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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할 용기

    김유나 변호사(서울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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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업무는 구글 캘린더의 일정을 확인하며 시작된다. 그다음으로는 이메일로 도착한 질의들을 확인하고 일정을 안내하는 회신을 한 뒤 새로 생긴 업무들을 캘린더의 빈 곳에 채워 넣는다. 그 후 본격적으로 오늘 배정된 업무를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계약 검토이거나 위법여부에 관한 질의이거나 서면 작성, 강의 준비 또는 어느 기관의 내년 사업에 관한 회의 준비일 때도 있다. 콘텐츠 산업이라는 지극히 특정한 분야의 자문을 하고 있음에도 업무는 다양하다.

    어느 날은 업무나 미팅으로 꽉 채우기도 하지만 내 맘대로 정한 휴일에는 하루 종일을 비워두기도 한다. 시간을 스스로 운용한다는 것은 개업변호사 생활의 매력이자 일상적인 수련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연말이 되니 올 한해 고객사들과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복기해 보게 된다. 올해 초에는 미디어커머스 기업의 앱 서비스 런칭을 함께 준비했었다. 서비스를 기획하는 과정에서부터 관련 법령이 요구하는 여러 항목들을 검토하고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이다. 법률적 진단을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실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를 주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에 관한 자문을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경청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사업 참여자들에 대한 정보와 그들 간의 이해관계, 전반적인 계약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무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는 귀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과 닿아있는 의견을 줄 수 있는 ‘도움 되는’ 자문사가 되기 위해서는 실무자와의 만남에서 확실히 귀를 열 줄 알아야 한다. 당연한 덕목 같아 보이지만, 법률전문가라는 책임감 혹은 체면 비슷한 것 때문에 고객에게 모르는 것을 제대로 묻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경청 이전에 중요한 것은 ‘나는 법률전문가이지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나보다 나은 위치에 있으니 뭐든지 알려달라’는 솔직한 소통의 태도이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타트업 전문변호사로 등록한 후 어느 테크 기업에서 회의 요청이 왔다. 사업과 관련하여 기관과 협업을 하고자 하는데 계약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그 산업 분야의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모으고자 한 것이다.

    회의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오갔기에 서비스를 여러 가지 관점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문가로서 소통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면교사도 얻게 되었다.

    참석자들 중에는 그 산업에 십수 년 몸담았으므로 회의 내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열거하는 강연자와 같은 방식으로 대화하는 전문가가 있었다.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이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경청과 이해가 있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던 회의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같은 세상에는, 어쩌면 경력이나 연륜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새로운 변화에 머리와 마음을 확실히 열어젖힐 수 있는 태도라는 생각을 한다. 기존의 방식과 통념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히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한 소통의 태도는 용기로부터 온다. 우리가 보고 배운 것은 이미 과거의 것이며 어쩌면 계속해서 모르는 것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이다. 이날 사무실로 돌아와 적은 일기장에는 아래와 같은 다짐이 적혀있다.

    무언가를 안다고 하는 말의 무게감, 그 말을 하기 전과 후 스스로에게 뜸을 둘 것.
    무언가를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과의 사이에도 뜸을 둘 것.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언제나 적극적일 것.



    김유나 변호사 (서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