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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정당방위에 대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법문화와 해석정책

    하민경 교수(가톨릭대 법학과)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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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서: 전통적 법문화와 해석정책

    성폭력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방어하였으나 해당 남성의 혀가 절단된 데 대해 1965년 법원으로부터 중상해죄를 인정받았던 여성이 정당방위 인정을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한 것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이 판결은 우리의 전통적 법문화에 대한 법원의 통찰 방식이 정당방위 법해석에 투영된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정당방위를 엄격하게 인정하는 판례의 입장에 영향을 미친 전통적 법문화의 특징으로 '비개별성'과 '중용주의'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 비개별성(impersonality)은 객관적 가치보다 인간관계 내 사회적 신분을 중시하는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집단주의적 법문화의 특징이다. 또한 중용주의적 사고를 장려하는 법문화는 일방의 정당방위를 인정하기보다는 분쟁 당사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는 데 기여하였다. 상세한 논증은 '정당방위에 대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법문화와 해석정책',이화젠더법학 제12권 제2호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Ⅱ.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정당방위권 관련 해석정책
    1. 여성주의정책과 판례의 변화

    우리의 법문화가 변화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정당방위법을 해석하는 법원의 태도가 재심청구대상판결과 같은 입장에 머물러 있지 않은 데는 여성주의정책의 영향이 있었다. 대법원은 1989년 성범죄 피해자의 특성을 고려함으로써 유사한 사안에서 여성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였고 2015년에는 강제키스를 당한 남성의 혀절단행위에 대해 남녀의 차이에 집중하여 정당방위 성립을 부정하였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비대결상황에서 남편을 살해한 사안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매맞는여성증후군을 책임 단계에서 검토하고 양형에서 관련 사실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하는 판례의 변화도 있었다. 


    2. 폭력방지정책의 입법화와 모순
    한편 입법적으로 정당방위의 성립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은 폭력방지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62년 폭력행위처벌법이 제정되면서 형법상 정당방위 요건을 완화한 형태의 수정된 정당방위권이 등장하였다. 2017년 발의된 가정폭력특례법 개정 법안에서 예방적 정당방위와 상당성 심사의 면제를 주장하는 내용은 폭력행위처벌법을 모델로 하였다. 그런데 폭력방지정책은 싸움의 경우 원칙적으로 정당방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법원의 입장을 공고히 하는 데도 기여함으로써 가정폭력에 저항한 사안 역시 싸움의 경우와 같이 양 당사자 모두 잘못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Ⅲ. 미국에서 여성주의정책과 정당방위 요건의 재해석

    미국에서 정당방위(self-defense)는 '위법한 신체 침해의 위험이 급박한 상황이라고 합리적으로 믿은 사람이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로 믿고 유형력을 행사한 경우'에 인정된다.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한 상황적 요건으로 위법한 침해가 신체적 공격으로 한정되고 이로 인해 방위행위에 유형력의 행사가 전제된다는 점에서 우리 법과 주요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적극적 정당방위 인정 문화권에 속하였는데 여성주의정책은 정당방위의 모든 성립요건을 재해석하는 결과를 가져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더욱 확장된 정당방위권이 인정되기에 이른다.


    1. 필요성 심사: 급박성 요건의 주관화와 후퇴의무 배제의 확장
    필요성 심사는 방위행위에 사용되는 유형력이 필요한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요청으로 '급박한 위협'은 이를 구성하는 필수적 개념요소로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가정폭력의 피해여성은 반복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방어하는 상황이 언제나 급박한 공격을 당하는 경우는 아니었기에 급박성 요건을 수정할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모범형법전(Model Penal Code)은 방위행위자가 당시 상황에서 유형력의 행사가 즉시 필요하다고 믿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공격자가 행사한 유형력을 기준으로 위협의 급박성을 판단하지 않고 방위행위자의 입장에서 방어적 유형력을 당장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정도로 위협이 긴박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커먼로에 따른 객관적 급박성 요건을 수정하였다. 

     

    미국에서는 방위행위에 치명적 유형력이 행사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용이성 때문에 공격행위자의 생명을 침해하지 않고 안전하게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방위행위자에게 후퇴의무(duty to retreat)를 지우는 것이 원칙이다. 단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에 따라 자신의 주거 내에서는 후퇴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데 주거 내 후퇴의무가 배제되는 논거를 형식적 거주지의 보호에 두지 않고 누구든 최후의 안식처를 떠나도록 강제 받아서는 안 된다는 실질적 논거에 입각함으로써 공동거주인이 공격자인 경우에도 캐슬 독트린의 적용이 가능해졌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 외부침입자와 내부공격자의 차이는 없고 오히려 내부공격자로부터의 침해 위험이 더 높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나아가 여성들이 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머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공간이라면 주거 밖의 영역에서도 후퇴의무는 배제된다는 '신(新) 캐슬 독트린(Stand Your Ground Law)'도 받아들여지면서 그 적용 범주가 확장되었다. 

     
    2. 합리적 믿음 심사: 합리성 기준의 개별화
    방위행위자는 공격자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리적으로 믿었어야 한다. 합리적(reasonable) 믿음 기준은 사회의 평균적 구성원이라면 행위자와 같은 상황에서 누구나 어떠한 방향으로 행동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객관적 기준으로 고안된 법리이다. 그러나 정당방위의 전통적 역사와 이론이 남성을 기준으로 발전해왔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합리적인 매맞는 여성을 기준으로 개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개인의 인지능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피고인의 신체적 특징이나 개인적 경험을 모두 합리적 인간을 구성하는 표지로 보는 근래의 변화된 기준에 따르더라도 정신적 특징의 경우는 제외되었는데 매맞는여성증후군의 고려는 합리성 기준의 개별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Ⅳ. 결: 정당방위법의 규율프로그램에 부합하는 해석

    여성주의정책의 영향으로 정당방위의 과도한 인정에 대한 생명 경시 경향 등의 비판적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의 경우는 여전히 과소한 인정이 문제된다. 우리 정당방위법이 그 규율기획대로 작동하도록 돕기 위한 해석정책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할까? 


    1. 본질적 정당방위 요건과 누적적 폭력으로 인한 침해의 현재성
    정당방위 성립을 위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라는 상황적 요건은 위법한 법익침해가 시간적으로 급박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사적복수를 금지하는 근대법상 권리로 인정되는 과정에서 정립된 정당방위권의 본래적 의미를 구성한다. 때문에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예방적 정당방위 개념은 정당방위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 없다. 비대결상황에서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반격행위는 누적적 폭력으로 인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행복을 추구할 자유를 침해받은 것이기 때문에 위법상태의 현재성이 인정된 경우로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신체에 대한 공격으로 정당방위상황을 제한하기 때문에 현재성을 주관화하는 이론들이 발전한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 위법한 침해는 신체에 대한 공격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싸움 사안에서 공격과 방어의 분별을 통한 정당방위의 원칙적 인정
    싸움 사안은 신체적 공격을 전제하는 미국의 정당방위상황과 유사하다. 미국에서는 기존의 정당화사유와 면책사유의 구별을 합리성 심사로 대체하면서 양 측 모두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정당방위상황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전제하고 결과적으로 싸움으로 발전한 경우에도 최초의 공격자를 분별한다. 매맞는 여성의 경우 해당 여성과 남성은 힘의 균형이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최초의 공격자가 누구였는지 그 사실관계를 확정하여 부당한 공격에 대항하여 방어한 자라면 유형력을 먼저 사용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방위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


    3. 중립적 기준으로서 상당성 심사와 구체적 판단 표지의 검토
    우리 형법상 '상당한 이유'는 정당방위를 제한하는 법리가 아니라 구체적 사안에서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 하에 중립적으로 기능하도록 -과소하게 인정되거나 과도하게 인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법된 것이었다. 또한 정당방위의 근본사상은 자기보호원리에서 찾아야 하므로 국가가 시민들을 상대로 권한을 행사할 때 한계를 지우는 비례성심사를 방위행위자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 법원이 상당성 심사 기준으로 제시하는 '침해행위에 의해 침해되는 법익'과 '방위행위에 의해 침해될 법익' 기준은 권리남용이론을 근거로 극단적 법익불균형의 경우 소극적으로 배제하는 심사로 공격행위에 대한 검토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침해의 방법'과 '침해행위의 완급' 기준은 공격행위자와 방어행위자의 연령, 성별, 건강상태, 긴밀한 관계의 종류 및 정도 등의 내적·개인적 표지와 범행시간과 장소, 공격 및 방어 부위와 반복성, 보조도구의 사용방법 등의 외적·상황적 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대체해야 한다.

     

     

    하민경 교수(가톨릭대 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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