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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펌들 ‘아이디어 노출’ ‘수임료 후려치기’ 이중고

    늘어나는 기업의 ‘경쟁입찰 수임’… 무엇이 문제인가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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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쟁입찰 방식의 수임 관행이 확대되면서 로펌들이 '아이디어 노출'과 '수임료 후려치기'라는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로펌이 공들여 만든 제안서에는 사건의 핵심 쟁점과 소송전략이 모두 포함돼 있는데,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면 핵심 아이디어만 고스란히 제출한 채 빈손으로 돌아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로펌으로부터 제출 받은 제안가를 토대로 기업들이 '로펌 쇼핑'을 하면서 낮은 수임료를 강요한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체리피킹(Cherry picking·서비스를 구매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기는 경우)' 행태가 궁극적으로는 법률서비스 시장의 후생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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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디어 노출 피해 심각 = 사건 수임 시장에서도 경쟁입찰 방식이 횡행하면서 발주자인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제안서에 적힌 내용을 마음껏 도용해도 로펌들은 속수무책이다. 사건 위임 절차를 마무리한 뒤 기업들이 로펌이 제출한 제안서를 모두 파기하더라도, 이미 주요 소송전략이나 사건의 핵심 쟁점을 분석해 놓은 내용들은 이미 봐서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로펌들이 제안한 아이디어 중 유용성이 높은 내용을 자신들이 실제로 사건을 맡긴 또 다른 로펌에 전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건을 로펌에 아웃소싱 하기로 한 계획을 철회하고, 입찰에 참여한 로펌들로부터 받은 제안서 내용을 토대로 자체적으로 인소싱하는 기업들도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제안서에는 고객 요청에 따라 쟁점에 대한 분석이라든지, 소송을 이끌어갈 핵심 전략·구도 등이 담겨있는데, 핵심 내용을 숙지한 고객 측이 이른바 '먹튀'를 할 때가 있다"며 "사건을 우리 로펌에 맡기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몇 날 며칠을 고생해 마련한 우리 제안서 내용을 토대로 해당 기업이 손쉽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을 때에는 화가 치민다"고 했다. 


    제안서 핵심 아이디어 도용해도 

    로펌들 속수무책

     

    '아이디어 빼가기'를 막기 위해 핵심 내용을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거나, 상황에 따라 제안서 작성에 '힘 조절'을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른 로펌 변호사는 "솔직히 '되는 사건'과 '안 되는 사건'을 나눠 제안서 작성에 들이는 품을 달리한다"며 "수임이 유력하다고 생각하면 공들여 (제안서를) 작성하고, '들러리나 서겠다' 싶은 사건에서는 기존에 작성했던 폼(foam)을 적당히 바꿔 후다닥 써버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제안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쟁점 분석이다. 딱 들어맞는 쟁점만 제대로 분석되면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핵심 '소스 코드'를 숨기면서도 우리를 선택하면 이길 수 있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제안서를 약간 애매하게 작성할 때가 있다"고 했다.


    다른 로펌 제안서 참고해 

    자체 인소싱하는 기업도

     

    ◇ "선정 투명성 등 높이려 '비딩'" = 기업들은 컴플라이언스 측면에서 '비딩(Bidding)'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문이나 소송 등 사건을 맡길 로펌을 선정할 때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면 부정·부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경쟁입찰을 원칙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로펌 측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몰래 활용하거나, 자신들이 선임한 다른 로펌에 넘겨주는 비윤리적 행태가 적지 않다는 점은 대부분 시인했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기업 내에서도 임원이든, 실무진이든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로펌이나 변호사가 있기 마련"이라며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경우 특정 세력이 밀고 있는 로펌이 선정되면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내부통제 차원에서 비딩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로펌들이 건넨 제안서 내용을 취합해 보면 속된 말로 '각'이 나올 때가 많다"며 "이 경우 가장 저렴한 수임료를 제시한 로펌에 사건을 맡기면서 다른 로펌의 분석 내용을 참고하라며 함께 전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안서 작성도 고비용

     탈락 때 매몰비용 보전필요

     

    또 다른 대기업의 한 사내변호사는 "어차피 사건을 맡길 수 있는 로펌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사내변호사 입장에서 계속 비딩을 하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감사팀에서 왜 이 로펌을 썼냐고 물으면 '입찰제안서 내용이 자세하고 전략이 좋았다'는 방식으로 소명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행할 때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품질이 높은 제안서가 마음에 들어 그 로펌을 선택하고 싶은데, 가격이 좀 높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넌지시 '다른 로펌은 이 정도 가격을 썼는데, 여기까지 맞춰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제안서 내용 유출과 같은 부작용만 없으면 비딩이 수의계약보다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한 로펌 변호사는 "깜깜이로 이뤄지는 일방적 수의계약 형태보다는 경쟁입찰 방식이 투명성·공정성 차원에서 더 낫다"며 "특정 로펌 집중현상을 완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 매몰비용 보전·컴플라이언스 저변 넓혀야 = 전문가들은 사건 수임단계에서 로펌의 부담이 가중되면 결국 수임료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는 등 소비자 후생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 제안서 내용 유출 등 아이디어 유용 행태가 만연해질 경우 법률서비스의 질적 하락도 우려된다. 따라서 경쟁입찰 방식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매몰비용 일부를 보전해 주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전문적인 지식·기술이 요구되는 산업분야에서는 입찰단계에서 떨어지더라도 일정부분 매몰비용(sunk cost)을 보전해주는 사례가 있다. 예컨대 국가가 추진하는 건설·공사계약에서는 입찰에 떨어진 시공사에게 소정의 설계보상비를 지급하고 있다. 정부 입찰·계약 집행 기준 제87조에 따르면 공사 입찰 탈락자에게도 책정된 공사예산의 20%에 달하는 금액을 일정 비율로 나누어 지급한다. 덤핑 수주를 막고 기술중심의 경쟁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기업과 로펌간 

    적정한 기준마련 입찰문화 확립해야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타임 차지로 계산하면 제안서 작성에만 1000만원 이상의 노력을 쏟아붓는 경우도 있다"며 "규모가 큰 사건에서는 로펌들이 핵심 전략이 들어간 질 높은 제안서를 냈을 때 (실제 수임과 연결되지 못했더라도) 비용 일부를 보전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하기보다는 업계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컴플라이언스 기준을 마련해 제안서 도용과 입찰제안가 공개를 금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외국계 로펌의 한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독창성(originality) 있는 아이디어가 포함된 제안서를 함부로 도용할 경우 엄청난 규모의 손해배상청구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한국처럼 대놓고 다른 로펌의 제안가를 알려주거나 아이디어를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기업과 로펌 간 적정한 경계선을 지키는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내부통제 기준을 높여 자정 작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성민·홍수정 기자   wangsm·soo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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