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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펌들, 기업의 ‘경쟁 입찰 방식’ 수임에 ‘속 앓이’

    제안서는 승소전략 등 담긴 숙련된 지식의 결과물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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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로펌 지식재산(IP)팀에서 일하는 A변호사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당했다. 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B사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발주한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소속팀 변호사 3~4명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 제안서와 발표(PT)를 준비했다. 지난해 유사한 쟁점으로 다퉜던 다른 사건 소송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이끌어 낸 경험이 있는 A변호사는 자신들이 사건을 수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A변호사는 까다로운 B사 법무 담당자의 눈에 들기 위해 여러차례 미팅을 진행하면서 사건의 숨겨진 쟁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또 B사의 요청에 따라 제안서에 향후 소송을 이끌어 갈 필승 전략도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수임에 실패했다. B사 측은 "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로펌이 있어 그 곳에 사건을 맡겼다"고 했다. 제안서 작성과 발표 준비 등에 들어간 노력과 시간을 타임차지로 따지면 수천만 원어치에 달해 씁쓸함이 컸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B사가 이후 진행된 소송에서 A변호사가 제안서와 미팅에서 거듭 언급했던 '숨겨진 쟁점'을 부각시켜 연달아 승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제안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B사가 무단 사용하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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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이 이른바 '비딩(bidding)'으로 불리는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사건을 위임하는 관행이 퍼지면서 적잖은 로펌과 변호사들이 A변호사와 같은 일을 겪고 있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내놓은 제안서 내용을 함부로 도용하는 행태는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불법 소지도 높다. 하지만 로펌과 변호사들은 치열한 수임 경쟁 속에서 기업 등 '큰 손'을 자처하는 클라이언트들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한 번은 제법 규모가 큰 사건을 비딩을 통해 수임했는데, 그 기업 관계자가 '여러 아이디어를 취합해 검토해 달라'며 다른 로펌들이 비딩 당시 제출했던 제안서 내용을 모아 건네준 적이 있다"며 "혹시 중요 사건마다 (기업 측이) 다양한 법리나 아이디어를 제공받기 위해 입찰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수임 탈락하면 

    핵심 아이디어만 제공한 채 ‘빈 손’

     

    사건 수임시장에서 경쟁입찰 방식은 과거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들이 선호하던 방식이다. 관(官) 발주 용역은 절차적 공정성과 선정의 투명성을 위해 아예 법령에서 비딩을 원칙으로 못 박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사기업으로까지 번지면서 변호사업계의 주름살이 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들이 입찰에 떨어진 로펌에 매몰비용을 보전해 주거나 아이디어 도용을 막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데 인색하다는 점이다. 로펌의 제안서는 사건의 쟁점과 승소전략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숙련된 지식의 결과물이다. 가격·홍보 전략만 가지고 입찰에 응시하는 다른 업태와 달리 소송·자문사건 수임은 제안서 단계에서도 고비용의 노력이 투하된다. 이 때문에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며, 제안서에 담긴 각 로펌의 지적재산이 무단으로 활용되는 일이 없도록 기업들이 제안서를 완전 폐기하는 등 보안 유지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른 로펌의 제안서 흘리며

     수임가격 ‘후려치기’도

     

    한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제안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력도 로펌 입장에서는 결국 비용지출(cost)이기 때문에 경쟁이 심화될수록 전반적인 법률서비스 비용 상승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경쟁입찰이 불가피한 현상이라면, 공공기관의 건설·공사 발주처럼 매몰비용 일부를 보전해 주는 방식을 도입해 제 값을 주고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로스쿨 교수는 "다른 로펌의 제안서 내용을 입찰로 선정된 다른 로펌에 전달하는 것은 심각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 현상"이라며 "제안서 내용의 유출·활용을 금지하는 표준 약관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극 활용하는 등 로펌과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자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수임경쟁 속 

    해당 기업에 불만 표시도 못해 


    로펌들이 써낸 제안가를 여기저기 흘리며 수임료를 후려치는 관행도 문제다. 경쟁입찰 방식에서는 제안 가격도 기밀사항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이 발주자라는 지위를 악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치중하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일부 기업들은 '제안서는 마음에 드는데 가격이 다른데 비해 높다'며 은근히 입찰가격을 다운해 달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서 한때 로펌업계에서는 경쟁로펌에 부담을 줄 목적으로 허수로 입찰해 가격을 다운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며 "로펌 입장에서는 핵심 아이디어를 노출한 상태에서 사건까지 뺏길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폐해를 시정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왕성민·홍수정 기자   wangsm·soo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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