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민법사례 시험은 중요판례에 기초하여 출제한 문제가 많아 무난한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예년에 비해 문제의 양이 많지 않았고 로스쿨 정규수업에서 다루었던 중요판례를 기초로 문제를 각색하였다는 점, 부동산등기법,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 민법에 대한 조문을 언급하도록 유도하여 판례만 읽고 법조문 읽기를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점,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주관하는 변호사시험 모의시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인지시켰던 쟁점 및 중요판례(<제1문의 6> 등)를 출제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향후 학생들이 어떻게 민법을 공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시사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민사법 사례형 <제2문의 1> 내지 <제2문의 3>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자주 출제되었던 명의신탁, 물권의 변동시점(등기의 효력발생시점), 중간생략등기, 상계적상 등을 묻고 있다. 지엽적인 판례를 알고 있는지를 묻기 보다는 로스쿨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사례형 문제분석 및 해설]
1. <제2문의 1>의 1번 문항
X토지와 Y토지에 대한 등기가 마쳐진 경우에 그 효력발생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해 부동산등기법 제6조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더 나아가 Y토지에 대해서는 제3자간 명의신탁(중간생략형 명의신탁)과 관련하여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 제4조에 의한 명의신탁의 효력(제1항)과 물권변동의 효력(제2항 본문)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먼저 X토지의 소유권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부동산등기법 제6조 제2항에 의하면 등기관이 등기를 마친 때에 그 등기는 접수한 때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하고 있으며, 동조 제1항은 등기신청정보가 전산정보처리조직에 저장된 때에 접수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X토지의 등기의 효력발생시점은 2022.3.31.이다. 이에 2022.4.1. X토지의 소유권자는 甲이다.
다음으로 Y토지의 소유권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물권변동의 시점은 X토지와 마찬가지로 2022.3.31.이지만, 그 효력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을 검토해야 한다. 사안의 경우에 매수인이 직접 계약 당사자가 되어 매도인과 매매계약을 맺고, 다만 제3자와 명의신탁계약을 맺어 매도인으로부터 명의수탁자에게 직접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는 경우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 해당한다. 한편 부동산실명법 제8조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1항, 제2항에 따라 위 명의신탁약정 및 물권변동은 모두 무효이다. 따라서 매도인 A가 여전히 소유권자에 해당한다.
요컨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甲과 乙사이의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약정 및 A로부터 乙에게로 마쳐진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므로 2022.4.1. Y토지의 소유권자는 매도인 A이다.
2. <제2문의 1> 2번 문항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의 ‘제3자’에 대한 판단 및 실체관계에 부합한 등기의 효력을 묻고 있다.
먼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의 제3자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자.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은 명의신탁약정의 무효 및 그에 따른 물권변동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례(대판2008다36022)는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의 제3자는 ‘명의신탁 약정의 당사자 및 포괄승계인 이외의 자로서 명의수탁자가 물권자임을 기초로 그와의 사이에 직접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본다. 사안의 경우에 丙은 명의수탁자인 乙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았으나 이는 甲에 대한 채권의 변제에 갈음하기로 하는 약정에 따라 단지 Y토지의 명의만을 乙로부터 이전받았을 뿐이므로, 명의수탁자인 乙이 물권자임을 기초로 직접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경우가 아니므로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의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편 판례(대판 2008다45187, 대판 2005다34667)는 명의신탁자와 부동산에 관한 물권계약을 맺고 단지 등기명의만을 명의수탁자로부터 경료받은 것과 같은 외관을 갖춘 자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의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등기가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로서 유효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사안의 경우에 A가 무효인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 따라 Y토지의 소유권자로서 위 소를 제기하였다 하더라도, 매수인 甲과 매도인 A사이의 매매계약은 여전히 유효하고 매도인 甲이 A에 대하여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할 수 있는 이상 A가 승소하더라도 丙은 甲으로부터 Y토지의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 있으므로, 丙의 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에 해당한다.
요컨대 丙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의 제3자에 해당하지 않으나 자신의 등기가 실체관계에 부합하여 유효임을 주장할 수 있다.
3. <제2문의 2>의 문항
수탁보증인의 사전구상권과 사후구상권에 기한 상계의 항변이 인정되는지를 평가하고 있다. 민법 제498조의 의미, 항변권이 붙은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는 상계의 인정여부, 사전구상권과 사후구상권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먼저 사후구상권에 의한 상계의 항변이 인정되는지를 살펴보자. 민법 제498조에 따라 압류 등으로 지급이 금지된 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가 예외적으로 가능하기 위하여는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여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그런데 사안의 경우 乙의 사후구상권은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인 2022.7.20.에 성립했을 뿐만 아니라 변제기 또한 피압류채권(수동채권)인 부당이득반환채권의 변제기(갑과 을 사이의 매매계약이 적법하게 취소된 2022.5.31.)보다 뒤에 도달하므로 상계가 허용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사전구상권에 의한 상계항변을 검토해 보자. 판례(대판 80다2699, 91다37553)는 수탁보증인의 사후구상권과 사전구상권은 발생원인과 법적 성질을 달리하는 별개의 독립된 권리에 해당하고 사후구상권이 발생한 이후에도 사전구상권은 병존한다고 본다. 판례(대판 2017다274703)는 양자의 소멸과 관련하여 목적달성으로 일방이 소멸하면 타방도 소멸하는 관계에 있을 뿐이라고 본다. 사안의 경우에 乙은 甲의 수탁보증인으로서 주채무의 이행기가 도달한 2022.4.30. 민법 제442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사전구상권을 취득하였다. 한편 그 이후인 2022.7.20. 乙이 A에게 甲의 주채무 전액을 변제하여 민법 제411조에 따라 사후구상권을 취득하였다 하더라도 乙의 사전구상권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전구상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면책항변권의 포기 등), 민법 제443조에 따른 주채무자의 면책의 항변권이 붙어 있기 때문에, 사전구상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가 허용되기 위하여는 민법 제443조에 따른 주채무자의 면책청구권을 소멸시킨 이후에야 가능하다. 이에 대해 판례(대판 2017다274703)는 제3채무자인 수탁보증인이 압류채무자에 대한 사전구상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①수탁보증인이 주채무를 변제하여 면책시킨 일자가 압류의 효력발생일보다 먼저 도래하거나, ②위 면책일자가 피압류채권의 변제기보다 앞서야 한다고 본다. 사안에서 수탁보증인 乙이 甲의 A에 대한 2022.4.1.자 주채무를 전액 변제함으로써 甲을 면책시킨 일자(2022.7.20.)가 ①압류의 효력발생일인 2022.6.20.과 ②피압류채권인 부당이득반환채권의 이행기인 2022.5.31.보다 이후이므로 사전구상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항변 또한 인정되지 않는다.
요컨대 乙의 사전구상권 및 사후구상권에 기한 항변은 인정되지 않는다.
4. <제2문의 3>의 1번 문항
중간생략등기의 합의에 따른 최종매수인의 최초매도인에 대한 등기청구에 대해 최초매도인이 중간매수인이 매매대금이 지급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최종매수인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먼저 최종매수인 丁이 최초매도인 丙에게 등기의 이전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판례(대판 91다5761)는 3자 사이에 순차로 매매계약이 체결되고 당사자 전원의 합의가 있으면 최종매수인이 최초매도인에 대하여 중간생략등기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최초매도인이 중간매수인이 매매대금이 지급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최종매수인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판례(2003다66431)는 중간생략등기의 합의 이후에 최초매도인과 중간매수인이 대금인상의 약정을 한 경우에도 최초 매도인은 인상된 매매대금이 지급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최종 매수인 명의로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본다.
사안의 경우에 제1매매계약과 제2매매계약 체결 이후에 甲, 丙, 丁 사이에 중간생략등기에 관한 3자간 합의가 존재하므로 丁은 丙에게 등기의 이전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丙은 丁에게 X토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줄 의무의 이행과 동시에 인상된 매매대금(2억 3,000만 원)의 지급을 구하는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요컨대 丁은 X토지의 소유권이전등기를 직접 청구할 수 있으나, 丙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이 인정되므로 법원은 상환이행판결(일부인용)을 하여야 한다.
5. <제2문의 3>의 2번 문항
대리권을 부여하였는지(수권행위)여부와 본인이 무권대리 상대방에 대해 표현대리책임(민법 제125조 및 제126조)을 부담하는지를 묻고 있다.
먼저 乙에게 X토지에 대한 처분에 관한 대리권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한다. 선행조건으로 X토지에 대한 처분권한을 甲이 가지는지를 확인한다. 乙이 甲의 인감도장을 사용하여 甲의 대리인으로서 체결한 제1매매계약은 무권대리행위로서 무효이나, 甲이 2022.7. 중순경 乙로부터 X토지의 소유권취득 경위를 듣고 난 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바, 이는 乙의 무권대리행위에 대한 묵시적 추인에 해당하고 추인의 효력은 계약체결시로 소급하므로(민법 제133조) X토지의 처분권한은 甲이 가진다. 한편 甲이 X토지의 소유권취득 경위에 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 X토지의 처분에 관한 대리권을 묵시적으로 수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되나, 제1매매계약에 대한 무권대리행위의 추인과 제2매매계약에 대한 대리권의 수여는 별개의 법률행위이므로 乙에게 X토지의 처분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제2매매계약은 무권대리에 의해 무효가 된다.
다음으로 甲이 상대방 丁에게 표현대리책임(민법 제125조 및 제126조)을 부담하는지를 판단한다. 민법 제125조의 표현대리가 문제되나 사안의 경우에는 甲이 제3자에게 乙에게 X토지의 처분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바가 없으므로 인정되지 않는다.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기본대리권이 존재할 것, ②권한을 넘은 표현대리행위가 존재할 것, ③상대방에게 정당한 이유가 존재할 것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판례(94다45098)는 일상가사대리권을 기본대리권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를 넘은 행위에 대해서도 그 월권행위의 신뢰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한 민법 제126조의 적용을 인정한다. 판례(대판 80다3204 등)는 부부는 인장, 권리문서, 인감증명서 등의 사용에 의하여 권리 외관을 용이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인장 등을 소지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부동산처분행위에 관한 대리권을 부여하였다고 믿은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사안의 경우에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요컨대 丁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서종희 교수(연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