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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과 관련 판례들
I. 槪觀 정부는 지난 2001. 12. 증권관련집단소송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증권관련집단소송제도의 근본 취지는 증권시장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 내부자거래 등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입게된 다수의 소액투자자들에게 효율적 구제 수단을 제공하고 이와 동시에 증권시장 및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하는데 있다. 그러나,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기업 비용의 증가, 경쟁력의 약화, 주가하락시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의 대외신인도 추락, 합의금 및 패소 비용으로 인한 기업의 집단도산 초래 우려 등의 이유로 이 제도의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여 왔다. 그런데, 증권집단소송제도를 이미 수십년 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는 미국의 경우, 증권집단소송이 전문적 원고(이른바’Professional Plaintiff’)들이 합의금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이들에 의한 남소가 만연됨으로 인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자 집단소송제도의 남용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입법과 사법 분야에서의 여러 시도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바,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1995년 제정된 증권민사소송개혁법(Private Securities Litigation Reform Act of 1995)이라고 할 수 있다. II.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과 관련 판례들 1.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의 제정前 미국 증권집단소송제도의 展開 우선 절차법적인 측면을 살펴보자면, 미국의 집단소송제도(‘class action’)는 미국연방민사소송규칙에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바, 동 민사소송규칙 제23조(a)는 집단소송이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을, 제23조(b)는 당해 소송의 충분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집단소송의 성립을 위하여 동 규칙이 제시하고 있는 필요조건으로서는 다수성 요건(Numerosity), 공통성 요건(Commonality), 전형성의 요건(Typicality) 및 공정한 보호의 요건(Adequacy of representative)이 있고, 그외 판례법상 인정되고 있는 필요요건으로서는 구성원의 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는 요건과 대표당사자가 집단의 구성원이어야 한다는 요건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집단소송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 요건 전부가 구비되어야 한다. 미국 증권집단소송의 실체법적인 근거는 1933년 제정된 증권법(Securities Act of 1933)과 1934년 제정된 증권거래법(Securities Exchange Act of 1934)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증권거래법은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상당한 권한을 위임하고 있고, 그 내용은 증권거래위원회 규칙(‘SEC Rule’)에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이들 법과 규칙 중 증권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허위공시와 기망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증권거래법 제10(b)와 SEC Rule 제10(b)-5인데, 이들 규정은 단독으로 혹은 다른 규정들과 중첩적으로 주장 및 적용된다. SEC Rule 제10(b)-5은 명시적인 배상책임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1946년 법원은 판례법상 사기를 이유로 한 제소를 허용하였고 이와 같이 법원이 ‘시장에서의 사기이론’을 수용한 뒤 증권집단소송의 활용이 증대되었다. 2.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의 制定 증권집단소송제도는 그 근본 취지와는 달리 주로 전문적인 원고들이 치부를 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으며, 변호사와 대표당사자들은 의뢰인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제소와 화해 여부를 결정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전문적 원고들의 남소는 수많은 기업들이 화해 비용으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지게하는 등 기업들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그 비용이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제어하기 위해 연방의회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을 통과시키고 지체없이 시행되도록 하였다. 동법은 대표당사자로 하여금 서약서(Certification by Plaintiff)를 제출하도록 하였는데, 동 서약에서 대표당사자는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또는 소송전문가의 권고에 의해 당해 주식을 매입한 것이 아님을 포함하여 6가지 주요 항목에 관하여 서약하여야 한다. 또한 동법은 대표당사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였는데, 최근 3년간 5개 이상의 증권집단소송에서 대표당사자나 대리인이었던 자는 법원이 특별히 허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대표당사자가 될 수 없도록 하였다. 특히, 동법은 원고로 하여금 소장에 피고의 어떠한 행위가 원고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인지(‘misleading’)를 기재(‘Particulized Pleading’)하게 함으로써 피고의 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도록 하였다. 또한 피고가 그러한 허위공시 등의 행위를 함에 있어 악의가 있었음을 추론케 하는 사실을 소장에 기재하도록 하였는데(‘State of Mind Requirement’), 이는 원고들이 아무런 증거 없이 일단 소송을 제기하고 이후 증거개시 절차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보완하고 입증 자료를 얻는 이른바 투기적 소송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동법이 소각하 신청이 제기된 경우 증거개시 절차를 중단하도록 한 것(‘Stay of Discovery’)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동법은 남소를 방지하기 위하여 패소한 당사자로 하여금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관련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였으며, 연대책임을 배제하여 각자의 책임에 비례하여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였고, 기업들의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유도하기 위하여 전망공시에 대하여 책임을 면제하는 이른바 ‘Safe harbor’ 규정을 두었다. 3.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이 적용된 판례들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이 시행된 이후 판례의 변화에 관하여는 스탠포드 법대의 Joseph A. Grundfest 교수 등이 발표한 ‘Security Litigation Reform;The First Years’ Experience’라는 보고서에 잘 정리되어 있는바, 이하에서는 동 보고서에 나타난 판례들 중 특히 ‘사기의 강한 추정’(‘Strong Inference of Fraud’) 요건에 관한 의미 있는 몇 개의 판례들, 즉, 증권사기를 주장하는 원고에 대하여 피고가 악의였음을 강하게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을 소장에 기재하도록 한 증권민사소송개혁법 제21D(b)(2) 규정과 관련한 판례를 살펴보도록 한다. (1) Marksman Partners, L.P. v. Chantal Pharmaceutical Corp. 927.F. Supp.1297(C.D. Cal., May 21, 1996) 이 사건은 증권민사소송개혁법에 의한 소송요건 강화가 최초로 언급된 사건으로, 중부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은 국회가 연방항소법원에서 제시한 기존의 기준에 비하여 보다 엄격한 기준을 채택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동법원은 이 사건에서 대표이사와 CEO들이 소송기간 이전 3년간은 주식을 매각한 바 없으면서도 소송기간 중에 2630만 달러에 회사 지분 20%를 매각한 사실을 들어 이는 사기의 강한 추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으로 소송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2) Zeid v. Kimberley. 930 F. Supp. 431 (N.D. Cal., June 6, 1996) 원고들은 Firefox Communicati -ons, Inc.와 그 임직원들을 피고로 하여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면서 피고들이 회사의 제품에 대한 수요와 매출실적 및 마케팅 프로그램에 대하여 허위공시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회사가 수익의 인식 및 준비금 적립 등과 관련하여 GAAP와 SEC Rules에 어긋나는 회계처리를 하였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원고들의 주장에 대하여 남부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은 원고들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소장에서 충분히 주장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즉, (i) 언제 어떻게 잘못된 보고서가 시장에 전달되었는지 (ii) 회사가 어떤 분석전문가의 보고서를 채택한 것인지, 그리고, (iii) 왜 당해 보고서가 잘못된 것인지가 소장에 충분히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동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원은 원고의 청구들은 피고의 행동이 의도되었거나 중과실에 의한 것이라는 강한 추정을 불러일으킬 사실을 주장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이유로 이를 각하하였다. (3) In re Silicon Graphics, Inc. Securities Litigation. 1996 U. S. LEXIS 16989, Fed. Sec. L. Rep. (CCH) 99, 325(N.D. Cal., Sept 25, 1996) 이 사건에서 법원은 위 판례들과는 달리,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은 기존 연방항소법원에 의해 유지되어 온 악의의 추정 요건을 단순히 성문화한 것이 아니며 원고들로 하여금 ‘피고의 의식적 행동(‘Conscious Behavior’)을 입증할 정황적 증거를 구성하는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주장하도록’ 요구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소송 장벽(‘a higher pleading barrier’)을 입법화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법원은 피고들이 잘못된 보고서에 대하여 이미 내부보고서를 통해 알고 있었다는 주장은 사기의 강한 추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다고 판단하여 원고에게 이에 대해 재소답(‘Repleading’)하도록 결정하였다. (4) Steckman v. Hart Brewing, Inc. No. 96-1077-K (RBB) (S.D. Cal., Dec.24, 1996) 이 사건은 증권민사소송개혁법 시행 이후 원고에게 재소답의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하고 바로 소송을 각하한 첫 번째 사례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이 특정 증권집단소송을 각하하는 경향을 강화하였다고 언급하고, 법원으로서는 ‘원고가 근거 없는 주장을 통해 소송을 제기하고 강력한 증거개시 절차를 통해 화해를 시도하는 기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1933년 증권법상 청구권에 근거한 원고의 소송을 각하함에 있어서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의 합리성을 반영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4.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 시행 이후- 1998년 증권소송통일기준법의 제정 그러나, 스탠포드 법대의 Joseph A. Grundfest 교수가 증권민사소송개혁법 제정 이후 2년간 증권집단소송의 추이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은 그 기대만큼의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 같다. 증권집단소송의 제기율은 예상과 달리 크게 감소되지 아니하였고, 연방법원에의 제소비율은 떨어진 반면 주법원에의 제소율은 상대적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이와 같은 증권집단소송이 연방법원으로부터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을 따르지 않는 주법원으로 이동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1998년 11월에 주법에 의한 집단소송을 제한하기 위하여 1933년 증권법과 1934년 증권거래법을 일부 수정하는 ‘1998년 증권소송통일기준법’(‘Securities Litigation Uniform Standards Act of 1998’)이 제정되게 되었다. III. 맺음말 수십년전부터 집단소송제도를 운영해온 미국에서조차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과 1998년 증권소송통일기준법을 제정해가며 濫訴의 폐해를 최소화하고자 애쓰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일응 순기능을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발생할 남소의 폐해를 마음 편히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입증책임의 문제와 관련하여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컨대, 집단소송법안이 적용되는 증권거래법 제14조(유가증권신고서와 사업설명서 허위기재)등의 규정을 살펴보면 사업설명서등에 허위의 기재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 인정되면 원고의 충분한 입증이 없더라도 원칙적으로 피고가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고, 다만 피고가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그 책임이 면제되도록 되어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은 원고에 대하여 소장에 피고의 詐欺 내지 惡意를 강하게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 사정을 기재하도록 하고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원고에게 재소답 명령을 내리거나 소송을 각하하도록 하고 있는바,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나라 정부안은 미국의 증권집단소송제도에 비하여 피고에게 상대적으로 무거운 입증의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보다 높은 濫訴의 여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련된 증권거래법 제14조 등에서의 입증책임에 관한 태도를 집단소송에서도 그대로 유지하여야 하는지 다시 한번 신중히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증권거래법 제14조등을 그대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의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며, 집단소송제도를 통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는 원고에게 보다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등 별도의 조문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03-05-01
불법한 긴급체포 중 작성된 피의자신문 조서 및 약속에 의한 자백의 증거능력
I. 사실의 개요 검사는 현직 군수인 피고인 A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B 및 참고인의 진술을 확보한 후 A를 소환·조사하기 위하여 군수실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A가 자택 근처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수사관이 오면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는 도시행정계장의 말을 듣고 행정계장과 함께 A가 기다리고 있던 장소로 가서 A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뇌물) 위반의 혐의로 긴급체포하였다. 이후 구속영장을 발부받을 때까지 A를 유치하면서, 검사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다. 한편 별건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및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수사받고 있던 B는 A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검찰진술을 한 후 사안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문서위조 부분에 대해서만 분리기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검사로부터 보석허가의견까지 받았다. B는 검찰에서는 뇌물공여를 인정하였으나, 법정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검찰에서의 자백은 허위진술이라고 증언하였다. 대법원은 A의 검찰피의자신문조서는 불법한 긴급체포상태에서 작성된 것이기에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배제된다라고 파악하고, B의 진술의 경우는 그 임의성은 인정되지만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A의 뇌물수수와 B의 뇌물공여의 점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II. 불법한 긴급체포 중에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배제 1. 불법한 긴급체포와 자백배제 긴급체포란 중대한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받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피의자에 대하여 법관의 사전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경우 허용되는 무영장 체포를 뜻한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 A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뇌물) 위반의 혐의를 받고 있었던 바, ‘범죄의 중대성’ 요건은 충족된다. 그러나 체포의 ‘필요성’과 ‘긴급성’ 요건은 충족되지 못한다. 이 사건에서 검찰수사관이 피고인을 체포할 당시 피고인은 우연히 발견한 것도 아니고, 피고인은 스스로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할 태세를 갖추고 자신의 거처를 일러주도록 미리 지시해두었다. 그리고 수사관이 체포장소에 도착하였을 때도 도망하려거나 소환에 불응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직시하자면 긴급체포를 실행한 검사 등의 판단은 현저히 합리성을 잃었다고 보이며, 따라서 긴급체포의 요건이 흠결되었음에도 수사기관이 체포영장 없이 긴급체포형식으로 피의자를 체포·구금한 것은 영장주의에 위반한 위법한 구금에 해당한다. 불법한 신체구속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영장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이러한 불법한 신체구속 상태에서 피의자로부터 획득한 자백이나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면 영장주의는 형태화되고 만다. 불법한 긴급체포는 영장주의에 위배되는 중대한 위법으로 그 체포에 의한 유치 중에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대해서는 우리는 완전히 법원과 의견을 같이 한다. 근래까지 대법원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동원하여 임의성이 있는 자백을 배제한 것은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접견권이 침해된 경우에 제한되어 있었던 바, 대상판결은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불법한 체포 상태에서 획득한 자백에 대해서도 적용한 획기적 판결이다. 이는 불법한 체포상태에서 획득한 자백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일련의 판결, 예컨대 1975년의 ‘Brown v. Illinois 판결’[422 U.S. 590 (1975)], 1979년의 ‘Dunaway v. New York 판결’[442 U.S. 200 (1979)] 및 1982년 ‘Taylor v. Alabama 판결’[457 U.S. 687 (1982)] 등에 비유될 만하다. 2. 배제의 근거 그런데 법원이 취하는 배제의 근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09조를 ‘자백의 임의성 법칙’으로 파악하고, 이를 자백의 위법배제법칙과 구별하여 이해하고 있다. 즉, 고문에 의한 자백같이 자백의 임의성이 없는 경우와 자백의 임의성을 의심할 수 없으나 그 획득의 절차와 방법이 위법한 경우 사이의 질적 차이에 주목하고, 전자는 자백배제법칙으로, 후자의 경우 자백의 임의성 문제가 아니라 별도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배제의 근거는 초실정법적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309조에 실정법화된 자백배제법칙이어야 한다. 연혁적으로 볼 때 자백배제법칙이 ‘임의성’ 기준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음은 사실이며,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문언에 ‘임의성’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절차의 위법은 있으나 임의성이 인정되는 자백을 예상하는 것은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해석과 일치하지 않는다. 임의성에 의심 있는 불공정하게 획득된 자백은 이미 임의성 있는 자백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는 위법수집자백배제에 대한 하위 실정법규가 없기에 헌법에서 바로 위법수집자백의 증거능력배제를 도출하였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형사소송법 제309조가 증거배제의 근거로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자백배제의 일차적 근거로 해석하는 것이 해석방법론으로 옳을 것이다. 요컨대 피고인 A에 대한 불법체포에 따른 불법구금상태에서의 진술획득은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로 인한 자백’ 획득에 해당하므로, 자백의 임의성과 상관없이 구속의 위법 때문에 자백의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한다. III. ‘약속’에 의한 자백의 증거능력 배제―임의성 결여인가, 신빙성 결여인가? 대법원은 B의 검찰진술의 임의성은 인정하지만 신빙성을 부정하여 증거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피고인 B의 검찰자백은 그 신빙성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임의성에 의심이 있기에 배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대상판례의 사실관계를 검토해보면, 검사는 별건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및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수사받고 있던 B가 A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하면 사기의 점에 대해서는 무혐의처분을 하고, 사안이 가벼운 사문서위조 부분에 대해서만 분리기소하기로 약속하고 B의 자백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검사가 B에 대하여 불기소처분을 내린 이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사실오인, 수사미진, 이유불비 등을 이유로 재기수사명령을 하였는데도 불기소처분을 내린 검사는 항소법원에 불기소처분의 정당성을 극렬 주장하였고, 제1심 법원에서 B의 보석에 관한 의견조회에 대하여 이례적으로 보석허가의견까지 제출하였으며, B가 석방된 뒤에도 계속 불러 진술번복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였고, 검찰주사보가 B를 수 차례 유흥주점에 데려가 음주·유흥케 하였고, B가 진술을 번복하여 보석취소결정으로 재수감된 후에도 제1심 선고판결 선고 전까지 무려 12회에 걸쳐 진술을 재번복하라고 회유하였다. 이상의 점에서 볼 때 검사와 피고인 B 사이에는 B의 자백을 하는 대가로 하는 일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보이며, 이 경우 B의 자백은 그 신빙성은 물론이고 임의성도 의심스럽다고 할 것이다. B가 당시 거액의 사기범행으로 중벌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고, 건강악화, 아들의 수술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는 점등을 고려하자면 검사의 사기의 점에 대한 불기소처분 약속은 B의 의사결정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다른 사건에서 대법원은 ‘일정한 증거가 발견되면 피의자가 자백하겠다고 한 약속이 검사의 강요나 위계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던가 또는 불기소나 경한 죄의 소추 등 이익과 교환조건으로 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자백의 약속 하에 된 자백이라 하여 곧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대판 1983. 9. 13, 83도712]라고 판시한 바 있는데, 이를 반대해석하면 불기소나 경한 죄의 소추 등 이익과 교환조건으로 이루어진 자백은 임의성이 의심스러운 자백임을 밝힌 것이다. 요컨대, B의 자백은 ‘약속’에 의한 자백으로 그 신빙성 여부를 논할 필요도 없이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 이유가 있는’ 절차위법이 존재하였으므로 그 자백의 증거능력은 배제되어야 한다. IV. 맺음말 대상판례에서 법원이 불법한 긴급체포 상태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술기재는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영장주의의 대원칙을 지키고 불법수사를 억지하는데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바 상찬(賞讚)받아 마땅하다. 다만 우리는 그 자백배제의 근거가 초실정법적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309조이어야 한다고 보는데 차이가 있다. 그리고 피고인 B의 검찰자백은 ‘약속’에 의한 자백으로 그 신빙성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임의성에 의심이 있기에 형사소송법 제309조에 따라 배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2002-10-28
하나의 자동차사고에 관여한 공동불법행위자와 보험회사간의 법률관계
1. 들어가며 하나의 자동차사고에 책임보험에 가입된 2이상의 자동차가 공동으로 관여한 경우, 각 보험자의 보상책임의 한도 및 보험자간의 책임분담에 관하여 종래의 판례는 그 사고에 관여한 자동차의 수에 관계없이 ‘피해자를 기준으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5조 및 동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서 정한 금액을 넘을 수 없으므로 보험자가 지급하는 책임보험금은 피보험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에 한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현행 책임보험약관에도 책임보험금은 각 피보험자의 배상책임의 비율로 분담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자동차보통보험약관 제68조 등),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위 판결을 변경하면서 ‘자동차사고와 관련된 자동차마다’ 그 책임보험금의 한도액 범위내에서 각각 보험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는 바(대법원 2002. 4. 18. 선고, 99다38132 전원합의체판결),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공동불법행위자와 보험회사간의 법률관계에 대하여 검토한다. 2. 사건의 개요 (1) ○○보험사(이하 ‘원고’라 함)는 1995년 6월 울산시 남구에서 종합보험과 책임보험의 가입자인 △△화물의 트랙터가 원고 보험사에 책임보험만 가입한 권모씨 소유의 자동차를 들이받아 승용차에 타고있던 윤모씨가 사망하고 우모씨가 중상을 입자 이들에게 위자료와 치료비 명목으로 모두 1억2천4백여만원을 지급한 이후 권모씨도 잘못이 있는 만큼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부담하여야 한다며 권모씨(이하 ‘피고’라 함)를 상대로 이사건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원심판결은 그 구상금을 산정하면서 공제하여야 할 금액을 피고가 원고의 책임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원고가 이 사건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책임보험금 전액을 공제하는 것으로 판시하였다(부산지법 1997. 9. 9.선고, 97가단5844판결). (2) 이에 대해 원고가 상고를 제기하자 대법원은 종전 견해와 같이 「피해자 1인이 사망한 경우 ‘책임보험금은 그 사고에 관여한 자동차 수에 관계없이 금 1,500만원을 넘을 수 없다’고 하면서 각 보험사가 부담하는 보험금은 책임보험금과 종합보험금 중 각 보험사의 피보험자측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이므로 피고의 과실비율에 따라 책임보험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 하였다(대법원 1999. 2. 5. 선고, 98다22031 판결). (3)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재항소심 법원이 구상금에서 공제되는 금액을 원고가 이미 지급한 책임보험금중 △△화물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자 ○○보험회사는 재차 상고하였고, 대법원은「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이라 함) 제5조와 같은법 시행령 제3조 1항에 의하면 자동차의 등록 또는 사용신고를 한 자는 반드시 자동차의 운행으로 다른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할 경우에 피해자에게 대통령령이 정한 금액의 지급책임을 지는 책임보험 또는 책임공제(이하 ‘책임보험’이라고만 한다)에 가입하여야 하고, 피해자 1인에게 지급하여야 할 책임보험금은 사망자의 경우 최고 1,500만원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자배법 시행령 제3조 1항-1995. 7. 14. 대통령령 제1473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위 책임보험의 성질에 비추어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2이상의 자동차가 공동으로 하나의 사고에 관여한 경우, ‘각 보험자는 피해자의 손해액을 한도로 하여 각자의 책임보험 한도액 전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할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새겨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피고의 과실비율에 따라 책임보험금을 공제한 원심의 판결은 책임보험의 법리를 그르친 잘못이 있으나, 원고만이 상고한 이 사건에서 원고에게 더 불리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대법원 2002. 4. 18. 선고, 99다38132 전원합의체판결). 본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전합판결’이라 함)은 원고인 ○○보험회사는 △△화물의 보험자인 동시에 공동불법행위자인 피고 권모씨의 책임보험자이므로 ○○보험회사는 권모씨의 책임보험자의 지위에서 책임보험금의 한도액 전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할 책임이 있으므로, ○○보험회사의 권모씨에 대한 구상금에서 공제되어야 할 금액도 책임보험금 한도액 전액이라는 것이다. 3. 본 전합판결의 해석 그런데 본 전원합의체가 판시한 「책임보험의 성질에 비추어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2이상의 자동차가 공동으로 하나의 사고에 관여한 경우, 각 보험자는 ‘피해자의 손해액을 한도로 하여 각자의 책임보험 한도액 전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할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새겨야 할 것」이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이를 어떻게 새겨야 할지 검토한다. 위 전합판결에 대해 ① 책임보험금 전액을 지급하라는 판시내용을 중시한다면 ‘피해자의 손해액 범위내라면 공동불법행위자의 각 보험회사는 책임보험 한도액 전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경재, 손해보험 2002년 9월호(대한손해보험협회), 52~53쪽 참조}.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 현행 자배법 시행령 제3조에 의하면 책임보험금으로 피해자 사망시 금 8천만원까지 지급하고 있으므로, 가해차량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은 늘어나게 되어 실손보상의 원칙을 규정한 위 시행령 제3조 및 중복보험·초과보험을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669조 내지 제672조의 규정취지에 반하고, 자동차사고 피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며, 도박보험·사기보험화 되는 문제가 생긴다(예컨대 가해차량이 2대라면 1억6천만원, 3대라면 2억4천만원까지 지급됨). 한편 ② 위 전합판결에 대해 책임보험금의 지급은 피해자의 손해액 범위내에서 하라는 판시내용을 중시하여 ‘각 보험회사는 책임보험금 전액을 지급할 책임이 있으나, 각 보험회사가 지급하는 보험금의 합계액은 피해자의 손해액의 범위내로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보험회사간 구상관계에 있어 공동불법행위자인 피보험자의 과실비율을 초과하는 책임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회사로서는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법률상책임부분을 초과하여 보험금을 지급하므로,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이상에 따라 구상관계에 있어서는 공동불법행위자의 과실비율에 따라 각 부담부분을 정하고 있는 기존판례의 태도와 어긋나며, 보험회사 책임보험금으로 다른 불법행위자를 면책시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보험회사가 자기 피보험자의 과실에 따른 부담부분보다도 더 많은 보상책임을 부담한다면 자칫 실손보상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다(예컨대 어느 보험회사에게 자기 피보험자의 과실은 20%인데 불구하고, 전체 손해액 1억원에 대하여 3천만원의 책임보험금이 정해진다하여 3천만원을 피해자에게 전부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피해자는 나머지 80%의 과실로 손해를 일으킨 불법행위자로부터 8천만원의 배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으므로, 피해자로서는 1억1천만원을 지급받아 실제손해 1억원을 초과하여 손해배상 및 보상을 받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만약 이 경우 피해자에 대한 실손보상의 원칙을 중시하여 80%의 과실이 있는 불법행위자가 7천만원만 배상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자신의 과실책임이 감면되는 효과가 발생하여 결국 보험회사는 책임보험금으로 다른 불법행위자를 면책시키는 것과 다름이 아닌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초과보험이나 중복보험에 관한 규정 및 자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실손보상의 원칙 및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이념에 따라 ③ 하나의 자동차사고에 관여한 공동불법행위자와 각 보험회사간의 내부적 법률관계에 있어서 “각 보험회사는 피해자의 전체 손해액을 한도로 하여 자기피보험자의 과실비율에 따른 부담부분범위 내에서 각자의 책임보험 한도액 전액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은 경우, 종전판례에 따른 법률관계와 전합판결에 따른 법률관계를 비교·검토해 보도록 한다. 4. 전원합의체판결에 따른 공동불법행위자와 보험회사간의 법률관계가. 전체손해액 중 피보험자과실 비율에 따른 부담부분보다 책임보험금 한도액이 많은 경우. <사례> 갑과 을이 교통사고를 통해 공동으로 A라는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갑 및 을의 과실비율은 8:2이고, 전체 실손해액은 1억원이며, 약관의 규정에 따른 자동차책임보험금은 각 3천만원이라고 할 때, 갑은 갑、를 보험자로 하여 자동차책임보험 및 종합보험에 가입하였고, 을은 을、를 보험자로 하여 자동차책임보험만 가입한 경우. 이 경우 종전의 판례에 의하면 갑、는 전체 손해액중 갑의 과실비율에 따라 8천만원의 부담부분이 있고, 을、는 2천만원의 부담부분이 있다. 다만 책임보험금을 산정하는데 있어서도 책임보험금은 그 사고에 관여한 자동차 수에 관계없이 각 보험사의 피보험자측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을 부담하게 되므로, 갑、는 3천만원의 책임 보험금중 80%인 2천4백만원, 을、는 6백만원의 부담을 지게된다. 결국 갑、는 8천만원의 자기부담금중 2천4백만원은 책임보험금으로 나머지 5천6백만원은 종합보험금으로 피해자A에게 지급하면 족 하지만, 피해자가 갑、에게 먼저 전부보상을 청구하는 경우 갑、로서는 실손해액 전부인 1억원을 전부지급하고, 을측의 과실비율에 따른 부담액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을은 을、의 책임보험만 가입하였으므로, 을、에게는 을、가 부담하는 책임보험의 한도액 6백만원만, 나머지 1천4백만원은 불법행위자인 을에게 직접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합판결에 의하면, 손해의 공평부담과 실손보상의 원칙상 갑、는 전체 손해액중 갑의 과실비율에 따라 8천만원의 부담부분이 있고, 을、는 2천만원의 부담부분이 있으나, 책임보험금은 각 보험회사가 자기 부담범위내에서 전부지급할 책임이 있으므로, 갑、는 8천만원중 3천만원을 책임보험금으로, 나머지 5천만원은 종합보험금으로 부담해야 하며, 또한 을、는 2천만원(자기부담부분은 2천만원이므로)을 책임보험금으로 부담하게 된다. 이때 피해자가 갑、에게 먼저 전부보상을 청구하는 경우 갑、로서는 실손해액 전부인 1억원을 전부지급하고, 을、에게는 을、가 부담하는 책임보험의 한도액 2천만원을 구상하면 족하고, 불법행위자인 을에 대하여 직접 구상할 부분은 없다고 할 것이다. < 표 1 참조>나. 전체손해액 중 피보험자과실 비율에 따른 부담부분보다 책임보험금 한도액이 적은 경우. 이 경우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 위 나의 사례에서 책임보험금의 한도액을 1천만원으로 하여 이를 살펴보면, 종전 판례에 의하면 책임보험금의 한도액을 공동불법행위자 각자의 과실비율에 따라 분담하므로, 갑、는 책임보험금으로 8백만원, 종합보험금으로 7천2백만원을 부담하면되고, 반면 을、는 책임보험금으로 2백만원, 을은 1천8백만원을 부담하면 된다. 반면 전합판결에 따르면 갑은 책임보험금으로 1천만원, 종합보험금으로 7천만원을 부담하고, 을、는 책임보험금으로 1천만원, 을은 자기재산으로 1천만원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 표 2 참조> 5. 본 전원합의체 판결의 문제점 첫째, 본 판결은 자동차운행자라면 자동차책임보험에 강제로 가입하게는 방법으로 자력이 없거나 가해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 자동차 사고피해자를 최소한 보장하려는 자배법의 취지를 과대히 확장하여 피해자 1인을 중심으로 책임보험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보험자를 기준으로 피보험자의 수대로 책임보험금을 결정하도록 한 문제점이 있다(이경재, supra, 53~55쪽 참조). 둘째, 본 판결은 종전 판결을 기초로 작성한 자동차보험보통약관의 효력에 대해 명시적으로 그 효력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지를 남겨두고 있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에서 본 전원합의체판결을 참조하여 약관의 효력을 무효로 만들 수 있도록 하여 결국 수많은 분쟁을 재연시킬 소지를 만들어 버렸다. 셋째, 자동차손해배상보장사업(자배법 제26조)에 따라 절취차량, 뺑소니차 등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경우 피해자의 청구에 따라 책임보험금 한도내에서 그가 입은 피해를 보상하도록 되어있는데, 정부가 지급해야 할 보상금을 결정할 경우에도 전원합의체 판결을 피보험자를 기준으로 책임보험금 전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피해자 1인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보상금을 결정한다면 피해자는 불법행위자와 결탁하여 가공의 뺑소니차량을 만들어 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어 사기보험화할 우려를 남겨두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본 전원합의체판결은 전체손해액(1억2천여만원)중 피보험자과실 비율에 따른 부담부분(9천6백여만원)이 책임보험금 한도액(1천5만원)을 초과하고 있는 경우로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책임보험금 한도액이 피보험자의 과실비율에 따른 부담부분보다 큰 경우에 대하여는 판시한 바가 없다. 그러나 자배법상 책임보험취지를 과도히 확장하여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과 사회보장제도의 보완장치라는 책임보험의 취지를 무색케했다는 점과 여러 가지 해석가능성을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완결된 판례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2002-10-07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Ⅰ. 사실관계 피고 A는 삼성전자로부터 75억원을 받아 이를 당시 대통령인 노태우에게 공여하였고, 또한 삼성전자는 중전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각각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이천전기의 인수, 그 발행신주의 인수, 지급보증 또 그 발행신주의 인수를 하였으나 마침내 이천전기가 퇴출되었으며, 그리고 삼성전자는 주당 액면가인 1만원에 취득한 삼성종합화학 주식 2,000만주를 주당 2,600원에 매각하였다. 이에 甲 외의 21명의 원고들은 A 외 10명의 피고들에 대하여 삼성전자에 손해를 배상할 것을 청구하였다. Ⅱ. 판결요지 및 평석 1. 서 설 이 건에서는 ①피고 A의 뇌물공여, ②이천전기의 인수 및 그 발행의 신주인수, ③삼성종합화학 주식의 저가매각의 세 가지가 문제된다. 위의 ①에서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상399조)의 요건과 그 해제(상450조) 특히 책임의 요건인 이사의 임무해태 즉 대표이사·업무담당이사·비상근이사의 임무해태가 문제되고, ②와 ③에 있어서도 이사의 임무해태를 비롯하여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이른바 경영판단의 법칙의 도입, 책임을 부담하는 이사의 범위, 감사의 책임 등이 문제된다. 그러나 이 건의 판결에 있어서 책임부담이사의 범위와 이사의 책임의 해제는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므로 논외로 하고, 여기에서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의 요건으로서의 이사의 임무해태, 경영판단의 법칙, 감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에 관하여서만 고찰하기로 한다. 2. 이사의 책임의 요건 (1) 법령 또는 정관의 위반행위 이사가 개별적·구체적인 법령 또는 정관의 규정에 위반하여야 한다. 이 건의 뇌물공여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A가 삼성전자로부터 75억원을 받아 이를 위 노태우에게 뇌물로 공여한 행위는 형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상법 제399조 소정의 법령에 위반한 행위이고 …」라고 판시하여, 형법규정의 위반도 본조의 법령위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본조의 이사의 책임은 이사의 강대한 직무권한의 남용을 방지하고 직무집행의 공정을 확보함으로써 회사의 재산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므로, 본조의 법령은 주식회사법상 회사의 재산의 보전을 위하여 이사의 임무를 정한 규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 A가 노태우에게 뇌물을 공여한 것은 본조 소정의 법령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는 회사의 정관 소정의 목적범위 외의 행위로서 회사의 정관규정의 위반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2) 임무해태 가) 서 설 본조에 있어서 이사의 임무해태는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상382조 2항, 민681조) 내지 충실의무(상382조의 3)에 위반하여 업무집행을 하는 것이다. 이사의 임무는 이사가 대표이사인가, 업무담당이사인가 또는 비상근이사인가에 따라 다르고, 따라서 그 임무해태도 대표이사인가, 업무담당이사인가 또는 비상근이사인가에 따라 다르다. 나) 대표이사의 임무해태 ①선관주의로 업무집행할 의무의 위반 대표이사는 회사의 대표로서(상389조 1항) 회사의 영업에 관하여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상389조 3항, 209조 1항), 또 그 반면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이러한 모든 업무를 집행하여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뇌물공여의 건에 있어서 피고 A가 위 노태우에게 금전을 뇌물로 공여하고 이를 교제비 등의 명목으로 회계처리한 것은 당시 대표이사인 피고 B가 선관주의의무에 위반하여 정관 소정의 목적범위 외의 행위를 하고 이를 부당회계처리한 것이므로, 이 건의 뇌물공여는 피고 B가 그 업무를 집행함에 있어 중대한 임무해태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건 판결이 뇌물공여에 관하여 피고 A에 대하여서만 책임을 추급하고 피고 B에 대하여 아무 책임을 추급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천전기인수의 건에 있어서 삼성전자로서는 중전사업이 필요한 사업인데도 국내에는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게다가 신규로 중전사업을 시행하려면 시장개척·기술도입·제품개발을 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당시로서는 중전사업의 기존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판단할 수 있고 또한 이천전기의 인수 직후 IMF가 들이 닥쳐 그 경영여건이 악화되어 손실을 입었으나 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던 불가항력적 상황으로서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당시의 상황하에서 이천전기를 인수한 것은 피고 B가 대표이사로서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결하여 업무집행을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피고 B가 불과 8월 전에 주당 액면가인 1만원에 매입하였고 또 당시 주당 5,733원으로 평가되는 삼성종합화학의 주식 2,000만주를 주당 2,600원에 저가로 매각한 것은 비록 삼성전자의 첨단 설비의 투자자금을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대표이사로서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업무집행을 한 것이라 할 수 없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②선관주의로 감시할 의무의 위반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이 적정하게 행하여졌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대표이사는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에 대하여 감시권을 가지며, 특히 대표이사는 직제상 하위의 업무집행자인 다른 업무집행자에 대하여 지휘감독권을 가진다. 뇌물공여의 건에 있어서 피고 A가 뇌물을 공여하는 것을 피고 B가 저지하지 못한 것은 대표이사로서 그 감시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인데도, 이 건의 판결에서 피고 B에 대하여 책임을 추급하지 않는 것도 부당하다. 다) 비상근이사의 임무해태 이 건의 이천전기 인수에 관한 판결에서는 “이천전기의 재무상황으로 보아 그 차임규모가 더 증대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고 또 이천전기의 인수에 따른 위험이 통상 감수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었는데도 이러한 상황을 검토하지 않고 또 자료의 제시도 받지 않고 1시간의 토의로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의한 것은 이사들이 합리적인 통찰력을 다하여 적절한 판단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삼성전자 이사회의 1997. 4. 2 과 같은 해 4. 3. 이천전 발행의 신주인수결의도 위의 제반사정에 대하여 검토하지 않았으므로, 이 결의에 참석한 이사도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이천전기의 인수결의와 그 발행신주의 결의는 이사가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의한 1997.3.14. 삼성전자의 이사회에는 중전사업의 인수의 필요성과 추진방법을 설명한 ‘중전사업참여방안’이라는 자료만 제출되어 있고 다른 자료가 없어, 비상근이사와 다른 업무담당이사는 이천전기의 불량한 재무상황, 장차의 투자예상금액, 퇴출대상기업으로 선정 등을 예상할 수 없었고, 특히 상법상 이사회 결석이사는 책임을 지지않는데도(상399조 3항) 출석이사는 제출된 자료만으로 심의·결의하였다고 하여 책임을 지우는 것은 심히 형평에 반한다. 그러므로 이 건의 판결에서 이천전기 인수의 결의에 참석한 비상근이사가 그 임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것은 부당하다. 그리고 이 건의 삼성종합화학 주식매각에 관한 판결에서 “삼성종합화학의 주식가치는 삼성종합화학의 순자산의 가치의 점에서 보아도 2,600원을 상회하고, 이사회의 결의의 자료가 된 안진회계법인의 삼성종합화학의 주식의 평가는 상속세법시행령에 의한 것이고, 그 주식가치가 1994.4에서 매각시점인 같은 해 12.까지의 기간에 4분의 1의 수준으로 하락할 만한 다른 사정이 없고, 1993.6.에 삼성종합화학의 주식이 삼성전관에 6,600원에 거래된 바 있고, 이사회가 불과 1시간의 토론 끝에 2,000만주를 주당 2,600원에 처분하는 결의를 한 것은 피고 이사들이 이사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매각결의는 이사로서의 임무를 해태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 주당 액면가인 1만원에 매입한 주식의 가치가 그 8월 후에 무려 그 4분의 1에 가까운 2,600원으로 폭락하였다면 마땅히 그 폭락의 원인, 최근의 매각사례, 그 주식의 현재의 거래가액 등을 검토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데도, 위 이사회가 단지 안진회계법인이 상속세법시행령에 의하여 평가한 자료에 따라 주식매각을 결의한 것은 비상근이사와 업무담당이사로서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그 감시의무를 다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따라서 이 건의 삼성종합화학 주식매각에 관한 판결에서 비상근이사와 업무담당이사의 책임을 물은 것은 정당하다. 4. 경영판단의 법칙 (1) 의의 ‘경영판단의 법칙’은 이사가 합리적인 정보에 기하여 성실하게 판단하여 한 행위는 비록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사기, 위법 또는 이익충돌이 없는 한, 법원은 그 이사의 경영판단과 행위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영판단의 법칙은 미국의 판례에서 발전된 법리이다. (2)적용상의 문제점 이 건의 이천전기의 인수에 관한 판결에서는 “삼성전자의 이사회가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의한 것은 이사들의 충분한 정보에 기하여 합리적인 통찰력을 다하여 적절한 판단을 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위의 인수결의는 경영판단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판시하고, 또 이건의 삼성종합화학 주식매각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이사들은 합리적인 자료를 토대로 충분히 검토한 후 매각결의에 찬성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경영판단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우리 회사법에 경영판단의 법칙의 도입을 인정하면서 다만 피고 이사들의 충분한 정보의 흠결, 합리적인 통찰력의 흠결, 자료검토의 흠결 등의 적용요건의 흠결을 이유로 그 적용을 부정하였다. 물론 경영판단의 법칙을 도입하여 적용하면 이사는 크게 보호될 것이나, 그렇게 되면 이사의 임무해태에도 불구하고 이사가 그 책임을 면하는 경우가 있어 본조의 이사의 임무해태시의 책임의 과실책임성에 반한다. 또한 경영판단의 법칙의 도입론자는 그 논거로서 이사가 경영전문가로서 전문지식을 가지고 내린 판단에 대하여 반드시 그러한 전문지식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법관이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모든 전문적 직업인의 행위에도 이와 같은 법칙의 적용을 확대 인정하여야 하여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경영판단의 법칙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전문경영인체제가 확립되어 있는 미국에서 발전한 법리인데, 기업경영의 형태와 소유구조가 판이한 우리 나라에서 이 법칙을 그대로 도입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중소기업에서는 물론 재벌계열의 대기업에서도 대부분 지배주주 중심의 가족경영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경영판단의 법칙을 도입하여 이들에게 경영실패의 책임을 면하게 하면, 경영에서 소외된 소수주주와 채권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경영판단의 법칙을 도입하려면, 그에 앞서 그 적용의 근거, 적용요건, 적용범위 등에 관하여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5. 감사의 책임 감사가 그 임무를 해태한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414조 1항). 감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사하여야 하고(상412조 1항, 415조, 382조 2항), 이 의무에 위반한 때에는 그 임무해태로 된다. 이 건의 판결에서는 감사인 피고 K의 책임을 묻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 건의 뇌물공여와 주식저가매각은 명백히 대표이사의 부적정한 업무집행인데도 문맥상으로 보아 피고 K가 감사보고서나 감사록에 위의 뇌물공여와 주식저가매각이 부적정하다는 기재를 한 것 같지 않고 또 주주총회에 제출할 재무제표·영업보고서를 피고 K가 조사하여 위의 업무집행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진술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이는 피고 K가 감사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결산감사 내지 상시감사를 하여야 할 감사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고, 또한 피고 K가 이사회에 출석하여 위의 업무집행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을 진술하지 않고 또 위의 부적정한 업무집행으로 인하여 회사에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데도 이사회에 보고 또는 이사위법행위유지청구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는데 이것도 감사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감사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고 K는 회사에 대하여 책임이 있고 또는 이사인 피고들과 외부감사인도 책임이 있으므로, 이들 이사·외부감사인과 연대하여 회사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6. 결 론 이 건의 뇌물공여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A에게, 또 이천전기 인수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B, C, D, E, F, G, H, I에게 그리고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매각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고 J, C, G, H, I에게, 각각 연대하여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것을 판결하였다. 그러나 뇌물공여에 관한 판결에 있어서는 피고 A에 대하여서만 책임을 추급하고 대표이사인 피고 B에 대하여 아무 책임을 추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고, 이천전기의 인수에 관한 판결에 있어서는 대표이사인 피고 B와 결의에 출석한 여타의 피고 이사들이 임무해태를 해태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그 책임을 추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매각에 관한 판결에 있어서는 대표이사와 결의에 출석한 여타의 피고 이사들에게 책임을 추급한 것은 정당하다.
2002-03-18
공소장변경과 공소시효만료여부의 계산
Ⅰ. 사안 검사는 ‘피고인이 1995년 7월 하순 무렵 한 병원 지하 문서고에 들어가 병록 지 22매를 절취하였다’는 내용을 공소사실로 하여 2000. 2. 20.(범죄행위시로부터 약 4년 7월 경과) 피고인에 대하여 절도죄(법정형이 6년 이하이므로 공소시효는 5년이다. 형법 제229조,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4호)로 공소를 제기하였다가 항소심 계속 중인 2001. 3. 21.(범죄행위시로부터 약 5년 8월 경과)에 이르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종전의 절도죄에서 ‘피고인이 1995년 7월 하순 무렵 한 병원 지하 문서고에 들어가 건조물에 침입하였다’는 내용의 건조물침입죄(법정형이 3년 이하이므로 공소시효는 3년이다. 형법 제229조,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5호)로 변경하는 공소장변경신청을 하자, 항소심 법원은 2001. 3. 22.(범죄행위시로부터 약 5년 8월 경과)에 열린 제4회 변론기일에서 검사의 공소장변경신청을 허가한 후 공소장 변경을 이유로 피고인에 대한 제1심판결을 파기한 다음 변경된 공소장기재 공소사실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이 상고하였다. Ⅱ. 재판요지(파기자판) ⓐ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고 공소장 변경시를 기준으로 삼을 것은 아니지만(대법원 1982. 5. 25. 선고 82도535 판결, 1992. 4. 24. 선고 91도3105 판결 등 참조), ⓑ 공소장변경절차에 의하여 공소사실이 변경됨에 따라 그 법정형에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이 공소시효기간의 기준이 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 공소제기 당시의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중략) 피고인에 대한 변경된 공소사실인 건조물침입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이어서 범죄행위의 종료일로부터 3년의 기간이 경과하면 그 공소시효가 완성됨이 명백한 바(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5호), 피고인에 대하여 건조물침입의 범죄행위가 종료된 때로부터 3년이 훨씬 지난 2000. 2. 20. 이 사건 공소가 제기되었으므로 이 사건 공소 제기 당시 변경된 공소사실인 건조물침입죄에 대하여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이다. (중략) 검사의 항소이유는 제1심판결에는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는 것이나 ⓓ 검사가 원심에 이르러 피고인에 대한 공소장을 변경함으로써 심판의 대상이 달라지게 되어 제1심판결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이를 파기하기로 한다. Ⅲ. 평석1. 판례의 취지: 본 판결과 종래의 3개의 판결(1981.2.10. 선고 80도3245 판결 사기, 배임 공1981, 13706; 1982.5.25. 선고 82도535 판결 간첩, 일반이적, 반공법위반, 국가보안법위반 공1982, 623; 1992.4.24. 선고 91도3105 판결 분묘발굴, 매장및묘지등에관한법률위반 공1992, 1770)은 모두 “ⓐ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더욱이 본 판결의 재판요지 ⓓ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공소사실이 변경되면 심판의 대상은 변경후의 ‘공소장기재 공소사실’(이하 ‘공기실’로 약칭함)이 될 터인데 왜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새롭게 심판의 대상으로 등장한 공소장 변경시’가 아니라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므로 차후의 분석을 진행하기에 앞서 이 두 가지 의문을 좀 더 분명히 밝혀 볼 필요가 있다. “ⓒ 공소제기 당시의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제기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2001년의 본 판결에 주목하고 여기에 종전의 3개의 판결내용을 더하여 분석하면 대법원의 의도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1954년에 제정된 신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방어권강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당사자주의를 대폭 도입하고 그 일환으로 공소장변경제도를 도입하였으므로 이제 심판의 대상은 공기실(공소장기재 공소사실)로 설정하여야 한다. 만약 공소장변경으로 공기실이 변경되면 ‘변경후의 공기실’이 심판의 대상으로 전면(前面)에 부상(浮上)한다. 따라서 소송조건의 존부는 원칙적으로 변경후의 공기실을 대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재판요지 중 ⓑ의 부분이 이점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 부분의 판시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것은 ‘변경전의 공기실’(당초의 공기실)에 대한 공소제기의 효력, 특히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법 제253조 제1항)이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하여도 미치므로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한 공소시효만료여부는 ‘공소시효의 기산점인 범죄행위 종료시로부터 기소시’까지를 계산(이른바 기소시 기준설)하면 되고 ‘공소시효의 기산점인 범죄행위 종료 시로부터 변경시’까지를 계산할 것(이른바 변경시 기준설)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 공소장 변경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당초의 공소제기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다소 애매한 표현의 정확한 의미는 바로 ‘기소시에 발생하는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변경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서뿐만 아니라 변경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도 미친다’는 취지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판례의 입장은 ‘심판의 대상론’과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심판의 대상론’에 기울어진 입장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2. 심판대상론과의 관련성: 심판의 대상에 관한 공소사실대상설과 소인대상설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검토하여 한국 대법원이 심판대상론에 임하는 입장을 가늠하여보자. 현행법상의 심판의 대상에 관하여 구법시대와 같이 공소사실대상설을 취하면 소송계속(訴訟繫屬)되는 것은 공소사실이기 때문에 공소의 제기가 있은 후 공소사실이 변경되어도 ‘변경전의 공기실’(최초의 공기실)과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있는 전범위(이른바 실체개념으로서의 ‘공소사실’)에 걸쳐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이 미친다. 예를 들어 변경전의 공기실이 절도이고 변경후의 공기실이 단순횡령인 경우 범행종료시로부터 단순횡령으로 변경시까지의 기간을 계산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어도 절도에 대한 공소제기로 발생한 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절도와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단순횡령에 대하여도 미치므로 변경후의 공기실인 단순횡령에 대한 공소시효만료여부는 범행종료시로부터 절도에 대한 공소제기시까지만 계산(기소시 기준설)하면 되고 범행종료시로부터 변경시까지 계산할 필요가 없다. 다음에 순수한 소인(訴因)(현재의 공기실)대상설의 입장에 서서 이 문제에 접근하여 보자. ‘공소제기의 효력’(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그 일부이다)이 미치는 것은 소송계속 된 당해 소인에 한정된다. 이 설에 의하면 공소장이 변경되면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하여 새로 공소가 제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게 된다. 따라서 변경전의 공기실에 대한 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변경후의 공기실에까지 미치지 아니한다. 공소장변경으로 새로운 심판의 대상으로 부상한 변경후의 공기실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는지 여부는 범행종료시로부터 새로운 심판의 대상이 등장한 시기, 즉 변경시까지를 계산하여 판단(변경시 기준설)하여야 한다. 소인대상설론자가 과연 이렇게 주장할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순수한 소인대상설의 이념형은 논리구조상 위와 같이 주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 이제 한국 대법원의 심판대상론은 어떤 것인지를 음미하여 보자. 3. 판례설의 음미: 공소사실이 변경되면 ‘변경된 공소사실(변경후의 공기실: 필자)에 대한 법정형(이른바 법정형설)이 공소시효기간의 기준이 된다’는 재판요지 ⓑ 부분은 소인(정확히는 공기실)대상설에 기울어진 판시이다. 그러나 ‘기소 시에 발생하는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력은 변경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서뿐만 아니라 변경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도 미친다’는 재판요지 ⓐ 부분의 판시는 다시 구법시대의 공소사실대상설의 사고방식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여기서 심판대상에 관한 한국판례의 입장을 “(현재의) 공기실은 현실적 심판의 대상이고 현실적 심판의 대상과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부분은 ‘잠재적 심판의 대상’”이라고 보는 이원설로 분석(예를 들어 이재상, 『형사소송법(제5판)』(박영사, 1996), 379쪽)할 소지가 생긴다. 그러나 재판요지 ⓒ 부분의 판시는 ‘잠재적 심판의 대상론’의 면모를 손상시키는 내용의 것이다. 왜냐하면 ⓒ 부분의 판시는 결과적으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부분(변경후의 공기실)은 잠재적으로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 부분의 논증은 ‘변경후의 공소사실만을 놓고 공소시효완성여부를 따져 볼 때 최초의 기소시점에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라면 공소시효진행정지의 효과를 부여할 대상이 이미 소멸하였으므로 수소법원으로서는 면소판결을 선고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취지인데 그 논증 속에는 이미 ‘변경후의 공기실’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소인(정확히는 공기실)대상설’의 면모가 풍기고 있다. ⓐ 부분의 판시에서 드러나듯이 ‘판례가 심판의 대상에 관하여 이원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석의 유효성이 점차 희석화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는 점이다.
2002-02-21
법정증언을 번복하는 내용의 참고인진술조서의 증거능력
Ⅰ. 사안 피고인 K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변호사가 아니면서 W의 대출사기로 인한 형사사건에 관하여 청탁교제비 명목으로 W로부터 2억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사는 W에 대하여 작성한 1998. 10. 9.자 진술조서(이하 ‘이 사건 진술조서’라고 한다)를 유죄의 증거로 제출하였다. ‘이 사건 진술조서’는 W가 1998. 8. 25. 제1심의 제4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검사의 주신문과 피고인측의 반대신문을 거쳐 피고인의 변소(辨疎)내용에 일부 부합하는 취지의 증언(이하 ‘제1차증언’으로 약칭한다)을 마친 다음 검사의 소환에 따라 검찰청에 다시 출두하여 작성된 것으로서, 검사는 W를 별도의 위증 사건 피의자로 입건하여 신문하는 절차 없이 단순히 법정에서의 증언 내용을 다시 추궁하여 W로부터 그 증언 내용 중 ‘피고인의 변소에 일부 부합하는 부분이 진실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번복 진술을 받아냈다. 검사가 이 사건 진술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제출하자 피고인은 이를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아니하였고, 그 후 검사의 신청으로 출석한 증인 W는 1998. 10. 27. 제1심의 제8회 공판기일에 다시 증언(이하 ‘제2차증언’으로 약칭한다)을 하면서 이 사건 진술조서의 성립의 진정함을 인정하고 제1차증언을 번복하여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다. 증인 W는 이 때 피고인측의 반대신문에 응하였다. 제1심은 제2차증언과 이 사건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여 이를 유죄 증거의 하나로 명시하고, 항소심이 이를 유지하였다. 피고인이 ‘이 증거를 유죄증거로 삼은 것은 위법하다’며 상고하였다. Ⅱ. 쟁점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 공소사실에 배치되는 증언을 한 증인을 검사가 별도의 위증 사건 피의자로 입건하여 신문하는 절차 없이 단순히 법정에서 소환한 후 피고인에게 유리한 그 증언 내용을 추궁하여 이를 일방적으로 번복시키는 방식으로 작성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Ⅲ. 재판요지(상고기각) 〔다수의견〕 “㉮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 이미 증언을 마친 증인(W)을 검사가 소환한 후 (W를 별도의 위증 사건 피의자로 입건하여 신문하는 절차 없이: 필자 첨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그 증언 내용을 추궁하여 이를 일방적으로 번복시키는 방식으로 작성한 진술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삼는 것은 당사자주의·공판중심주의·직접주의를 지향하는 현행 형사소송법의 소송구조에 어긋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기본권, 즉 법관의 면전에서 모든 증거자료가 조사·진술되고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부여되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 이러한 진술조서는 피고인이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한 그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여야 할 것이고, ㉱ 그 후 원진술자인 종전 증인이 다시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면서 그 진술조서의 성립의 진정함을 인정하고 피고인측에 반대신문의 기회가 부여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증언 자체를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위와 같은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결론은 달리할 것이 아니다. 이와는 달리 그 후의 공판기일에서 원진술자인 종전 증인이 다시 증언을 함에 있어서 피고인측에 반대신문의 기회가 부여되었다면 위와 같은 진술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1992. 8. 18. 선고 92도1555 판결 및 위와 같은 진술조서도 증거능력이 있음을 전제로 한 대법원 1983. 8. 23. 선고 83도1632 판결, 1984. 11. 27. 선고 84도1376 판결, 1993. 4. 27. 선고 92도2171 판결의 각 견해는 이와 저촉되는 한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Ⅳ. 평석 1. 이 판결의 사정(射程)범위(번복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첫째, 이 판결은 ‘공소사실에 배치되는 법정증언을 번복(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의 검사작성의 참고인(참고인이지만 통상의 수사절차상의 참고인이 아니라 이미 법정증언을 한 바 있는 참고인이다) 진술조서’(이하 ‘번복진술조서’로 약칭한다)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에 관하여 다소 불분명했고 엇갈리기도 했던 종래의 판결들을 전원합의체 판결로 분명히 하는 한편 종래의 판결을 변경하는 판결이기 때문에 주목을 요한다. 종래의 판결은 번복진술조서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 신빙성을 부인할 수 있다고 한 판례(대법원 1983.8.23. 선고 83도1632 판결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살인특수강도 집31(4)형119, 공 1983,1462; 대법원 1984.11.27. 선고 84도1376 판결; 1993.4.27. 선고 92도2171 판결 배임수재 횡령)가 있었는가 하면 번복진술조서는 원칙적으로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러나 “이러한 진술조서라도 그 후에 법정에서 피고인측에게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의 기회를 부여하였다면 그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대법원 1992. 8.18. 선고 92도1555 판결)는 판례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본 판결에서 종래의 엇갈렸던 판례를 증거능력의 문제로 통일시키고 번복진술조서는 “그 후 원진술자인 종전 증인이 다시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면서 그 진술조서의 성립의 진정함을 인정하고 피고인측에 반대신문의 기회가 부여되었다고 하더라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못박았다. 둘째, 이 판결은 번복진술조서의 증거능력(피고인이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한 그 증거능력이 없다, 재판요지 ㉰항 참조)을 문제삼고 있지만 번복진술조서 중에서도 검사가 법정증인을 별도의 위증 사건 피의자로 입건하여 신문하는 절차 없이 추궁하여 작성한 진술조서만을 문제삼고 있다. 이 판결을 반대해석하면 검사가 법정증인 W를 별도의 위증 사건 피의자로 입건하여 정식의 피의자신문절차에서 W를 추궁하여 작성한 진술조서는 문제가 없다(증거로 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셋째, 본 판결은 공소사실에 배치되는 증인의 1차증언 후 수사기관(본 사안에서는 검사가 작성하였지만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에 의해 작성된 법정증인의 번복(공소사실에 부합)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였지만 그 증인이 2차증언에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번복증언’(이하 ‘번복증언’으로 약칭한다)을 하고 피고인측의 반대신문을 경유하였다면 이 번복증언은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2차증언의 실시는 당사자주의나 공판중심주의, 직접주의의 어떤 견지에서도 문제될 것이 없으므로 이 부분의 판시에 대하여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본 판례는 어떤 법리를 근거로 하여 위와 같은 판결을 하였는가? 2. 이 판결의 법리적 논거 본 판례의 다수의견은 재판요지 ㉮ 항과 ㉯ 항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 부분의 판시는 헌법재판소가 형사소송법 제314조에 대한 위헌소원에서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 후단의 적법절차조항과 헌법 제27조 제1항 및 제3항을 근거로 이끌어 낸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선언(1994.4.28. 선고 93헌바26 결정, 합헌 형사소송법 제314조 위헌소원)을 토대로 발전시킨 것이다. 본 판례의 생성을 가능하게 했던 법리는 이렇듯 가깝게는 공판중심주의·직접주의이고 멀리는 당사자주의와 적법절차원리임을 알 수 있다. 본 판례는 당사자주의와 적법절차와 같은 ‘기저적(基底的)인 구조원리’가 공판중심주의·직접주의와 같은 ‘하위수준의 구조원리’개념을 매개로 ‘형사실무의 최전방말단에 자리하고 있는 각론적 쟁점의 해석문제에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고 있는 과정을 실증해 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흥미있는 판례이다. 3.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의 우려 반대의견(대법관 지창권, 이임수, 서 성, 조무제, 유지담)은 다수의견에 대하여 “다수의견의 주장에 따르면,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한 증인에 대하여 검사가 후에 다시 진술조서를 받은 경우, 그 진술조서를 새로 받게된 이유나 절차가 어떠하였던가, 그 증언내용과 그 진술조서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그 후에 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취득하기 위하여 검사가 어떠한 소송상의 절차를 진행하였는가를 가리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마는 결과로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본 판례의 사안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사안이다. 본 판례사안에서는 1차증언에서 공소사실에 배치되는 증언을 한 증인이 2차증언에서 번복증언(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언)을 하였는데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1차증언에서 공소사실에 배치되는 증언을 한 증인이 2차증언에서 번복증언을 하면 두 개의 증언 중 어느 한 개의 증언은 위증임에 틀림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증인이 위증죄로 기소될 위험을 감수하고 2차증언에서 1차증언과 배치되는 증언을 감행하리하고 예측되지 않는다(1993.4.27. 선고 92도2171 판결의 판례사안에서의 증인은 2차증언에서 1차증언을 번복하지 않았다. 오관석, [형사소송에 있어서 증인신문후 당해증인에 대한 수사기관 작성의 조서의 증거능력 및 증명력], {사법행정}, 1993.9, 60-64쪽 참조). 증인이 2차증언에서 1차증언을 번복해 주기를 원하는 검사는 증언번복을 주저하는 증인에게 불기소의 약속이나 암시를 고려해야 한다. 본 판례사안에서도 검사는 증인 W를 위증죄로 입건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본 판례의 다수의견은 ‘번복진술조서를 증거로 하고 싶으면 검사는 법정증인을 별도의 위증 사건 피의자로 입건하여 신문하라’고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위증 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된 증인이 합리적 인간이라면 2차증언에서 1차증언을 번복할 리가 없다. 따라서 반대의견의 우려는 다수의견의 실무적 의의에 대한 ‘일리있는 합리적 예측’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태에 봉착한 검사는 향후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4. 검사의 향후 대응책 검사는 종래와 같이 ‘위증죄 기소 혹은 불기소’를 무기로 법정증인의 번복진술조서를 받아 내려는 발상을 포기하고 반대신문의 기술을 발전시켜 제1차증인신문에서부터 송곳같은 반대신문으로 위증을 기도하는 증인을 무력화시키고 이에 실패하면 제2, 제3차의 증인신문에서 위증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수행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고 당분간 ‘실질적으로 유죄이지만 재판상 무죄’를 선고받는 피고인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적법절차, 당사자주의, 공판중심주의, 직접주의 등의 구조원리는 ‘더 큰 공익(bigger public interest)’을 위하여 ‘보다 작은 공익(smaller public interest)’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원리이므로 다수의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2000-07-27
판결확정후 그 범행수단인 행위의 추가기소와 확정판결의 기판력
I. 판결이유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은 종전에 판결이 확정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 일부에 대한 범행수단으로서, 그 공소사실에 그 범행수단 및 태양으로 설시되어 있기는 하나, 종전사건의 공소장 등에 비추어 종전사건에서 검사가 이를 기소하지 아니하였음이 명백하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와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죄는 실체적경합범의 관계에 있을 뿐, 포괄일죄나 과형상일죄의 관계에 있지 아니하므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후에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을 추가 기소하여도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지 아니한다. II. 판례평석 (1) 처음의 기소대상에서 누락된 사실을 검사가 판결이 확정된 후 추가로 기소하는 경우 소송법상으로는 크게 두가지 점이 문제된다. 첫째는 ‘검사의 公訴權 濫用與否’이다. 우선 검사의 누락기소에 대해 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즉 피고인이 범죄를 부인했기 때문에 검사에게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기소가 누락된 경우에는, 누락기소를 검사의 직무태만이나 위법한 부작위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그러나 피고인이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자백하였고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검사가 사실의 일부를 누락기소하고 판결확정후 추가 기소하는 것은 ‘병합심리에 의한 양형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피고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공소권의 남용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비록 검사가 관련사건을 수사할 당시 이 사건 범죄사실이 확인된 경우 이를 입건하여 관련사건과 함께 기소하는 것이 상당하기는 하나 이를 간과하였다고 하여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여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대판 1998.7.10, 98도1273)고 하여 공소권남용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을 따르거나 검사에게 모든 범죄사실에 대한 동시소추의 의무는 없다고 보는 입장에 서면, 본 평석의 대상이 된 사안에서 검사가 피고인을 ‘사기죄’로 기소하면서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을 누락했다가 차후에 추가 기소했다 할지라도 공소권남용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 (2) 두 번째로 범죄사실의 누락기소와 확정판결 후의 추가기소는 ‘確定判決의 旣判力’ 및 ‘一事不再理의 原則’을 침해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본 평석의 대상이 된 대법원 판례는 이 점에 대해 심판하고 있다. 재판이 형식적으로 확정되면 그 판결의 의사표시도 확정되는데 이를 재판의 내용적 확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有·無罪의 실체재판이나 免訴判決의 경우 내용적 확정이 있게 되면 사실관계를 둘러싼 형벌권의 존부와 범위가 확정되는데 이후로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再訴가 금지되는 특별한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을 確定判決의 旣判力 또는 一事不再理效果라고 한다. 有·無罪 또는 免訴判決이 확정된 후 동일사건에 대해 再訴를 금지하는 이유는 1) 동일범죄에 대한 형사절차의 반복이 시민들에게 가져다줄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방지하고(二重危險禁止), 2) 형사사법기관의 업무 및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며(訴訟經濟), 3) 형사피고인의 법적 지위의 안정성을 도모하며, 4) 동일사건에 대해 전후 모순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방지하여 형사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에 있다. 그런데 확정판결의 기판력 또는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 판례와 다수설은 법원의 현실적 심판대상인 공소사실은 물론 그 공소사실과 單一하고 同一한 관계에 있는 사실의 전부(잠재적 심판범위)에 대해 그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법원의 심판범위에 대한 二元說의 입장). 이처럼 公訴事實의 同一性이 인정되는 범위까지 기판력이 미치는 것으로 보는 이유는 1) 공소제기의 효력은 공소사실뿐만 아니라 그와 동일성이 있는 범죄사실 전부에 대해서 미치고(형사소송법 제247조 2항 참조), 2) 피고인의 법적 지위의 안정과 피고인보호를 위해 二重危險을 금지하고자 하는 一事不再理原則의 취지에 비추어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는 위험이 미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3) 헌법 제13조 1항의 “동일한 범죄”는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죄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확정판결의 기판력 또는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형사소송법 제29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소장의 변경이 허용되는 범위와 일치하게 되며 그 구체적인 범위는 결국 ‘公訴事實의 同一性’에 관한 학설에 의해 정해질 수밖에 없다. 본 평석의 대상이 된 사건에서 사기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후에 그 판결의 기판력이 사기죄의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에게까지 미치는냐도 결국은 ‘사기죄’와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죄’ 사이에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3) ‘公訴事實의 同一性’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현재 다수설은 ‘基本的 事實同一說’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기본적 사실동일설’은 비교되는 양 범죄사실을 각각 그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로 환원하여 그러한 사실들이 다소간의 차이점을 보이더라도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하면 양자간에 동일성을 인정하는 견해이다. 즉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자연적·전법률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범죄사실들에 대해서 동일성을 긍정하는 입장이다. 판례도 역시 종래에는 기본적 사실동일설의 입장에 서 있었으나 최근에는 ‘자연적·사회적 사실관계나 피고인의 행위가 동일한 것인가 외에 그 규범적 요소도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에 관한 실질적 내용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판 1994.3.22, 93도2080; 1996.6.28, 95도1270; 1998.6.26, 97도3297)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자연적·사실적 관계 외에 피해법익과 죄질 등의 규범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대법원은 앞의 93도2080 판결에서 ‘강도상해죄’와 ‘장물취득죄’ 사이에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부인한 바 있다. 대법원의 이러한 입장변화는 사건개념의 해석에 정의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피고인이 경한 범죄사실(장물취득죄)로 심판을 받고 판결이 확정된 후 중한 범죄사실(강도상해죄)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양 범죄사실 사이에 동일성이 인정되고, 따라서 확정판결의 기판력 때문에 중한 범죄사실인 강도상해죄에 대한 죄책을 물을 수 없다면 이는 정의관념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규범적 관점이 언제나 명쾌한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닐뿐더러, 이런 방법으로 사회의 처벌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補正訴訟을 인정하는 것은 형사피고인의 법적 지위를 안정시키고 두 번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기판력과 일사부재리원칙의 기본취지를 몰각시키는 것이 된다. 따라서 기판력과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설정하는 ‘公訴事實의 同一性’은 다수설과 같이 基本的 事實同一說에 의해 전법률적·자연적·사실적 관계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4) ‘기본적 사실동일설’에 의할 경우 공소사실의 동일성은 각각의 범죄사실을 그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로 환원하여 일반인의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동일한 사건)’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경우에 인정된다. 그리고 일반인의 생활경험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경우들을 법률적 개념으로 구체화하는 데는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1) 수개의 범죄사실이 하나의 행위로 평가될 수 있을 때 그 범죄사실들은 소송법상으로 ‘하나의 사건’이다. 예컨대 수뢰와 공갈의 범죄사실은 동일인이 동일인으로부터 동일한 일시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재물을 교부받았다는 행위의 단일성이 인정된다면 하나의 사건이다. 절도와 장물보관의 범죄사실에서는 동일인이 다른 동일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하여 그 재물을 운반·보관한 일련의 행위 전체를 1개의 범죄행위로 본다면 재물의 절취와 보관은 1개의 범죄행위의 부분적 행위이므로 결국 양 범죄사실 사이에 행위의 단일성이 인정되어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된다. 고의살인과 과실치사의 범죄사실도 하나의 행위(사건)를 놓고 법적 평가만 다른 경우이므로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된다. 2) 다음으로 수 개의 범죄사실이 각각 별개의 행위이면서 별개의 구성요건을 실현하는 경우에는 소송법상 원칙적으로 수 개의 사건이 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이 경우에도 ① 수 개의 범죄사실 사이에 포괄일죄 또는 과형상 일죄의 관계가 성립하거나, ② 수 개의 범죄사실 사이에 연결효과에 의한 상상적 경합(대판 1983.7.26, 83도1378 참조)이 인정되는 경우, 그리고 ③ 수 개의 범죄사실이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에는 소송법상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하여야 한다(배종대/이상돈, 형사소송법, 제3판, 402면 참조). 이런 경우에는 수 개의 범죄사실 사이에 행위의 다수성이 인정되고 각각 별개의 구성요건이 침해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5) 본 평석의 대상이 된 사안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와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범죄사실 사이에는 행위의 다수성이 인정되고 각각 별개의 구성요건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실체적경합범의 관계에 있을 뿐, 포괄일죄나 과형상 일죄의 관계에 있지 아니함이 인정된다. 그러나 양 범죄사실 사이에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인정된다. 즉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범죄사실은 사기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양 범죄사실은 실체적 경합의 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생활경험상 ‘하나의 사건’, 즉 동일한 사건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사기죄의 범죄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즉 ‘하나의 사건’(=동일한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는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범죄사실에도 당연히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검사가 피고인에 대해 특경법상 사기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후에 그 수단이 된 사문서위조 및 행사의 점을 추가 기소하는 것은 확정판결의 기판력과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면소판결이 내려져야 한다. 사기의 범죄사실로 유죄의 형을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된 피고인에게 또 다시 사기범죄의 ‘部分’행위로 인해 형사법정에 서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는 것이 헌법상 피고인의 이중위험을 금지한 일사부재리원칙의 기본취지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2000-06-12
신용장개설의뢰인의 서류조사 · 하자통지의무 인정여부
I. 事實槪要 피고 한국외환은행은 원고 대한민국(국방부)이 프랑스의 회사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면서 신용장 개설을 의뢰받고, 1990. 11. 26. 취소불능신용장을 개설하였고, 원고는 그 대금의 결제에 사용할 금액을 피고에게 예치하였다. 1992. 12. 16. 피고는 통지은행인 피고의 파리지점으로부터 이 사건 신용장에 따른 선하증권등 선적서류가 첨부된 환어음을 매입하였다는 통지를 받고, 같은 달 21. 위 파리지점에 위 신용장대금을 (서류상 선적기간이 도과한 것을 이유로 지체상금을 공제하고) 수익자에게 지급하도록 지시하였고, 원고로부터 예치받은 금액으로써 신용장대금 결제를 완료하였다. 그런데 원고가 피고로부터 같은 달 29.경 송부받은 선적서류에는 선적통지, 도착항, 수하인과 관련하여 신용장조건과 문면상 불일치하는 하자가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선하증권은 위조된 것이며, 국방부가 주문한 물건은 전혀 선적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원고는 선적서류를 인수한지 7-8개월이 지나서야 선적서류불일치를 이유로 피고에게 신용장대금예치금의 반환을 구하므로, 피고가 이를 거절하여 訴에 이르게 되었다. II. 大法院判決 要旨 이 사건은 우리 국방부가 무기도입과정에서 외국 회사에게 사기를 당하여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유명한 사건의 일부이다. 이 사건에 관하여 여러 건의 訴가 제기되었는데, 그 중 두 번째 대법원 판결이 바로 이 사건 판결이다. 첫번째 판결(대법원 1998. 3. 27. 선고, 97다16114 판결)에서는 원고는 대한민국으로서 같고 피고는 주택은행인데 주택은행이 승소하였고, 세번째 판결(대법원 1998. 7. 10. 선고. 97 다31304 판결)에서는 피고 상업은행이 승소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선적서류가 文面上 신용장조건과 불일치(discrepancy)하는 하자가 매우 심하여, 어느 누가 보아도 대금지급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신용장은 서류의 거래이고 그 서류는 신용장 조건과 엄격히 일치하여야 한다(엄격일치의 원칙: the doctrine of strict compliance). 따라서 이 점만 본다면 이와 같은 하자를 무시하고 대금을 미리 지급한 피고의 과실이 막중하다. 그러나 원고로서도 불일치가 심각한 위 서류를 인수하고도 7-8개월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서류상 선적기간이 도과한 것만을 문제삼아 遲滯償金만을 공제하고 대금을 지급하도록 피고에게 지시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원고가 장기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것은 선적서류와 신용장조건의 불일치라는 하자를 추인하였거나 피고은행의 상환청구를 거절할 권리를 포기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문제이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판시하였다. ① 신용장통일규칙(1984년 제4차개정 제16조 (b)항 내지 (e)항)상 신용장 개설은행은 수익자에 대한 신속한 하자통지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면 더 이상 클레임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원고 국방부는 신속히 하자를 발견하여 피고 은행으로 수익자인 에피코사에게 통지하도록 하여야 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것은 원고가 스스로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피고의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개설은행의 서류조사 및 하자통지의무에 관한 위 신용장통일규칙의 규정은 신용장대금이 결제되기 전에 적용되는 규정이기 때문이다(第1論點). ② 나아가 위 신용장통일규칙 제16조 (b)항 내지 (e)항은 개설은행과 수익자 간에만 적용되는 것인데 이것을 개설의뢰인과 개설은행 간의 관계에 적용시킬 근거가 없다. 개설의뢰인과 개설은행 간의 관계는 개설은행과 수익자간의 신용장거래와는 본질을 달리하는 별개의 계약일 뿐 아니라 개설은행과 수익자 간의 신용장거래는 원칙적으로 개설의뢰인과 수익자 간의 원인관계로부터는 물론이고 개설의뢰인과 개설은행 간의 관계로부터도 독립하여 규율되고 있는 것이므로, 위 규정을 개설의뢰인과 개설은행 간의 관계에, 그것도 개설은행이 미리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다음 사후에 개설의뢰인에게 선적서류를 송부한 경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第2論點). III. 硏 究1. 第1論點 위 제1논점에 대하여 본다. 대법원은 신용장통일규칙상 신용장 개설은행의 수익자에 대한 신속한 하자통지의무와 그 위반시의 권리상실에 관한 신용장통일규칙 제16조 (b)항 내지 (e)항의 규정은 신용장대금이 결제되기 전에만 적용되는 규정이라고 판단한 다음, 이 사건에서는 위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짐작컨대 대법원판결에 의하면 신용장 개설은행인 피고가 미리 선적서류상의 하자를 조사하지도 않고 미리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것은 신용장 개설은행의 수익자에 대한 신속한 하자통지의무를 이미 위반한 것이고, 그 위반에 대하여 원고가 언제 다투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 된다. 이 사건에서처럼 7-8개월은 물론이요, 그 의무위반이 불법행위 내지 계약불이행을 구성한다고 보면, 그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3년 또는 10년)까지는 국방부는 피고의 이러한 의무위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와 같은 대법원의 견해에 찬성할 수 없다. ① 신용장 대금이 매입은행에게 미리 결제되었든 아니든 신용장 거래의 본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보통의 경우 신용장 대금은 현실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외환거래가 빈번한 은행 간에는 일종의 상호계산계좌를 가지고 있어서 계좌상 대금의 借記가 이루어진다. 또한 이들 은행간에는 신용장 개설은행이 매입은행에 대금을 지급한 후에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서류인수를 거부하면 환어음을 재매입한다는 약정을 해 두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매입은행은 외환은행 파리지점으로서, 본지점간에 환어음 재매입은 문제가 없다. 또한 신용장 매입은행도 선적서류를 매입(이른바 nego)하면서 즉시 수익자에게 대금을 지급하지만, 대개의 경우 서류상 하자가 발견되어 개설의뢰인이 서류인수를 거부하면 수익자로부터 예치받은 담보를 집행하여 기 지급한 신용장 대금을 환수한다. 요컨대 대금의 결제는 기술적 요청에 따라 먼저할 수도 있고 나중에 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이것과 신용장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② 신용장 개설은행의 선적서류의 조사 및 하자통지의무는 대금지급 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금지급에 臨하여(즈음하여 또는 관련하여) 존재한다. 대금을 이미 지급하였다고하여 모든 것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4차개정 신용장통일규칙(이하 UCP 400이라 한다) 제16조 (d)항은 『개설은행은 (서류의 하자를 이유로 서류를 거절할 경우) 서류송부은행에 이미 상환한 금액을 그 지급일로부터 환급일까지의 이자를 붙여서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1993년에 개정된 제5차개정 신용장통일규칙(이하 UCP 500이라 한다) 제14조 (d)항 제ⅲ호 참조]. 즉, 이미 지급이 이루어 진 후에 선적서류를 조사하고 하자를 발견하였다면, 그 시점에서 그 하자를 통지하고 이미 지급한 대금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③ 신용장 개설은행이 「선적서류의 조사 및 하자통지의무」를 위반한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은 개설은행이 수익자에게 부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의무를 위반하고 신용장 대금을 미리 지급하였든 말았든 개설은행의 사정이다. 원고 국방부는 상당한 기간 내에 별도로 자신이 인수한 선적서류상의 하자 여부를 검토하여 하자가 발견되면 개설은행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여야 한다. 요컨대 개설은행의 「선적서류의 조사 및 하자통지의무」를 다하였는가의 여부는 개설은행과 수익자 간의 문제로서, 개설의뢰인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며, 따라서 이 의무를 대금 지급 전에 이행하였는지, 아니면 대금지급 후에 이행하였는지는 신용장개설의뢰인인 원고로서는 관여할 바가 아니다. 2. 第2論點 다음, 제2논점을 본다. 개설은행의 「하자통지의무 및 권리상실」에 관한 규정은 제4차개정 신용장통일규칙 제16조 (b)항에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 규정이 반드시 신용장 개설은행과 서류송부은행(또는 수익자) 간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대법원의 견해는 무역관습을 무시한 견해로서 찬성할 수 없다. 이 점은 UCP 500 제14조를 참조하면 명백해진다. UCP 500 제14조는 UCP 400의 제16조를 개정한 것이다. UCP 500 제14조 (c)항은 신설된 조항으로서, 「서류가 문면상 신용장 조건과 불일치한 때에는 개설은행은 그 독자적인 판단으로 그 하자에 관한 권리포기여부를 개설의뢰인과 교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제13조 (b)항에서 언급된 기간이 연장되지는 아니한다」는 뜻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제13조 (b)항에서 언급된 기간 내에 신용장개설은행과 개설의뢰인이 서류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이를 접수할 것인가, 아니면 대금지급을 거절할 것인가를 협의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UCP 500 이전에도 통용되었던 전 세계적인 상관습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용장통일규칙은 신용장 거래에 관한 실무계의 관행·관습을 정립한 것이다. 이와 같은 규정이 신설되기 이전부터 개설은행은 개설의뢰인과 협의하에 신용장상의 하자에 관한 권리포기를 널리 인정하여 왔었으므로, 이것이 1993년 통일규칙 개정에 즈음하여 UCP 500에서 성문화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원고가 선적서류의 인수를 거부할 의사가 있었다면 제13조 (b)항에서 언급한 기간 내에 피고와 협의하였어야 한다. 「제13조 (b)항에서 언급된 기간」이란 제7은행영업일 내(seven banking days)를 의미한다. 이 기간은 서류심사기간이라 하는데 이 기간은 UCP 400 제16조 (c)항에 의하면 「상당한 기간」(reasonable time)으로 규정되어 있던 것이다. 이것이 UCP 500 제13조 (b)에서 「제7은행영업일 내」로 명시된 것이다. 「상당한 기간」에 대한 통설·판례는 제3은행영업일이라는 것이고, 우리 나라의 은행실무에서는 서류의 접수일로부터 대략 1주일로 보았었다. 결국 피고외환은행은 제7은행영업일 내에 서류를 심사하여 국방부와 협의, 하자보완이나 권리포기를 결정하거나 그 하자를 서류송부은행 또는(수익자가 직접 서류를 송부한 경우) 수익자에게 통지하였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보면 원고는 선적서류 인수 후 7-8개월 후에야 피고 은행에 신용장 대금을 상환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는 선적서류와 신용장조건의 불일치라는 하자를 추인하였거나 피고의 상환청구를 거절할 권리를 포기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IV. 結 語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원고와 선적서류불일치에 관하여 협의하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敗因)이 되었지만, 위 대법원의 판단은 실무계의 관행 내지 관습을 무시한 것이고, 신용장통일규칙의 관계규정을 오해한 것이다. 계약법은 시장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지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규칙을 추구하는 법률가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The law of contracts serves the marketplace. It does not exist to satisfy lawyers' desires for neat rules).
1998-08-31
상법상의 단기제소기간 제811조 이 해상운송인의 운송물인도와 관련한 불법행위채무에도 적용되는지 여부
【사실의 개요】 서진무역을 경영하던 제1심 공동피고 고용국은 1992.12경 홍콩에 소재한 소외 모글림 엔터프라이즈 컴퍼니(Mogleam Enterprise Co., 이하 모글림이라고만한다)와 사이에, 휴대용 가스버너13,000개(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고한다)를 대금 159,500달러에 홍콩으로 수출하기로 하는 내용의 수출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출대금은 신용장에 의해 결제받기로 약정하였다. 모글림은 위수입계약의 대금결제를 위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시 소재 냇웨스트 오스트레일리아 뱅크리미티드(Natwest Australia Bank Limited, 이하 소외 은행이라고 한다)에 신용장 개설을 의뢰하였고, 이에 따라 소외 은행은 위 서진무역을 수익자로 한 취소불능화한신용장을 개설하였다. 위 수출계약에 따라, 고용국은 1993. 6. 28 피고회사 월드프레이트와 사이에 이 사건 화물에 대한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한 다음 부산항에서 피고회사에게 위 화물을 인도하였고, 이에 피고회사는 위 화물을 선박 「프레스 타일러(Pres Tyler) V-133W」호에 선적한 다음 송하인을 위 서진무역으로, 수하인을 단순지시식으로, 통지처를 위 모글림으로 하는 선하증권(이하 이 사건 선하증권이라고 한다)을 작성하여 고용국에게 교부하였다. 원고 중소기업은행은 고용국과 사이의 수출거래약정에 따라 같은 날 위 신용장을 화환어음 및 이 사건 선하증권 등 선적서류와 함께 매입하면서, 고용국에게 이 사건 화물의 수출대금 미화 159,500달러를 당시의 전신환매입율로 환산한 금 127,552,150원을 지급하였다. 원고가 소외은행에 위 신용장을 이 사건 선하증권등 선적서류와 함께 송부하면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요구하자, 소외 은행은 같은 해 7. 5. 제시된 서류가 신용장의 조건과 불일치하고, 신용장 개설의뢰인이 선적서류의 인수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거절하였고, 같은 달 26.경 위 선하증권 등 선적서류를 원고에게 반송하였다. 한편 피고회사는 이 사건 화물을 해상운송하여 1993. 7초경 홍콩에 도착시킨 후 양륙하였고, 피고회사의 홍콩내 선박대리점인 소외 프레이트 링크스 익스프레스사에게 위 화물을 보관하게 하였다. 그런데 위 프레이트 링크스는 1993. 7. 10경 이 사건 화물을 선하증권을 교부받지 않고서 위 모글림에게 위 화물을 인도하였다. 【소송의 경과】 원심(서울고등법원 1996. 8. 27. 선고 96나14694 판결) 원심은 원고가 이 사건 선하증권의 소지인으로서 운송인인 피고에 대하여 운송물의 멸실 등 불법행위로 인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는 이 사건 소는, 이 사건 화물이 인도되어야 할 날 즉 운송물이 목적항에 도착한 후 선하증권 소지인이 증권을 제시하면 통상 운송물을 수령할 수 있었던 날인 1993. 7. 10. 경부터 상법 제811조 소정의 제척기간인 1년이 경과한 후인 1995. 4. 29.에 제기되었으므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판결요지】 상법 제811조은「운송인의 용선자,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권 및 채무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운송인이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한다. 그러나 이 기간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연장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잇는 바, 해상운송계약에 따른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 그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은 상법 제811조 소정의 수하인에 해당한다고 보아야한다. 원고는 피고가 서진무역을 송하인으로하여 단순지시식으로 발행한 이 사건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고, 그 이면에는 위 서진무역의 대표자인 고용국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는 사실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 선하증권 이면에 기재된 서진무역의 서명은 민법 제513조제1항 소정의 약식배서로서 유효한 것이므로, 위와같은 약식배서에 의하여 이 사건 선하증권을 취득한 원고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 추정되어 상법 제811조 소정의 「수하인」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가사 원고가 이 사건선하증권을 담보의 목적으로 소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수하인으로서의 지위에 무슨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법 제789조의3제1항은 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상법의 규정은 운송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에도 적용하도록 되어 있고, 같은 법 제811조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운송인의 수하인 등에 대한 채권 및 채무에 대하여 적용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운송인의 악의로 인한 불법행위채무 역시 운송인이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 한다고 보아야 한다. 【평 석】1. 운송인의 책임과 권리의 소멸 (1) 상법 제811조의 제척기간으로의 변경 상법 제811조는 운송인의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무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구 상법(1991. 12. 31. 법률 제447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11조 및 제812조에서 운송인의 송하인 등에 대한 채권 및 책임에 대하여 「…1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라고 개정하여 제척기간으로 변경하되 당사자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에 대하여 또한 구상법 812조, 제146조제1항, 제2항에 의하면, 운송인 또는 그 사용인이 악의인 경우에는 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단기소멸시효규정인 위 구상법 제811조가 적용되지 않도록 되어 있었으나, 현행 상법에서는 위 조항이 삭제되었을 뿐 아니라 현행 상법 제811조는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라는 어구를 추가하여 운송인이 심지어 악의인 경우에도 그의 수하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1년이 지나면 모두 소멸 한다고 해석한 위와같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이다. 본 사건의 원심인 고등법원은 운송계약에 있어서는 증거의 보존이 곤란하다는 점과 각 항해의 계산관계를 신속하게 하게 종료시키기 위해 이러한 단기의 제척기간이 법정된 이유라고 한다. 2. 국제조약 및 외국의 입법 (1) 1924년 선하증권조약(헤이그 규칙) 헤이그 규칙하에 송하인이나 수하인의 운송인에 대한 소송은 1년내에 제기되어야 한다. 그 제3조6항은 다음과 같다. 「…운송인과 선박은 손실과 훼손에 관하여 운송물의 인도 또는 운송물이 인도되었어야 할 날부터 1년내에 소송이 제기되지않으면 모든 책임을 면한다. (2) 1968년 선하증권조약 개정의정서(비스비 규칙) 새로운 비스비 규칙 제3조6항은 다음과 같다. 「…운송인과 선박은, 소송이 운송물이 인도된 날 또는 인도되었어야 할 날로부터 1년내에 소송이 제기되지 않으면 운송물에 관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모든 책임을 면한다. 그러나 이 기간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연장할 수 있다.」 3. 상법 제811조가 화물소유권 자체의 인도상의 악의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지의 여부 이상과 같이 헤이그 규칙 제3조6항은 「(운송물의)손실과 훼손에 관한 모든 책임」에 관하여 운송인을 면책시킨다고 규정하므로 소송제기에 있어서의 지연이 인도상의 문서(예를 들면 선하증권)와 상환하지 않고 무권리자에게 운송물을 잘못 인도하여 준 Improper delivery와 같은 경우에 운송인을 보호하지는 않는다.(이점은 헤이그 규칙만을 채택한 미국법원의 동조해석에 있어서 일관된다.) 그러나 새로운 비스비규칙 제3조 6항은 운송인을 「운송물에 관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모든 책임에 관하여 운송인을 면책시키므로 단지 화물자체와 관련한 훼손 또는 멸실의 경우뿐만 아니라 화물인도와 관련된 책임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해석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우리 상법은 구상법상 제146조1항의 「운송물에…훼손 또는 일부멸실이 있는 경우에」와 제146조2항의 「악의인 경우에는」 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1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지않도록 되어있었으나 현행 상법에서는 위 조항이 삭제되고 제811조에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란 문구가 삽입되어 헤이그조약상로부터 비스비조약의로의 어구변화를 그대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스비조약과 같은 훨씬 더 큰 범위를 포함하는 어구상의 변화로 1년의 제척기간이 운송물자체의 인도와 불인도상의 책임에도 이제 적용된다는 논의가 있는 한편, 이러한 정도의 애매한 어구의 개정이 선하증권상의 운송물의 소유권자체와 관련된 문제에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해석론도 만만치 않다. 개정상법이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구상법상 운송인의 책임이 비계약적 청구에 관하여는 적용되지 않던 것을 제789조의3에 의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에도 적용되도록한 것과 보조를 맞추어 계약적인 청구뿐만 아니라 비계약적 청구에도 적용된다는 의미로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라는 용어를 사용 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운송인이 악의인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그 악의라 함은 운송인이 운송물의 일부멸실 또는 훼손사실을 알면서 이를 수하인에게 알리지 않고 인도하는 것과 같은 경우(87. 6. 23. 86 다카 2107)에 한정되어야지 선하증권과 관련한 운송물의 소유권자체와 관련된 문제에까지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또한 상법 제811조상의 1년제척기간이 그 규정상의 당사자간의 합의라는 예외만 인정되고 그 이외의 운송인의 어떠한 악의의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면 운송인이 음모나 사기에 의해 청구인이 잘못된 당사자에게 소송을 제기하게 하거나 제척기간이 도과하도록 유도한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모순된 결과에 봉착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상법 제811조상의 1년의 제척기간이 화물인도상의 책임에도 적용된다는 해석은 위의 대법원판결에 의해 일단 확인된 것이다. 4.결 론 이상의 대법원 판결은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않고 두권리자에게 화물을 인도한 경우에도 상법 제811조가 운송인에 대한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적용된다고 하여 소가 각하되었다. 이에따라 운송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상의 단기제소기간은 운송물자체의 손실 또는 멸실뿐만 아니라 인도와 관련한 본 사건의 경우에도 적용되었으나 그 조항의 해석과 관련하여서는 앞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8-04-20
소송사기의 불능과 불능미수
●판례요지 소송사기를 하려는 자가 사망한 자를 상대로 제소했다면 그 판결은 그 내용에 따른 효력이 생기지 아니하여 상속인에게 그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고 따라서 사기죄를 구성할 수 없다. ●평석요지 이 사건 피고인은 死者를 상대로 제소했지만 법원을 기망해 부동산을 편취하려는 전체계획을 직접적으로 개시한 것이므로 사기죄실행에 착수한 것이고 비록 확정판결에 이르러도 효력이 발생할 수는 없지만 이 제소가 질적으로 법적평온의 파괴에 이를만큼 구체적 법익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은 충분히 있어 사기죄의 불능미수로 봐야 I. 事件槪要 피고인은 1990년3월16일경 고소인 박종철로부터 서울중구신당동203의8 대지 66평방미터중 5분의 2지분을 피고인의 처 전선희 명의로 매수하고 그해 3월17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1991년10월경 피고인은 위 대지위에 건물을 신축하기위한 토지측량을 하면서 그와 이웃하여 있는 같은동 202의 1 밭 7평(이것은 문제가 된 이 사건 부동산이다)이 고소인 김허존의 조부인 亡 김흥길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되어 있으나 김흥길의 사망후 상속등기등 공부상정리가 되어 있지않고 그 후손들에 의하여 관리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고 매매계약서를 위조하여 민사소송의 방법으로 이 사건 부동산을 편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은 이어서 1992년10월23일경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에 원고 전선희, 피고 김흥길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피고인은 실제 이 사건 부동산을 매수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건 소장에서「이 사건 부동산은 서울 중구신당동200의8 대지와 공부상으로는 두 필지이지만 실제로는 한 필지로서 공소외 박종철의 부친인 박규희가 1942년1월20일경 亡 김흥길로부터 매수한 뒤 위 박규희의 사망으로 위 박종철이 상속하였으며, 피고인이 1990년3월16일경 위 박종철로부터 위 신당동200의8 대지와 함께 이 사건 부동산을 매수하였으니 위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한다」는 허위내용을 진술하였다. 피고인은 여기에 위조된 부동산매매계약서까지 제출하여 이에 속은 담당재판부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 이 사건 부동산을 편취하려 하였으나 재판과정에서 위 김흥길이 1945년1월7일에 벌써 사망한 사실이 밝혀지자 공소외 亡 김윤제가 위 김흥길을 단독상속하였음을 이유로 피고의 표시를 위 김윤제로 정정하여 소송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위 김윤제도 1969년10월8일에 이미 사망한 사실이 드러나자 피고인은 1993년2월23일 스스로 소를 취하하였다. Ⅱ. 判決要旨 피고인의 제소가 사망한 자를 상대로 한 것이라면 그 판결은 그 내용에 따른 효력이 생기지 아니하여 상속인에게 그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고 따라서 사기죄를 구성할 수 없다. Ⅲ. 評 釋1. 詐欺罪實行의 着手 널리 알려진 바대로 사기죄는 일련의 연속된 객관적 구성요건 표지에 의해 실현된다. 즉 ①행위자의 기망행위→②피기망자의 착오유발→③피해자의 재산처분행위→④피해자의 재산상의 손해→⑤행위자의 재산적 이익취득 등이 그것이다. 대법원은 사기죄 미수가 문제되는 이 사건에서 사기죄 실행의 착수시기 등을 짚어 보지 않은채 사기죄불성립으로 단정한 것은 미수범규정과 미수이론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다. 예비와 미수를 구별하는 時點이 실행의 착수시기이다. 이것은 구성요건실현의 직접적 개시를 말한다. 더 이상의 중간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성요건의 실현에 곧장 이르게 된 어떤 행태를 취한 것을 뜻한다. 실행의 착수를 중심으로 원칙적으로 불가벌인 예비와 가벌인 미수사이를 시간적으로 구별하는데 종래 客觀說과 主觀說의 대립이 있었으나 오늘날 절충설인 個別的 客觀說이 지배적이다. 이에따르면 행위자의 주관적인 범행의 전체계획에 비추어(주관적 기준), 범죄의사의 분명한 표명이라고 볼 수 있는 행위가 개개 구성요건의 보호법익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에 이르렀을 때(객관적 기준) 실행의 착수가 있다. 물론 개별범죄의 구체적인 실행의 착수시기는 원칙적으로 형법각칙상 구성요건의 실행행위에 대한 해석으로써 정해진다. 이것은 판례의 중요한 몫이기도 하다. 개별적 객관설의 구체적인 적용에는 첫째, 直接性(구성요건실현을 위한 직접적인 개시), 둘째 危殆化(공격대상을 향하여 법익을 위태화시키는 관계), 셋째 범인의 전체적 범행계획(계획된 범행의 진행과정에서 이미 행한 범인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의 기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기죄 실행의 착수시기는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연속된 일련의 구성요건실현과정 중 행위자가 실현한 제1단계 행위인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이다. 물론 기수시기는 피해자의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때이다. 따라서 실행의 착수이후 기수에 이르기 전의 모든 단계는 미수에 해당한다. 물론 행위자의 기망행위로부터 피해자의 재산처분행위까지가 편취행위의 성립요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편취행위는 ①행위자의 기망행위→②피기망자의 착오유발→③피해자의 재산처분행위라는 일련의 과정이 인과관계로 연결될 때 비로소 성립하는 까닭에 편취행위의 직접적인 개시시점도 역시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이다. 그렇다면 소송사기의 경우에도 실행의 착수시기는 행위자가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이고, 이 시기는 행위자가 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행의 착수시기를 판단하는 첫번째 기준인 직접성은 구성요건의 일부를 실현하는 것을 요하지 않으며 단지 범행의 전체계획에 비추어 구성요건의 실현을 위해 다른 중간단계의 행위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행위만 취하면 충족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 피고인은 비록 死者를 피고로 하여 법원에 제소한 것이지만, 법원을 기망하여 이 사건 부동산을 편취하려는 전체계획을 직접적으로 개신한 것이므로 사기죄실행에 착수한 것이다. 따라서 설령 판결의 효력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사정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불능미수의 성립여부의 대상일 뿐, 사기죄 불성립의 경우라고 속단할 일이 아니다. 2. 不能未遂냐 不能犯이냐 불능미수란 행위자의 故意에 의해 예견된 전체범행계획이 애당초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결과발생은 불가능하지만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미수범으로 처벌해야 할 경우를 말한다. 첫째, 결과발생의 불가능은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에 기인한 것이다. 행위수단이나 객체가 애당초 불능 또는 흠결이기 때무에 객관적으로 기수에 이를 수 없지만 행위자가 주관적으로는 자신의 행위로 구성요건적 불법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상정한 경우이다. 결과발생의 불가능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은 바로 실행의 착수시기인 실행행위의 직접적 개시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둘째, 위험성은 비록 구체적인 행위상황에서 직접 일반인의 법적 안정감을 교란시키지는 않았지만 행위자가 장래 비슷한 갈등상황에서 동일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일반인의 法的 安定感이 교란됨을 말한다. 불능미수의 위험성은 이처럼 행위의 구체적인 위험성이 아니라 개별법익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성 내지 행위자의 法敵對性을 反證시켜 주는 행위자의 위험성을 의미한다. 그 판단의 시점을 舊客觀說(절대적 불능·상대적 불능구별설)은 객관적 사후진단의 방법에 따라 재판시를 기준으로 하나, 新客觀說(구체적 위험설)은 객관적 사후예측의 방법에 따라 범행개시시를 기준으로 삼는다. 판단의 자료와 기준에 관하여서도 구객관설은 법관을 판단자로 상정하여 행위객체에 대한 추상적 위험성을 판단자료로 삼고, 신객관설은 통찰력있는 인간 및 행위자의 관점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공격받는 법익에 대한 행위의 구체적인 위험성을 판단자료로 삼는다. 추상적 위험설(법질서에 대한 위험설)은 행위자가 인식한 사실을 기초로 공격된 법익에 대한 추상적 위험성, 즉 법질서에 대한 위험이 있었는가를 일반인의 입장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한 印象說(行爲者의 危險說)은 구성요건실현을 직접개시한 행위자의 위험성, 즉 행위자가 법적대적의사실행을 통해 법익평온상태에 가한 교란을 위험성판단자료로 삼고 통찰력있는 평균인의 입장을 판단기준으로 삼을 것이라 한다. 인상설은 통찰력있는 평균인의 입장에서 잠재적이지만 구체적인 개별법익에 대한 관련성을 판단자료로 삼는 점에서 추상적 위험설보다 불능미수의 성립범위가 좁다. 반면 행위자의 法敵對性에 치중하여 행위자가 실제 인식한 사정만을 판단자료로 삼는 점에서 구체적 위험설보다 불능미수성립 범위가 넓다. 이 사건에서 행위자는 死者를 상대로 법원에 제소하여 부동산을 편취하려 한 것이므로 실행수단의 착오 내지 흠결(실제 소송기술의 미숙에 해당)의 경우이다. 비록 확정판결에 이르렀을지라도 효력이 발생할 수 없기 때문에 원시적인 불능의 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제소가 질적으로 법적 평온의 파괴에 이를 만큼 구체적인 법익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 내지 행위자의 위험성은 충분히 입증시켜 줄만한 것이므로 사기죄의 불능미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불능미수의 불법은 가벌적 불법의 최저한에 머물기 때문에 실제 불가벌적 예비와 가벌적 미수의 구별이나 불가벌적 불능범과 가벌적 불능미수의 구별은 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이 사건 범행자가 사기죄 실행의 착수에 이르렀음이 인정된 상황에서 그의 실행수단의 착오가 행위자의 위험성을 배제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3. 處分行爲(交付行爲)의 부존재 여부 대법원은 1986년10월28일 선고 84도2386 판결부터 이 사건판결에 이르기까지 소송사기에서 피기망자인 법원의 재판은 피해자의 처분행위에 갈음하는 내용과 효력이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死者에 대한 판결은 그 내용에 따르는 효력이 생길 수 없는 것이어서 착오에 의한 재물교부행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기죄성립 자체를 부인하여 왔다. 부동산도 사기죄의 객체중 재물에 해당하며 부동산소유권 이전도 교부로 보는 것이 우리나라 다수설의 입장이나 부동산사기는 결국 소유권이전등기의 경료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이때의 부동산은 재물이 아니라 사기죄의 또 다른 객체인 재산상의 이익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사기죄에서 피해자의 재산처분행위중 작위에 의한 처분행위는 재산상의 지위 또는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실상의 행위를 포함한다. 반드시 유효한 법률행위일 필요도 없고 무효인 법률행위는 물론 순전히 사실적인 행위라도 충분히 처분행위가 될 수 있다. 처분행위의 결과 재산의 감소가 일어나야 하지만 이것은 사기죄의 결과로서 일어나야 하는 재산상의 손해발생과는 다르다. 재산처분의 결과는 재산감소의 법률적·사실적 원인의 야기만 있으면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 이렇게 본다면 死者를 상대로 한 사기제소로 법원이 착오에 빠져 소유권이전등기이행을 명하는 확정판결을 내렸을 때 비록 판결자체의 효력은 없을지라도 법적·사실적 처분행위 자체는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재산감소의 법률적·사실적 원인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死者를 상대로 한 사기소송은 재산적 처분행위의 부존재로 볼 것이 아니라 사기죄의 구성요건결과인 재산상 손해의 부존재로 보는 것이 옳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사기죄의 본질은 기망에 의한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추구에 있고 상대방에게 현실적으로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함을 그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大判 1992년9월14일, 91도2994; 1995년3월24일, 95도203) 결과범인 사기죄의 구성요건적 성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Ⅳ. 結 論 이 사건 범죄사실은 사기죄의 불능미수에 해당한다. 대법원이 아예 사기죄 성립자체를 부인한 것은 중간에 소를 취하한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그렇지 않은 1986년10월28일 선고 84도2386 및 1987년12월22일 선고 87도852 판결과 동일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법원은 법률심이다. 그러나 올바른 법률의 적용은 현실적인 범죄사실에 대한 법리적인 분석없이는 불가능하다. 사기죄의 범죄성립요건에 대한 분석 그리고 미수의 각 종류와 그 요건에 대해 대법원이 적어도 기본적인 교과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검토했더라면 결론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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