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 말이다. 이 시기에 언론에서는 10대 뉴스를 뽑고, 방송에서는 한 해 동안 최고의 활약을 한 연기자, 가수 등을 선정한다. 나 역시 2022년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올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을 대상으로 부문별 올해의 책 시상식을 해보려고 한다. 먼저, ‘인문·사회’ 부문인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과 최철호의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의 공동 수상이다.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 헨리 뢰디거 등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조벽의 《명강의 노하우 & 노와이》도 손색이 없었지만, 나를 아름다운 한양도성 순성길로 이끌어 주고 서울의 숨겨진 매력을 새로이 알려준 이 두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다음으로 ‘문학’ 부문의 수상작을 발표한다. 무척 치열한 접전이었는데, 조광희의 《인간의 법정》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과 나태주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수상하였다. 《인간의 법정》은 100년 후 미래에 인공지능이 재판하는 법정 모습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멋진 작품으로 무척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이번에는 ‘역사’ 부문이다.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박형남의 《재판으로 보는 세계사》도 훌륭하였지만, 김충식의 《남산의 부장들》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1960~70년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압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한편의 역사드라마를 보는 듯해서 분량이 상당히 두꺼움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금세 읽었다. 최근에 나온 《5공 남산의 부장들》은 그 후속작으로 1980년대 안기부를 다루고 있다.마지막으로 ‘법률’ 부문이다. 박형남의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정인진의 《이상한 나라의 재판에서》도 좋았지만, 나로서는 김두식의 《법률가들》이 가장 인상적이고 여운이 오래 남았다. 이 책은 해방 직후 대한민국 최초의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들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부역자 재판을 담당하였던 유병진 판사의 고민과 용기 있는 실천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책 속에서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나오는데 솔직히 대부분 전에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일례로 1940년대 후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재판이 있었는데, 조선정판사는 판사 이름이 아니라 인쇄소 이름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사법부의 역사에 그동안 별로 관심이 없었고 무지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 책을 계기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계속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법원도서관이 대한민국법원 구술 총서 ‘법관의 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는데, 이는 무척 반갑고 다행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보지 못한 책을 읽을 때는 어진 선비를 만나듯 하고, 이미 본 책을 읽을 때는 오랜 친구를 만나듯 한다.”는 옛 선현의 말씀처럼 2023년에도 어진 선비와 같은 새로운 책들로부터 가르침과 지혜를 얻기를 기대해 본다. 오세용 교수(사법연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