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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권협정과 국제적 강행규범(Jus Cogens)

    신우정 부장판사 (청주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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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序)

    대법원은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오랜 시간 끌어온 강제징용 재판의 종지부를 찍으면서“강제징용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쟁점 청구권’이라 한다)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소멸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은 위와 같은 대법원의 입장을 존중하는 전제에서(다만, 필자의 개인적 입장은 ‘쟁점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나, 이 글에서는 그 논거를 다루지 않는다), 그와 정반대의 전제, 즉 쟁점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더라도, 국제적 강행규범(Jus Cogens)의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쟁점 청구권은 여전히 소멸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담았다[이하 필자의 국제법 석사 논문인 ‘1965년 청구권 협정과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적 청구권(2018. 8.)’을 참고하였다].


    2. 쟁점 청구권의 성격 - 국제적 강행규범과의 관련성 검토
    가. 들어가면서

    국제적 강행규범이란, 개별 국가의 재량의 범위를 넘어서는 국제사회의 근본적인 공통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조약이나 관습국제법보다 우월한 효력이 인정되고, 개별국가 모두를 구속하며, 개별국의 의사만으로 이탈할 수 없는 국제법상 최상위(the highest status)의 규범을 의미한다.

    쟁점 청구권은 대법원 판결에서도 명시하였듯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바, 이러한 대법원의 쟁점 청구권에 관한 정의(定意)는 국제적 강행규범과 개념영역을 공유하고, 특히 국제적 강행규범의 예로 국제재판소들이나 학설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노예제 및 노예제 유사관행 금지(이하 ‘노예제 금지’라고만 한다)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에서는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으로서의 노예제 금지에 관하여 간단히 일반론적 접근을 한 후, 쟁점 청구권이 그 위반에 따른 배상청구권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나. 국제적 강행규범으로서의 노예제 금지

    1815년 개최된 비엔나회의에서의 '노예무역의 일반적 폐지에 관한 선언' 이래 노예제 금지를 국제적인 보편적 규범으로 정립시키는 노력이 계속되었고, 이는 국제연맹의 1926년 노예금지협약을 비롯하여 세계인권선언 등의 여러 국제인권법규들에도 반영되어 있는바, 예를 들어 세계인권선언 제4조는“어느 누구도 노예 또는 예속상태에 놓여지지 아니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 및 노예무역은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위와 같은 노예제의 금지가 국제적 강행규범에 해당한다는 데 현재 국제법 학계에서 이견(異見)은 없고, 이는 국제적 강행규범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견되고 공인된 규범 중의 하나에 속하며, 그 규범성의 확립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봄이 일반적 설명이다.

    다. 쟁점 청구권의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에 따른 배상청구권적 성질

    대법원 판결의 판시에서도 등장하는 바와 같이, ① 해당 피해자들은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장시간 매우 고된 노역에 종사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사실상 아예 지급받지 못하였으며, 일부 피해자들의 경우 형식적으로 극히 소액의 일부금액을 계좌로 지급받았으나 그나마 통장, 도장 등을 빼앗겨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하였던 점, ② 노역기간 내내 일본 헌병, 경찰과 회사 자체의 감시가 삼엄하였고, 일부 피해자들은 도망 시도가 발각되어 심한 구타와 식사 미제공 등의 비인간적 탄압을 받았던 점, ③ 노역기간 내내 삼엄한 감시 속에 휴가나 개인행동 등이 극도로 제한되었던 점 등을 종합할 때, 해당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는 모두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터 잡은 강제징용에 기인한 것이 분명하고, 나아가 위와 같은 강제징용 자체가 가지고 있는 반인권적·노예적 성질, 침해의 정도나 그 기간 등을 종합할 때, 모두 노예제 금지와 관련한 국제적 강행규범의 중대한 위반을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3. 시제법(時際法)적 관점에서의 검토

    시제법이란 '법률적 사실은 그 사실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거나 그 해결을 위한 절차가 진행될 시점의 법이 아니라 그 사실이 발생할 당시에 성립하고 있던 법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쟁점 청구권과 관련하여서는, 정리한 바와 같이 노예제 금지라는 국제적 강행규범이 강제징용 당시인 1940년대를 기준으로 볼 때 이미 그 규범성을 확보하고 있었던 이상, 시제법상 문제 또한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4. 청구권협정의 무효와 쟁점 청구권의 불소멸(不消滅)

    첫머리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글의 전제는 대법원의 입장과 달리 ‘쟁점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다’라는 것인바, 위와 같은 전제에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의 효과를 접목시키면, 청구권협정의 효력 문제가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즉, 비록 쟁점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고, 한일 양국이 이를 소멸시키는 합의를 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1965년 당시 이미 존재하던 국제적 강행규범 - 적어도 노예제 금지 - 의 위반에 따른 청구권까지 소멸시키는 합의를 한 것으로서, 결국 ‘국제적 강행규범의 위반을 용인하는 방법에 의한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는 ‘해당 조약의 내용이 강행규범에 위반하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청구권협정이 그 내용상 쟁점 청구권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합의만을 규정한 것은 아니고, 그 외에도 양국, 양국 국민들간의 여러 청구권이나 재산, 권리 등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합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청구권협정의 효력에 대해서는 ‘조약 내용 중 조약 체결 당시 이미 존재하던 국제적 강행규범에 위반하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는 경우에는 전부 포함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조약 전체가 무효(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44조 제5항, 제53조)’라는 법리에 따라 청구권협정 전체가 조약 체결 당시부터 무효가 된다. 백보 양보하여 설령 청구권협정 당시에는 노예제 금지라는 국제적 강행규범이 형성된 상태가 아니었다고 보더라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64조 - 조약 체결 당시에는 없었던 국제적 강행규범이 체결 후 형성된 경우에는, 그 조약 중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에 해당하는 부분만 장래를 향하여 무효 - 에서 알 수 있듯이, 청구권협정 중 쟁점 청구권에 관한 부분만큼은 후발적 무효에 해당한다.

    위와 같이 청구권협정이 전부 무효 또는 적어도 쟁점 청구권에 관하여 무효라면, 그 동전의 양면과 같이 쟁점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의문 없이 도달하게 된다. 한편 이 때 일본 측 입장에서 주장할 수 있는 반론으로는 ‘금반언 원칙’이 문제될 수 있으나, 앞서 정리한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의 최상위규범성에 비추어 그와 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금반언 원칙이 법의 일반원칙 중 하나로서 그 국제법적 규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국제적 강행규범과 비교할 때 열위적(劣位的)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5. 결(結)

    필자는 청구권협정이 전부 무효이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쟁점 청구권 부분만큼은 무효라는 것으로서, 급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쟁점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하여 ‘설령 너희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너희가 그렇게 강조하는 국제법의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청구권협정은 전부 무효 또는 일부 무효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게 하는 떳떳한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설령 이 사건이 우리나라의 동의를 거쳐 ICJ에 회부되더라도, 우리는 국제적 강행규범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 대법원 판결의 결론적 정당성을 국제법으로도 웅변할 수 있다.

    나아가 청구권협정은 국제법상 조약으로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부여되어(헌법 제6조 제1항) 위헌심판의 대상인바, 청구권협정의 구조가 이 글에서 전제하는 바와 같이 ‘국가가 개인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개인적 청구권을 포기시킨 것’으로 본다면, 그 자체로 우리 헌법상 재산권의 본질적 침해 금지 위반 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헌법적으로도 위헌적인 측면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기에, 청구권협정이 무효라는 필자의 견해가 국내법적 해석상으로도 단지 생뚱맞은 궤변 정도에 불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제법으로나 헌법으로나 청구권협정이 위헌·무효라고 해석된다면, 과감히 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법치국가 시대에서의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신우정 부장판사 (청주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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