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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행정법상 신뢰보호 원칙의 신뢰도제고에 관한 小考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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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Ⅰ. 문제의 제기

    신뢰보호의 원칙은 이미 공인화된 행정법의 일반원칙이다. 그리고 행정절차법은 동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제4조 제2항). 그런데 동규정은 실은 국세기본법 제18조 제3항상의 소급과세의 금지를 일반 행정에 맞춰 수정한 것이어서, 그 자체가 신뢰보호의 원칙의 활발한 전개를 가로 막는 듯하다. 한편 동일한 내용을 판례가 조세행정에선 '신의성실의 원칙'의 이름으로(대법원 2008.6.12. 선고 2008두1115 판결 등), 일반 행정에선 '신뢰보호의 원칙'의 이름으로(대법원 1998.11.13. 선고 98두7343판결 등) 기술하고 있는데, 이들 원칙간의 바른 관계설정이 전혀 강구되고 있지 않다. 나아가 신뢰근거와 관련하여 판례가 공식화한 '공적 견해표명'과 관련하여 별반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이하에선 동 원칙에 관한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그것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Ⅱ. 신뢰보호의 원칙의 근거 문제

    1. 헌법적 자리매김의 강조

    대부분의 문헌이 행하는, 이론적 근거와 실정법적 근거의 구별 그 자체가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이론적 근거의 경우 동 원칙에 관한 실정법적 근거를 정립하거나 그것의 설득력을 제고하는 데 주로 동원되고, 동 원칙의 실제 적용의 차원에선 매우 제한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의 경우 동 원칙의 헌법적 자리매김이 강조되어, 그것을 직접 반영한 개별법(특히 행정절차법상의 취소·철회규정)을 비롯한 입법작용은 물론 모든 국가작용에 대해서 동 원칙을 적극적으로 투영시키고 있다. 그리고 동 원칙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되는 신의측설의 경우, 비록 그것이 이른바 독일의 미망인판결에서 나타난 것처럼 동 원칙의 모태이긴 해도 그것이 본래 민사법에서 유래한 것이어서 공법의 영역에 적용하는 데는 나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이미 독일의 경우에도 연방행정법원은 1960년부터 신의측설을 버렸고, 연방헌법재판소 역시 1961년부터 법적 안정성을 애용하여 왔다).

    2.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변화된 입장

    대부분의 행정법문헌은 법치국가원리 및 그것의 파생인 법적 안정성의 원칙에서 근거를 찾으며, 동시에 그것이 독일에서의 다수학설과 판례가 취하는 입장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변화된 입장을 취한다. 과거와는 달리, 근자에는 특히 부진정소급효의 헌법적 허용성에 관한 심사에서 해당 기본권(예: 재산권, 직업자유 등)으로부터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도출하고 있으며, 다만 신뢰를 보호할 만한 상황이 개별기본권의 보호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경우엔 법치국가원리를 동원하였다(BVerfGE 45, 142(168)). 즉, 전체적 경향은 기본권으로부터 신뢰보호를 도출하되, 법치국가원리는 보충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다수 문헌 역시 법치국가원리-법적 안정성-의 동원에 찬성하면서도 우선적으론 기본권으로부터의 도출을 선행시키고 법치국가원리를 보충적으로 동원한다. "신뢰보호는 -더도 덜도 말고- 기본권보호 바로 그것이다"(Schwarz, Vertrauensschutz als Verfassungsprinzip, 2002, S.232)). 신뢰보호를 해당 기본권에서 도출하는 것의 이점은, 행정법에 대해 기본권의 방사효(파급효)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으며, 특히 입법차원에서 기본권체계에서의 비례원칙의 범주에서 상이한 이익의 대립에 대해 높은 가치가 부여됨으로써, 상이한 이익상황에서의 형량에서 기왕의 기본권론에서 발전된 -실제적 조화와 같은- 충돌해결수단이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신뢰보호의 원칙을 확고하게 헌법적 차원에서 자리매김을 강구함으로써 그것의 효과적인 제도화를 기할 때이다. 

    Ⅲ. 신의성실의 원칙과의 관계 문제

    1. 신의성실의 원칙의 의의

    본래 민사법에서 전개된 신의성실의 원칙 역시 오늘날 일반적으로 공법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여겨진다. 이는 행정이 그 임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또한 시민이 그의 권리를 관철하거나 방어할 때 준수하여야 한다. 즉, 동 원칙은 법치국가원리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헌법적 위상이 주어지곤 한다(Mayer/Kopp, Allg. VerwR, 5.Aufl., 1985, S.299. 다만 유의할 점은 헌법차원의 원칙이라고 하여 그것의 위반이 반드시 흠의 중대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런데 사실 신의성실의 원칙은 그에 담겨진 윤리적 요청으로 인해 행정청의 행위를 믿을만하게 가늠하는 데 부적합하다. 그리고 쌍방적 고려의 명령으로서의 동 원칙은 적어도 양 관계자의 의사표시를 전제로 하는데, 이런 관계가 공법에선 흔치 않다. 그리하여 동 원칙을 헌법적으로 구성하는 데 의문이 있으며, 공법에서의 그것의 적용에 대한 의구심이 현실적으로 상존한 이상, 동 원칙은 신뢰보호의 원칙을 공법도그마틱적으로 도출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지적된다.

    2. 신의성실의 원칙과 신뢰보호 원칙의 구별

    신뢰보호의 원칙이 신의성실의 원칙과 유사성을 지녀서, 양자간의 구별을 애써 강구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결과적으로 양자가 동일하게 인식되기도 한다. 본래 공법에선 양자가 조세법에서 기인하였기에, 조세법상의 문헌에 의거하여 양자의 구별을 간략히 전개하고자 한다. 신의성실의 원칙이 신뢰보호의 원칙을 지도이념으로 만들긴 했지만, 양 원칙은 합동적이지 않다. 전자가 후자보다 한편으론 넓고, 다른 한편으론 좁다. 전자가 시민의 신뢰만이 아니라 행정청의 신뢰까지도 보호하는 한에 있어서 후자를 넘어선다. 즉, 신의성실원칙은 구체적인 조세법관계에서 모든 이는 다른 사람의 정당한 관심사를 상당하게 고려하여 자신의 이전행위와 모순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모순금지원칙). 반면 가령 입법자와 다수의 시민간의 추상적인 법관계가 아니라 과세행정청과 조세의무자간의 구체적인 법관계를 전제로 하는 점에선 신의성실의 원칙이 신뢰보호의 원칙에 비해 좁다고 하겠다.  따라서 양자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겹치는 법적 범주라 하겠다(Tipke/Lang, Steuerrecht, 18.Aufl., 2005, S.825). 신뢰보호의 원칙은 조세절차의 과정적 성격과 관련이 있으며 시간·지휘지향적인 범주에 해당한다. 반면 신의성실의 원칙은 -교호적 관계를 갖는 행위관련적인 범주로서- 모순행위금지라는 일반적 법원칙의 표현이며, 오히려 구체적인 조세채무관계에서의 개별적 정의에 좌우된다(Waldhoff, Vertrauensschutz im Steuerrechtsverhaeltnis, DStJG 27(2004), S.129(154ff.)). 조세판례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비해 인물중심적인 대응물이다. 임기응변과 형평에 바탕을 둔 신의성실의 원칙의 경우 그 적용을 사전에 예측하기란 극히 어렵다. 따라서 동 원칙을 제도화한 것은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과는 무관하고, 단지 형평의 수단으로 판명된다(대법원 2004.7.22. 선고 2002두11233판결).
    요컨대 공법관계에서 만병통치약인양 -신뢰보호의 원칙과의 구별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정도로- 무분별하게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나아가 판례의 현황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Ⅳ. 신뢰성립근거로서의 공적 견해표명과 관련한 문제점

    1. 리딩판결(대법원 1985.4.23. 선고 84누593판결)

    많은 행정법문헌들은 신뢰보호원칙의 적용의 기점으로 행정기관의 일체의 선행조치를 들어 그것에 행정처분, 확언(확약포함), 행정계획, 행정지도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반면 일찍이 신의성실의 원칙(신뢰보호의 원칙)의 성립요건을 정립한 대법원 1985.4.23. 선고 84누593판결이 "첫째로, 과세관청이 납세자에게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표명을 하여야 하고, …"고 하면서, '국세청이 연초에 발간하는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납세안내라는 책자를 통하여 원출자분감면방식에 따라 법인세를 신고납부할 것을 납세자에게 권장한 것'을 과세관청이 공적인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삼았다. 84누593판결이래로 공적 견해표명이 마치 신뢰조성행위로 즉, 신뢰보호의 원칙의 출발점(제1성립요건)으로 치부되었다. 그리하여 판례는 시종 공적 견해표명여부에 일차적인 초점을 맞추되, 과세관청의 의사표시가 일반론적인 견해표명에 불과한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의 적용을 부정한다(대법원 2010.4.29. 선고 2007두19447,19454 판결 등).

    2. 공적 견해표명을 신뢰조성행위로 설정하는 것의 문제점

    일련의 신뢰조성행위에는 다소간 공적 견해표명의 측면이 내포될 수 있긴 하나, 본래 사실적·법률적 견해표명(Auskunft)은 지식의 전달로 끝나는 지식표시에 해당하고 비구속성을 지녀서 그 자체론 신뢰조성행위가 될 수가 없다(물론 견해표명이 신뢰보호를 성립시키는지 여부와 그 정도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좌우된다). 판례상으로 구분하는 공적 견해표명과 일반론적 견해표명이 그 자체로서 완연히 구별될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나아가 단순히 공적 견해표명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사안의 경우에도 자연스럽지 않게 공적 견해표명식의 접근이 강구되어 행정법도그마틱에 불협화음이 초래된다. 동사무소 직원이 행정상 착오로 국적이탈을 사유로 주민등록을 말소한 것을 굳이 공적 견해표명으로 설정하여 접근한 대법원 2008.1.17. 선고 2006두10931판결이 좋은 예이다.
    요컨대 신뢰보호의 원칙을 작동시키는 첫 단추로서 공적 견해표명의 존부가 과연 논증의 안정성을 가져다줄 지 의문스럽다. 가령 대법원 2006.4.28. 선고 2005두9644판결이 공적 견해표명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본, '관광숙박시설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의 유효기간까지 관광호텔업 사업계획 승인신청을 한 경우에는 그 유효기간이 경과한 이후에도 특별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문화관광부 장관의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회신'의 경우, -판례의 접근과는 다르게- 그 자체가 단순한 공적 견해표명에 그쳐 확약과는 달리 구속적 표시행위가 아니어서 신뢰보호를 가져다줄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Ⅴ. 맺으면서-자유행사의 기본적 전제로서의 법질서의 신뢰성

    법질서의 신뢰성은 자유행사의 기본적 전제요건에 해당한다. 자신의 행위가 나중에 불이익한 결과에 연계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의 자유권을 행사할 것이다(Vosskuhle/Kaufhold, JuS 2011, S.794). 일찍이 Ossenbuehl 교수는 독일공법학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뢰보호의 승리행진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하였다(DOEV 1972, S.25(27)). 그리하여 동 원칙이 1974년 독일국법학자대회의 대주제가 되어 대대적인 논의가 행해졌고(우리의 경우 김남진 교수님의 글(행정법에 있어서의 신뢰보호, 법률행정논집 제16집, 1978.6., 1면 이하)이 논의의 시발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신뢰보호에 우호적인 그들 행정절차법이 마련되었는데, 그것은 위법한 행정결정의 가능한 분명한 수정(취소)을 촉구한 과거의 통설적 입장(대표적으로 Forsthoff 등)에 대한 투쟁의 소산이라 한다. 반면 신뢰조성행위의 대표적인 양태인 행정법상의 확약마저도 바른 인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현재상황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시킨다. FTA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투자자국가소송(ISD)이 실은 신뢰보호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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