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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시대의 행정법 소묘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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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새로운 국가상의 등장과 행정법학의 변화
    시대의 변천에 따라 행정과제는 점차 늘고 있으며 국가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국가의 기능변화와 더불어 국가상도 변모하고 있다. 전통적인 경찰국가를 벗어나 급부국가, 작은 국가, 예방국가, 협력적 국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근래에 독일에서는 새로운 국가상으로 보장국가(Gewährleistungsstaat)가 강조되고 있으며, 급부행정에서 보장행정으로 발전하고 있다(졸저, 현대행정의 작용형식, 법문사, 2016, 75면 이하). 행정법학은 법실증주의에 기초하여 해석학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법제정을 목적으로 한 ‘행위학’ 또는 ‘결정학’을 중시하는 새로운 행정법학(소위 신행정법학)이 부상하고 있다(졸저, 한국행정법론, 제2판, 3면). 또한 조종학(Steuerungswissenschaft)으로서의 행정법학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Schmidt-Aßmann, allgemeine Verwaltungsrecht als Ordnungsidee, 2. Aufl.,. S. 18 ff.). 신행정법학이 행정법학의 새로운 주류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법실증주의에 기초한 행정법학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임은 분명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AI)과 디지털화(Digitalisierung)가 행정법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고, 데이터보호와 정보작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보행정법(Informationsverwaltungsrecht)이 주목받고 있다(졸저, 행정법의 특수문제, 법문사, 2018, 156면). 디지털화는 시대의 대세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따라 행정법적 과제도 새로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 밖에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해 리스크 행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법 도그마틱을 확립하고 이에 기초하여 법률을 정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행정기본법과 행정절차법을 중심으로 몇 가지 문제점과 개선과제를 검토하기로 한다.


    Ⅱ. 행정기본법의 개선과제

    행정기본법은 2021년 2월 26일 본회의를 통과하여 2021년 3월 23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행정실체법에 관한 ‘일반법’의 성격을 가지는 법률이 제정된 것이다. 행정기본법은 체계화 기능, 적법성 확보기능, 권리구제기능, 행정의 효율성 확보기능 및 법령 정비의 향도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졸저, 행정기본법의 제정 의미와 주요 내용, 법제 통권 제693호(2021. 6), 49-52면). 그런 점에서 행정기본법의 이론적 완결성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행정기본법 제21조에는 재량행사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즉 "행정청은 재량이 있는 처분을 할 때에는 관련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야 하며, 그 재량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행정계획’에 관한 규정이 제외되면서 도입된 것인데, 부정확한 내용으로 ‘형량명령’에 관한 것이다. 재량권 행사는 수권(授權)의 목적에 적합해야 하는 것이 핵심적 요소이다. 재량은 형량이 아니라 포섭의 문제이다. 조건프로그램에 기초한 통상의 행정재량(법효과재량)과 목적프로그램에 기초한 계획재량은 구별된다. 대법원은 오래 전에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양자를 명확히 구별한 바 있다(대법원 2005. 3. 10. 선고 2002두5474 판결). 그런데도 후속판결에서 이러한 구별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종전의 판례를 답습하는 사례도 있다. 행정기본법의 재량행사에 관한 개념정의는 판례에도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정되어야 한다.

    행정기본법 제20조에는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자동적 처분’에 관한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즉 재량행위가 아닌 경우에만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한 처분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이 조항은 독일 연방행정절차법 제35a조를 참고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한 처분은 독일의 완전자동화 행정행위를 모델로 한 것지만, 독일 연방행정절차법과 달리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대체로 스스로 학습하는 알고리즘을 독일 행정절차법 제35a조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시대의 행정자동결정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큰 위협이 되고 있으며,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독일의 입법례와 달리 이러한 자동적 처분에는 행정절차법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행정기본법 제20조의 괄호 속에 규정된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을 포함한다'라는 규정은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졸고,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디지털화에 따른 행정자동결정의 법적 쟁점, 공법연구 제50집 제2호(2021. 12), 231면 이하).

    빅데이터를 활용한 행정작용이나 행정자동결정은 행정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지만,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 등을 중대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급된 ‘행정명령’은 그 법적 근거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포괄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법률유보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라 행정법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낙후된 행정소송법과 국가배상법의 개정도 시급한 과제이다. 행정소송법의 개정 작업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는데, 전부개정이 어려울 경우 일부개정의 방식으로도 필요한 작업을 시작하여야 한다.

    Ⅲ. 행정절차법의 개선과제

    인공지능시대의 도래와 디지털화에 따라 행정자동결정, 즉 자동화 행정행위에 대한 정비는 시급하다. 자동적 처분과 관련하여 행정절차법의 규정을 검토해서 이에 대한 예외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청문, 의견제출, 이유제시 및 통지 등의 규정을 자동적 처분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행정기본법과 행정절차법의 이원적 규율 또는 중복 규율은 난제이다. 예컨대 행정법의 일반원칙, 신고 등이 그러하다.

    2022년 1월 11일 개정된 행정절차법에는 확약(제40조의2), 위반사실 등의 공표절차(제40조의3), 행정계획(제40조의4)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이러한 규정들은 행정기본법에 도입될 내용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행정절차법에 규정된 것이다. 행정절차법 제40조의4에 ‘행정계획’에 관한 규정은 어렵게 도입되었지만, 이 조항만으로 공항·고속전철·고속도로·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대규모 공공사업을 둘러싼 공공갈등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연방행정절차법 제72조 이하에 규정된 ‘계획확정절차’에 관한 모델을 참고하여, 이른바 ‘행정계획의 확정절차’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고 개별 법령을 단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1996년에 제정·공포된 행정절차법이 진취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행정절차법에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전자적 행정행위 또는 자동화 행정행위 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절차적 규정을 대폭 정비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지향해야 할 민주적 행정법의 핵심은 ‘행정절차’의 개혁에 있다. 행정절차법에는 아직 ‘행정입법’에 관한 절차를 충분히 두고 있지 않다. 행정기본법 제4장에는 ‘행정의 입법활동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시민의 참여절차나 의견수렴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시행령 정치'에 관한 문제를 행정절차의 단계에서 제어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졸저, 헌법재판과 행정소송, 254면 이하). 헌법과 행정소송법에는 시행령·시행규칙 등에 대한 사법적 통제장치가 불충분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상적(또는 주위적) 규범통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물론 행정절차법 제41조 이하에는 ‘행정상 입법예고’에 관한 규정이 도입되어 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은 채 시행령이 제정·시행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Ⅳ. 맺음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시민들은 법치국가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빅 데이터를 활용한 행정작용이나 행정자동결정은 행정의 효율성에 기여하지만,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 등을 중대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급된 ‘행정명령’은 그 법적 근거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포괄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법률유보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일반처분뿐만 아니라 방역조치에 불과한 단순한 사실행위나 권고 등의 성격을 가지는 내용도 있다. 팬데믹 기간에 사용된 코로나앱(Corona-app)은 디지털 방식으로 접촉자를 추적할 수 있고, QR 코드를 통해 입력된 개인정보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 2022년 1월 11일 주민등록법의 개정으로 전자적 방식에 의한 주민등록증을 발급될 수 있게 되었다. 즉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통해서도 신분확인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행정의 서막을 상징하는 것이다. 디지털 행정으로 인한 권리침해에 대한 공법상 권리구제를 현재의 행정법 도그마틱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예견하기 어렵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라 행정법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낙후된 행정소송법과 국가배상법의 개정도 시급한 과제이다. 행정소송법의 개정 작업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는데, 전부개정이 어려울 경우 일부개정의 방식으로도 필요한 작업을 시작하여야 한다.

    현실을 되돌아보면, 학문으로서의 행정법의 미래는 밝지 않고 불투명하다. 수험법학으로 전락하고 있는 로스쿨 시대에 총론 과목만을 이수하기에도 시간상으로 벅찬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법과대학을 졸업하거나 복수전공 등을 통해 동일과목이나 유사과목에서 취득한 학점을 로스쿨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로스쿨 제도가 출범한 이후에 그 정원과 인가대학에는 변화가 없다. 경쟁이 없고 현실 안주적인 로스쿨 제도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로스쿨 제도를 비롯한 법학교육 전반의 개혁을 다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미래는 과거와 단절될 수 없다. 지나온 여정을 반추하면서 열린 미래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 시대의 변화를 담을 수 있는 참신하고 역동적인 행정법학을 구축해서 디지털 시대를 대비하는 미래 행정법학의 초석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