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만나는 자연 그대로의 숲, 대체 불가능한 숲과 집의 가치 - 르엘 어퍼하우스
logo
2024년 4월 29일(월)
지면보기
구독
한국법조인대관
판결 큐레이션
매일 쏟아지는 판결정보, 법률신문이 엄선된 양질의 정보를 골라 드립니다.
전체
형법
검색한 결과
126
판결기사
판결요지
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상소제기 후 원심법원의 구속에 관한 권한
1. 문제의 제기 상소 후에 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지 않고 원심법원에 있는 경우에 원심법원의 구속에 관한 권한범위에 대해 형소법(이하, ‘법’이라 한다)은 “구속기간의 갱신, 구속의 취소, 보석, 구속의 집행정지와 그 정지의 취소에 대한 결정은 원심법원이 하여야 한다(105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형소규칙(이하‘규칙’이라 한다)은 “피고인의 구속, 구속기간의 갱신, 구속취소, 보석, 보석의 취소, 구속의 집행정지와 그 정지의 취소에 대한 결정은 원심법원이 이를 하여야 한다(57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규칙에는 법과 달리 ‘피고인의 구속’ 뿐 아니라 ‘보석의 취소’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의 차이로부터 현행법상 불구속상태로 공판심리를 진행해 온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후 상소기간 중 또는 상소 중 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기까지 원심법원이 그 피고인을 새로 구속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로 된다. 또한 판례비평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와 같은 경우에 규칙 57조에서 원심법원이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대법원의 규칙제정권의 범위를 넘어서 법률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소송계속과 피고인의 구속 (1) 법 105조는 판결선고 후 상소제기 이전이나 그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와 상소가 제기되었지만 상소심에 소송계속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는 시점에 피고인의 구속에 관한 처분을 할 법원을 분명하게 정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서 들고 있는 구속에 관한 처분은 피고사건이 계속되고 있는 법원에서 해야 하는데, 판결 후에도 그 사건은 당해 심급을 이탈하지 않고 판결이 확정되거나 상소에 의해 상소법원에 이심될 때까지는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판결 후에도 당해 법원의 소송계속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므로 당해 법원이 구속에 관해 처분을 함이 이론상 당연하다. 따라서 ‘판결선고 후 상소기간 중’에 원심법원이 그와 같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2) 그런데 상소기간 중에 원심법원이 할 수 있는 처분은 법 제105조에 열거한 것으로 한정되어야 하는지, 특히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 이를 부정하는 주장도 있지만 경우를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피고인을 구속하고 있던 중 법 331조에 따라 구속영장이 실효된 경우에는 원심법원이 피고인을 새로 구속할 수는 없다. 판결 후에 구속할 수 있는지는 이를 나누어 원심이 법 331조에 열거한 재판을 한 경우에는 그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전자와 마찬가지로 해석되나 그 이외의 판결의 경우에는 법 105조는 이미 구속되어 있는 피고인의 신병의 처리에 관한 규정에 불과하고 원심법원이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규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법 70조의 규정에 비추어 소송계속이 있는 수소법원은 피고인을 구속할 권한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고 또 판결 후에도 소송계속이 있는 한 그 권한에 변동이 없으므로 그와 같은 내용의 명문규정이 없는 한 반대로 해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 105조가 구속 그 자체를 규정하지 않은 것은 이를 전제로 한 것이고, 다만 구속에 관한 사후적 내지 파생적인 결정을 할 법원에 관해 의문을 해소하는 의미에서 이를 정한 것에 불과하다. (3) 즉 원심법원은 상소기간 중(상소제기 전 또는 그 재판의 확정시까지)에 구속에 관한 원칙규정인 법 70조에 근거해서 피고인을 새로 구속할 수 있다. 따라서 규칙 57조에서 상소기간 중에 원심법원이 피고인을 새로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도 이는 당연한 확인규정에 불과한 법 105조에 위반되지 않는다. 판례비평은 법 70조를 고려하지 않고 법 105조와 규칙 57조의 문언만을 형식적으로 비교해 규칙 57조가 피고인의 구속에 관한 권한을 창설한 것이라고 오해한 것이다. (4) 또 상소 중에는 원심법원이 피고인을 구속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는 차정인 교수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논거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수소법원인데(법 70조), 상소제기에 따라 소송이 원심을 이탈하여 상소심에 이심한다. 따라서 수소법원이 아닌 원심에 피고인에 대한 구속의 권한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필요하다. 법 105조에는 구속기간의 연장 등이 규정되어 있음에 불과하고 구속의 규정이 없음에도 규칙 57조에서 구속을 규정한 것은 법률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송은 상소제기로 곧바로 상소심에 이심하는 효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소송기록 등이 원심으로부터 상소심에 송부된 때에 비로소 소송계속이 이전한다는 견해도 유력하다. 따라서 원심은 상소 중에도 이심의 효력이 생기기 전인 소송기록이 상소심에 도달하기까지는 수소법원에 해당하고, 법 70조에 의해서 당연히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보면 규칙 57조에서 법 105조에서 들고 있지 않은 피고인의 구속을 규정했다고 해도 이는 법 70조와 105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소 중에 원심법원의 권한을 분명하게 규정한 확인규정에 불과하고 규칙 57조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5) 이는 전적으로 이심의 효력이 발생하는 시기에 관한 입장의 차이에 따른 결과이다. 이심의 효력발생시기에 관해 상소제기시라고 하는 입장과 상소에 따라 소송기록 등이 상소심에 송부된 때라고 하는 입장이 대립되어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별도로 하더라도 전자에 따르면 차정인 교수와 같은 결론이 반대로 후자의 입장에 따르면 대법원결정과 같은 결론이 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심의 효력이 발생하는 시기를 언급하지 않고, 상소기간 중 또는 상소 중의 사건에 관한 피고인의 구속을 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기까지는 원심법원이 하도록 규정한 규칙 57조 1항의 규정이 법 105조의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법 70조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등의 일정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그 시기에 아무런 제한도 없으므로 설령 상소 중에도 위와 같은 요건이 있고, 또 구속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전제로 이심의 효력발생시기와 관계없이 구속의 권한을 갖는 것이 상소법원인가, 아니면 원심법원인가 하는 관점과 아울러 구속에 관한 처분을 할 법원은 실무적인 편의라고 하는 관점에서 정할 필요가 있으므로 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기까지는 원심법원의 구속권한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그 결정이유에서 법 70조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는 점은 Leading Case의 판시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소송계속이란 본안의 심판에 관한 관념으로 법원, 검사, 피고인이라는 3주체 사이에 생기는 사건의 심판에 관한 권리, 의무관계의 사실적 측면이고, 피고인의 구속에 관한 권한의 문제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며, 또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구속은 본안의 심판을 위한 하나의 수단임과 동시에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엄격한 사유와 필요성을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다른 특별한 요구가 없는 한 소송이 계속하고 있는 수소법원으로 하여금 하도록 함이 적당하다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법 70조의 ‘법원’이란 문언은 반드시 수소법원이라고 해석해야 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구속의 권한이 있는 법원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대법원결정은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도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올바른 결론이다. 3. 원심법원이 구속할 수 있는 근거 위와 같이 법 105조와 규칙 57조는 모두 당연한 것을 규정한 주의적 확인규정 내지 예시규정에 해당한다. 다만 법 105조에서 구속이라는 가장 중요한 처분이 빠져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따라서 법 105조에 규정하고 있는 사항은 구속을 전제로 해서 계속적, 잔무정리적인 조치뿐이므로 구속은 배제되었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고(다만 이를 입법자의 의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독자적인 의견에 불과하고, 입법자의 의사는 분명하지 않다), 결국 위 조항은 예외적 특별규정에 해당하게 되며, 규칙 57조의 형소법위반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외규정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상소기간 중에 관한 법 105조의 규정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명백하게 확인규정에 불과하다. 다만 판결 후에 신병에 관한 조치가 가능한 범위를 분명하기 하기 위해 이를 두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입법이 적절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상소 중인 경우에도 규칙 57조는 법 105조의 입법에서 분명하지 않은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고, 거기서 피고인의 구속을 규정하여도 이는 대법원규칙에서 정할 수 없는 실체적 법률관계에 관한 사항을 새로 정한 것은 아니다. 입법자가 법 105조에서 피고인의 구속을 규정하지 않은 것은 사례로서 매우 적다고 예상하여 굳이 확인규정을 둘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또한 당연한 것을 새롭게 명시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이를 명하는 인상을 주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으로 상소법원만이 구속할 수 있다는 해석은 실질적으로 합리성이 없다. 첫째로 원심은 14일 이내에 소송기록을 송부해야 하지만, 그 동안에 도망의 염려나 증거인멸의 우려를 방지하는 등 정당한 구속의 필요를 충족시킬 방법이 없다. 또 구속은 형법의 가집행의 일종으로 유죄자를 국가형벌권의 실현을 위해 잡아두는 기능도 있다. 둘째로 구속사유가 있다면 심리 중에 구속할 수 있으므로 유죄판결 후에는 구속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그러나 심리 중에 유죄의 심증이 강하게 형성될 때마다 구속한다거나 판결단계에 근접해 굳이 구속하여 유죄를 예고하는 결과가 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또한 현행법과 같은 당사자주의 아래에서 당사자로부터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어 유죄의 심증이 꼭 뒤집히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공판 중에는 좀처럼 구속하지 어렵다. 또한 설령 그러한 사정을 도외시 하더라도 유죄판결에 의해 도망의 염려가 뚜렷하고 공판과 달리 구속사유가 명확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런 사정이 있으면 상소 전에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현재의 법정구속의 실무도 대체로 실형판결 선고 후 곧바로 미리 준비한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있고, 피고인도 즉시에 상소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구속의 필요성이라는 실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소의 유무에 따라 구별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4. 결 론 형식적인 법률의 문언으로부터도 또한 구속의 필요성이라는 실질적인 요구로부터도 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기까지는 원심법원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함이 무방하다. 상소 중 원심법원의 구속은 법 70조의 수소법원에 의한 구속이라는 일반원칙의 하나의 적용에 불과하다. 법령의 위임이 없는 한 실체적 법률관계에 관한 사항을 새롭게 대법원규칙에서 정할 수 없다는 일반론에 집착한 나머지 법 105조를 예외규정으로 단정하고 이를 규칙 57조의 문언과 형식적으로 비교해서 규칙 57조에서 피고인의 구속을 규정한 것이 법률에 저촉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관념론에 치우친 해석으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으로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대법원결정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보면 피고인이 불출석인 상태로 심리가 진행되어 실형판결이 선고된 사안이므로 원심은 심리 중에 피고인을 구속할 수도 없었던 사정을 고려한다면 실무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는 논리의 한권의 가치가 있다”는 Cardozo판사의 말처럼 대법원결정은 본건의 사실관계의 이치에 맞는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다. 다만 입법론으로서는 의문을 없애기 위해 법 105조에서 ‘피고인의 구속’도 원심법원의 권한이라는 취지를 명문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소송기록이 원심법원에 있을 때까지”를 규칙과 같이 “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기까지”로 수정하고, 규칙 57조 1항은 삭제함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007-10-15
소극적 신분의 공범과 국민의 사법접근권
【판결요지】 1.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에서 말하는 ‘대리’에는 본인의 위임을 받아 대리인의 이름으로 법률사건을 취급하는 법률상의 대리뿐만 아니라, (중략) 외부적인 형식만 본인이 직접 행하는 것처럼 할 뿐 실질적으로 대리가 행하여지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당연히 포함된다. 2. 원심이 법무사 A가 법무사 아닌 B 등(파산·면책 등 전문브로커들)과 법률사무 취급행위를 하기로 공모한 후 그들에게 법무사 사무실 일부와 법무사 명의를 사용토록 하고 그 대가로 수임 사건당 40만원 또는 수익금 중 30%를 분배받았다는 이유로 법무사 A를 B 등의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 위반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공동정범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1. 사실관계 원심인 대구지방법원 2006.6.8. 선고 2006노366 항소심 판결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단순화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피고인 B 등 3명은 (주)C카드 대구지부에서 채권추심업무를 담당하다가 개인회생·파산업무에 종사해 보려고 2005년1월경 함께 위 회사를 그만두고, 그 무렵 법무사인 A와 사이에 위 법무사 사무실 일부를 사용하면서 위 법무사 명의로 직원을 채용·관리하고 생활정보지 등에 사건수임 광고를 게재하며 수임 및 그 전과정을 전담하여 처리하되, 수임료 중 건당 40만원을 법무사의 명의대여료 내지 사무실사용료 조로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 법무사 아닌 B 등 3명은 자신들 비용으로 직접 여직원을 채용하고, 광고를 통하여 파산 등 사건을 포괄적으로 수임하면서 위 사건 전체를 한 건으로 하는 수임료를 지급받은 다음, 이에 대한 서류작성부터 종국결정을 받을 때까지 모든 업무를 대행했으나, 법무사 A는 이들 B 등 3명의 업무에 관여하거나 지휘, 감독을 한 바가 전혀 없고, 이들 3인은 파산 등 신청서의 대리인란에 ‘법무사 A’라 기재한 다음,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던 A 법무사 인장을 직접 날인하였다. 그 후 B 등 3명은 법무사 A가 자신들의 업무에 관여하려고 한다는 이유로 법무사 A와의 약정을 파기하고, 대신 동일한 방식의 약정을 다른 법무사와 체결하고 2005년11월21일부터 15일간 동일 방법으로 사건 수임 및 처리를 하였다. 2. 소송의 경과 대구지방법원 (2006.1.27. 선고 2005고단7671) 제1심 유죄판결에 대하여 피고인들이 항소하였고, 대구지방법원(2006.6.8. 선고 2006노366) 항소심 판결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법무사 A는 벌금 2,000만원에 추징금 7,800만원, 법무사 아닌 B 등 3명은 각 징역1년 실형에 각 추징금 1억2,300만원을 선고하였다(벌금 등은 대략 금액). 피고인들이 모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2007년 6월 28일 상고를 모두 기각하면서 위와 같이 판시하였다. 3. 불법 조각적 소극 신분과 공범의 성립 신분으로 인하여 범죄의 성립이나 형벌이 조각되는 경우를 ‘소극적 신분’이라 한다.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나 범인은닉죄와 증거인멸죄에서 친족·호주·동거친족은 책임 조각적 신분이고,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호주·가족 등 친족상도례(형법 제328조)는 범죄가 성립되지만 형벌만 면제되는 형벌조각신분이다. 이 사건 대상판결의 판시 내용은 일반인에게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의사, 법무사, 변호사 등에게는 특히 허용하는 이른바 ‘불법 조각적 신분’ 또는 ‘불구성적 신분’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신분관계로 인해 성립될 범죄에 가공한 행위는 신분관계가 없는 자에게도 전3조(공동정범, 교사범, 종범)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규정(형법 제33조)에 근거하여, 아들과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한 아내를 존속살해죄의 공동정범으로 의율하고 있다(대판 1961.8.2. 4294형상284). 치과의사가 환자의 대량유치를 위하여 치과기공사에게 내원환자들의 진료행위를 하도록 지시하였다면 무면허 의료행위의 교사범에 해당하고(대판 1986.7.8. 86도749), 의료인일지라도 의료인 아닌 자의 의료행위에 공모하여 가공하면 의료법 제25조 제1항이 규정하는 무면허 의료행위의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진다(대판 1986.2.11. 85도448)고 판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법무사 아닌 전문브로커들의 변호사법 위반행위에 A 법무사가 분배 약정을 하고 이들에게 가공한 행위를 공모공동정범으로 판시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여러 대법원 판례에 따른다면, 불법 조각적 소극신분자인 변호사가 변호사 아닌 사건브로커들의 변호사법 위반행위에 같은 방식으로 서로 약정하여 가담한 경우에도,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 위반죄의 공모공동정범이 되는 동시에, 같은 법 제109조 제2호(변호사 아닌 자와의 동업 또는 변호사 명의대여 등 금지) 위반죄와의 상상적 경합이 될 것이다(1호, 2호는 같은 형벌). 따라서 이 사건 대상판결의 판시도, 공범과 신분에 관한 종전의 판례와 기본적으로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의 해석 대상판결이 법무사 아닌 B 등 브로커 3명에게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를 적용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대리’에 본인의 위임을 받아 대리인의 이름으로 법률사건을 취급하는 법률상의 대리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형식만 본인이 직접 행하는 것처럼 할 뿐 실질적으로 대리가 행하여지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포함한다고 해석한 것도 기본적으로는 타당한 판시이다. 이것 또한 새로운 판결이라기보다 대법원(1999.12.24.선고) 99도219 판결과 대법원(2002.11.13. 선고) 2002도2725 판결에서 이미 같은 내용으로 판시한 바 있다. 5. 국민의 사법접근권과 법무사 사건수임 방식 (대상판결의 문제점) 대상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법무사 A에게 법무사 아닌 B 등 브로커 3명의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 위반죄의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하는 것이 정당하다고만 판시하였다는 것이다. 국민이 특정 법무사에게 지속적인 법률상담을 받고 사건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연속하여 상담과 법원제출 재판 서류의 작성 및 제출 대행을 포괄적으로 맡기는 것을, 마치 대법원이 법무사 업무 범위 초과라고 판시한 것처럼 많은 일간신문이 보도하고 있다. 대법원은 많은 비용을 들여 법무사들에게 파산·면책과 채무자회생절차 사건 처리요령을 교육하였고, 서울중앙지법 파산과는 파산관련 민원인들을 법원 내 법무사 파산상담실로 보내 안내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10일자 각 신문에는 “개인파산 대행업무, 법무사는 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가 파산업무를 대행한 법무사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했으며, 이들 업무는 변호사 고유 업무라는 이유에서라고 보도하고 있다. 언론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오해하여 잘못 보도한 탓이 크지만, 대법원은 마땅히 지속적 법률상담과 포괄적 사건 위임을 무조건 업무 범위 초과라고 본 항소심 판결이유 부분의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하였어야 옳았을 것이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은 헌법상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이다(헌법 제27조). 이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법무사와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권리이다. 판결절차도 아닌 비송사건에까지, 법정구두변론이 아닌 법원제출 서류의 작성 제출까지도 사건 종결시까지 포괄 위임해서는 안 되고, 오직 서류 하나씩만 법무사에게 일일이 반복 위임하도록 국민에게 고통을 가해야 하겠는가(대법원이 인가한 법무사 보수규정에도 특정 사건의 지속적 법률상담료로 월30만원 받는 것을 허용하고, 또 의뢰인의 정서는 한번 보수를 주면 사건 종결시까지 해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법원은 언제까지 특정 공급자의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헌법 제119조 위반)을 두둔할 것인가. 법무사와 변호사 이원제 법률가를 둔 국가에서 법무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어디 있는가. 권위주의 독점시대는 지나갔다. 열린 시민중심사회의 시대정신에 맞게 법률소비자인 시민의 사법접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폐쇄적 독소조항인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는 그 적용범위를 최소화해야 하고, 적어도 인접 법률전문가인 법무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대법원이 이 사건 상고를 기각하면서, 법무사가 법무사 아닌 자와 공모하여 그들의 변호사법 위반행위(법무사도 아닌 자가 계속 반복하여 신청인 본인 명의로 파산 신청한 것)에 함께 가담하였으므로 공모공동정범 죄책을 면할 수 없지만, 법무사가 파산·면책 등 사건을 종결 때까지 포괄하여 수임 처리하는 것 자체가 법무사 업무 범위를 초과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 제도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서민층을 위한 법무사 제도의 입법취지를 잘 살려야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2007-07-19
위임범위를 초과한 타인의 현금카드 사용 현금인출의 형사적 죄책
I.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피해자로부터 그 소유의 현금카드로 20,000원을 인출해 오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카드를 건네받게 되자 이를 기화로 농협지점에 설치된 현금자동인출기에 위 현금카드를 넣고 권한없이 인출금액을 50,000원으로 입력해 그 금액을 인출한 후 그 중 20,000원만 피해자에게 건네주어 나머지 30,000원을 취득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이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권한없이 정보를 입력하여 30,000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보아 컴퓨터사용사기죄로 공소를 제기하였다. II. 법원의 판단 1심법원은 “우리 형법은 재산범죄의 객체가 재물인지 재산상의 이익인지에 따라 이를 재물죄와 이득죄로 명시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형법 제347조의2는 컴퓨터사용사기죄의 객체를 재물이 아닌 재산상의 이익으로만 한정하여 규정하고 있으므로, 타인의 신용카드로 현금자동지급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가 재물에 관한 범죄임이 분명한 이상 이를 위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대해 검사는 항소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공소사실을 30,000원을 절취하였다는 것으로 공소장변경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이를 허가하였다. 그러나 원심법원은 이와 같이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하여도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절도죄에 있어서 절취란 재물의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자의 지배를 배제하고 자신의 지배를 옮겨놓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인데, …(현금)인출자가 현금카드 소유자의 승낙에 의하여 일단 현금카드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다면, 그 승낙의 의사표시가 설사 하자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금지급기 관리자인 은행 등으로서는 현금카드 소유자의 계산으로 적법하게 예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현금카드를 절취한 때와 같이 현금카드 자체를 사용할 권한이 없는 경우와 달리 피고인이 예금명의인인 공소외인으로부터 위 현금카드를 사용할 권한을 일응 부여받은 이상 이를 기화로 그 위임 범위를 벗어나 추가로 금원을 인출하였다고 하더라도 현금지급기 관리자로서는 예금명의인의 계산으로 인출자에게 적법하게 현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경우 현금지급기 관리자에게 예금명의인과 그로부터 현금 인출을 위임받은 자 사이의 내부적인 위임관계까지 관여해 그 위임받은 범위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하여는 그 인출행위를 승낙하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법원이 입장을 유지하면서, “예금주인 현금카드 소유자로부터 일정한 금액의 현금을 인출해 오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이와 함께 현금카드를 건네받은 것을 기화로 그 위임을 받은 금액을 초과하여 현금을 인출하는 방법으로 그 차액 상당을 위법하게 이득할 의사로 현금자동지급기에 그 초과된 금액이 인출되도록 입력해 그 초과된 금액의 현금을 인출한 경우에는 그 인출된 현금에 대한 점유를 취득함으로써 이 때에 그 인출한 현금 총액 중 인출을 위임받은 금액을 넘는 부분의 비율에 상당하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보고, 형법 제347조의2의 컴퓨터등사용사기에 해당된다고 판시하였다. III. 대상판례의 해석 1. 기존 판례와 모순 되는가? 대상판결은 현금자동인출기에서 인출한 50,000원 중 위임받은 20,000원을 제외한 30,000원을 취득한 부분을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보았다. 그러나 타인명의의 신용카드를 부정사용하여 현금을 인출한 행위에 대한 기존의 판례(대판 2003. 5. 13. 2003도1178)는, 현금은 재물이지 재산상 이익이 아니고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조문상 ‘재물’을 객체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컴퓨터등사용사기죄는 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판례가 바뀐 것인가? 대상판례가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닌바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하려고 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면 판례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모순된 판결이 병존하는 것인가? 대상판결은 이상의 의문점을 풀어주는 상세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2. 초과 인출된 30,000원은 ‘재물’인가? 대상판결에서 피고인은 타인의 신용카드를 절취해 이용하는 것처럼 이용권한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카드소지인으로부터 현금을 인출할 권한을 부여받았는데 그 위임의 범위를 초과하여 50,000원을 인출하고 차액인 30,000원을 취득하였다. 만약 위임의 범위를 초과한 30,000원을 ‘재물’로 보면 기존의 입장에 따라 절도죄가 성립한다고 해야 할 것인데, 대상판결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추측컨대, 대상판결은 피고인은 카드소지인으로부터 위임받은 20,000원을 넘어서 현금인출기에 인출금액으로 50,000원을 입력하였을 때 카드소지인의 통장에서는 카드소지인이 본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했던 범위인 20,000원을 초과하여 30,000원의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하였고, 이것이 바로 피고인이 획득한 재산상의 이익이며 이후의 현금 취득은 형법상 불가벌의 행위로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권한없이 정보를 입력하여 타인의 계좌로부터 자신의 통장계좌로 일정 금액을 계좌이체한 후 그 통장으로부터 해당 금액을 인출한다고 한다면, 계좌 이체한 시점에서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성립할 뿐 이후에 자신의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한 때에 별도의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과 유사한 논리이다. 3. 위임범위를 초과한 현금인출은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는가? 기존 판례들은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는 정당한 소지인에 대하여만 현금을 인출할 의사라고 보았다. 그래서 설사 비밀번호를 맞게 입력하였다 하더라도 정당한 소지인이 아닌 경우에는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현금을 뽑아간 것이라고 보아 절도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의 피고인은 카드소지인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정당한 소지인이다. 문제는 위임의 범위를 초과하였다는 것인데, 대상판례의 원심은 위임의 범위를 초과하였더라도 일단 카드소지인이 위임을 받은 이상 위임범위를 초과하여 현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민법상 ‘표현대리’(表見代理)의 원리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위임을 받은 자는 얼마를 인출하건 간에 정당한 소지인이므로 현금지급기 관리자가 피고인에게 현금을 내어준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피위임자인 피고인의 현금인출은 정당하며, 다만 피고인은 카드소지인에게 30,000원이라는 재산상 손해를 입힌 것이다. 이와 달리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를 정당한 소지인이 위임의 범위 내에서 인출하는 경우에만 현금을 내어줄 의사라고 좁게 해석한다면, 나머지 30,000원에 대하여는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현금지급기에서 30,000원을 뽑아낸 것이므로 기존 판례와 같이 절도죄로 의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가 카드와 비밀번호를 가지고 있는 소지인이라고 할지라도 위임의 범위를 초과하였는지 여부까지 따지며 현금을 지불할 의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상판결의 제1심 법원은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를 첫 번째 방식으로 이해한 반면, 대상판결은 두 번째 방식으로 이해하였다. 대상판결의 이러한 입장은 현금카드 소유자로부터 그 카드를 갈취 또는 편취하여 예금을 인출한 경우 이를 현금자동지급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가 점유하고 있는 현금을 절취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결과 같은 맥락이다(대판 1996.9.20. 95도1728 판결; 대판 2005. 9. 30. 2005도5869 판결). 3. 피해자는 누구인가? 한편, 이러한 해석을 피해자가 누구인가의 문제와 연결시켜볼 필요가 있다. 권한의 위임이 없는 경우에는, 카드소지인의 계좌에 마이너스가 생기더라도 그 피해가 카드소지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현금지급기 관리자에게 귀속된다. 즉, 피해자는 현금지급기 관리자(즉, 은행)이므로 현금지급기로부터 부정한 방법으로 현금을 뽑아낸 것에 초점을 맞춰 의사에 반한 재물취득으로서 절도죄가 된다. 반면, 카드소지인이 카드를 사용할 권한을 위임한 경우-또는 피고인이 카드 소유자를 협박하거나 기망하여 카드를 갈취 또는 편취한 경우-에는 피해자는 카드소지인이다.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입력한 이상 50,000원을 내어주면 되고, 현금지급기 관리자는 피해가 없는 것이다. 피고인은 위임의 범위를 초과하여 50,000원을 인출금액으로 입력함으로써 카드소지인에게 30,000원의 채무부담이라는 재산상 손해를 가하고 자신은 30,000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이다. IV.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상판결은 일견 기존판례와 모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기존 판례와 모순 되지 않게 ‘선해’할 수 있으며, 독자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물론 판단을 내린 대법관들이 위와 같은 논리에 입각하여 판결을 내린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대법원은 컴퓨터사용사기죄의 법정형은 절도죄의 법정형 보다 높은데 컴퓨터사용사기죄의 객체에 재물을 포함시켜 해석하는 것은 유추해석금지에 반하기 때문에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행위객체에 ‘재물’을 포함시키지 않는 해석을 견지하고 있다. 그 결과 타인의 신용카드를 자신의 계좌에 이체시킨 경우 외에는 거의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타인의 위임이 있는 현금인출의 경우는 현금지급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므로 절도죄가 부정되고,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성립 여부만이 남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데 그 의미가 있다. 요컨대, 대상판결은 ‘표현대리’의 원리를 활용하여 컴퓨터등사용사기죄 구성요건의 적용범위를 넓히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절취한 타인의 현금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이를 현금자동지급기에 사용하여 직접 현금을 인출한 행위가, 현금을 인출하지 않고 다른 계좌로 이체하거나 위임범위를 넘어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 보다 가벼운 처벌에 처해지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리고 컴퓨터부정사용이라는 동일한 행위수단이 사용되었으나 취득한 재산의 형태에 따라 적용 법조를 달리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컴퓨터사용사기죄의 객체에 재물을 추가할 법개정은 여전히 필요하다.
2007-04-30
준강도죄의 기수시기에 대한 대법원판결의 문제점
[다수의견] 형법 제335조에서 절도가 재물의 탈환을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죄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때에 준강도로서 강도죄의 예에 따라 처벌하는 취지는, 강도죄와 준강도죄의 구성요건인 재물탈취와 폭행·협박 사이에 시간적 순서상 전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질적으로 위법성이 같다고 보기 때문인바, 이와 같은 준강도죄의 입법 취지, 강도죄와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준강도죄의 기수 여부는 절도행위의 기수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별개의견] 폭행·협박행위를 기준으로 하여 준강도죄의 미수범을 인정하는 외에 절취행위가 미수에 그친 경우에도 이를 준강도죄의 미수범이라고 보아 강도죄의 미수범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함이 상당하다. [반대의견] 강도죄와 준강도죄는 그 취지와 본질을 달리한다고 보아야 하며, 준강도죄의 주체는 절도이고 여기에는 기수는 물론 형법상 처벌규정이 있는 미수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준강도죄의 기수·미수의 구별은 구성요건적 행위인 폭행 또는 협박이 종료되었는가 하는 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법규정의 문언 및 미수론의 법리에 부합한다. <사실관계> 피고인이 공소외인과 합동하여 양주를 절취할 목적으로 장소를 물색하던 중, 2003. 12. 9. 06:30경 부산 부산진구 부전2동 522-24 소재 5층 건물 중 2층 피해자 1이 운영하는 주점에 이르러, 공소외인은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서 피고인과 무전기로 연락을 취하면서 망을 보고, 피고인은 위 주점의 잠금장치를 뜯고 침입하여 위 주점 내 진열장에 있던 양주 45병 시가 1,622,000원 상당을 미리 준비한 바구니 3개에 담고 있던 중, 계단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공소외인을 수상히 여기고 위 주점 종업원 피해자 2, 이윤룡이 주점으로 돌아오려는 소리를 듣고서 양주를 그대로 둔 채 출입문을 열고 나오다가 피해자 2 등이 피고인을 붙잡자, 체포를 면탈할 목적으로 피고인의 목을 잡고 있던 피해자의 오른손을 깨무는 등 폭행하였다. <평 석> 1. 문제의 소재 준강도죄(형법 제335조)에 관하여 최근 논란이 많다. 특히 준강도죄의 기수시기에 관하여 대상판결은 종래의 ‘폭행협박시설’을 폐기하고, ‘절취행위시설’로 입장을 변경하였다. 이는 일부학설의 태도와 괘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수의견의 절취행위시설은 그 논리와 결론에 있어서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무엇보다 준강도죄의 본질과 관련하여 본죄를 신분범으로 볼 것인지, 결합범으로 볼 것인지에 관하여 학설과 판례는 논란이 있다. 주로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보는 판례에 의할 때, 대상판결은 내재적으로 모순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판례평석에서는 준강도죄의 본질과 관련하여 다수의견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 준강도죄의 본질 준강도죄의 기수시기에 대하여 논하기 이전에 먼저 준강도죄의 본질 또는 성격이 무엇인지 정리하여야 한다. 판례와 학설의 일부는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본다. 즉 절도범인이라는 행위주체가 탈환의 항거, 체포의 면탈 또는 죄적의 인멸이라는 목적으로 폭행, 협박을 가할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신분범설이라고 하자. 신분범설에 의하면, 준강도죄의 행위주체는 절도범인이고, 절취는 절도범인이라는 행위주체를 성립하는 선행행위에 불과하다. 준강도죄의 실행행위는 폭행·협박이 될 뿐이다. 이에 반하여, 준강도죄는 절도라는 제1의 실행행위와 폭행·협박이라는 제2의 실행행위가 결합하여 준강도죄를 구성한다는 견해는 결합범설이다. 결합범설에 의하면, 준강도죄는 두 개의 실행행위가 결합된 것이고 누구나 준강도죄를 범할 수 있으므로 신분범이 아니다. 필자를 포함한 일부 학설은 준강도죄를 결합범이라고 보고 있다(한상훈, 결합범의 구조와 신분범과의 관계, 법조, 2005.1, 96면; 한상훈, 형법상 결합범의 유형과 입법론적 검토, 형사법연구, 22호 특집호, 2005, 88면). 3. 신분범설과 결합범설의 구별실익 신분범설과 결합범설은 일견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분석하면 많은 차이점이 있다. 첫째, 사후적 가담자에 대한 법리가 달라진다. 갑이 절도를 범하고 체포를 면탈하기 위하여 폭행할 때에 을이 가담한 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신분범설에 의하면, 갑의 절도사실을 인식하고 폭행에만 가담한 을에 대하여 절도범인이라는 신분자의 범행에 가담한 비신분자의 행위로 파악된다. 즉 공범과 신분에 관한 형법 제33조가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와 동일한 사후강도죄(일본형법 제238조)에서 일본판례와 학설은 공범과 신분의 문제로 해결한다. 이에 반하여 결합범설에 의하면, 사후에 가담한 을은 승계적 공동정범의 문제가 된다. 신분범설에 의하면, 준강도죄가 진정신분범인지 부진정신분범인지, 그리고 형법 제33조의 본문과 단서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준강도죄를 부진정신분범으로 보고 형법 제33조에 대한 판례의 입장에 의하면, 사후가담자인 을은 준강도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되 그 처벌은 폭행죄에 의하게 된다. 준강도죄를 독립된 범죄로서 진정신분범으로 보면, 갑과 을은 모두 준강도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된다. 이와 달리 결합범설의 입장에 서면, 승계적 공동정범의 학설에 따라 을은 폭행죄로 처벌되거나 폭행죄와 준강도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두 번째 차이점은 미수와 기수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중 기수시점에 대하여 먼저 살펴본다. 4. 준강도죄의 기수시점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보는 판례와 일부학설은 준강도죄의 기수시점을 인정함에 있어서 폭행·협박시설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논리적, 체계적으로 불가피한 귀결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범죄의 기수라는 것은 당해 범죄의 구성요건요소가 모두 충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성요건요소는 행위주체, 객체, 실행행위, 결과, 인과관계 등을 말한다. 거동범이라면 행위객체에 대한 실행행위가 존재하여야 하며, 결과범이라면 행위객체에 대한 실행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가 발생하여야 기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행위주체도 그러한 구성요건요소 중에 하나일 뿐이다. 행위주체가 결여되어 있으면 기수에 이를 수 없겠지만, 반대로 행위주체가 존재한다고 언제나 기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행위주체 이외의 다른 구성요건요소가 충족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행위주체는 범죄가 기수에 이르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판례와 같이 신분범설에 의할 때, 준강도죄에서 절도는 행위주체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행위주체인 절도가 기수인지 여부가 준강도죄의 기수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정작 실행행위인 폭행·협박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점에서 대상판결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여 버렸다. 대상판결의 논지를 일관되게 적용하면, 위증죄는 증인이 되는 때에 기수에 이르고 진술여부는 관계가 없다. 수뢰죄의 기수시기는 공무원이 되는 시점이고 뇌물을 수수, 약속했는지 여부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결론의 오류는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5. 준강도죄와 강도죄의 관계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이러한 기수시점에 대한 체계적, 논리적 원칙보다는 준강도죄와 강도죄의 규범적 동일성에 주목한다. ‘강도죄와 준강도죄의 구성요건인 재물탈취와 폭행·협박 사이에 시간적 순서상 전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질적으로 위법성이 같고’, 강도죄와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준강도죄의 기수 여부는 절도행위의 기수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강도죄와 준강도죄가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고 양형의 균형성을 고려한다면, 다수의견과 같은 절취행위기준설이 아니라 별개의견과 같이 절도와 폭행·협박이 모두 기수에 이르러야 한다는 종합설을 취해야 한다. 강도죄는 폭행·협박에 의해 외포된 상태에서 강취하여야 기수에 이른다. 즉 폭행·협박과 절취가 모두 기수에 이르러야만 기수에 이른다.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미수인 상태에서 절취하였다면 강도미수나 공갈죄가 성립할 뿐이다. 강도죄는 폭행·협박이라는 실행행위와 절취라는 실행행위가 결합된 결합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도죄의 본질을 시간순서상의 전후만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절취라는 실행행위와 폭행·협박이라는 실행행위가 모두 기수에 이르러야만 준강도죄도 기수에 이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강도죄와 준강도죄의 동가치성을 역설하고 나서는 오히려 준강도죄는 폭행·협박에 관계 없이 절도만 기수에 이르면 성립된다고 결론짓는다. 이는 다수의견 자신의 전제에 의할 때에도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6. 준강도죄의 미수시점 준강도죄는 미수범을 처벌한다(형법 제342조). 준강도죄의 실행의 착수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는 학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분범설에 의하면, 실행행위가 개시되거나 이에 밀접한 행위를 개시한 시점이라고 볼 것이다. 준강도죄의 실행행위는 폭행·협박이다. 즉 절도범인이 폭행·협박을 개시할 때에 준강도의 미수가 성립된다고 볼 것이다. 결합범설에 의하면, 전체 결합범의 고의로 제1의 실행행위를 개시할 때에도 결합범 전체에 대한 실행의 착수가 인정된다. 야간주거침입절도의 의사로 주거에 침입할 때에 이미 야간주거침입절도죄의 미수가 성립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준강도의 의사로서 절취를 개시할 때에 준강도죄의 미수가 성립한다고 볼 것이다. 대상판결에 의하면, 준강도죄의 실행의 착수를 언제 인정할지 문제된다. 준강도죄를 신분범으로 보는 판례에 의하면, 실행행위는 폭행·협박인데, 기수시점은 이미 절도가 기수에 이르면 인정된다. 즉 절도기수에 이른 범인은 폭행·협박이라는 실행행위를 아직 하기 이전에도 준강도죄의 기수에 이르러 버린다. 준강도죄의 미수에도 이르지 않았는데 기수가 성립한다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7. 맺음말 준강도죄의 본질과 관계, 그리고 다수의견 자신의 논리로 보아도 다수의견의 결론은 부당하다.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준강도죄는 강도죄와의 관계에서 보아도 결합범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만 준강도죄는 단순히 강도죄의 시간적 변형 이외에 체포면탈, 죄적인멸이라는 국가적 법익에 대한 보호도 포함하고 있는 범죄라고 할 것이다(문제가 있다면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절도와 폭행·협박 모두의 기수를 요구하는 별개의견보다는 절도는 미수이든 기수이든 폭행·협박을 기준으로 기수여부를 판단하는 종래의 판례나 반대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2007-03-12
적법한 임의동행의 요건
I. 사실관계와 경과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절도혐의로 긴급체포할 의사로 피고인의 집 부근에서 약 10시간 동안 잠복근무를 한 끝에 새벽에 집으로 귀가하는 피고인을 발견하고 4명이 한꺼번에 차에서 내려 피고인에게 다가가 피고인을 둘러싼 형태로 경찰관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에 피고인이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공소외 타인의 진술 외의 보강증거가 없었기에 경찰관들은 피고인에게 임의동행을 요청하여 경찰서로 데리고 갔는데, 경찰관들은 피고인에게 동행 요구에 대해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전 고지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피고인을 경찰서에 동행한 후 대질신문을 진행하였고 임의동행이 이루어진 6시간 상당이 경과한 후 피고인에게 범죄사실의 요지, 긴급체포의 이유,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하고 긴급체포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관리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경찰서를 빠져나가 도주하였다. 원심인 춘천지방법원은 (1) 피고인에 대한 임의동행은 경찰관들의 심리적 압박 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임의성을 결여하였으므로 그 실질은 체포에 해당하며, 당시 영장을 발부받지도 않은 채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하는 등 긴급체포에 필요한 절차적 요건도 준수하지 않은 이상 위 강제연행은 불법체포에 해당한다, (2) 임의동행 이후 경찰서에서 이루어진 긴급체포도 형사소송법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불법이다, (3) 따라서 피고인은 불법체포된 자로서 형법 제145조 제1항 소정의 ‘법률에 의하여 체포 또는 구금된 자’가 아니므로 도주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라고 판시하였다(춘천지방법원 2005.8.26. 선고 2005노429 판결). 그리고 대법원은 평석대상판결에서 이와 같은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과정에 아무 잘못이 없음을 확인하면서, 임의동행의 적법성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II. 형사소송법과 경찰관집무집행법상 임의동행의 요건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은 ‘임의수사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바, 수사관이 수사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형식으로 피의자를 수사관서 등에 동행할 수 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200조 제1항에 의하여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에 대하여 임의적 출석을 요구하여 진술을 들을 수 있다. 한편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관은 ‘거동불심자’에 대하여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으며(제3조 제1항), 이 ‘거동불심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당해인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질문하기 위하여” 부근의 경찰관서로 동행을 요청할 수 있다(제3조 제2항). 형사소송법 제200조 제1항의 피의자신문의 경우 피의자는 출석의무가 없고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점에서 임의수사이며,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임의동행의 경우도 질문상대방이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으며 동행요구를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으므로 임의수사임은 틀림없다(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7항).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에 의거한 임의동행도 강제수사라는 학계의 소수설이 있지만[신동운, 『형사소송법』 (제3판, 2006), 114면], 학계의 다수설은 이를 임의수사로 파악하고 그 과정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III. 사안분석 1. 임의동행과 체포의 구별기준와 적법한 임의동행의 요건 제시 대법원은 임의동행에서의 임의성은 동행의 시간과 장소, 동행의 방법과 동행거부의사의 유무, 동행이후의 조사방법과 퇴거의사의 유무 등을 종합하여 객관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3.11.23. 선고 93다35155 판결). 대상판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동행을 요구받은 “상대방의 신체의 자유가 현실적으로 제한되어 실질적으로 체포와 유사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가 여부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경찰관 4명이 한꺼번에 차에서 내려 피고인에게 다가가 피의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을 동행한 점, 경찰관들이 동행을 요구할 당시 피고인에게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음을 말해주지 않은 점, 피고인이 경찰서에서 화장실에 갈 때도 경찰관 1명이 따라와 감시했다는 점 등을 주목하면서, “비록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을 동행할 당시에 물리력을 행사한 바가 없고, 피고인이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을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위에서 본 적법요건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채 사법경찰관의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하여진 사실상의 강제연행, 즉 불법 체포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합리적 인간이 생각하여 자신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겠구나 라고 믿는 상황이라면 이는 ‘정지’의 정도를 넘어서는 ‘체포’이며[U.S. v. Mendenhall, 446 U.S. 544 (1980)], ‘임의동행’된 시민의 행동의 자유가 “공식적인 체포의 정도로까지 제약되는 순간”[Berkemer v. McCarty, 468 U.S. 420 (1984)] 당해인은 체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과 동일하다. 그리고 대법원은 임의동행이 적법할 수 있는 요건을 제시한다. 즉, “아직 정식의 체포ㆍ구속단계 이전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체포ㆍ구속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각종의 권리보장 장치가 제공되지 않는 등 형사소송법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 주었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 또는 동행장소로부터 퇴거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수사관서 등에의 동행이 이루어졌음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명백하게 입증된 경우에 한하여, 그 적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2. 임의동행시 동행거부의 자유를 고지할 의무의 부활 그런데 여기서 대법원이 임의동행시 경찰관이 대상자에게 동행거부의 자유를 고지할 것을 임의동행의 임의성 판단에 있어 핵심적 기준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태우 정부 아래에서 1990년 10월 13일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1991년 3월8일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개정되면서, 임의동행시 동행거부의 자유와 동행 후 퇴거의 자유를 경찰관이 사전에 고지해야 하는 의무규정(제3조 4항 후단)이 삭제되고, 임의동행시의 시간적 제한을 3시간에서 6시간으로 연장된 바 있다(제3조 6항). 그러나 노상에서의 ‘정지’와는 달리 경찰관서로의 ‘동행’은 그것이 형식적으로는 피동행인의 동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시민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의 가능성이 매우 높고 또한 동행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체포에 못지 않다. 피의자신문 전에 진술거부권이 의무적으로 고지되어야 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임의동행이 진정 임의적이 되려면 피동행자가 자신에게 동행을 거부할 자유가 있음을 알고서도 동행을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79년 ‘Dunaway v. New York 판결’[442 U.S. 200 (1979)]은 노상에서의 정지와는 달리 경찰관서로의 동행의 경우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가 더욱 심각해지며, 설사 공식적으로 ‘체포’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수정 헌법 제4조의 통제 하에 들어간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대상판결을 통하여 임의동행시 동행거부의 자유를 고지할 의무를 부활시켰던 바, 헌법적 권리 보호를 위한 ‘사법적극주의’의 모범을 보였다고 평가한다. 3. 임의동행 이후의 긴급체포의 불법성 한편 대상판결은 사법경찰관이 임의동행 후 6시간 상당이 경과한 이후에 행해진 긴급체포의 경우 동행의 형식 아래 행해진 불법 체포에 기하여 사후적으로 취해진 것에 불과하므로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원심판결이 지적하였듯이, 피고인에 대한 불법한 임의동행 이후 6시간 상당이 경과하여서 비로소 범죄사실의 요지와 긴급체포의 이유 및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하면서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은 것은 체포 당시에 준수하였어야 할 절차를 뒤늦게 밟는 형식을 취한 것에 불과하며, 그 임의동행의 위법의 정도는 사소한 절차상의 흠을 넘어 중대한 하자가 있고 그와 같은 위법성은 사후적으로 취해진 긴급체포에도 그대로 승계된다. 임의동행 자체가 불법할 경우 사법경찰관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6항의 요구를 고려하여 6시간을 초과하지 않은 채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았다고 하여 그 긴급체포가 적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긴급체포는 ①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② 통상체포 보다 엄격한 사유,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구속사유가 있어야 하며, ③ 긴급을 요하여 지방법원판사의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을 것 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제200조의 3 제1항). 그런데 이 사안에서 피고인은 임의동행의 형식으로 체포된 후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는데 만약 당시의 사정만으로 긴급체포의 요건이 갖추어졌다면 사법경찰관은 바로 적법한 절차를 밟아 검사 또는 법원의 판단을 받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않았다. 이후 검사는 절도혐의에 대한 보강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지휘를 했고, 피고인은 수사기관의 조사에 순순히 응해왔다는 점 등을 고려하자면 임의동행 이후 이루어진 긴급체포가 형사소송법이 요구하는 적법성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IV. 맺음말 민주화 이후에도 임의동행의 형식을 빌려 신병확보 기간을 늘리고 수사를 진행하는 실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임의동행은 피의자의 동의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주장되지만, 수사기관의 동의 요청은 피의자를 사실상 강제하는 효과를 가진다. 대상판결은 임의동행의 적법성은 피의자의 형식적 동의 여부에 위해서가 아니라,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가 현실적으로 제한되었는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정식의 체포ㆍ구속단계 이전이라는 이유로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체포ㆍ구속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권리가 약화되지 않도록 수사관이 동행에 앞서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 주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동행과정에서 이탈 또는 동행장소로부터 퇴거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함을 명백히 밝힌 획기적 판결이다.
2007-01-11
자진출석한 참고인에 대한 불법한 긴급체포
I. 사실관계 및 쟁점 위증교사, 위조증거사용죄로 기소된 피고인 변호사 甲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되자 당시 공판검사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후 위 무죄가 선고된 공소사실에 대한 보완수사를 한다며 甲의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이던 피고인 乙에게 검사실로 출석하라고 요구하였다. 乙이 자진출석하자 검사는 참고인 조사를 하지 아니한 채 곧바로 위증 및 위증교사 혐의로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기 시작하였고, 이에 乙은 인적사항만을 진술한 후 검사의 승낙 하에 甲에게 전화를 하여 자신을 데리고 나가달라고 요청하였다.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사이 甲이 찾아와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乙에게 여기서 나가라고 지시하고 이에 乙이 검사실을 나가려 하자 검사는 乙에게 “지금부터 긴급체포하겠다”고 말하면서 乙의 퇴거를 제지하려 하였고, 甲은 乙에게 계속 나가라고 지시하면서 乙을 검사와 검찰계장을 몸으로 밀어 이를 제지하여 수사업무를 방해함과 동시에 검사에게 좌측팔꿈치 좌상 등을 가하였다. 요컨대 이 사건은 자진출석한 참고인에 대하여 피의자신문을 행하려는 수사기관의 기도를 참고인이 거부하고 바로 퇴거하려고 시도하자 수사기관이 이를 실력으로 제지하고, 이에 참고인이 저항한 사건이다. 대상판결은 자진출석한 참고인에 대한 검사의 긴급체포는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제1항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라 불법한 긴급체포이며, 따라서 피고인의 상해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참고인에 대한 긴급체포의 남용을 통제하려는 법원의 강한 의지가 드러난 선도적 판결인 바, 학계와 실무계 모두에서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II. 참고인조사의 의미 및 긴급체포의 요건과 판단기준 형사소송법상 참고인조사는 수사기관이 수사에 필요한 때 가능하다(제221조). 그런데 참고인조사는 피의자가 아니며, 참고인조사를 거부하더라도 과태료 부과나 구인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참고인조사가 ‘임의수사’임은 명백하다. 한편 긴급체포는 ①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② 통상체포보다 엄격한 사유,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구속사유가 있어야 하며, ③ 긴급을 요하여 지방법원판사의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을 것 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제200조의 3 제1항).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는 “사후에 밝혀진 사정을 기초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체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판단하여야” 하고, 이에 관한 검사나 사법경찰관 등 수사주체의 판단에는 상당한 재량의 여지가 있으나, “긴급체포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도 그 요건의 충족 여부에 관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의 판단이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경우”에는 그 체포는 위법한 체포이다(대법원 2002. 6. 11. 선고 2000도5701 판결). III. 사안분석 1. 범죄혐의의 상당성 먼저 긴급체포를 하려면 피의자에 대한 범죄혐의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학계 일부에는 체포는 구속과 구별된다는 이유로 긴급체포의 ‘상당한 이유’ 요건을 완화하려는 입장을 제기하기도 하지만[임동규, 형사소송법(제3판, 2004), 172면; 정웅석, 형사소송법 (제2판, 2005), 192면], 형사소송법상 체포와 구속의 요건 모두 ‘상당한 이유’라는 동일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특히 긴급체포의 경우 그 요건에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구속사유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긴급체포에서 요구되는 범죄혐의의 ‘상당성’은 구속의 경우와 같은 수준의 상당성, 즉 무죄의 추정을 깨뜨릴 정도의 충분한 객관적·합리적 혐의, 죄를 범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의미한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사무장 乙은 참고인 조사를 받는 줄 알고 검찰청에 자진출석하였는데 예상과는 달리 갑자기 피의자로 조사한다고 하므로 임의수사에 의한 협조를 거부하였고, 자신에 대한 위증 및 위증교사 혐의에 대하여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귀가를 요구하였다. 이 경우 검사가 변호사 甲이 위증교사를 범하였고 乙은 甲의 사무장으로서 위증교사의 공범일 것이라는 ‘주관적 혐의’를 가지고 있었음은 사실이겠으나, 위증교사로 기소된 甲에 대하여 이미 무죄가 선고되었고, 긴급체포 당시 乙에 대한 조사 자체가 이루어지지도 아니하였으므로 乙의 범죄혐의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 체포의 필요성 다음으로 乙은 수사기관의 소환에 응하여 수사기관에 자진출석하였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라는 안정적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甲에게 이미 무죄가 선고되었으므로 乙이 자신의 행위가 유죄판결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으로는 보기 힘들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乙이 조사를 거부하면서 퇴거를 요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乙은 이미 甲의 위증교사 사건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을 당시 위증교사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고, 甲은 위증교사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점, 또한 검사가 乙을 긴급체포한 이후에 별다른 조사 없이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의 피의자신문조서만을 받은 채 기소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乙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었다고도 보기 힘들다. 3. 체포의 긴급성 마지막으로 설사 검사가 乙을 소환하기 이전에 위 범죄혐의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애초에 통상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조사하거나, 乙을 피의자신분으로 소환하고 소환에 불응하면 통상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조사했어야 하므로 참고인조사의 형식을 빌려 영장주의의 요청을 회피하고 피의자신병을 확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긴급체포에서 긴급을 요한다고 함은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 등과 같이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때”(형소법 200조의3 제1항 후단)를 말하는 바, 당해 사안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4. 소결 따라서 검사가 피고인 乙의 긴급체포는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며 오히려 불법체포·감금죄(형법 제124조)에 해당하며, 임의출석한 乙과 그의 사용인인 甲이 검사에 대하여 이를 거부하는 방법으로써 폭행을 하였다고 하여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136조가 규정하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는 것이고,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긴급체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음에도 실력으로 수사기관에 자진출석한 자를 체포하는 것에 대하여 자진출석한 자가 이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검사나 사법경찰관에 대하여 폭행을 하였다고 하여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대법원 1994. 10. 25. 선고 94도2283 판결, 2000. 7. 4. 선고 99도4341 판결 등 참조). IV. 유사사례와의 비교―임의출석한 고소인에 대한 임의조사 후 행한 긴급체포 이상과 같은 대상판결의 사정(射程)범위와 관련하여 유사한 판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1998. 7. 6. 선고 98도785 판결이 그 예인데,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고소한 피의사건에 대하여 고소인 자격으로 피고소인과 대질조사를 받고 나서 조서에 무인하기를 거부하자 수사검사가 무고혐의가 인정된다면서 무고죄로 인지하여 조사를 하겠다고 하였고, 이에 피고인이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가방을 들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검사는 범죄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변명할 기회를 준 후에 피고인을 긴급체포하였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검사의 행위는 긴급체포의 요건을 갖춘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참고인이 조사를 받기 전에 퇴거를 요구한 평석대상판결의 사실관계와 달리, 98도785 판결에서 피의자는 임의출석의 형식에 의하여 수사기관에 자진 출석한 후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가 장기 3년 이상의 범죄를 범하였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드러나고, 수사기관이 영장을 청구할 경우에는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생긴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자진출석한 피의자에 대해서도 긴급체포가 가능함을 밝힌 것이다. 임의출석한 참고인이나 고소인에 대한 긴급체포의 적법성 판단이 긴급체포가 조사 이전에 행해졌는지 또는 이후에 행해졌는지의 차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루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전자의 경우 긴급체포가 불법하다는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V. 맺음말―임의조사·수사를 긴급체포의 전(前)단계로 활용하려는 수사실무에 대한 통제 강화 현행법상 검사가 행한 긴급체포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후 승인절차가 없고, 사법경찰관이 행한 긴급체포의 경우는 사후 즉시 검사의 승인만 받게 되어 있는바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48시간 동안은 법원의 어떠한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무영장체포가 수사기관에게 보장되어 있다. 즉, 긴급체포가 피의자의 구속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긴급체포 후 ‘48시간+판사의 구속영장발부의 결정기간’ 동안에는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는 수사기관에게 완전히 맡겨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긴급체포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사실무에서는 피의자가 출석요구 등 수사절차에 응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긴급체포를 행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현행법상 긴급체포에 대해서는 ‘사후체포영장’을 통하여 그 정당성이 추인될 필요가 없는 바, 현재로는 긴급체포의 범죄의 중대성, 신병확보의 필요성 및 긴급성 등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긴급체포의 남용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긴급체포에서 범죄혐의의 상당성, 체포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엄격하고 세밀하게 해석하고 있는 평석대상판결의 입장은 임의수사를 긴급체포의 전(前)단계로 활용하는 수사실무에 제동을 건 중요한 판결로서 향후 수사실무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 판결을 계기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는 참고인이나 고소인에게 임의출석을 요청한 후 출석하면 피의자신문을 개시하고 이를 거부하면 바로 긴급체포하는 관행은 사라져갈 것으로 예상한다.
2006-12-04
준강도의 예비
1. 사실관계 피고인이 강도예비, 특가법위반(절도)의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대상판례에서 문제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현행범으로 체포될 당시 칼과 포장용 테이프 등을 휴대하고, 등산용칼과 회칼을 피고인의 차량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이 절도 범행이 발각되는 경우 그 체포를 면탈하는 등의 목적으로 이를 휴대한 것임을 시인한 점등을 고려하여 피고인이 준강도의 예비에 해당한다고 보아 이를 강도예비죄로 기소하였다. 원심(대구지법 2004. 7. 6. 선고 2004고단3287 판결)은 이에 무죄를 선고하자 검사가 항소하였다. 항소이유로 강도예비죄를 처벌하는 이유가 강도죄의 흉폭성에 비추어 강도범행의 결의가 객관적·외부적으로 드러난 이상 실행의 착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고, 준강도의 경우에도 그 흉폭성과 행위의 불법성이 강도와 같다고 보아 강도죄와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는 점, 강도상해, 강도살인, 강도강간죄 등에는 준강도가 포함되는 점을 감안하면 강도예비의 강도에 준강도가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하여, 원심은 강도예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점을 들었다. 2. 판결요지 피고인이 야간에 등산용칼, 후레쉬, 포장용 테이프를 휴대하고 배회한 사실만으로는 피고인이 강도할 목적으로 예비하였다고 인정하는데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필자 부기: 가사 절도와 함께 체포면탈 등을 목적으로 위와 같은 물거을 휴대하고 피해대상을 물색하며 배회한 점이 충분히 입증되었더라도,) 원심 판시와 같은 이유로 준강도만을 예비한 행위를 강도예비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인정된다. 3. 판례의 검토 1) 준강도의 예비죄 성립가능성 대상판례의 사실관계가 다소 불명확한데, 피고인이 절도를 위하여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고 나아가 범행도중 발각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체포면탈 등의 목적으로 흉기를 휴대한 상태로 피해대상을 물색하던 중,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안이다. 검사는 피고인에 대하여 준강도죄가 통상의 강도죄와 폭행, 협박 등이 재물강취 등의 수단이 아니고, 재물의 탈취행위에 후행함으로 그 행위구조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폭행, 협박과 재물탈취 등의 순서만 역전되어있을 뿐, 전체적으로 유사한 행위태양과 불법성을 이유로 강도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어, 준강도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준비행위로 파악, 강도예비(형법 제343조)를 적용, 기소하였다. 원심 및 대상판결(항소심)은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체포면탈 등을 목적으로 흉기를 휴대하였는지의 입증이 명확하지 않고, 설사 입증되었더라도, 준강도를 예비한 행위를 강도예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하는데, 그 논거가 불분명하다. 이하에서는 준강도죄의 구조와 함께 준강도의 예비행위에 대한 강도예비죄 적용가능성을 살펴본다. 2) 준강도죄의 구조와 강도예비죄의 적용가능성 (1) 준강도죄의 성격과 구조 먼저, 준강도죄의 성격에 대하여 ① 강도죄의 특수한 유형, ② 절도죄의 가중유형, ③ 폭행, 협박죄의 가중적 구성요건 또는 ④ 절도나 강도죄의 가중유형이 아니라 독립된 구성요건으로 파악하는 견해 등이 있다. 한국의 지배적 시각은 ① 또는 ④라고 하겠는데, 어떠한 견해에서든지, 준강도죄는 폭행, 협박과 재물탈취행위의 결합형식이 통상 강도죄와 다르지만, 불법내용을 강도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점에서 강도죄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따라서, 폭행, 협박의 정도도 강도죄와 같이 평가하고, 그 시기도 절도의 기회시 행하여질 것을 요구한다(이재상, 형법각론 제4판, 박영사, 2001, 294면; 임웅, 형법각론, 법문사, 2001, 301면 등. 판례도 유사한 입장이다. 대법원 2004. 11. 18. 선고 2004도5074 전원합의체 판결). 아울러, 준강도죄의 구조에 대하여, ① 절도와 폭행·협박의 결합범으로 보는 입장(결합범설. 임웅, 전게서, 300~301면; 山口厚, 刑法各論 補訂版, 有斐閣, 2005, 227~229頁), ② 절도에 의한 폭행·협박이라는 신분범으로 보는 입장(신분범설. 박상기, 형법각론, 박영사, 1999, 269면; 참고로, 진정신분범설로 前田雅英, 刑法講義各論 第3版, 東京大學出版會, 1999, 203頁; 부진정신분범설로, 大谷實, 新版刑法講義各論, 成文堂, 2000, 238頁)이 있다. 주로 준강도죄의 성격을 위의 ② 내지 ③으로 보는 입장에서 ②설을 취한다. 준강도죄에 대한 견해 차이에 따라 준강도죄의 기수·미수 판단기준 및 폭행, 협박행위만 관여한 후행자의 처리방식 등이 달라진다. 즉, 신분범설에서는 폭행, 협박을 기준으로 기수, 미수를 판단하게 되지만, 결합범설에서는 절도의 기수, 미수여부를 기준으로 하게 된다. 또한 폭행, 협박에만 관여한 후행자에 대하여 신분범설에서는 준강도죄의 공범(진정(구성적)신분범설) 내지 폭행, 협박의 공범(부진정(가감적)신분범설)로 파악하지만, 결합범설에서는 승계적 공범의 문제로 파악하여, 승계적 공범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단지 폭행, 협박죄의 공범만이 성립하게 된다(이재상, 전게서, 295면. 한국에서는 결합범설이 상대적으로 다수적 입장이다). (2) 강도예비죄의 적용가능성 그렇다면, 준강도죄에 있어서도 강도예비죄의 적용이 가능한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사례를 확인하기 어렵다. 대체로 학설의 다수입장에서는 부정적 견해를 취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수견해는 준강도죄의 절도는 적어도 절도미수단계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고 예비행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절도의 예비행위만 하고, 폭행, 협박에 나아가 경우는 단순히 폭행, 협박죄만 구성하게 되는데, 만일 준강도의 예비를 긍정하면 폭행, 협박이 예비행위 만에 그친 때에도 강도예비를 구성하게 된다. 나아가 결합범설에서는 준강도죄의 예비를 인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절도예비나 폭행, 협박의 예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음에도 이를 결합하여 준강도의 예비로 파악하기는 논리적으로 곤란하다(특히, 동일한 결합범설에서도, 준강도죄를 강도죄의 특수한 유형이 아닌 독립된 범죄로 이해하는 경우, 준강도의 예비를 인정하기 더욱 어렵다). 또한 준강도죄는 절도행위 이후, 사후적으로 폭행, 협박에 나아가게 됨으로서 그 구조가 강도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강도죄와 동일하게 평가, 처벌하는 범죄인데, 절도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단계에서 강도예비로 포착하여 처벌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곤란하고, 현실적으로도 생각하기 어렵다. 아울러, 만일 준강도의 예비죄가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절도예비행위가 강도예비죄로 파악되는 결과가 야기될 것이고, 목점범인 예비죄에 있어서 목적은 기본범죄에 대한 확정적 인식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준강도의 예비사례는 대부분, 절도가 1차적인 목적이고, 사후의 폭행, 협박은 조건부, 불확정적인 형태에 그치는 점도 문제이다. 신분범설에서도 준강도죄의 예비를 인정하기에는 난점이 있다. 준강도죄는 절도의 신분을 갖춘 행위자만이 주체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신분을 갖추지 못한 자가 준강도예비죄의 행위주체가 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西田典之, 刑法各論 第2版, 弘文堂, 2002, 178頁; 참고로, 일본형법의 준강도죄 규정은 강도예비죄 보다 뒤에 위치함으로써, 법문상으로도 준강도의 경우 예비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는 점도 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한국형법은 준강도죄의 규정 이후에 강도예비죄 규정을 둠으로, 이러한 논란은 문제될 것이 없다). 반대로 준강도의 예비를 긍정하는 견해와 그 논거도 생각할 수 있다. 즉, 첫째, 준강도죄가 강도죄와 같이 처벌되는 것은 준강도죄가 강도죄에 필적하는 불법을 갖춘 점에 있는데, 이를 준강도 예비의 경우에 특별히 다르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둘째, 현실적으로 절도행위 외에 그 이후의 사태전개에 따라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할 의사로 이를 준비하는 행위는 충분히 가능하고, 단순히 절도만을 준비하는 행위와 구분할 수 있다. 일본 판례사안이지만, 피고인들이 보석점으로부터 보석을 절취하기로 계획하고 범인 중 일부가 쇼윈도를 부수어 보석을 절취, 도주하고 다른 공범이 만일 범인들을 추적하여 오는 점원 등이 있다면, 이에 폭행을 가하여 체포를 면탈하기로 범인들 간 상호 역할분담을 한 사안도 있다(大阪高判平成4·6·30判例集未登載). 셋째, 폭행, 협박의 의사가 조건부라 하더라도 조건부 의사가 반드시 불확정적 의사를 지칭하지 않는다. 절도가 범행 중, 발각되면 폭행, 협박을 가할 확정적 의사를 갖는 예도 가능하다. 넷째, 신분범설에서 분명히 행위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신분이 필요하지만, 신분이 없더라도 예비죄를 구성할 수는 있는 점 등을 논거로 들 수 있다(山口厚, 前揭書, 227頁, 前田雅英, 前揭書 220頁, 大谷實, 前揭書, 250頁. 참고로, 일본의 경우, 다수견해는 준강도의 예비를 긍정한다. 大谷實 編, 判例講義 刑法 II, 悠悠社, 2002, 69頁).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대상판례 외에 준강도의 예비를 언급한 판례는 없다. 참고로, 일본 最高裁判所 판례에서 피고인이 사무실에 침입, 절도를 계획하고 펜치 등 필요한 도구와 함께 만일 범행도중 발각된 경우, 체포면탈에 사용하기 위하여 등산용 나이프 등을 준비하고, 범행대상을 물색 중, 불심검문에 의하여 검거된 사례에서, 준강도죄의 예비를 인정한 예가 있다( 最判昭和54·11·19刑集33卷7·710頁,判時953·131頁). 4. 결 론 현재 대상판례는 상고 중으로, 대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 매우 흥미롭다. 사견으로는 준강도의 예비가 긍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준강도의 예비행위도 현실사례에서 충분히 상정할 수 있으며, 통상 강도예비행위와도 그 위험성 등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준강도죄를 결합범으로 파악하는 입장(사견으로는 준강도의 기·미수판단기준, 공범문제등을 고려할 때, 결합범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에서는 준강도에 있어서 강도예비죄를 인정함에 앞서 지적한 난점이 문제이다. 그러나 준강도죄는 강도죄의 특수한 형태로, 결합범으로서의 구조를 절도행위과정에서 발생하는 폭행·협박행위의 결합이 아니고, 절도행위와 폭행, 협박행위가 일정한 관련성을 갖고 혼합된 결합 형식으로 이해한다면, (결합범설에서도) 준강도에 있어서도 강도예비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6-10-30
부동산소유권 보존등기말소청구를 통한 소송사기 실행의 착수시기와 기수시기
Ⅰ. 사건경과와 논점 소송사기란 민사소송에서 “법원을 기망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 등을 얻고 이에 기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피기망자와 피해자가 다른 ‘삼각사기’(Dreieckbetrug)의 대표적인 예이다. 대상판결에서 피고인들은 한국전쟁 당시 등기부와 지적공부가 멸실돼 무주 부동산이 된 국유지를 가로채기로 공모하고, 일당 한 명을 원고로 내세워 허위로 위조한 매도문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위 토지가 원고의 피상속인의 소유이고 국가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는 원인무효라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보전등기말소의 소송을 제기하였고 대법원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았다. 대상판결의 1심과 원심은 이러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소송사기 기수에 해당한다고 보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의 유죄를 인정하였고, 대법원은 대상판결을 통해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확정하였다. 이는 소유권보존등기 명의자를 상대로 그 보존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 설령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소유권보존등기가 말소될 뿐이고 이로써 원고가 당해 부동산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를 회복 또는 취득하거나 의무를 면하는 것은 아니므로 법원을 기망하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83. 10. 25. 선고 83도1566 판결을 변경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소송사기와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는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한 경우 원고(피고인)는 그로 인해 어떠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인지 여부이다. 둘째는 부동산소유권 보존등기말소청구를 통한 소송사기의 경우 그 실행의 착수시기와 기수시기의 문제이다. 이하에서는 이상의 쟁점을 중심으로 대상판결을 분석하기로 한다. II.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 존재 여부 대상판결과 같이 소송사기의 피고인이 원고가 되어 피고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말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는 경우, 원고(피고인)는 부동산등기법 제29조에 따라 등기명의인의 등기 말소를 신청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승소확정판결문을 가지고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에 따라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렇지만 확정판결의 주문에는 피고인(원고)에게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에 따른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변경판결과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은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변경판결인 대법원 1983. 10. 25. 선고 83도1566 판결은 “피고인이 그 자신이 아닌 타인명의로 등기명의인들을 상대로 그들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 및 이전등기의 말소등기소송을 제기한 경우, 가사 그 타인이 승소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등기명의인들의 등기가 말소될 뿐이고 이로써 그 타인이 위 부동산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를 회복 또는 취득하거나 의무를 면하는 것은 아니므로 법원을 기망하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니 위와 같은 말소등기청구소송의 제기만으로는 사기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 바, 소유권보전등기말소소송의 승소만으로는 재물이나 재산상의 편취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상판결의 반대의견도 이 점에 대하여 동의를 표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송사기에서 원고(피고인)가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된다. 대상판결의 경우 원고(피고인)은 승소판결을 통하여 자기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할 ‘지위’, 즉 “타인의 협력 없이 자신의 의사만으로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었고, 이것이 판결주문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이를 통하여 원고(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사실상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형법상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 개념은 사법(私法)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실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해석은 허용되는 확장해석이다. III. 실행의 착수시기 사기죄의 실행의 착수시기는 편취의 의사로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이다. 변경판결은 타인이 소유권보존등기 및 이전등기의 말소등기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여도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사기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이에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법원을 기망하여 “타인의 협력 없이 자신의 의사만으로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면 사기죄의 기수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는 바, 당연히 소송사기의 실행의 착수를 있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반대의견은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확정판결을 얻어낸 경우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없지만, 재물인 부동산을 편취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으로는 평가할 수 있고, 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비로소 피고인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가 가능하게 되므로 실행의 착수시점은 소송을 제기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생각건대, 피고인은 말소등기의 확정판결을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판결로 이용하여 최종적으로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할 것을 목표로 하면서 말소등기를 구하는 소를 제기한 것인 바, 피고인의 범행계획에 의하면 소 제기 시점에서 범죄적 의사가 당해 구성요건의 보호법익을 위태롭게 할만 행위 속에 명백히 드러났으므로 바로 이 때를 소송사기죄의 실행의 착수로 보아야 할 것이다. IⅤ. 기수시기 1.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차이 그런데 소송사기의 기수시기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은 나뉘게 된다. 반대의견은 사기죄의 기수를 부정하고 미수만을 인정하는데, 그 근거로는 첫째,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확정판결문은 별도의 등기신청절차를 통하여 부동산등기법 제130조 제2호의 서류로 삼아 소유권보존등기를 신청할 수 있지만, 이는 확정판결 자체의 효력이 아니므로 이러한 지위를 사기죄의 객체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다음으로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에 따를 경우 자기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함으로써 부동산을 편취할 범의가 있는 자가 상대방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승소확정판결을 얻은 후 더 이상 범행이 불가능해진 경우 또는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에도 미수가 아니라 기수로 처벌해야 하므로 이는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수의견은 말소등기청구의 승소판결확정을 통해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면 이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기수가 된 것으로 파악한다. 명시적 언급은 없지만, 이후에 별도로 등기신청절차를 거쳐서 피고인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를 얻는 것은 넓은 의미의 재물편취를 위한 행위로 파악하는 듯 하다(대법원 1970.12.22. 선고 70도2313 판결 참조). 2. 평가―반대의견 비판 반대의견의 지적처럼, 소유권이전등기청구나 금전지급청구를 명하는 승소확정판결과는 달리, 말소등기청구의 승소확정판결 자체는 등기말소의 효과만을 가진다. 그러나 말소등기의 승소확정판결을 가지고 등기소에 가서 등기를 신청할 경우 등기소는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피고인 명의의 보존등기를 경료하여 주어야 할 것이고, 판결 자체로서 갖는 효력, 즉 기판력, 집행력 및 형성력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실질적인 판결의 효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판결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전등기청구를 명하는 확정판결의 경우에도 등기소에 등기의 이전을 신청해야 등기부상의 등기명의가 이전되고(부동산등기법 제29조), 집행권원을 부여하는 확정판결의 경우에도 집행법원에 집행을 청구해야 현실적으로 금원을 취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소유권이전등기청구나 금전지급청구를 통한 소송사기와 말소등기청구를 통한 소송사기의 기수시기를 다르게 보려는 반대의견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반대의견이 주목하는 피고인이 상대방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명하는 승소확정판결을 얻은 후 더 이상 범행이 불가능해진 경우 또는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와, 이전등기청구 승소확정판결을 받아 내고 등기소에 이전등기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범행이 불가능해지거나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 또는 금전지급청구 소송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아내고 집행법원에 집행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범행이 불가능해지거나 스스로 범행을 포기한 경우 사이에 차이를 두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상의 사정은 양형에서 고려하면 될 것이고, 말소등기청구에 의한 소송사기의 경우에만 특별히 그 미수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Ⅴ. 결 보존등기와 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한 소송사기에 관해서 실행의 착수조차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한 기존의 83도1566판결은, 피고인의 범행계획이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을 등기하는 것이고 말소등기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이를 위한 직접적인 행위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친 처벌의 공백을 만든 판결이었다. 이 점에서 대상판결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모두 피고인의 말소등기청구의 소제기를 소송사기의 실행의 착수로 본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이 이전등기청구소송이나 금전지급청구소송과 말소등기청구소송의 판결의 내용의 차이를 주목하며 당해 사건에서 사기죄의 기수를 부정하였지만, 부동산 편취의 의사로 허위로 부동산소유권 보존등기말소청구를 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아직 자신의 명의로 부동산 보존등기를 경료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대상 토지의 소유권에 대한 방해를 제거하고 그 소유명의를 얻을 수 있는 지위라는 재산상 이익을 이미 취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승소확정판결이 확정된 때에 소송사기가 기수가 되었다고 본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타당하다.
2006-10-09
테러범과 정치범 불인도 원칙
I. 시작하면서 2006.7.27.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는 서울고등검찰청이 청구한 베트남인 우엔 우 창(Nguyen Huu Chanh)에 대한 범죄인인도심사청구 사건에서 범죄인의 인도를 허가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범죄인인도심사 및 그 청구와 관련된 사건은 서울고등검찰청 및 서울고등법원 전속관할이고 대법원에 상소할 수 없는 결정이므로 우엔 우 창은 곧바로 석방되었다. 위 결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범 인도 청구 사건에 관한 결정이어서 선례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자 인도와 관련한 정치범죄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국제분쟁 적용법령의 해석 원리, 국제법원(國際法源)으로서의 UN-Resolution에 대한 평가를 충실히 내리고 있는 점 등 우리나라 국제법 실무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 좋은 결정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와의 외교적, 국제형사법적 공조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향후, 유사범죄를 저지른 대한민국 국적인 혹은 북한 국적인의 처벌을{혹은 베트남으로 도망한(?) 동원호 선원을 억류한 소말리아 해적의 처벌을}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대한 베트남의 대응 등은 물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소위 ‘정치범 불인도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는 필자와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어 이하에서는 사건 개요와 결정이유를 간략히 소개한 후 이에 대하여 논점 위주로 개인적 견해를 적어본다. II. 사건의 개요 1. 범죄인의 범죄사실 범죄인 우엔 우 창은 1950년 베트남에서 출생하여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가 미국영주권을 취득하고, 1992년 Vinamoto Company의 임원 신분으로 베트남에 입국한 후 1995.4. 자유베트남 혁명정부를 조직하여 자신을 내각총리로 지칭한 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전복을 목적으로 13개항에 이르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고, 범죄사실은 그 내용상 아래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 1999년부터 자유베트남 혁명정부의 조직원을 훈련시키고 테러를 위해 각종 폭발물을 운반하고 반베트남 선전을 유포하고 호치민 방송국 등의 공공시설에 폭탄을 장치하였으나 발각되어 미수에 그치고 대중이 운집하는 광장에 폭탄을 투척할 것을 모의하였으나 테러계획이 공안당국에 알려져 미수에 그친 점 등의 다수의 테러를 기도하고 2) 2001.6.19. 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폭탄을 넣은 핸드백 2개를 던져 넣고 휴대폰을 이용하여 원격 조정하여 대사관을 폭발시키려고 하였으나 뇌관 조립과정상의 문제로 폭탄이 터지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2. 불인도 결정 이유 가. 위의 범죄사실이 인도대상범죄에 해당하나, 자유베트남 혁명정부의 성립 배경 및 활동 내용을 고려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범죄는 정치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후,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간의 범죄인 인도조약(2005.4.19. 발효, 이하 ‘이 사건 인도조약’이라고 한다)과 범죄인 인도법(2005.12.14. 일부 개정)의 정치범 불인도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정이 없는 한 범죄인을 청구국에 인도할 수 없다. 나. 대한민국은 2004.2.9. 폭탄테러범죄를 범죄인 불인도 대상인 정치범죄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였고, 범죄인 인도법 제8조 제1항 제2호 “다자간 조약에 의하여 대한민국이 범죄인에 대하여 재판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범죄”는 정치범 불인도 예외사유로 정하고 있어 폭탄테러행위를 저지른 범죄인을 예외사유에 해당되는 듯 하나 신법우선의 원칙, 특별법 우선의 원칙 등 법률해석 원칙은 물론 범죄인 인도법 제3조의2 “범죄인 인도에 관하여 인도조약에 이 법과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른다”는 규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인도 조약 제3조 제2항 나목 ‘양 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에 의하여 당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 범죄’만을 정치범 불인도 예외사유로 하고 있고 다자간 국제협정인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 베트남은 가입하지 않아 위 조약은 양 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이 아니므로 이를 근거로 범죄인을 인도 할 수는 없다. 다. 테러범죄자에 난민의 지위가 악용되거나 테러행위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이유로 범죄인 인도요청이 거부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 등을 규정한 미국 9·11 테러 직후에 채택된 ‘UN 안보리의 2001.9.29.자 결의’에 대한민국과 청구국은 모두 서명하여 위 결의의 당사자가 되었으나, 위 결의는 당사국에게 구체적인 범죄인 인도의무를 부과하는 국제협정이 아니다. 라. 범죄인 인도법 제8조 제1항 제3호의 ‘다수인의 생명·신체를 침해·위협하거나 이에 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범죄’를 정치범불인도 예외사유로 열거하고 있으나 이 사건 인도조약은 이를 예외사유 중의 하나로 열거하지 않고 있으므로 범죄인 인도법 제8조 제1항 제3호를 적용하여 인도를 허가할 수는 없다. III. 평석을 위한 몇 가지 논점 정리 1. 정치범죄와 테러행위 ‘정치범죄’는 그 동기와 목적, 해당국가의 정치 상황, 행위양상, 성질 등을 기준으로 정의하여야 하나 현재까지 국제사회가 합의한 일의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범죄인 인도와 관련하여 정치범죄 여부에 대한 판단은 피청구국의 사법당국에 맡겨진다고 하지만 청구국이 행하는 구체적인 사법조치를 전제로 하여 판단하므로 실체적, 절차적으로도 엄격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한편 ‘테러’는 1983년 Axel P. Schmid가 펴낸 ‘Political Terrorism’에 당시까지의 테러 개념이 109개로 정리되어 있고, 1988년 같은 저자가 펴낸 증보판에 수십개의 정의가 추가된 상황이고 보면 테러의 정의는 테러 연구자 수만큼 많아져 개념정의에 어려움이 있다. 국제법 발전역사상 정치범죄자는 난민대우 혹은 범죄인 불인도 등으로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하고, 테러범죄는 국제적 범죄로서 보편적 사법권의 형식으로라도 처벌해야 할 범죄이지만 테러범죄 또한 많은 경우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어 소위 ‘정치범죄’에서 ‘테러’를 분리해 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2. 테러행위와 정치범불인도 원칙 정치범불인도는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일부국가들이 도망정치범을 비호할 권리의 근거로서 주장한 것으로 자코뱅당의 테러적 지배(테러의 어원은 자코뱅당의 억압적 지배방식에서 유래한다)를 피하여 이웃 나라로 도망친 많은 국가테러 피해자들이 정치범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러한 정치범은 19세기 이래 많은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으나, 개념적으로 정치범불인도가 국제관습법상 정치범죄인을 인도하여서는 안 된다는 국가의 의무인지 그렇지 않으면 범죄인도조약에 의거하여 조약상 발생한 인도의무를 거부할 권능을 인정함에 불과한 것인가에 관하여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3. 반테러협약과 보편적 테러행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정치범 인정 여부는 피청구국이 판단하므로 자국의 이해에 따라 정치범불인도 원칙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러한 해석에 따른 범죄인 불인도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없지 않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소위 반테러협약을 통하여 국제사회가 합의하는 일정한 범죄양상에 대하여는 정치적 성향을 띠는 정치범죄라 하더라도 aut dedere aut punire(인도 혹은 처벌)에 따라 처리하는 국제적 컨센서스를 이루어, 반테러협약상의 범죄행위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국제테러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예컨대, 항공기테러억제협약(1970), 외교관등에대한테러방지협약(1973), 인질방지협약(1979) 등 반테러협약에 관해서는 http://untreaty.un.org 참조} 4. 국제분쟁의 적용 법리 범죄인 인도 등 국제성을 보유한 사건에 대하여는 국내 법원도 국내법은 물론이고 국제법 원리에도 부합하는 판단을 하여야 한다. 특히, 국제테러는 해당 국가에 대한 범죄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로 인식되는 중요한 국제법적 사건이므로 헌법과 해당 법률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성문 국제법은 물론이고 관습법 그리고, 국제법의 일반원칙, ILC 등이 확인하고 있는 강제규범으로서의 ius cogens 혹은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의무로서의 erga omnes 와의 조화적 해석 등까지 면밀히 검토하여야 한다. IV. 결정의 평석 1. 국제테러행위 재판부는 청구인의 폭탄테러행위가 정치범 불인도 예외범죄인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상 범죄이나, 청구국이 위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으므로 위 범죄인을 인도하게 되면 이 사건 인도 조약을 위반하게 된다고 하고 있는 바, (재판부의 견해에 의하더라도) 최소한 위 범죄인의 폭탄테러행위가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의 테러행위임은 인정하고 있다. 위 테러행위는 미수에 그쳤고 베트남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실제 기수에 달하였다면) 위 폭탄테러는 자국민 타국민을 가리지 않는 피해를 야기할 국제테러행위이다. 이러한 국제테러범죄는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행위이고, 이를 억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한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제사회 전체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이 사건 인도 조약의 해석에 따라 청구국이 폭탄테러억제협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테러행위자를 자유롭게 놓아준다면 대한민국은 (결과적으로) 소극적으로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일 수 있다. 2. 외교관 등에 대한 테러행위 위와 견해를 달리 하더라도, 이 사건 범죄인의 많은 범죄행위 중 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폭탄을 투척한 행위는 1973. 12. 14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외교관등 국제적 보호 인물에 대한 범죄의 예방 및 처벌에 관한 협약’ 제2조 제1항 (라)목 위반의 국제테러범죄이다. 위 조약은 대한민국이 1983.5.25. 가입하였고, 베트남 또한 2002.5.2. 가입하였다. 따라서, 재판부가 밝힌 것처럼 대사관 폭탄 투척 이외의 폭탄테러는 ‘폭탄테러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과 관련하여 정치범죄로서 정치범 불인도 예외 사유인 ‘양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에 의하여 당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 범죄’가 아니지만, 외국 주재 자국 대사관에 폭탄을 투척한 행위는 재판부의 견해에 의하더라도 ‘양당사국이 모두 당사자인 다자간 국제협정에 의하여 당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 범죄’로서 정치범죄라고 하더라도 정치범 불인도의 예외사유로서 대한민국에 aut dedere aut punire 의무가 있는 범죄이다. 3. 테러행위의 전단계 범죄화 및 형법의 세계주의 도입 폭발물을 사용한 범죄, 공공시설과 다수 인명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범죄에 대하여는 현실적 피해발생(구성요건적 기수)을 범죄의 구성요건 사실로 보고 이를 처벌하게 된다면 형사법의 보호적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없다. 따라서 테러행위는 예비, 음모 등의 구성요건 실행 착수 이전 단계에서 적절한 범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위 전단계 범죄화(Vorfeldstrafe)가 필요한 분야임에도 결정 이유에서 폭발물 사용의 대상이 사람인지 시설인지조차 특정되지 않아 ‘다수인의 생명·신체를 침해·위협하거나 이에 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범죄’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해석은 해당국가와 국민의 법익 침해를 너무 과소평가한 해석으로 볼 수 밖에 없고, 피청구인이 테러행위를 중단하겠다는 의사 또한 어디에도 읽을 수 없다. 지금껏 미수에 그친 그의 테러행위가 후일 어디에선가 기수에 이르게 되는 순간, 대한민국의 부적절한 대응은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끝으로, 정치범 불인도 원칙을 가장 먼저 입법화한 벨기에가 국제적 테러는 delicta juris gentium으로 간주하고 범죄지, 범인이나 피해자의 국적, 범죄지국의 법률 등을 묻지 않고 자국법에 의하여 재판하겠다는 절대적 세계주의(Weltrechtsprinzip)를 규정함은 이번 인도 청구 사건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06-08-21
경영판단의 원칙상 배임죄의 고의와 그 제한
Ⅰ. 판결요지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고 있어서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없이 선의에 기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돼야 할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Ⅱ. 경영판단의 원칙의 인정 근거(이상돈, 경영실패와 경영진의 형사책임, 법조, 2003년 5월호 88쪽~92쪽 참조)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기업의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이해관계없이, 그리고 성실히 회사의 이익에 합치한다는 믿음을 갖고 회사의 경영에 관한 판단을 한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회사에 대해 손해를 초래했더라도 그러한 판단을 한 기업의 경영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경영판단 원칙의 인정 근거로는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법적 판단과 기업 경영자의 경영판단은 상이하다는 데 있다. 우선 경영판단은 합리적 경영과 비합리적 경영의 구분이 법적 판단에서의 합법과 불법의 차이만큼 뚜렷하지 않다. 즉, 아무리 충실하게 정보를 수집해 경영에 관한 판단을 내리더라도 실패할 수 있는 반면, 부실한 경영판단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평균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업 경영자가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더라도 그것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경우 그 기업 경영자의 결정을 비합리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창의성과 도전정신은 경영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권장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법적 판단은 평균적인 행위자의 입장에서 합법과 불법의 판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영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은 자칫 경영 성패에 따라 그 결론을 달리 할 위험을 안고 있다. 다음으로 경영판단에는 ‘위험감수원칙’이 적용되는 데에 반해 법적 판단에는 ‘위험회피원칙’이 적용된다는 점 역시 경영판단의 중요한 특성이다. 현대사회에서 법은 개인들에게 법익침해의 위험을 회피하도록 요구한다. 위험을 창출하거나 증대시키는 것 혹은 위험을 방치하는 것은 법적 책임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경영판단은 장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에서는 위험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고수익, 고위험’이라는 말처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감수할 것까지 요구된다. Ⅲ. 업무상 배임죄의 가벌성 확대와 제한의 필요성 1. 업무상 배임죄의 가벌성 확대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기업의 경영자들이 업무상 배임의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해야 한다. 그런데 판례는 업무상 배임의 구성요건을 완화해 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이 같은 판례에 따를 때 기업 경영자들은 경영상의 결정이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가. 임무위배 개념의 불명확성과 손해개념의 확장 현재 통설 및 판례는 신의칙에 의한 사실상의 신임관계를 위배하는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임무위배 행위에 포함시키고 있고, 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의 신임관계라는 개념은 그 한계를 명백히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태도에 의할 경우 법률관계가 신속하게 변화하고 그 내용이 복잡다기한 상거래 분야에서는 기업의 경영자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인지 예측할 수 없게 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한편, 형법 제355조 제2항은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하여 손해개념을 확장하면서 자금 유동성의 장애까지 손해로 파악하고 있다(대판 1989. 11. 28. 선고 89도1309, 대판 2001. 11. 13. 선고 2001도3531). 그런데 경영상의 결정은 장래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에 항상 손해 발생의 위험이 수반된다. 따라서 손해발생의 위험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손해개념에 포함시키게 되면 결국 거의 모든 경영상의 결정이 업무상 배임죄의 적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대법원에 의한 고의의 인정 범위 확대 고의란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인식하고, 구성요건을 실현하려는 의사이다. 그리고 고의에는 확정적 고의뿐만 아니라 미필적 고의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업무상 배임의 경우에도,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손해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게 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최근 “배임의 범의는 배임행위의 결과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염려가 있다는 인식과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득을 얻는다는 인식이 있으면 족하다”고 판시해 결과발생의 가능성 혹은 위험에 대한 인식만 있으면 고의가 인정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판 2004. 7. 9. 선고 2004도810). 대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고의의 두 가지 요소인 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 중 의지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인식있는 과실을 모두 미필적 고의에 포함시키게 되고, 결국 미필적 고의의 인정범위를 기존의 판례보다 더욱 확대한 것이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따를 경우 기업경영인들에게는 사실상 자동적으로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인정될 수밖에 없다. 2. 업무상 배임의 처벌범위 제한의 필요성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재의 대법원의 태도에 따를 경우, 기업의 경영인은 업무상 배임죄의 구성요건요소 중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본인의 재산상 손해’, ‘고의’라는 요건을 이미 충족한 상태에서 기업 경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임무위배행위’라는 개념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경영인의 경영상의 실패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게 요구될 경우, 법원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임무위배’가 손쉽게 인정될 위험이 있다. 결국 기업 경영인의 경영판단에 업무상 배임죄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를 그대로 관철시킨다면, 기업 경영인의 경우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범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게 된다. 게다가 기업 경영인에 대해 업무상 배임이 문제되는 것은 주로 그의 경영이 실패했을 경우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상 결정의 성공여부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여부가 달라질 우려가 있다. 이는 사실상 기업 경영인에게 책임주의에 반하는 결과책임을 묻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는 기업 경영인의 경영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때에는 어떻게든 수정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을 고려할 때 기업 경영인의 경영실패의 책임은 먼저 사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고, 형법에 의한 처벌은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 3. 미필적 고의와 경영상 ‘위험감수원칙’의 충돌 이렇게 기업 경영에 있어서 업무상 배임의 처벌범위가 극도로 확대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미필적 고의와 경영상 위험감수의 요구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즉, 미필적 고의에 대해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 외에 의지적 요소로서 결과발생의 위험을 감수할 것까지 요하는 통설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기업 경영자에게는 대부분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에는 항상 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자들 중에서 자신의 경영상 결정으로 회사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경영자는 이윤추구를 위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의 감수는 자유경쟁과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당연히 요구되는 자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감수’는 형법적으로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를 의미하고, 이는 업무상 배임이 문제된 기업 경영인에게 대부분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게 된다. 왜냐하면 형법은 법익침해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경영인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라는 경영상의 요구와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법적 요구가 충돌하게 된다. Ⅳ. 경영판단 원칙에 의한 미필적 고의의 배제 결국 경영상 판단에 적용되는 ‘위험감수원칙’과 미필적 고의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둘 중의 어느 한쪽을 제한해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기업 경영에서 미필적 고의의 개념을 관철한다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업 경영인들에게 자동적으로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기업 경영자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적게는 한 기업의 몰락, 크게는 국가경제의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에,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대해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를 배제하는 것은 형법의 보충성에도 부합하며업무상 배임죄의 처벌 범위 확대에 제동을 거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경영인에게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미필적 고의 이상의 의도적 고의가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법원 역시 본 판결에서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해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볼 때도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돼 당해 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하여 미필적 고의를 경영판단에까지 관철하는 경우 발생하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대상 판결에서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진 경영판단에 대해서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도적 고의가 필요하다고 판시하면서 미필적 고의를 배제하였다. 그리고 그 요건으로 ‘첫째, 경영자가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가 없을 것. 둘째,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셋째, 선의에 기하여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Ⅴ. 맺음말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 그동안 상법학계에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대법원 역시 2002. 6. 14. 선고 2001다52407판결에서 이 원칙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상법학계와는 달리 형법학계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대법원은 본 판결에서 최초로 형사법에서도 경영판단 원칙을 정면으로 인정하면서 위 원칙의 도입의 필요성 및 그 요건 등을 상세하게 설시하고 있고,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 판결을 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 형법학에서도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6-06-19
6
7
8
9
10
banner
주목 받은 판결큐레이션
1
[판결] 법률자문료 34억 원 요구한 변호사 항소심 패소
판결기사
2024-04-18 05:05
태그 클라우드
공직선거법명예훼손공정거래손해배상중국업무상재해횡령조세사기노동
달리(Dali)호 볼티모어 다리 파손 사고의 원인, 손해배상책임과 책임제한
김인현 교수(선장, 고려대 해상법 연구센터 소장)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법신서점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년 8월 24일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신동진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년 12월 1일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