위에 비추어 기장 등의 행위는 '무모하게 그리고 손해가 아마 발생할 것이라는 인식으로써 행하여진 것'이므로 책임제한규정을 원용할 권리가 없다(제25조). 2. 원심판결 원심판결도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보았으나 개정협약은 언급하지 않았다. 3. 대법원판결 대법원판결은 준거법을 논의하지 않았다. 대법원판결은 항공기사고로 인한 불법행위의 경우 통상의 교통사고와 달리 위자료 산정에 있어 참작할 특수한 사정이 있음을 강조하고, 사실심 법원은 그 사정도 함께 참작하여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해야 하는데, 원심은 재량의 한계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 중 위자료에 관한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했다. 이는 원고의 청구를 불법행위로 성질결정하고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본 것이다. 준거법이 중국법이면 위자료 산정도 중국법에 의하는데 중국 최고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사망자 본인의 위자료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서울고등법원 2009. 6.19. 선고 2006나30787 판결).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대상판결은 모두 한국법을 적용하여 위자료를 포함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이 결론은 정당화될 여지도 있지만 논거는 의문이다(논거가 없는 대법원판결 제외). 이하 ① 청구원인 ② 개정협약의 적용근거와 ③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위자료 등)와 범위의 준거법을 살펴본다. 2. 청구원인에 관한 논점 가. 청구원인 항공운송사고에서 피해자(또는 그 상속인)는 청구원인으로서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을 선택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다만 판결문상으로는 청구원인이 애매하다. 왜냐하면 1심판결과 원심판결은 "이 사건은 … 항공여객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판시하고, 나아가 "… 피고는 위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 망인들 및 원고가 입은 손해를 …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으며, 원심판결은 결론에서 '불법행위일'이라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1심판결과 원심판결이 불법행위의 연결원칙을 정한 국제사법 제32조만을 언급하므로 불법행위책임을 다룬 것으로 보이고, '항공기사고로 인한 불법행위의 경우'라는 설시를 보면 대법원판결도 같다. 계약관계가 없는 원고가 유족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근거는 불법행위책임이다. 나. 청구원인과 준거법 국제사법상 청구원인은 준거법 결정 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불법행위의 준거법은 국제사법 제32조에 의해, 계약의 준거법은 제25조에 의해 결정된다. 양자의 준거법이 다르면 청구권경합 여부의 판단이 어렵다. 1심판결과 원심판결이 채무불이행책임에도 제32조가 적용되는 듯이 설시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책임을 묻든 이는 개정협약이 정한 조건 및 제한 하에서만 허용되므로(제24조 제1항. 대법원 1986. 7.22. 선고 82다카1372 판결), 준거법 결정의 실익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개정협약이 손해배상책임의 모든 측면을 규율하는 것은 아니고, 아래에서 보듯이 승객의 사망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을 규율하지 않으므로 그의 준거법 결정은 실익이 있는데 이는 계약책임인가 불법행위책임인가에 따라 다르다(개정협약 제17조는 독자적 청구기초를 창설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3. 개정협약 적용의 근거 조약의 적용범위를 정한 규정은 조약의 적용범위를 정함과 동시에, 법정지 국제사법에 대한 특칙이다. 그 한도 내에서는 조약이 국제사법에 우선한다. 즉 어떤 항공운송계약이 개정협약이 규율하는 국제항공운송계약에 해당되면 우리 국제사법의 연결원칙에 우선하여 개정협약이 적용된다. 이 사건에 개정협약이 적용되는 것은 그 요건이 구비되기 때문이지 불법행위(또는 계약)의 준거법이 한국법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1심판결(원심판결과 대법원판결은 아님)은 준거법이 한국법이라고 본 뒤 이어서 개정협약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혹시 준거법이 한국법이면 한국이 가입한 조약이 적용되고, 준거법이 외국법이면 그 외국이 가입한 조약이 적용된다고 본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이 사건에서 한중 모두 개정협약의 당사국이므로 실익은 없다). 왜냐하면 과거 개정협약에 가입한 한국과 바르샤바협약에 가입한 미국 간 국제항공운송에 개정협약을 적용한 대법원 판례(위 대법원 82다카1372 판결 등)의 이론적 근거로서 그런 견해가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한국법이 준거법인 경우 한국이 가입한 조약이 국내법에 대한 특별법으로서 적용되자면 그것이 조약의 적용범위에 속할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다만 이는 1999년 3월 미국에서 몬트리올 추가의정서(No. 4)의 발효로 해소되었다). 4. 항공운송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 국제사법(제32조)상 불법행위의 준거법은 불법행위의 요건과 효과를 규율한다. 그에는 불법행위능력, 위법성, 인과관계, 귀책사유, 손해배상청구권자, 청구권의 양도가능성과 상속가능성, 손해배상의 방법, 종류, 범위, 금액과 금지청구권 등이 포함된다. 가. 개정협약의 규정 바르샤바협약은(개정협약도) 국제항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의 모든 측면을 규율하지는 않는다(제21조, 제22조 제1항, 제25조과 제28조 제2항은 법정지법에 의할 사항을 명시한다). 다만 제24조 제2항의 해석은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제18조 및 제19조에 정하여진 경우에는, 책임에 관한 소는 명의의 여하를 불문하고 본 협약에 정하여진 조건 및 제한 하에서만 제기할 수 있고"(제24조 제1항), "전항의 규정은 제17조에 정하여진 경우에도 적용된다. 다만 소를 제기하는 권리를 가진 자의 결정 및 이러한 자가 각자 가지는 권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제2항) 때문이다. 즉 바르샤바협약은(개정협약도) 승객의 사망 또는 신체상해로 인한 손해에서 손해배상청구권자와 손해배상의 종류, 범위 등을 규율하지 않는데, 이는 항공사에 대해 누가, 어떤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는지는 규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규정한 이유는 1929년 당시 많은 국가에서, 특히 영미법계국가에서 승객 사망 시 손해배상규칙이 발전하지 못했고 있더라도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나. 개정협약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의 준거법 따라서 개정협약상 승객의 사망 또는 신체상해를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청구를 하는 경우 위 사항들(이 사건에서 망인들과 원고의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의 준거법이 문제된다. 그것이 법정지법에 의한다는 점은 널리 승인되나 법정지법이 국제사법인지 실질법(민법 등)인지는 세계적으로 논란이 있다. ①설(법정지 국제사법설): 이는 법정지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협약이 없었더라면 적용되었을 준거법에 의한다. 법정지가 한국이면 불법행위의 연결원칙을 정한 국제사법(제32조)에 의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지도적인 Zicherman v. Korean Air Lines 사건 판결(516 U.S. 217, 229 (1996))은 이를 명시했고 동경지재 1997. 7.16. 판결도 같다(양자는 결국 자국법을 적용했다). 양자는 1983. 9.1. 자행된 구 소련의 야만적인 KAL 007기 격추에 기초한 사건이었다. 그 논거는 개정협약은 일부규칙만의 통일을 의도하는 점과,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은 실무상 중요하므로 ②설을 취할 의도라면 제24조 제2항에서 그를 명시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②설을 따르면 법정지와 사건 간의 관련성이 희박할 수 있고 법정지쇼핑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②설(법정지 실질법설): ②설의 논거는, 국제항공운송계약에 대해 국제사법에 의해 결정된 준거법을 적용하는 데 따른 법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국제적 통일규범을 제정하려는 바르샤바협약의 근본목적에 있다(Mankiewicz). 이는 제24조 제2항이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을 묵시적으로 법정지법에 회부했다고 본다(독일은 바르샤바협약시행법률(DGWB) 제1조에서 독일 항공운송법을 적용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했고 영국도 같다). 이는 법적용이 쉽고, 동일 법정지에 제소된 사건에 동일한 실질법을 적용하는 장점이 있다. 별 논의는 없지만 한국에도 ②설이 있고(김두환, 김종복), 1989년 리비아 트리폴리공항 부근 KAL기 추락사고에서 서울민사지법 1993. 1. 15. 선고 91가합55778 판결도 ②설을 취한 것 같다. 생각건대 개정협약의 취지상 ②설이 옳아야겠지만 문언상 ①설이 설득력이 있다. 더욱이 개정협약이 연결원칙을 두지 않으면 일반원칙에 의해야 한다. 문제는 ①설의 경우 망인들(원고는 아님)의 손해배상청구를 계약책임에 종속적으로 연결할지(국제사법 제32조 제3항) 여부이다. 특정국가의 법이 운송계약의 준거법이면 종속적 연결을 하겠지만, 계약이 분열되어 일부는 특정국가의 법에, 다른 일부는 조약에 따를 경우 긍정설(①-1)과 부정설(①-2)이 가능하다. ①설의 경우 준거법이 외국법이면 반정(renvoi)이 문제되나 종속적 연결 시 이는 배제된다. 이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준거법을 다투지 않았다면 준거법의 사후적 합의(국제사법 제33조)를 인정할 수도 있다. 입법론으로는 독일식 해결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가 계약책임을 묻는다면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은 계약의 준거법에 의한다. 2007년 12월 한국에서 발효된 1999년 몬트리올협약(제29조)은 개정협약(제24조)을 수정하여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에 몬트리올협약이 적용되고 제24조 제2항의 예외가 수화물 및 화물손해에도 적용됨을 명시하고, 징벌배상을 배제하나(개정협약상 징벌배상을 배제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위 쟁점은 몬트리올협약에서도 여전히 문제된다. 어느 견해든 법정지가 중요하므로 국제재판관할을 정한 개정협약(제28조 제1항)을 주목해야 하는데 몬트리올협약(제33조)은 제5관할을 추가했다. 다. 대상판결의 태도 대상판결은 모두 한국법을 적용하였으므로 결론은 ②설과 같다. 하지만 대상판결(대법원판결 제외)은 불법행위지법으로서 한국법을 적용했으므로 ②설은 아니고, 오히려 우리 국제사법을 적용한 점에서 ①설처럼 보이나 종속적 연결을 외면한 점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상판결의 결론은 ①설을 따르면서 국제조약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종속적 연결을 배척하고 행위지법원칙을 적용한 것(①-2)과 같지만 대상판결이 이런 논리에 입각한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이런 태도는 위 서울민사지법 1993년 판결과는 다르다. 만일 종속적 연결을 긍정하면(①-1) 운송계약의 준거법과 불법행위의 준거법도 중국법일 수도 있다. 5. 맺음말 1심판결은 불법행위의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본 뒤 개정협약을 적용했고, 대상판결은 모두 제24조 제2항을 외면했다. 그러나 개정협약을 적용한 뒤, 제24조 제2항의 해석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에 대해 불법행위지법(아니면 법정지 실질법)인 한국법을 적용하되, 전자라면 종속적 연결을 검토했어야 한다(계약책임을 물었다면 그 준거법에 따랐어야 한다). 제24조 제2항의 의미는 우리 법원이 벌써 정리했어야 마땅한 쟁점이다. 1983년 KAL 007기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지도적 판결과 일본의 하급심판결이 나왔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하급심판결(서울고등법원 1998. 8. 27. 선고 96나37321 판결 등)은 있었지만 위 쟁점은 무시되었다. 이는 우리 법률가의 국제조약에 대한 이해 부족과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에 기인한다. 우리 항공사들은 세계 유수의 항공사로 성장했건만 우리 법률가는 대부분 여전히 국내법에 매몰되어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2010-02-08
공소사실 동일성의 판단기준
1. 사실관계 검사는 피고인을 "피고인이 2004. 3.22. 22:00경 포천시 일동면(이하 생략)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다가 발로 피해자의 배와 가슴 부위를 수회 차 피해자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흉부좌상을 가하였다"는 범죄사실로 공소를 제기하였다가 원심(항소심)의 공판기일에 위 공소사실을 "피고인이 2004. 3.22. 22:00경 포천시 일동면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다가 발로 피해자의 배와 가슴 부위를 수회 차 피해자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흉부좌상을 가하고, 계속하여 부엌 뒤에 있는 창고에서 위험한 물건인 전지가위를 가지고 와 거실바닥에 쓰러져 있는 피해자에게 들이대며 '너 오늘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여 피해자를 협박하였다"는 것으로 범죄사실을 추가하고, 죄명 및 적용법조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집단·흉기 등 협박)"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2조 제1항 제1호, 형법 제283조 제1항"을 추가하는 내용의 공소장변경신청을 하였고, 원심법원(항소법원)은 공판기일에 검사의 공소장변경신청을 허가한 다음 2004. 3.22.자 상해의 접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2004. 3.22.자 흉기 휴대 협박의 점에 대해서는 유죄판결을 각 선고하였다. 검사와 피고인의 상고에 의하여 사건이 상고심에 계속중 상고법원(대법원)은 직권으로 원심의 유죄판결(2004. 3.22.자 흉기 휴대 협박의 공소사실에 대한 유죄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면서 판결이유에서 '… 피고인에 대하여 공소가 제기된 당초의 범죄사실과 검사가 공소장변경신청을 하여 추가한 범죄사실은 범행장소와 피해자가 동일하고 시간적으로 밀접되어 있기는 하나 그 수단, 방법 등 범죄사실의 내용이나 행위태양이 다를 뿐만 아니라 죄질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어 그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심이 이 사건 공소장변경신청을 허가한 다음 변경된 범죄사실에 대하여 심판한 것은 위법하다고 할 것이므로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공소장변경신청에 대하여 기각결정을 하거나 허가결정을 취소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원래 공소가 제기된 당초의 범죄사실을 대상으로 심리하여 판결을 했어야 함에도 당초의 범죄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은 추가된 범죄사실에 대하여 심리하여 유죄를 선고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공소사실의 동일성 내지 공소장변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 설시하고 있다. 2. 판례요지 대법원판례는 공소사실의 동일성의 판단기준에 관하여 '공소사실의 동일성은 그 사실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하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나 이러한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기능을 염두에 두고 피고인의 행위와 그 사회적인 사실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규범적 요소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기본적사실동일설을 취하고 있다. 즉, 당초에 공소제기된 범죄사실(2004. 3.22.자 상해의 범죄사실)과 그 범죄사실과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2004. 3.22.자 흉기 휴대 협박의 범죄사실)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아니하여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공소장변경이 허용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대법원판례의 이론구성이다. 공소사실의 동일성의 판단기준에 관한 기본적사실동일설은 대법원판례의 확립된 견해이며 일본 최고재판소판례도 기본적사실동일설을 취하고 있다. 3. 기본적사실동일설에 대한 비판 기본적사실동일설에 의하면 절도죄의 범죄사실(공소사실)과 그 절도죄의 장물을 보관한 범죄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백형구). 절도죄와 장물보관죄는 범죄의 일시·장소·방법 등 기본적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적사실동일설에 의하면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두 범죄사실 사이에 범죄사실(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한 점에 대한 합리적 이론구성이 불가능하다.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수개의 범죄사실에 관해서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 여부가 문제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 사실동일설에 대해서는 그 이론적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기본적사실동일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있다(이재상, 신동운, 송광섭, 진계호, 임동규, 신양균, 정웅석). 4. 범죄행위동일설의 지지 공소사실의 동일성의 판단기준에 관하여 범죄행위동일설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백형구). 범죄행위동일설은 구성요건적 평가 이전의 사회적 행위로서의 범죄행위의 동일 여부를 기준으로 공소사실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이다(백형구). 범죄행위동일설에서의 범죄는 헌법 제13조 제1항의 범죄와 동일한 의미이다. 헌법 제13조 제1항의 '동일한 범죄'에서의 범죄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유책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구성요건적 평가 이전의 역사적·사회적 행위로서의 범죄행위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범죄행위동일설의 이론구성이다. 예컨대 B가 A의 행위에 의해서 사망한 경우에 A의 행위에 대한 구성요건적 평가가 수사 또는 심리의 결과에 따라 살인·강도살인·강도치사·강간살인·강간치사·상해치사·폭행치사·업무상과실치사·중과실치사·과실치사 등과 같이 다른 경우에도 그 각 행위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것은 B가 A의 행위에 의해서 사망하였다는 역사적·사회적 행위로서의 범죄사실이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범죄행위동일설의 이론구성이다. 범죄행위동일설은 구성요건적 평가 이전의 사회적 행위로서의 범죄행위의 동일 여부를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사실동일설과 기본적 입장을 같이 하고 있으나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 여부를 그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본적사실동일설과 다르다. 두 범죄사실의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다는 것과 두 범죄사실의 범죄행위가 동일하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범죄행위동일설에 의하면 기본적사실동일설의 이론적 약점이 해소된다. 절도죄의 범죄사실과 장물보관죄의 범죄사실 사이에는 범죄의 일시·장소·방법·행위태양 등 기본적 사실관계가 다르지만 동일인이 동일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하여 그 재물(장물)을 운반·보관하는 일련의 행위는 사회적 의미에서 1개의 범죄행위이고 그 재물의 절취행위와 그 재물의 보관행위는 1개 범죄행위의 부분적 행위이므로(절도죄가 성립하는 경우 장물보관행위가 불가벌적 사후행위로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재물의 절취행위와 그 재물(장물)의 보관행위 사이에는 범죄행위의 동일성이 인정된다. 범죄행위동일설에 의하면 절도죄의 범죄사실과 그 장물을 취득하였다는 범죄사실 사이에 범죄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점에 관한 합리적 이론구성이 가능하나 기본적사실동일설에 의하면 그 합리적 이론구성이 불가능하다.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두 범죄사실 사이에 범죄사실(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한 것은 두 범죄사실 사이에 기본적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두 범죄사실이 별개의 범죄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라는 이론구성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두 개의 범죄사실에 관해서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 여부가 문제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소사실의 동일성의 판단기준에 관해서는 범죄행위동일설이 이론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5. 판례평석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공소사실)과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을 공소사실로 추가하는 내용의 공소장변경신청이 있는 경우 수소법원은 공소사실(범죄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그 신청을 기각해야 한다는 대법원판례와 흉기 휴대 협박의 범죄사실을 공소사실로 추가하는 공소장변경신청을 허가한 후 흉기 휴대 협박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항소심판결)은 위법하다는 대법원판례는 타당하다. 그러나 상해의 범죄사실과 흉기 휴대 협박의 범죄사실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대법원판례는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두 개의 범죄사실 사이에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 여부가 문제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상해의 범죄사실)과 경합범의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흉기 휴대 협박의 범죄사실)은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별개의 범죄사실이기 때문에 공소사실(범죄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이론구성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공소사실의 동일성의 판단기준에 관해서는 범죄행위동일설이 타당하다고 본다.
2009-12-21
자동차종합보험상 플러스보험 관련 보험사기
I. 대상판결 서울서부지법 2009. 9.30. 선고 2009고합128 가. 사안의 개요 피고인은 2007. 10.2.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2008. 12.4. 같은 죄 등으로 금고 4월을 선고받은 자인데,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해차량의 운전자에게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운전자보험’에 가입한 다음 노인들을 상대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후 허위로 교통사고 신고를 해 보험금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1) 살인미수 피고인은 2008. 3.4. 충남 서천군 소재 도로에서 액센트 차량을 운전하여 피해자 최모(여, 69세)씨를 들이받아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에게 약 8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뇌진탕 등의 상해를 가하고 미수에 그쳤다. (2) 사기, 사기미수 피고인은 2007. 5.14. 충남 보령시 소재 도로에서, 티코승용차를 운전하여 김모(여, 74세)씨를 들이받아 사망하게 한 후, 3개의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1억2,800여만원(그 중 7,370만원이 피고인에게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됨)을, 2008. 3.4. 충남 서천군 소재 도로에서 위와 같이 액센트 차량을 운전하여 최모씨를 들이받아 약 8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뇌진탕 등의 상해를 입게 한 후, 3개의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1,740여만원을, 2008. 9.5. 충남 서천군 소재 해안도로에서 싼타페 승용차를 운전하여 박모(여, 66세)씨를 들이받아 사망하게 한 후 3개의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1억700여만원(그 중 4,000만원이 피고인에게 형사합의지원금으로 지급)을 각 편취하였고, 2008. 9.12.경 다른 보험회사에 허위로 교통사고 신고를 하였으나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여 미수에 그쳤다. 나. 법원의 판단 피고인의 김모씨, 박모씨에 대한 각 살인의 점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이미 처벌받아 다시 처벌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살인미수, 사기, 사기미수의 죄질이 불량한 점 등을 들어 피고인에게 징역 합계 15년을 선고하였다. II. 자동차종합보험상의 플러스보험의 문제점과 관련 보험사기 억제 1. 서설 이 글은 최근의 위 대상판결에 대한 판례 평석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위 판결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이목을 끄는 위 판결을 소개하는 정도를 넘지는 아니하였다. 필자는 서울남부지법에서 1년 동안 교통사고 관련 형사사건을 전담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느낀 소회와 위 대상판결을 접하면서 느낀 당혹감과 충격이 어우러져 위 대상판결 보험사기 범행과 같은 모방범죄를 규제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이에 관한 입법적 대안까지 포함하여 대책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만약 피고인이 단 한 건의 교통사고를 저지르는 데 그쳤다면 가해자의 고의를 밝히는 것이 극히 어려운 교통사고의 특성상 완전범죄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이르면, 이 사건 보험사기 범행과 같은 모방범죄의 위협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급박한 양상을 띤다고 본다. 2. 일반적인 교통사고 관련 보험사기 범죄와 이 사건 보험사기 범죄의 구별 일반적인 교통사고 관련 보험사기는 보험회사의 재산적인 피해, 더 나아가서는 보험가입자 일반에의 피해 전가, 음주운전, 중앙선침범 등의 약점을 가진 피해자의 형사처벌 등의 사회적 해악이 발생하나 범죄자 자신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다치는 것을 예상하고 저지르는 범죄인 경우가 많아 교통사고 자체로 인한 피해자의 인명피해는 그다지 중하지 않은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 사건 보험사기는 피해자의 생명이 침해되어 형사합의금이 많이 책정되는 상황일수록 범죄자의 범죄로 인한 이득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다르다. 3.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처벌받은 경우 다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일사부재리원칙과의 관계 위 대상판결이 적절하게 판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보험사기, 살인 또는 살인미수 피의자가 이미 같은 교통사고에 관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때에는 확정판결의 효력에 의하여 동일한 교통사고의 원인이 운전자의 과실이 아니라 보험사기를 노린 계획적 살인임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사기죄로 추가 의율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재차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정책적인 면에서 이러한 처벌의 흠결은 더더욱 이 사건 보험사기 유사범죄에 대한 대처가 더욱 절박한 문제가 되게 하며 이에 대한 대처가 즉각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강구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할 것이다. 4. 자동차보험상 플러스보험의 의의와 그 실태 가. 플러스보험의 의의 자동차보험상 플러스보험(이하에서는 ‘플러스보험’이라고만 한다)은 피보험자가 피해자에게 부담하는 손해배상액을 초과하여 피보험자가 피해자 측에게 지급하는 형사합의금을 지원하는 형사합의지원금, 자동차보험료 할증지원금, 방어비용(민사소송상의 방어비용 제외, 상법 제720조 제1항), 면허정지위로금 등을 추가로 지급하는 보험을 통칭하며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보험상품군을 통칭하는 것이며 보험자가 보험사고로 인하여 생길 피보험자의 재산상의 손해를 보상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보험료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인 손해보험계약의 일종이다. 손해보험으로서의 특성을 가지므로 실제 발생한 손해를 조사하여 그 손해만을 보상하며 보험가액이나 실제손해 이상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이득금지원칙이 적용된다. 나. 플러스보험의 실태 보험금 지급의 실태와 관련하여 주된 항목인 형사합의지원금의 경우를 보면 그 특성상 피해자 측과의 합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어서 피보험자로서는 피해자 측과의 합의를 통하여 보험계약상 인정되는 최고금액까지 금액을 늘릴 수 있게 되어 보험자로서는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실제 지급한 형사합의금을 따지지 아니하고 보험계약상 인정되는 최고한도의 금액을 지급하게 된다.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플러스보험의 실태를 보면 형사합의지원금, 자동차보험료 할증지원금, 방어비용, 면허정지위로금 명목으로 피보험자에게 추가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는데 형사합의지원금으로 피해자 사망시 최대 2,000만원 내외, 방어비용으로 대개 500만원 정도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5. 형사합의금의 의의와 관련 실무 가. 형사합의금의 의의 형사합의금이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형사사건에서의 선처를 위하여 가해자가 피해자 측에 지급하는 금원을 말한다. 형사실무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얼마의 금원을 지급하며, 이 금원은 피해자 측이 민사상 지급받는 손해배상액 또는 보험회사에 대한 보험금지급청구권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형사위로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다’라는 등의 문구로 표시되며, 이러한 형사합의금은 법적으로 강제되는 돈이 아니라 오로지 가해자가 형사사건에서 선처를 받기 위하여 지급되는 것이다. 나. 형사합의금 관련 실무 피보험자가 피해자 측을 위하여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지급하는 경우 이를 보험회사에 구상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 측은 형사합의금이 손해배상금의 일부가 아니라 오로지 형사위로금임을 표시하여 피해자 측이 보험회사로부터 지급받을 보험금에서 가해자로부터 직접 지급받은 금원을 공제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만, 가해자가 피해자 측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여 법원에 금원을 공탁한 때에는 가해자가 보험회사에 공탁금액 상당의 금원을 구상할 채권을 피해자 측에 양도하고 위 금원이 오로지 형사위로금임으로 표시하며, 제3채무자인 보험회사에 이를 통지함으로써 공탁된 금원이 사실상 형사위로금으로 기능하게 하여 형사재판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법원 실무에서 민사상 손해배상액 중 보험자가 피해자 측에 지급할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은 형사합의금 액수를 고려하는 예가 보이는데, 이는 피보험자의 재산 출연을 통하여 부당하게 보험자가 면책되는 결과가 되고, 형사합의금의 기능을 저해하는 것이 되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6. 이 사건 보험사기 유사범행의 억제방안 가. 피보험이익과 초과보험의 무효 규정 초과보험이 보험계약자의 사기로 체결된 경우 그 보험계약은 전부 무효가 된다(상법 제669조 제4항). 그런데 플러스보험은 피보험자가 피해자 측에 지급하는 형사합의금 등을 부보하는 것이므로 형사합의금은 당사자의 합의, 협상력에 의하여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는 것이 되어 형사합의금 항목에 관하여는 초과보험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논할 실익이 별로 없다. 중복보험에 있어 보험금액의 합계가 보험가액을 초과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초과보험이 되고, 중복초과보험이 보험계약자의 사기로 체결된 때에는 그 보험계약 전부가 무효로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상법 제672조 제3항, 제669조 제4항), 형사합의금 항목의 위와 같은 특성상 중복보험의 경우에도 초과보험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으므로, 피보험이익을 따져 중복보험을 규제하려는 노력은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한편, 중복보험의 경우 보험계약자는 각 보험자에 대하여 각 보험계약의 내용을 통지하도록 되어 있는데(상법 제672조 제2항), 이를 어긴 경우 어떠한 효과가 발생하는지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이 없다. 그 효과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는 터에 그것만으로 보험계약을 무효로 볼 수는 없다. 나. 약관규제당국에 의한 규제 가능 여부 이 사건 플러스보험에 따른 보험가입자의 두터운 보호와 플러스보험의 중복가입으로 인한 폐해가 위 판결의 사안과 같이 일반인을 상대로 한 무자비한 보험사기 및 살인 범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약관규제당국이 형사합의지원금 액수에 제한을 가하고, 중복보험의 경우 미통지시 플러스보험 부분에 한하여 무효화하는 규정 등을 두도록 행정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 법원실무상의 주의사항 앞으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면책 여부나 양형상의 고려를 위하여 ‘종합보험가입사실원’을 제출받음에 있어, 특히 교통사고의 발생 원인이 비전형적이고 중과실로 판단되는 경우 가해자가 플러스보험에 추가로 가입되어 있는지와 플러스보험상의 형사합의지원금 상당액이 피해자에게 실제로 지급되었는지를 살피고, 플러스보험이 중복가입된 경우에는 과실 여부의 판정에 있어 특별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라. 신속한 양형기준 설정 대상판결의 사안에서와 같은 신종 보험사기 범행이 가능하게 한 자양분 역할을 한 요인 중의 하나로 교통사고사범에 대한 온정적인 양형을 들 수 있겠다. 피해자가 노인인 경우에는 그 합의금이라는 것도 1,0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피해자 측과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의 중과실로 인한 교통사고 범행에 대하여도 온정적인 양형을 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이 사건 보험사기 범행과 같은 행위가 가능하게 된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살인죄, 뇌물범죄, 성범죄, 강도범죄, 횡령겧窩達滑? 위증범죄, 무고범죄에 관하여 양형기준을 설정하였고, 순차적으로 다른 범죄에 대하여 양형기준을 준비하고 있는데, 교통사고범에 관한 양형기준도 시급하게 필요하다. 마. 입법론적 해결방안-피해자의 직접청구권 인정의 필요성 책임보험에 있어서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대하여 제3자가 그 배상을 받기 전에는 보험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피보험자에게 지급하지 못하며(상법 제724조 제1항), 제3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상법 제724조 제2항).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도 피해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법 제9조). 한편,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시에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상법 제731조 제1항). 이 사건 플러스보험은 보험계약자가 지출하는 형사합의금 등을 부보하는 것이고, 형사합의금이라는 것이 민사 손해배상금과는 구별되어 지급이 강제되는 것도 아니어서 별도의 근거규정 없이 보험계약자가 보험자로부터 받게 되는 형사합의지원금 등에 대하여 피해자가 바로 지급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사망 등으로 인하여 교통사고 가해자가 받게 되는 형사합의지원금은 마치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이득을 취득하는 것이 되고, 그 금액도 상당한 액수에 이르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플러스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피해자 측이 보험자에 대하여 직접 형사합의지원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형사실무에서는 피해자 측이 그러한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피해자 측과 합의한 것으로 보아 양형을 하는 방안이 적절해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책임보험의 절이라 체계상 부적절한 면이 있으나 상법 제724조에 별도의 항을 두어, ‘자동차종합보험에 부가하여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형사합의금, 형사위로금, 형사보상금 등 민사상 손해배상금 외에 형사재판 등에서의 유리한 처분을 받기 위하여 지급되는 명목의 금원의 지급을 부보하는 경우에는 피해자 또는 그 상속인은 약정 보험금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입법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7. 결어 위 판결이 위 신종 보험사기와 그 수단으로서의 살인범행에 대하여 엄정한 양형을 한 것과 일사부재리원칙에 근거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으로 처벌받은 부분에 대하여 재차 살인죄로 의율할 수 없다고 본 것은 타당하다. 실정법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법원의 주된 임무여서 범죄의 진압과 관련하여 입법론을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아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실정법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목적이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본다면, 이 또한 법원의 임무라고 본다.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여 생명권 침해라는 중대한 법익침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이 사건 신종 보험사기 범죄를 접한 마음의 충격을 전하면서 부족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009-11-30
의사의 형사상 과실인정을 위한 요건 및 판단기준
Ⅰ.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경북대학교 병원 소아외과 전문의인 바, 2005. 12.12. 08:55경부터 10:20경까지 위 병원 소아과로부터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피해자 공소외 1(여, 5세)을 상대로 계속적인 항암치료를 위하여 전신마취를 하고 ‘카테터(catheter)’ 및 이에 연결된 ‘케모포트(chemoport)’를 피해자의 우측 쇄골하 중심정맥 및 우측 흉부에 삽입하는 수술(이하 ‘이 사건 수술’이라 한다)을 함에 있어서, 피해자는 백혈병 환자로서 혈소판 수치가 지극히 낮아 수술시 지혈이 어려운 상태에서 주사바늘로 피해자의 우측 쇄골하 중심정맥을 찾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우측 쇄골하 부위를 10여 차례에 걸쳐 지나치게 찔러 혈흉을 발생시켜, 같은 날 10:45경 위 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공소외 2가 피해자를 상대로 흉강 삽관술 등 지혈조치를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14:20경 위 병원 중앙수술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던 중 우측 쇄골하 혈관 및 흉막 관통상에 기인한 외상성 혈흉으로 인한 순환혈액량 감소성 쇼크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Ⅱ. 판결의 요지 하급심법원은 피고인에게 형사상의 과실을 인정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은 ① 의사는 진료방법을 합리적인 범위내에서 선택할 재량을 가지며, ② 피고인이 중심정맥을 찾기 위하여 10회 정도 쇄골하 부위를 주사바늘로 찔러 혈관 및 흉막에 손상을 가하여 혈흉을 발생시켰다는 사실만으로 형사상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Ⅲ. 문제의 제기 본고는 의료과오사건에서 의사에게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의사는 전문적 직업인이며 의료는 기본적으로 ‘허용된 위험’의 법리가 적용되는 영역인 사회적 기능과 요청에 비추어 볼 때에 의료과실은 결과론으로부터 논하여서는 안될 것은 물론이고, 그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이를 덮어 놓고 형사문제로 대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것이라는 문제점을 판단 검토하고자 한다. Ⅳ. 의사의 형사상 과실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 및 그 판단 기준 1. 의료과오의 특성 의료행위에 관한 형사책임의 특성은 ① 환자의 질병의 태양 및 생체의 반응은 매우 복잡 다양할 뿐더러 미해명된 영역이 다수 존재하여 생기는 진료의 곤란성, ② 현대의학 수준의 발달에 따라 진료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어 생기는 진료행위의 재량성. ③ 의사가 치료 도중에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태에 따라 적절한 판단에 의하여 임기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경우가 많은 긴급성·단행성(진행성), ④ 의사의 치료행위 자체가 바로 인체에 위험을 주는 침해가 될 수도 있는 실험성, ⑤ 의료행위 자체가 환자측의 협력행위까지 포함되는 공동성, ⑥ 현대의 의료구조가 분업적 형태를 갖추는 경우에 자신이 분담한 의료영역에 대해서만 형사책임을 지는 개별책임성, ⑦ 의료행위는 의사와 환자만이 있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밀행성, ⑧ 의료사고의 형사법적 처리에 있어서는 그것이 사회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사회현실성이 있다. 2. 의사의 객관적 주의의무위반 의료과실에 관한 분석을 위해서는 형법상 과실범의 객관적 구성요소인 의사의 객관적 주의의무위반이 있어야 하고, 의사의 객관적 주의의무는 사회공동생활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것으로 과실범의 행위 반가치를 말하며, 의료 당시의 의술의 일반적 수준에서 그 의료인이 통상적으로 기울여야 하는 결과발생 예견의무와 결과발생 회피의무를 내용으로 한다. 의료과오사건에서 의사의 과실 판단 기준은 사전 단계의 제 사정에 근거한 선택의 당부에서 구해야 하며, 결과론적인 사후판단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된다. 3. 인과관계 의료과오로 형법상 과실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적 결과가 적어도 행위자의 객관적 주의의무위반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야기된 것이어야 하고, 인과관계의 존부가 불분명한 때에는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에 따라 무죄의 추정이 이루어진다. 4. 재량성 의료현상은 인체의 질병의 태양이나 생체의 반응 등이 매우 복잡 다양하고 미해명된 영역이 다수 존재하는 동시에 의료행위 자체가 고도의 전문지식과 의술을 요하여 의학상의 준칙에도 복수의 치료방법이 있으므로, 의사에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소신껏 의료행위를 하도록 의사의 판단에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재량성을 인정하여야 하고, 법적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진료기피 및 위축의료의 현상을 막아 의료의 본래 목적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의료행위에 있어 재량의 합리성은 의사에게는 발전하는 의학의 수준을 따라 가도록 늘 노력해야할 의무가 부여되고, 치료수단의 선택에 있어서도 의사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여러 가지의 치료방법들 중에서 환자의 질병상태를 고려하여 가장 위험성이 적은 방법을 취해야 하고, 분업적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관여된 개개의 의료인들에게 특수한 의무가 더 부과되고 동료의료인의 선택이나 감독, 그들과의 협력, 정보교환 등의 의무가 더 부과된다는 점에서 의사의 재량권이 제한된다. Ⅴ. 대법원판결의 평석 1. 의사의 재량성 본 대법원판결은 의료과오사건에 있어서 ① 의료과오사건에서 의사의 형사상의 과실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 및 그 판단 기준과 의사가 가지는 재량의 범위 및 그에 관한 과실 유무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 판단한 점과 ② 의료행위는 ‘허용된 위험’의 법리가 적용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의사의 재량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 엄격한 증명 본 대법원판결은 의사는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항암치료를 위해서는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고, 쇄골하 정맥에 중심정맥도관을 삽입하기 위하여 쇄골하 부위에 주사바늘을 찌른 진료방법의 선택이 합리적인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피고인은 수술을 마친 직후 혈흉으로 의심되는 음영을 확인하고 흉부외과에 연락을 취하였고, 흉부외과 전공의가 흉관삽관술을 시행하였다는 점을 들어 의사의 과실 책임을 부정하여,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점에 비추어 볼 때에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3. 의사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의 신중성 본 대법원판결은 의료법상 진료거부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고, ‘허용된 위험’의 법리가 적용되는 영역인 의사의 사회적 기능과 요청에 비추어 볼 때에 의료과실은 결과론으로부터 논하여서는 안되고, 그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민사배상으로 하고 형사처벌은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판단 내용에 포함시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법은 헌법상의 신체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가장 가혹한 제재를 그 수단으로 하고 있고, 최후수단성,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형법이 의료영역에 무모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의료형법은 극히 좁은 범위의 의료과오만을 규율해야 한다. 국가의 형벌권의 행사는 의사, 환자, 또는 국가사회의 각기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가벌적인 의료과실의 본질과 그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여 적절히 이를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허용된 위험’의 영역인 의료행위에 과실이 있었다고 하여 형사제재를 가함으로써 의료인들의 진료기피현상이나 방어적 진료현상이 나타난다면 오히려 의료의 본질적 성격에 어긋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에도 역행하게 된다. 따라서 의사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에 있어서는 그것이 사회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점이 고려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부득이 의사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자유형보다는 벌금형만으로 그 형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료분쟁체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① 피해자들의 피해에 대하여는 별도로 특별법으로 ‘의료보장보험법’을 제정하여 제도를 확충하고, ②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하여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조정하고, ③ 미국의 ‘감찰의’ 제도나 영국의 ‘검시관’ 제도와 같은 중립적인 엄정한 감정기관의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2009-09-17
허가의 승계, 제재적 처분사유의 승계, 제재적 처분효과의 승계
Ⅰ. 事實關係 원고는 수원지방법원 임의경매사건에서 하○○ 소유의 잡종지 4필지와 그 지상 건물 1동 및 같은 곳에 설치된 주유소 시설을 경락받아 2001. 3.2. 그 대금을 완납하고, 같은 달 10일 피고에게 석유판매업자 지위승계신청을 하여 같은 달 14일자로 수리되었다. 그런데 하○○는 2001. 3.2. 유사석유제품 판매로 적발되었고, 피고는 원고가 하○○의 석유판매업자로서의 지위를 승계하였다는 이유로 같은 날 30일 원고에게 위 유사석유제품판매에 대한 과징금 7,500만원을 부과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대해 수원지방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기각판결을 받았으며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도 마찬가지로 기각판결을 받았다. Ⅱ. 大法院 判決의 要旨 [1] 석유사업법 제9조 제3항 및 그 시행령이 규정하는 석유판매업의 적극적 등록요건과 제5조가 규정하는 소극적 결격사유 및 제7조가 석유판매업자의 영업양도, 사망, 합병의 경우뿐만 아니라 경매 등의 절차에 따라 단순히 석유판매시설만의 인수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석유판매업자의 지위승계를 인정하고 있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석유판매업 등록은 원칙적으로 대물적 허가의 성격을 갖고 또 석유판매업자가 같은 법 제26조의 유사석유제품 판매금지를 위반함으로써 같은 법 제13조에 따라 받게 되는 사업정지 등의 제재처분은 사업자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사업의 전부나 일부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지위승계에는 종전 석유판매업자가 유사석유제품을 판매함으로써 받게 되는 사업정지 등 제재처분의 승계가 포함되어 그 지위를 승계한 자에 대해 사업정지 등의 제재처분을 취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고 같은 법 제14조 제1항 소정의 과징금은 해당 사업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어 행정상의 제재 및 감독의 효과를 달성함과 동시에 그 사업자와 거래관계에 있는 일반 국민의 불편을 해소시켜 준다는 취지에서 사업정지처분에 갈음하여 부과되는 것일 뿐이므로, 지위승계의 효과에 있어서 과징금부과처분을 사업정지처분과 달리 볼 이유가 없다. [2] 석유사업법 제26조는 사회적·경제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유사석유제품의 유통을 엄중하게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규정된 것으로서 그 위반에 따른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점, 지위승계 사유의 하나인 경매는 석유판매시설에 대해만 이루어질 뿐이고 경매로 말미암아 석유판매사업자의 지위승계가 강제되는 것은 아닌 점, 석유판매업자의 지위를 승계한 자는 종전의 석유판매업자의 위반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는 점, 위 과징금은 사업정지처분에 갈음하여 부과될 뿐인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석유판매사업자의 지위승계 및 과징금부과처분에 관한 위와 같은 해석은 특히 경매에 의한 지위승계에 있어서 영업의 자유나 재산권의 보장 또는 평등의 원칙 등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Ⅲ. 評釋 대상판결은 허가영업자의 지위가 승계된 이후에 원 사업자의 위법사유를 들어 승계인(경락인)에게 제재적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지 여부를 다룬 판결이다. 비록 대상판결이 나온지 이미 수년이 지났으나, 주제와 관련하여서는 가장 최근의 판결이라는 점, 제재적 처분사유의 승계와 제재적 행정처분의 효과의 승계문제가 학계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고시의 행정법문제(2009 제53회 행정고시)로도 출제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평석의 대상으로 하였다. 이 글에서는 허가의 개념과 승계가능성을 다룬 후에 제재적 처분사유의 승계문제와 제재적 처분효과의 승계문제를 대상판결과 관련하여 검토하고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기로 한다. 1. 許可의 槪念과 承繼可能性 일반적으로 강학상의 허가라 함은 공익침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에 의하여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자연적 자유를 법으로 금지시켰다가 개인이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 그 금지를 해제시키는 행정행위를 의미한다. 예방적 금지 또는 허가유보하에 금지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허가제도는 실무상으로 개인의 직업의 자유 및 재산권행사와 직접적이고도 불가분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문제는 개인이 건축 및 영업활동을 위하여 법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여 허가를 취득한 이후에 개인적 사정으로 인하여 이러한 활동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경우에 허가를 양도하거나 상속시킬 수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학설의 일반적 견해는 허가의 종류에 따라 구별하고 있다. 허가의 요건이 물건이나 시설의 안전 및 상태에 집중되는 대물적 허가(예 : 건축허가, 식품위생업허가 등)의 경우에는 그 승계가 가능한 반면, 허가요건이 사람의 지식·기술·경험 등 주관적 사정에 제한되는 대인적 허가(의사면허, 운전면허 등)의 경우에는 승계가 불가능하며, 허가요건이 사람의 주관적 사정과 물건의 객관적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는 이른바 혼합적 허가(예: 액화석유가스충전 사업허가 등)의 경우에는 인적 요소의 변경에는 새로운 허가를 요하고 물적 요소의 변경에는 신고를 요한다고 한다. 대물적 허가의 경우에도 승계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승계는 관련 개인의 기본권행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법률의 근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허가관련 법률들 역시 “영업자가 영업을 양도하거나 사망한 경우 또는 법인이 합병한 경우에는 그 양수인·상속인 또는 합병에 따라 설립되는 법인은 그 영업자의 지위를 승계한다”라는 전형적인 형태의 승계규정을 두고 있다(예: 식품위생법 제39조 1항). 또한 허가영업의 양도·양수 등의 경우에는 관할 행정청에 지위승계에 대한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 制裁的 處分事由의 承繼 허가관련 법률들은 예외 없이 공익확보를 위하여 허가를 받은 사업자들이 준수해야 할 다양한 공법상의 의무들을 규정하고 있고, 이들이 이러한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에는 영업의 정지 및 허가의 취소 등 제재적 행정처분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허가취득자들이 영업 등의 활동 중에 법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아직 제재적 행정처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에게 허가영업을 양도하는 경우에 행정청은 양도인의 위법사유를 이유로 양수인(경매의 경우에는 경락인)에 대해 영업의 정지 등 제재적 행정처분을 발할 수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일관되게 대물적 허가에 있어서 제재적 처분이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 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재적 처분사유의 승계를 인정하여 양수인에 대해 발하여진 제재적 행정처분의 적법성을 인정하여 왔다(大判 1986. 7.22. 선고 86누203 ; 2001. 6.29. 선고 2001두1611). 예를 들어 대법원 1986. 7.22. 선고 86누203 판결은 양도인의 부정휘발유판매라는 위법사유에 근거하여 양수인에게 발하여진 석유판매업허가취소처분을 대물적 처분이라고 보아 적법하다고 판시하였으며 대상판결에서도 양도인의 유사석유판매라는 위법사유에 근거하여 양수인에게 행한 영업정지처분은 대물적 처분이며 이에 따라 이를 갈음하는 과징금부과처분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은 보다 상세한 검토를 요한다. 과연 대물적 허가가 승계되기 때문에 제재적 처분사유의 승계도 자동적으로 인정되어야 하는가? 또한 이러한 영업정지 및 허가취소 등의 제재적 행정처분이 과연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가? 이러한 제재적 처분사유의 승계문제는 행정법이론상 이른바 公法上 義務의 승계문제에 속하고 있다. 3. 公法上 義務의 承繼論 전통적으로 公義務는 일신전속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이유로 계약에 의하여 이전되거나 또는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점차 비판을 받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실무상으로 발생되는 절차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위법건축물에 대한 철거의무의 승계가능성이 부인될 경우에 위법건축물의 소유주는 자신의 철거의무를 피하기 위하여 제3자에게 소유권을 이전시킬 수 있으며, 행정청은 또 다시 새로운 소유자에게 철거명령을 발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소유자는 구 소유자에 대한 철거명령이 불가쟁력이 발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오늘날 지배적인 견해는 公義務의 승계가능성 여부를 의무의 성격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公義務가 의무자의 개인적인 성격과 능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그에 의하여만 이행될 수 있는, 즉 일신전속적인 의무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승계가능성을 부인하는 반면, 원래의 의무자 개인과 독립하여 이행될 수 있는 의무에 대해는 그 승계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승계가 가능한 의무로는 대물적 하명에 의하여 부과된 의무나 타인에 의하여 이행될 수 있는, 즉 이행이 대체가능한 의무가 열거되고 있다. 그러나 승계가능성이 인정되는 공법상 의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승계되기 위해서는 행정청의 처분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특정화 되어야 한다. 행정청의 상대방이 법률에 의하여 규정된 추상적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단지 행정청에 의한 구체적인 의무부과의 가능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승계문제가 제기되지 못한다(Mutius/ Nolte, DOV 2000, S. 1), 또한 행정청의 처분에 의하여 구체화된 의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에게 승계되기 위해서는 법률유보의 원칙에 따라 법률의 근거를 요한다는 것이 오늘날 다수설의 견해이다(鄭夏重, 行政法槪論, 90면). 이와 같은 公義務의 승계론에 비추어 볼 때 대상판결에서 양도인은 유사석유판매를 금지시키는 구 석유판매업법 제26조를 위반하였는 바, 이는 법률에 규정된 추상적 의무의 위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추상적 의무위반(제재적 처분사유)에 근거하여 행정청은 영업정지처분 등 행정처분을 내림으로써 사업자 개인에게 구체적인 공법상 의무(영업정지의무 등)를 부과하게 된다. 사실관계에서 원사업자 하○○의 추상적 의무위반이 있었을 뿐, 그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제재적인 행정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 있으며, 이에 따라 양수인에게 승계될 어떠한 구체적인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원사업자가 위반한 법령상의 유사석유판매업금지의무는 사업주 자신만이 이행할 수 있는 일신전속적인 의무로서 승계가능성 자체도 없는 의무이다. 한편 대상판결은 허가가 대물적 허가라는 이유 이외에도 제재적 행정처분이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는 이유로 어떤 위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은 경락인에게 행한 영업정지처분의 적법성을 인정을 하였다. 그러나 사업자의 위법사유에 대해 부과되는 영업정지처분은 대물적 처분이 아니라 오히려 대인적 처분에 해당한다. 영업정지처분은 사업자에 대해 일정한 부작위의무를 부과하는 바, 이러한 부작위의무는 타인이 대신 이행할 수 없는 일신전속적인 의무로서 그 승계가 당연히 부인되어져야 한다. 이에 따라 양수인에게 전혀 어떠한 위법사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사업자의 위법사유를 승계시켜 양수인에 내려진 영업정지처분은 그의 영업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뿐 아니라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에 반하는 위법한 처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사회적·경제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유사석유제품의 유통을 방지하고 그 실효성 확보를 이유로 경락인에 대한 제재처분을 정당화시키고 있으나, 이러한 제재처분은 위법행위를 한 원사업자에게 내려져야 하지 지위승계인인 경락인에게 행해져서는 안된다. 경락인이 받는 불이익에 관련하여 원심법원은 종전의 석유판매업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나(서울고법 2002누13101) 과도한 채무로 인하여 토지 등의 재산권이 경매에 넘어간 종전 사업자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관철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는 행정청의 업무해태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양수인에게 전가시키는 비윤리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법률에서 규정한 허가영업자의 지위승계는 허가의 효과를 승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종전의 사업자가 행한 제재적 사유까지 승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도인의 영업활동 당시에 시설 등이 법령에 위반되고 그러한 위반상태가 양수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경우에는 행정청은 이를 사유로 양수인에게 시정명령 등 제재적 처분을 내릴 수 있는 바 이는 새로운 처분으로서 의무의 승계문제와는 무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상판결에서 원사업자의 위법사유로 인하여 자신에게 내려진 영업정지처분이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고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원고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4. 制裁的 處分의 效果의 承繼 양도인의 위법사유를 양수인에게 승계시켜 양수인에게 제재적 행정처분을 부과하여온 실무관행은 심각한 민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일부 법률들은 영업허가의 승계규정에 추가하여 제재적 처분효과의 승계규정을 두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품위생법 제78조 및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제8조 등에서는 “영업자의 지위가 승계되는 경우에는 종전의 영업자에게 행한 행정제재처분의 효과는 그 처분기간이 끝난 날부터 1년간 양수인 또는 합병 후 존속하는 법인에 승계되며, 행정제재처분 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양수인 또는 존속하는 법인에 대해 행정제재처분 절차를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양수인이나 합병 후 존속하는 법인이 양수하거나 합병할 때에 그 처분 또는 위반사실을 알지 못하였음을 증명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에 대해도 법치국가적 관점에서 이의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양도인에게 발한 시설상의 하자를 이유로 내려진 시설개선명령은 대물적 처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의무이행이 대체가 가능하여 승계가 가능하지만, 영업정지명령 등의 제재적 행정처분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신전속적 의무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승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신전속적인 의무에 대해 법률이 승계를 인정한 이유는 행정실무상의 문제점, 즉 양도인은 자신에 대해 내려진 제재적 처분의 효과를 회피하기 위하여 영업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명의만을 타인에게 양도하고 실제로는 양도인이 계속 영업을 하는 경우도 종 종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영업양도·양수의 신고에 있어서 불수리처분을 하거나 사후단속을 통하여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법률들은 제재적 처분의 효과의 승계로 인하여 발생되는 원고의 기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선의의 양수인을 보호하는 단서규정을 두고 있으며 아울러 그 입증책임을 양수인에게 부과하고 있다. 향후 이러한 법규정들은 영업정지 등 일신전속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제재적 행정처분의 효과의 승계를 부인하되 담합에 의하여 양도·양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그 승계를 인정하도록 변경하는 것이 법치주의 관점에서 바람직 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담합의 입증책임은 행정청이 부담하도록 규정해야 할 것이다.
2009-08-27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대법원판결의 분석과 향후 논의과제
Ⅰ. 서론 2009년 5월21일 대법원은 타인의 ‘자연스런 사망’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의 판결(2009다17417)을 선고했다. 우린 오랫동안 다투어 온 존엄사 내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논의에 큰 획을 긋는 판결을 맞이했고, 2009년 6월23일 10시21분 그 판결의 실행을 생명경외의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연명장치가 제거된 환자가 자기호흡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연명하자, 다시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논쟁하려는 모습, 즉 논의의 역류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유는 위 판결에 ‘옥의 티’가 있었고 그 티가 너무 부각되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하에서는 지면관계상 위 판결의 다수의견과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의 반대의견(제1 반대의견)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간략하게 평석하고, 상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Ⅱ.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요건에 대한 각 의견의 요지 1. 다수의견 다수의견은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요건을 제시하였고,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한 원심판결을 수긍하였다. 다수의견의 설시 내용은 (1) 연명치료 중단의 법적 성질, (2) 중단의 허용요건, (3) 허용요건의 구비 여부 등 세부분으로 구분된다. (1) 연명치료의 중단을 의료계약의 해지로 보았고 환자에게 원칙적으로 계약 임의해지권과 그 연장선에서 계약내용 변경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중단 내지 변경이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경우에는 엄격한 요건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그래서 다수의견이 제시한 허용요건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즉 객관적 요건으로서 ‘환자의 상태(狀態)’와 주관적 요건으로서 ‘환자의 의사(意思)’에 관한 것이다. 1) 첫째 요건인 객관적 요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환자의 상태(狀態)’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이 단계에 진입한 것인지 여부를 세 가지 요소로 판단한다. 즉 다음 세 요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① 의식 회복의 불가능, ② 생명관련 생체 기능 회복의 불가능, ③ 짧은 시간 내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하 ‘사망임박’은 이를 의미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전문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이러한 단계에 진입한 환자에게 시행하는 연명치료는 치료목적이 없는 신체침해행위이고 이는 죽음의 시작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죽음의 종기를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2) 이어서 다수의견은 인간의 생명권이 존엄성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보호되어야 하는데 인격체로서의 활동이 기대되지 않는 위의 단계에 이른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고, 이러한 단계에서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사회상규에 부합하고 헌법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 설시는 아래 ‘환자의 의사’를 허용요건으로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유 내지 논거로도 이해할 수 있다. 3) 둘째 요건인 주관적 요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환자의 의사(意思)’가 연명치료의 중단이어야 중단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이 요건은 환자의 사전의료지시 또는 추정의사로 충족된다고 한다. 다수의견은 사전의료지시(“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표시)를 진료중단 시점에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의제(擬制)한다. 이러한 의제의 요건으로 ① 의사결정능력, ② 의사의 설명, ③ 결정의 진지성, ④ 중단시점상 증명가능성(증명수단은 ⓐ 의료인을 상대방으로 환자가 직접 작성한 서면, 혹은 ⓑ 진료과정에서 의료인이 환자의 의사결정을 담은 진료기록 등)이다. 이 ④ 요건에서 다수의견은 위 ⓐ·ⓑ 요소를 통하여 의료인의 관여를 중시하며, 이 점이 결여되면 설사 환자가 직접 작성한 것이라도 사전의료지시는 아니지만, 위 ① ② ③ 등 다른 세 요건이 구비되면 환자 의사를 추정하는 자료가 될 뿐이라고 한다. 한편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경우에도 일정한 요소로 환자의 중단 의사를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상규에 부합한다고 한다. 다수의견에 의하면, ‘추정의 방법’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추정의 기준’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객관적으로 부합하는지 여부이며 그 ‘부합의 판단기준’은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이다. 환자의 가치관이나 신념 등을 파악하는 자료는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3) 이 사건이 위 허용요건을 구비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이를 긍정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2. 제1 반대의견(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 제1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제시한 연명치료 허용요건의 기본골격에 대하여 찬성하지만 이 사건이 그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였다고 보아 원심파기 의견을 냈다. (1) 환자의 상태(狀態)에 대한 이견: 제1 반대의견은 우선 ‘환자의 상태(狀態)’에 대하여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본다. 환자 담당의사의 판단을 중시하여 그가 환자의 의식회복가능성이 5% 미만이라고 하였지만 아무튼 그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 담당의사를 포함한 전문가의 의견 가운데 최단기인 기대여명이 4개월 이상이라는 점을 든다. (2) 환자의 의사(意思)에 대한 이견: 제1 반대의견은 연명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추정적 의사가 환자에게 없다고 한다. 그 논거는 이렇다. 우선 추정적 의사를 가정적 의사 또는 의제된 의사와 구별한다. 추정적 의사는 정황에서 추단된 현실적 의사이며 이 의사표시를 묵시적 의사표시라는 것이다. 가정적 의사를 기초로 한 자기결정은 인정될 수는 없으며, 이 사건에서 원심이 제시한 사정들로는 다수의견이 말하는 위 1.(2). 3)의 ① ② ③ 요건이 구비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가정적 의사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다면 자기결정의 왜곡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견은 환자 주변사람들이 가지는 중단의사를 관철하기 위하여 그들만이 제시 증명하는 정황만에 기하여 환자의 현실의사가 아닌 “이른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는 것이다. 한편 원고 대리인이 추정적 의사를 묵시적 의사라고 강조하였으므로, 처분권주의 및 변론주의에 따라 법원은 묵시적 의사 존부에 의해서만 판단해야 하는데 그러한 묵시적 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환자의 의사(意思)’라는 요건의 선택적 대안(代案)으로 “객관적 법질서의 관점”을 제시: 제1 반대의견은 위와 같은 의사추정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즉 다수의견의 둘째 요건인 ‘환자의 의사(意思)’가 없어도 예외적인 엄격요건으로 중단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즉 환자의 자기결정에 의하여서만이 아니라, 법질서 일반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요건의 핵심은 치료중지의무이며 이를 위임 규정인 민법 제681조의 “위임의 본지(本旨)”에서 찾는다. 이를 제1반대의견은 연명치료 강요가 환자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경우라고 하는 다수의견에 상응하는 것으로 본다. 이 존엄성 침해 여부는 환자 및 의사 양측 제반 사정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족의 동의는 독자적 요건일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따라서 설사 환자의 가정적 의사가 중단에 반대하는 것이라도, 존엄성 침해라는 요건이 구비되면 법질서 일반의 관점에서 이익형량 내지 가치평가의 문제로서 연명치료 중단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3. 제2 반대의견, 보충의견, 별개의견 이 의견들도 검토의 가치가 매우 높지만 분량의 제한상 요지를 지극히 간략하게 본다. 제2 반대의견(대법관 이홍훈, 대법관 김능환)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연명치료의 착수 이전에 그 거부에 대해서만 인정되어야지 이미 착수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하여는 행사될 수 없다는 점 등을 설시하여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연명치료 허용기준에 대한 보충의견(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차한성)은 제2 반대의견의 각 논거를 반박한다. 끝으로 중단절차에 대한 별개의견(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박일환)은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요건 구비 여부에 대한 판단을 신중하면서도 적절한 시기에 내릴 수 있는 법적 절차에 금치산자의 요양감호에 관한 민법 제947조 제2항의 유추적용을 제시한다. Ⅲ. 평석 1. 다수의견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대체로 필자를 포함한 기존의 의료법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대체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라는 객관적 요건에 ‘사망임박’(“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란 티가 붙어있다.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의료법학자들이 존엄사를 허용하는 요건에 ‘사망임박’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곧 사망할 사람’을 ‘바로 사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엄사의 허용은 이미 사망의 길로 들어서서 못 고칠 사람에게 치료 효과도 없는 호흡기 같은 인공장치를 그 사람의 뜻과 달리 무의미하게 달아 놓지 말자는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에서 장치가 제거된 이후 그 생명은 자연사의 길을 걷는 것이며 남은 기간은 생명 자체의 몫이다. 제거를 신청한 자, 이를 허용한 자, 이를 실행한 자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며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자연사(自然死)의 방해를 금지하는 것이지 결코 사망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현상이 신비함을 감안한다면 ‘사망임박’이란 요건이 충족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이 요건에 집착한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판결은 이제 거의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하급심판결에서 이 사망임박이란 요건은 무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무시한 하급심판결이 대법원까지 올라가면 대법원은 판례변경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대법원 판결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 환자가 인공호흡기 제거에도 불구하고 바로 사망하지 않고 자기호흡으로 연명하고 있으니 ‘사망임박’ 요건의 충족을 오판했다고 하여, 대법원이 환자에게 호흡기의 제거를 금지하여 장착한 채로 두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매우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2. 제1 반대의견에 대하여 추정적 의사에서 그 추단의 대상인 의사를 현실적 의사로 보고, 이를 묵시적 의사표시의 그것으로 보면서, 이렇게 본 원고 대리인의 주장을 변론주의의 틀로 묶어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논증은, 유력한 학설의 하나로 인정될 수는 있지만, 사견으로는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묵시적 의사표시와 명시적 의사표시는 의사표시의 방법상 차이이며, 언어에 의한 명시적 의사표시와 달리 묵시적 의사표시는 언어 외의 수단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묵시적’ 의사‘표시’라는 용어에서 ‘묵시적’이 수식하는 대상은 ‘의사’가 아니라 ‘표시’라고 할 것이다. 현실적 의사란 명시 혹은 묵시로 표시된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제1 반대의견과 다른 시각에서, 추정적 의사는 현실적 의사와 대립하는 용어로서, 일정한 요건 하에 인정된 추정적 의사가 현실적 의사를 대체하는 것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고, 다수의견은 필자 등 다수 의료법학자들의 견해와 같이 이를 인정한 것이라 하겠다. 이렇다면 ‘환자의 의사(意思)’라는 주관적 허용요건의 대안으로 제시된 법질서 일반의 관점이란 논리는 불필요하게 된다. 더구나 위임인이 환자 자신이라면 “위임의 본지(本旨)”를 탐색하는 것과 환자의 ‘가정적 의사’를 탐구하는 것이 과연 다른 것인지도 의문이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의 차이일 뿐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법질서상 이익형량 등의 이름으로 연명치료의 중단을 환자 아닌 다른 사람의 의사 내지 결정에 맡긴다는 것은 오히려 중단을 쉽게 허용할 우려가 있으며 아울러 생명의 처분에 대한 기본적 시각의 문제라고 하겠다. 그 밖에 현실적 의사와 추정적 의사 및 가정적 의사의 관계, 의료계약에 대한 위임규정의 적용, 허용요건으로서 환자 자신이 아닌 가족의 동의 등 논쟁점들이 많지만 지면관계상 이만 줄인다. Ⅳ. 결론 다수의견에 따라 ‘사망임박’이란 요소가 포함된 요건인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다고 인정되어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환자가 자기호흡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놓고, 일견 당황해 하는 주변의 모습은 모두 위 ‘사망임박’이란 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곧 사망할 줄 알았던 환자가 자기호흡을 통해 연명하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우리가 느낄 것은, 생명현상에 대한 경외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판단의 잘못이 이야기되고 있다. 호흡기를 단 의료진의 판단, 제거를 신청한 자녀들의 판단, 연명치료 중단요건의 충족에 대한 법원의 판단 등. 이들을 둘러싼 문제제기, 즉 안달아도 될 호흡기를 달았다고 책임을 주장하는 모습, 곧 돌아가실 줄 알고 제거를 신청한 자녀들과 판결에 따라 제거를 실시한 의료진의 어색한 느낌, ‘사망임박’이란 티로 인하여 판결에 가해지는 설왕설래 등 모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는 방향을 제대로 잡아서 남은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며, 환자의 의사가 기계에 의존한 연명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존중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내지 합의는 각종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문제의 ‘사망임박’이란 티를 제외하면 이 대원칙에 따른 것이 이번 대법원 판결의 태도이다. 남은 논제 두 가지는 우선 전문가의 영역이라 하겠다. 먼저 연명치료 중단의 객관적 요건인 ‘환자의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는 방법 내지 절차의 문제, 이는 의학 전문가의 몫이다. 다음으로 존엄사의 주관적 요건인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객관적 요건을 구비한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현실적 의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환자의 의사를 어떻게 추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선 사전의사(living will) 제도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가 이제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과제이다. 사망으로 효력이 비로소 나타나는 유언의 법리를 사전의사에 적용할 수는 없으므로, 관련 제도 없는 사전의사는 역시 추정의 근거일 뿐이다. 위 제1 반대의견도 우려한 추정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논의가 필요한 단계이다. 그리고 법원 판단의 ‘신중’과 ‘신속’을 모두 도모하고자 제시된 법적 절차에 관한 위 별개의견의 제도화도 마찬가지이다.
2009-07-06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결정과 '제사용 재산'의 승계
Ⅰ. 사실관계 1. G(소외 피상속인, 원고·피고의 망부)는 1949년 이전 W1(소외 X의 모)와 혼인하여 1949년 X(원고, G와 W1 사이의 자)를 출산하였다. 그런데 G는 1961년경부터 약 44년간 장남인 X측과 절연한 채 W2(소외 피고 Y1, Y2, Y3의 생모)와 동거하면서 그들 사이에 X와 배다른 피고들을 출산하고, 그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여 왔다. 2. G는 그 연장선상에서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하는 의사표시를 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들은 X에게는 G의 사망사실이나 장례절차에 관하여 알리지도 않은 채 G를 경기도 OO군 공원묘지에 매장·관리하여 왔다. 3. 이와 같이 G의 사망사실과 피고들이 G를 X 모르게 안장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X는 2005년경 피고들에게 위와 같은 비상식적인 처사를 항의하는 한편, 망 G에 대한 ‘제사주재자’는 X 자신이며, 따라서 망 G의 유체·유골은 X 자신이 승계권자이고, 망인(G)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 그 효력은 제사주재자를 무조건 구속하지 않으며, X 자신은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Y1, Y2, Y3를 피고로 하여 ‘유체인도 등’의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서울고등법원에서 2007년 4월10일 승소판결을 받았다(2006나63268). 4. 이에 피고들은 상고하기에 이르렀고, 대법원은 2008년 11월20일 상고를 기각하였다. Ⅱ. 판결이유의 요지-상고기각 1.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망인의 공동상속인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해져야 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 2. 사람의 유체·유골은 매장·관리·제사·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분묘에 안치되어 있는 선조의 유체·유골은 민법 제1008조의 3 소정의 제사용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고, 피상속인 자신의 유체·유골 역시 위 제사용 재산에 준하여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 3. 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제사주재자로서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지만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제사주재자가 무조건 이에 구속되어야 하는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4. 어떤 경우에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것인지에 관하여는 제사제도가 관습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관습을 고려하되, 여기에서의 관습은 과거의 관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어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관습을 말하므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와 그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관습을 고려할 것인 바, 중대한 질병, 심한 낭비와 방탕한 생활, 장기간의 외국 거주, 생계가 곤란할 정도의 심각한 경제적 궁핍, 평소 부모를 학대하거나 심한 모욕 또는 위해를 가하는 행위, 선조의 분묘에 대한 수호·관리를 하지 않거나 제사를 거부하는 행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모의 유지 내지 유훈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판례공보, 2008. 12.15. 제312호). Ⅲ. 판례 연구 1. 머리말 1) 민법은 1990. 1.13. 분묘 등의 승계(민법 제1008조의 3)에 관하여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제사주재자’는 누가 되는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2) 따라서 본 판례연구에서 논의하여야 할 점은 ①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 ② 망인의 유체·유골의 승계권자 ③ 망인(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하는 경우 그 효력 ④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의 의미 등이라고 할 수 있다. 2.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결정 1) ‘제사주재자’에 관한 학설·판례의 동향 가. 판례의 동향: (1) 판례는 구민법 제996조의 금양임야 및 묘토의 소유권 귀속에 관하여 종손인 ‘호주상속인’이 단독으로 그 소유권을 승계한다고 판시하였다(대판, 1993. 5.25. 92다50676, 동, 1995. 2.10. 94다39116). 그런데 1990년 민법개정에서 ‘호주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개정하였기 때문에(제1008조의 3) 제사주재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견해의 대립이 있어 왔다. 그 후의 판례도 ‘제사주재자’는 ‘원칙적으로 종손’이라는 취지로 거의 동일하였다. 즉, 나. 제사주재자는 원칙적으로 종손이라는 판례: 대법원은 1997. 11.28.(96누18069) ‘제사주재자는 종손이 있는 경우라면 그에게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가 된다’고 판시한다(판례공보, 1998. 1.1. 제49호; 같은 취지: 대판, 2004. 1.16. 2001다79037; 판례공보, 2004. 3.1. 제197호). 다. 종손에게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판례: 대법원은 2004. 1.16.(2001다79037) ‘원고는 종손이지만 망 소외인(부)의 생존 시에도 가정불화 등을 이유로 선대의 제사 및 망 소외인의 부양을 소홀히 하여 피고들과 분쟁을 일으켜 왔으며, 막내아들인 피고 2가 망 소외인의 임종까지 그를 모시고 살다가 현재도 망 소외인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데 원고는 망 소외인의 사후 몇 달도 되지 않아 자신의 단독소유권을 주장하며, 이 사건 소(필자의 주=금양임야확인)를 제기한 “…” 행적에 비추어 볼때 원고가 종손이라 할지라도 판시 임야를 단독으로 승계하는 제사주재자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다(판례공보, 2004. 3. 1. 제197호: 이 판례의 연구는 이희배, 가족법판례연구, 2007, 삼지원, p898~899 참조). 라. ‘제사주재자’는 종손이 아니고 ‘공동상속인의 협의’로 정해진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헌법재판소는 2008. 2.28.(2005헌바7, 전원재판부) “제사용재산을 승계하는 제사주재자는 ‘호주’나 ‘종손’이 아니라 ‘실제로 제사를 주재하는 자’로서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따라 정해지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의하여 종손 이외의 차남이나 여자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할 수도 있으며 다수의 상속인들이 공동으로 제사를 주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판시한다(헌법재판소 판례집, 제20권 1집, 상, 2008, p221~228 참조). 마. 학설의 동향 : (1) ‘제사를 주재하는 자’라함은 원칙적으로 ‘호주승계인(이른바 종손)’을 가리킨다는 견해(소수설: 박병호, 가족법, 2002, p287)와 ‘사실상 제사를 주재하는 자’라는 견해(다수설: 김주수·김상용, 친족상속법, 2006, p581; 한봉희, 가족법, 2007, p402; 이희배, 친족상속법요해, 1995, p429 참조)로 대립하고 있다. (2)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에 관하여는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 또는 친족의 협의에 의하여 정하며,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상속인의 공동승계로 될 수 밖에 없다는 견해가 있다(김주수·김상용, 전계서, p581, 이희배, 전계서, p431 참조). 2) 제사주재자결정에 관한 새로운 법리 가.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에 관하여 본 판결(다수의견)은 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 → ②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 → ③ 아들이 없는 경우 장녀가 된다고 판시한다. 이에 대한 반대의견(본 판결의 소수의견)은 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 → ② 법원의 심리·판단으로 정하여야 한다(대법관 김영란, 대법관 김지형)는 견해 등이다. 나.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망인의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하여 정해야 한다는 본 판결이유는 타당하다. 그 이유는 첫째, 제사주재자의 결정에 관하여는 법률규정이 없고, 1997년 이후의 판례에서 인정되었던 ‘종손(즉 호주승계인)’ 우선의 관습 내지 관습법도 2005년 호주제도에 관한 헌법불합치결정과 그 후의 민법상의 호주제도의 폐지로 인하여 변경되었다고 본다. 둘째, 따라서 2008. 2.28.(2005헌바7) 헌법재판소에서는 ‘제사주재자’는 호주나 종손이 아니라 ‘실제로 제사를 주재하는 자’로서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따라 정해진다고 판시하고 있다. 셋째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1990년대 이후에 주창되어 온 전술한 학설(김주수 외 이희배)에도 부합될 뿐만 아니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사)존중이념 내지 사적자치원칙에도 부합된다. 다. 제사주재자의 결정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본 판결이유에 대하여는 후술하는 입법론이 있기는 하지만, 과도적·잠정적으로 일단 타당하다고 이해된다. 그 이유는 첫째,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고 따라서 호적제도가 가족관계등록제도로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관습상 이른바 호주가 제사를 주재하고, 대개는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이른 바 과거의 호주승계인이 분묘 등의 소유권을 승계하는 경우가 아직은 보통일 것이다. 둘째, 위와 같은 국민의식이 거의 퇴조되었음이 의식조사연구 등으로 확인된 경우에는 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라류사건’ 제25조의 2(민법 제1008조의 3,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결정’)를 신설하면서 협의에 의하여 제사주재자의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법원이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리·판단하여 제사주재자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 판결이유에 나타난, ‘종법사상’의 잔영인 장남(장손자) → 차남 → 장녀의 순위로 제사주재자가 되는 법리는 헌법상 가족정책이념에 따라 종국적으로는 바꿔져야 하겠기 때문이다. 3. 망인의 유체·유골의 승계원리 1) 본건 판결에서는 사람의 유체·유골은 제사용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고 판시한다(다수의견). 이에 대해서는 유체의 귀속은 분묘의 귀속과 분리해 처리되어야 한다는 반대의견(소수의견: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이 있긴 하다. 그런데 민법은 분묘를 제사승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분묘에 대한 수호·관리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가 그 분묘를 설치하였느냐에 관계없이 제사주재자에게 속한다고 해석된다(대판, 1997. 9.5. 95다51182). 따라서 분묘의 본체인 유체·유골은 제사승계의 대상으로서 제사주재자에게 귀속된다는 이 판결이유는 타당하다. 2) 본건 판결에서는 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에 그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제사주재자로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제사주재자가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수 없다고 판시한다(다수의견). 이에 대하여는 제사주재가 정당한 이유 없이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하여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변경할 수 없다는 반대의견(소수의견: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전수안)이 있다. 그리고 망인이 자신의 장례 기타 유체를 처리하는 것에 관하여 종국적인 의사를 명확하게 표명한 경우에는 그 의사는 법적으로도 존중되어야 하며, 따라서 유체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분묘를 파헤쳐 인도청구를 할수없다는 반대의견(소수의견: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이 있다. 그런데 제사주재자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하여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변경하는 것까지는 허용될 수 없다고 이해되어, 이점에 관하여는 소수의견(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전수안)이 망자의 의사존중이념에 비추어 일리있다고 이해된다. 4.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의 의미 대법원의 2004. 1.16.(2001다79037) 전술한 선행판례에 비추어, 본 판결이유 중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의 의미에 관한 판결이유는 타당하다고 이해 된다. 다만 ‘장기간의 외국거주’ 외에도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한국국적을 상실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5. 맺는말-요약과 과제 1) 본 판결 이유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2)민법제1008조의 3(금양임야·묘토의 제사주재자에의 승계규정)의 위헌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2008. 2.28.(2005헌바7), 합헌판결을 하였다(헌재판집, 제20권1집, 상, 2008). 3) 남은 과제로서는 본 판결 내지 본 판례연구의 결과, 즉 피상속인에 대한 상속인들 간의 ‘제사주재자의 결정’ 등에 관한 논의의 결과는 선조의 분묘관리와 제사주재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유추 적용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2009-02-05
조퇴 후 직원탈의실에서 사망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
I. 서 1. 사실관계 가스충전소에서 가정용 가스통에 가스를 충전하는 업무를 하던 A(사망 당시 41세)는 사건 전날 술을 마시고 몸이 좋지 않아, 사망 당일 출근시간(08:30)보다 늦게 출근하고(10:30) 출근하자마자 충전소장에게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못하겠다고 하여 충전소장으로부터 집에 가서 쉬고 내일 출근하라는 허락을 받았다. 이후 A는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가지 않고 직원탈의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고, 그날 오후 6시20분쯤 역기대에 잠을 자는 것처럼 누운 자세로 30kg짜리 역기에 목 부분이 눌려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기관은 타살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A씨 부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지급 청구를 하였고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지급을 거절하였다. 원심에서는 사망한 근로자 A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에서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2. 법원의 판단 가. 원심법원의 판단 원심은 본 사안의 (i) 사고가 휴게시간 중에 발생한 사고이며, (ii) 역기가 사업장 내 시설로서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고, (iii) 근로자 A가 조퇴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직원탈의실에서 쉬다가 업무에 복귀하려는 의사가 추정되며, (iv) 탈의실에서 역기를 사용했던 행위는 준비행위이거나 체력보강을 위한 것이므로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되는 합리적·필요적 행위라는 논거를 제시하였다. 또한 A는 사망 직전 가스충전업무 및 새로운 근무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육체적인 피로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인 가운데 실수 또는 기력미진으로 역기를 놓쳐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였다. 나. 대법원의 판단 업무상 재해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므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와 같은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할 것이나, 그것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할 것이지만, 재해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에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하여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하여 업무수행성 및 업무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 업무상 재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휴게시간이란 사용자가 근로시간 도중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부여한 시간이라 할 것인데, 망인이 충전소장으로부터 집에 가서 쉬고 내일 출근하라고 허락을 받은 이상 그날 업무에 복귀할 필요가 없으므로, 직원탈의실 역기대에 누워 역기를 들어 올렸다가 실수 또는 기력미진으로 놓쳐 목에 떨어져 내린 역기의 강한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사망에 이른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하여도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에 복귀할 것을 전제로 근로시간 도중에 부여되는 휴게시간 중에 발생한 사고라고 볼 수 없다. 원심은 망인이 사망 직전 자신의 업무 및 업무환경에 적응하느라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 있었고 휴게시간 중에 그 업무의 준비행위 내지는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합리적·필요적 행위를 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으나,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체증법칙을 위배하고 휴게시간 중의 재해 또는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II. 판례평석 1. 업무상 재해의 성립요건(인정기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재해보상제도는 사용자를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근로자의 고의·과실과는 상관없이 보험기관이 근로자에게 재해보상을 하는 제도이다. 산업재해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재해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업무상’이라는 개념에는 i)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재해가 발생하였다는 의미에서의 ‘업무수행성’및 ii) 근로자가 수행한 업무로 인하여 재해가 발생하였다는 의미의 ‘업무기인성’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존재한다. 업무와 재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기 위하여 업무기인성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학설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으나 업무수행성도 충족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의견의 대립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업무기인성만 충족되면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업무수행성은 이러한 업무기인성을 입증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준 중의 하나라는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으며, 판례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2002. 11.26. 선고 2002두6811 판결). 일반적으로 업무수행성이 인정된다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업무기인성이 인정되지만, 업무상 질병의 경우처럼 반드시 업무수행성이 재해의 판단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대상판결문에서 ‘업무수행성 및 업무기인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데,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항상 두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 조퇴 후 사업장 내에서의 업무상 재해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이, 동법 시행령에 구체적인 인정 기준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본 사안이 적용된 행위시법에 의하면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규칙에 의하여 업무상 재해의 기본원칙과 구체적인 인정기준이 규정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규칙에서는 업무상 재해를 작업시간중, 작업시간외, 휴게시간중, 행사중, 출장중 사고 등으로 나누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본 사안은 근로자가 조퇴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근로자 A가 입은 사고가 출·퇴근 중 사고(출·퇴근 중의 사고에 대해서는 현행법에 규정)에 해당되거나, 역기를 사용하다 사망했다고 해서 운동경기 등 행사 중의 사고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본 사안에서 원심이 판단한 것과 같이 휴게시간 중의 사고에 해당할 것인가를 살펴본다면 원심의 논거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규칙 제35조의2에서는 ‘휴게시간중에 사업장내에서 사회통념상 휴게시간 중에 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사고’는 취업규칙 위반, 고의·자해 및 범죄행위가 아니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서는 ‘휴게시간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행위로 발생한 사고’가 업무상 재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적용해 생각한다면, 휴게시간 중의 사고에 대한 업무상 재해규정이 다른 상황에서 당한 사고의 경우보다 업무상 재해의 인정범위가 상대적으로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원고는 이를 주장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휴게시간 중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근로자 A에게 는 ‘업무복귀의사’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다소 무리한 논거를 제시한 듯 하다. 구 근로기준법 제53조(현행 근로기준법 제54조)의 휴게시간은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져야 한다. 따라서 업무의 개시 전 또는 업무의 종료 후에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조퇴 후에 있은 근로자 A의 행위는 사업장 내의 행위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근로기준법상의 휴게시간 중의 행위라 할 수 없다. 또한 조퇴허락을 받은 근로자가 특별한 반증의 사유가 없는 한, 업무복귀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행위가 ‘휴게시간’중의 행위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법률상의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면 근로자 A가 재해인정을 받았을 가능성은 더 높았을 것이다. 예로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규칙 제35조제3항제3호에서는 ‘작업시간외 사고’ 중 돌발적인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많은 장소의 근로자가 사업장내에서 자유롭게 출·퇴근하고 있거나, 출·퇴근 중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에 발생한 사고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규정(현행 법에서는 ‘사회통념상 근로자가 사업장 내에서 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행위를 하던 중’으로 포괄적으로 개정되었다)하고 있다. 즉 가스를 취급하는 위험성이 있는 사업장에서, 가스배달 및 충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다면 탈의실에 역기가 있는 것은 근로자의 단순한 여가활용을 위한 시설이라기보다는 업무상 필요한 체력유지·보강활동을 위한 시설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 A가 역기에 눌려 사망한 사고는 휴게시간 중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업무시간 전·후에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미치는 사업장 내에서 할 수 있는 사회통념상 인정될 수 있는 행위를 하다 입은 사고라 판단할 수 있다. 즉 무리하게 ‘휴게시간’중의 행위임을 전제로 하지 않았더라도, 근로자 A의 업무상 재해는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3. 상당인과관계에서의 ‘상당성’ 법원에서도 일관되게 업무와 재해 사이에는 상당인관계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입증책임의 정도를 완화하여 여러 가지 간접사실(제반 사정)에 의한 요건사실(인과관계)의 입증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 과로사 등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법리 자체를 봐도 크게 바뀐 것은 없지만 동일한 법리를 가지고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범위가 넓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상당인과관계의 판단에 있어 ‘상당성’이라는 추상적 개념 요소에 판단자에게 부여된 어느 정도의 자유재량적 판단을 통하여 개별적인 경우 구체적 정의와 형평성을 찾을 수 있다는 맥락에서 엄격한 배상책임이 아닌 보상책임이라는 요소가 작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상판결에서도 “재해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하여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하여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며 인과관계의 ‘상당성’ 인정범위를 상대적으로 넓게 해석하고 있다. 최근 판례 중 자택이 회사 근처에 있는 근로자들은 사업주의 승낙 하에 자택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는 상황에서, 근로자가 사업주의 허락 하에 점심시간에 자신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복귀하던 중 사업장 밖에서 사망한 사안에서 이러한 행위는 근로자 본래의 업무행위 또는 그 업무의 준비행위 내지는 정리행위,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로 사업주의 지배를 벗어나지 아니한 행위로 판단하였다(2004. 12.24. 선고 2004두6549판결). 이것은 사업장 밖에서의 근로자의 사적 행위로 인한 사고로 볼 수도 있지만, 사업주가 허락을 하였기 때문에 사업주의 통제가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여, 전술한 바와 같이 재해의 인정범위를 과거보다 넓게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상판례에서도 (i) 가스를 취급하는 위험이 있는 사업장에서, (ii) 가정용 가스통이라고 하더라도 운반을 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하고(물론 대법원의 견해처럼 근로자 A가 한 업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업무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쉽게 납득이 되는 부분은 아니다), (iii) 탈의실에 역기가 있는 것은 근로자의 단순한 여가활용을 위한 시설이기 보다는 업무상 필요한 체력단련을 위한 시설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근로자 A의 사고는 사회통념상 업무에 수반되는 합리적·필요적 행위를 하던 중에 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퇴 허락을 받은 후였지만 사용자의 지배·관리가 미치는 사업장 안에서 근로자의 업무와 전혀 무관한 여가가 아닌, 업무상 필요한 체력단련을 위한 시설물에서 근로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행위를 수행하다 발생한 사고는 인과관계의 상당성이 부정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III. 결론 산업재해보상제도는 개별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근거로 하며, 이러한 개별사용자 책임을 사회보험화하여 사용자로 하여금 과중한 부담없이 산재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의 생활보장과 위험책임의 사회적 분산을 통하여 기업경영의 안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무과실책임원칙, 장해·유족급여의 연금화 등을 통해 사회보장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대법원도 업무상 재해의 인정범위를 과거보다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경영계 일각에서는 법원의 일부판결이 현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산재인정기준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무리한 판결이며, 이러한 경향은 결국에 산업재해인정이 폭 넓게 이루어지면서 기업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사회·경제적 상황과 보험 재정의 한계라는 부분들도 산업재해보상제도의 영향을 주는 요소임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고, 합리적인 해석을 넘어선 법의 적용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해보상제도의 취지와 전술한 관점으로 미루어 보면 본 사안에서 대법원이 판단한 바와 같이 근로자 A의 사고는 ‘휴게시간’중의 사고도 아니며 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휴게시간이 아니더라도 작업개시 전 및 작업종료 후 등 취업시간 외에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의 상태에서 사업주의 시설물의 이용중에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를 판단함에 있어, 근로자의 사적행위나 사업주의 지시사항을 위반한 행위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넓은 인정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에서는 업무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그다지 큰 힘이 필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하였지만, 가스를 취급하는 위험성이 있는 사업장에서 가정용 가스를 충전·배달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다면 탈의실에 역기가 있는 것은 단순한 여가활용을 위했다기 보다는, 체력단련의 필요성 때문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 A가 역기에 눌려 사망한 사고는 휴게시간 중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미치는 사업장 내에서 업무와 전혀 무관한 사적활동으로 인한 사고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10년 동안 한 사업장에서 근무한 근로자 A가 입은 사고는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로 사업주의 지배를 벗어나지 아니한 행위중의 사고라고 판단된다.
2008-12-18
국제사법상의 선결문제-최근 대법원판결의 무관심을 비판하며
Ⅰ. 사안의 개요와 쟁점 위 대상판결의 사안은, 문제된 세 척의 선박(‘이 사건 선박’)에 대하여 1순위 선박저당권을 취득한 원고(금융업에 종사하는 노르웨이 법인)가, 배당표상 선박우선특권자로 인정되어 원고에 앞서 배당을 받게 된 라브라도르(와 승계인인 피고)(편의상 ‘피고’)에 대해 선박우선특권(maritime lien)의 부존재를 주장해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한 사건이다. 쟁점은, 이 사건 선박의 선적국인 세인트 빈센트 그래나딘(‘세인트 빈센트’) 법상 피고의 선박우선특권의 취득 여부였다. 즉 임금을 받지 못한 이 사건 선박의 선원들은 이 사건 선박에 대해 선박우선특권을 취득했는데, 세인트 빈센트 법원의 허가 없이 선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한 피고가 대위변제에 의해 선박우선특권을 취득했는가였다. 원심인 부산고등법원 2005년 6월2일 선고 2004나10602 판결(‘원심판결’)은 이를 긍정했으나 대상판결은 부정했다. 양자의 결론이 다르게 된 이유는, 실질법인 세인트 빈센트의 상선법상 피고가 대위변제에 의하여 선박우선특권을 취득하기 위한 전제로서 법원 허가가 필요한지에 대해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는 대상판결에서 제기된 국제사법 논점을 간단히 언급하고 선결문제를 주로 논의한다. 상세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판례연구회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Ⅱ. 국제사법 쟁점에 관한 법원의 판단 1. 원심판결의 판단 원심판결은, 우리 국제사법 제60조 제1호, 제2호에 따르면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은 선적국법이므로 세인트 빈센트의 상선법(즉 1993년 협약의 주요조항을 도입한 개정 상선법)이 준거법이 된다고 보았다. 즉 원심판결은 선원들의 선박우선특권의 취득과, 피고의 변제에 의한 선박우선특권의 이전(즉 대위변제)에 대해 세인트 빈센트의 상선법을 적용했을 뿐이고, 피담보채권의 발생의 준거법과, 피담보채권의 법률에 의한 이전(즉 대위변제)의 준거법을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2. 대상판결의 판단 대상판결은 원심판결에서 더 나아가 우리 국제사법 제60조에 의해 결정된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이 규율하는 사항과, 피담보채권의 준거법 및 그 채권의 대위변제의 준거법을 판단했다. 즉, 대상판결은, 선박우선특권은 일정한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법률에 의하여 특별히 인정된 권리로서 일반적으로 그 피담보채권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이전되기는 어려우므로, 선박우선특권이 유효하게 이전되는지 여부는 피담보채권의 이전이 인정되는 경우에 비로소 논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피담보채권의 발생과 대위에 관한 사항은 국제사법 제60조 제1호, 제2호가 아니라, 각각 국제사법 제28조(근로계약)와 제35조 제2항(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에 의해서 규율된다고 보았다. 즉 이 사건에서 문제된 선원임금채권은 선원근로계약의 준거법에 의하는데, 선적국을 선원이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로 볼 수 있으므로 국제사법 제28조 제2항에 의해 선적국법이 선원근로계약의 준거법이 된다고 보았다. 나아가 선원임금채권의 대위에 관한 사항은 국제사법 제35조 제2항에 의하여 채권 자체의 준거법에 의한다고 보았다. 즉 원심판결은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인 선적국법이 대위변제의 준거법이라고 보았으나, 대상판결은 선박우선특권의 대위변제를 피담보채권의 대위변제의 결과로 보고, 우리 국제사법에 따라 피담보채권의 발생과, 그 대위변제의 준거법을 각각 판단했다. 필자는, 원심판결이 간과한 국제사법 쟁점을 대상판결이 정확히 포착하여 판단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대상판결이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과, 선원근로계약의 준거법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便宜置籍’(flag of convenience)의 국제사법적 함의(含意)를 판단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국제사법 제8조(예외조항)가 신설되었고, 종래 선적국법원칙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견해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나아가 아래에서 보듯이 대상판결은 선결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Ⅲ. 국제사법에서 선결문제의 개념과 그의 준거법 결정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인 세인트 빈센트법상 선박우선특권이 발생하자면 동 법이 정한 일정한 피담보채권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피담보채권의 존재는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이라는 본문제의 준거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선결문제이다. 만일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이 법정지법(즉 한국법)이면 피담보채권의 준거법은 우리 국제사법에 따라 결정되고, 또한 만일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이 피담보채권의 준거법이면 선결문제가 제기되지 않으나, 이 사건에서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은 외국법이므로 선결문제의 준거법을 결정해야 한다. 선결문제는 어떤 국제사법적 이익을 존중할 것인가라는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 국제사법은 선결문제의 준거법을 명시하지 않지만, 강학상 선결문제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고 그 준거법 결정에 관해 종래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법정지법설(독립적 연결설) 이는 원칙적으로 법정지의 국제사법에 따라 선결문제의 준거법을 결정한다. 이의 장점은, 본문제가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선결문제의 준거법이 일정하다는 점이다. 이는, 만일 준거법설을 취하면 동일한 선결문제가 ‘본문제가 무엇인가’에 따라 상이한 준거법에 의하게 되므로 법적 정신분열증을 초래하게 되고, 국제사법의 이상의 하나인 내적 판결의 일치를 저해한다고 비판한다. 독일의 종래 다수설과 판례이다. 2. 준거법설(종속적 연결설) 이는 원칙적으로 본문제의 준거법 소속국의 국제사법에 따라 선결문제의 준거법을 결정한다. 선결문제는 본문제의 준거법을 적용한 결과 발생하는 문제인데, 본문제의 해결은 본문제의 준거법 소속국의 법질서가 행하는 선결문제의 판단을 전제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선결문제가 외국적 요소를 포함하는 경우 본문제의 준거법 소속국의 국제사법에 따른다고 본다. 즉 법정지 법원은 선결문제에 관하여 본문제의 준거법 소속국의 법원이 판단하는 것과 동일하게 판단함으로써 외적(또는 국제적) 판결의 일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절충설 이는 일률적으로 법정지법설 또는 준거법설에 따르는 대신 구체적 상황에 따라 국제사법적 이익을 고려해 판단하는 견해로, 독일과 일본에서 점차 유력하게 주장되는데, 개별사안에서 법관이 판단해서 타당한 결론을 끌어내는 데 장점이 있다. 예컨대 사안의 내국관련이 큰 경우 내적 판결의 일치를 위해 법정지법설에 따르나, 외국관련이 큰 경우에는 외적 판결의 일치를 위하여 준거법설에 따른다. 4. 기타 학설 그 밖에도 선결문제는 본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한 문제이므로 본문제의 준거법 소속국의 실질법에 의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실질법설)와, 저촉규범을 통한 우회적 법선택을 피하고 목적론적으로 선결문제와 관련성을 분석하여 중요도와 집중도가 더 큰 법규정을 적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Ⅳ. 대상판결의 논리구조와 그에 대한 평가 학설 대립을 고려하면, 선결문제인 선원임금채권의 준거법 결정에 있어, 대상판결로서는 한국의 국제사법을 적용할지, 세인트 빈센트의 국제사법을 적용할지, 아니면 세인트 빈센트의 실질법을 적용할지를 판단해야 했다. 선해하면 대상판결이 법정지법설을 취했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피담보채권의 발생이 국제사법(제60조 제1호, 제2호)의 법률요건 중에 규정된 법률효과는 아니므로 이는 선행문제(Erstfrage)는 아니고, 대상판결도 그렇게 파악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즉 대상판결은, 본문제인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인 세인트 빈센트법을 적용한 결과, 피담보채권의 발생이라는 선결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 준거법을 결정했어야 하나, 단순히 우리 국제사법을 적용했다(피담보채권이 대위변제에 의하여 이전되는 결과 선박우선특권이 이전되는지는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에 따를 사항인데, 1993년 협약 제10조에 따르면 피담보채권의 대위변제는 선박우선특권의 대위를 수반하므로 피담보채권의 이전도 선박우선특권의 이전의 선결문제이다). 논점을 명확히 하고자 선결문제가 논의되는 전형적 사안을 보자. 예컨대 피상속인(A국인)이 배우자(B국인)를 두고 사망한 경우, 우리 법원은 국제사법 제49조(상속)를 적용해 피상속인의 본국법(A국법)을 상속의 준거법으로 판단하고, A국의 상속법에 따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한다. 만일 피상속인과 배우자 간의 혼인관계의 존재가 다투어지면, 법원은 선결문제인 혼인관계의 존부의 준거법을 결정해야 한다. 법정지법설을 따르면 혼인의 성립에 관한 우리 국제사법(제36조)이 적용되나, 준거법설을 따르면 A국의 국제사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논리를 따르면, “일반적으로 배우자로서 상속을 하기 위해서는 혼인관계가 존재해야 하는 바, 혼인관계는 국제사법 제49조(상속)에 의할 사항이 아니고 국제사법 제36조(혼인의 성립)에 따라 혼인의 성립 및 방식의 준거법을 적용하여 판단할 사항”이라고 보게 된다. 이렇게 접근하면 선결문제는 항상 실질법적으로 해소되거나 선행문제로 취급되고, 준거법설과 절충설 등은 아예 배제된다. 준거법설을 취하면 세인트 빈센트의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피담보채권의 발생 및 대위변제의 준거법을 결정한다(이 사건에서 한국의 관련성이 법정지 및 경매지일 뿐이라면 절충설도 동일한 결론이 된다). 요컨대 대상판결이 선결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대상판결이 선결문제를 인식하고, 선원임금채권의 발생 및 대위변제의 준거법 결정에 관한 세인트 빈센트의 국제사법을 조사한 뒤 우리 국제사법과 결론이 같다고 판단했더라면 탁월한 판결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세인트 빈센트의 관점에서 위 쟁점들의 준거법이 세인트 빈센트법이라면 선결문제를 논의할 실익은 없다. Ⅴ. 맺음말 대상판결이, 원심판결이 간과한 피담보채권의 발생과 대위변제의 준거법을 판단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선박우선특권의 준거법과 선원임금채권의 준거법을 판단하면서 편의치적의 국제사법적 함의를 판단하지 않은 점과, 선결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대상판결이 명확히 법정지법설을 취했다면 필자는 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필자가 비판하는 것은, 대상판결이 선결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한 점이다. 필자의 오해가 있다면, 질정해 줄 것을 정중히 부탁드린다.
2008-07-14
전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조건
Ⅰ. 대상판결 대법원 2005년 6월23일 선고 2004다 51887호 판결〔주식반환 등〕 Ⅱ. 사실관계 1995. 9. 피상속인이 가족에게 상장회사의 주식을 증여. 가족들이 동 주식을 은행에 채무의 담보로 제공, 은행이 담보권을 실행, 제3자가 주식취득. 2000. 피상속인 사후(死後) 원고가 상속인에게 주식의 유류분반환을 청구 주위적 청구 : 주식 실물의 (유류분)반환청구 예비적 청구 : 주식 실물의 양도불능시 주식의 가액청구 2004. 8. 서울고등법원 판결 Ⅲ. 대법원 판결요지 1. 유류분액을 산정함에 있어 피고들이 증여받은 재산의 시가는 상속개시 당시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할 것이고(대법원 1996. 2. 9. 선고 95다17885 판결 참조), 당해 피고에 대해 반환해야 할 재산의 범위를 확정한 다음 그 원물반환이 불가능하여 가액반환을 명하는 경우에는 그 가액은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할 것이다. 2. 기록에 의하면 총 발행주식은 200만 주를 상회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는바, 그렇다면 대체물인 주식회사 보통주를 제3자로부터 취득하여 반환할 수 없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로서는 위 주식 중 소정의 수량을 취득하여 이를 원고에게 양도함으로써 원물반환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위 피고가 망 소외인으로부터 증여받은 주권 그 자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원고에 대한 주식반환의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위에서 본 특별한 사정의 유무에 관해 심리한 다음 원물반환이 가능하다면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인용했어야 할 것이고, 만약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원물반환이 불가능하다면 예비적 청구에 대한 판단으로 위 반환했어야 할 주식의 원심 변론종결일 당시의 시가 상당액을 산정하여 그 지급을 명했어야 할 것이다. Ⅳ. 쟁점 쟁점 1 : 유류분반환청구에 있어서 유류분 재산의 반환불능시 전보배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시점 쟁점 2 : 재산의 원물반환 불능시 채권자가 행사하는 가액전보배상청구 인용하는 조건 및 가액의 산정방법 Ⅴ. 판례평석 가. 원고의 주식(유류분)반환청구권은 추상적, 관념적으로는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에서 성립되지만 구체적, 현실적으로는 법원이 원고의 유류분반환청구권을 인정하여 피고에게 반환을 명하는 이행판결이 확정됨으로써 비로소 집행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대법원이 유류분반환청구권의 존부와 범위는 피상속인의 사망시점에서 판단하지만 유류분의 원물반환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가액반환청구를 인용하는 경우 그 가액은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하여 산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타당하다. 나. 그러나 피고가 주식시장에서 동일한 보통 주식을 구입하여 원고에게 이전할 수 있으므로 사실심 변론종결일 현재 주식실물이 제3자에게 이전된 것만 가지고는 피고의 주식반환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이행불능’을 전제로 한 원고의 가액청구(예비적 청구)는 기각하여야 하며 오히려 피고에게 주식원물의 인도를 명하여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얼핏 보면 매우 논리적이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현실적 타당성도 없고 법리적 타당성도 의문이다. 다. 우선 이 판결대로 하면 주식인도 판결이 확정된 후 피고가 임의로 시장에서 주식을 사 원고에게 주식인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원고는 주식인도 판결을 집행할 수단이 없고 그렇다고 주식인도의 불능을 이유로 하는 가액배상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채무의 이행여부는 채무자의 의사에 의하여 좌우되고 채권자가 받은 승소판결은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이는 불합리한 결과이다. 그러면 왜 이런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법원이 가액배상청구를 인용하는 조건으로서 채권자의 ‘집행불능’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채무자의 ‘이행불능’을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사건에서 ‘집행불능’을 기준으로 하면 반환의 대상이 되는 주식은 이미 제3자의 소유로 이전되었으므로 일응 원고 즉 채권자가 주식인도 판결을 집행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민법은 권리자에게 물건의 원물인도 대신 물건의 가액을 대신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즉 대상청구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라. 구체적으로 민법 제747조는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하여 “원물반환 불능시 가액반환”이란 이름으로 규정하고 있고 나아가 민법 제395조는 채권일반에 대하여 ‘이행지체와 전보배상’이란 이름으로 전보배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민법 제395조에 보면 ‘이행불능’이 아닌 ‘이행지체시’에도 최고기간만 지나면 전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는 비금전 채권의 경우 집행지연 내지 곤란에 따르는 권리자의 부담을 덜어주어 권리의 실효성을 확보하여 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원래 가액배상청구는 비금전 급부의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집행이 곤란한 경우 청구권자에게 비금전 급부 대신에 당해 급부의 가액을 금전으로 청구하여 금전채권으로 집행할 수 있는 소위 “금전대상청구권(金錢代償請求權)”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비금전 채권의 경우 권리자에게 비금전 급부 대신에 대상청구로서 전보배상청구를 인용할 것이냐 아니냐는 권리의 효율적인 실행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권리자의 금전대상청구가 부당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극적으로 이를 허용하는 입장에서 운용되어야 한다. 마. 집행불능 여부가 사실심 변론종결일 현재 미확정일 경우에도 장래의 집행불능에 대비하여 사실심 변론종결 현재의 집행가액을 조건부, 추가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다. (대법원 1975. 5. 13. 선고 75다 308호, 대법원 2006. 3. 10. 선고 2005다 55411호 판결 등 참조) 이러한 판례의 입장을 이 사건에 적용해 보면 사실심 변론종결일 현재 반환의 대상주식은 타인(은행)의 점유하에 있어 사실상 소유자(채무자)는 동 주식을 임의로 채권자(원고)에게 양도할 수 없다. 원고는 위 판례에 의하여 가액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사실심 변론종결일 현재 주식이나 부동산이 제3자에게 넘어가 있으면 그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있는 채권자는 집행불능을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혹시 채무자가 임의로 이행할지 모르니까 채권자가 집행불능을 이유로 한 가액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채권자의 입장을 무시하고 채무자의 입장만 고려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만일 집행불능 여부가 불명이라면 집행불능시에는 금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여 가액배상청구를 인용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종전 대법원의 판례취지인 것이다. 결국 종전 판례에 의하여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이사건을 대법원이 공연히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기 위하여는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식인도와 가액지급을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로 나누어 선택적 청구로 할 것이 아니라 ‘피고는 원고에게 주식 0주를 인도하라. 만일 인도하지 않을 시엔 금 0원을 지급하라’라고 원물급부청구에 가액급부청구를 추가, 부가시켜 단일 청구로 신청했어야 할 것이다.
200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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