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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일본에서의 고령사회의 법제에 관한 논의

    - 개관, 법이념, 고령자 인권-

    강광문 교수 (서울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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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들어가며

    한국의 고령사회가 당면한 법적 과제를 고찰함에 있어서 일본의 경험은 특히 아래 두 가지 이유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현재 고령사회를 넘어서 이른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고 한국에 앞서 고령화가 초래한 각종 문제를 경험하였다. 다음으로, 근대 이후 한국의 법제도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 일본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입법뿐만 아니라 판례, 학설 등에 있어서도 일본과 유사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Ⅱ. 일본에서 고령사회의 법제를 둘러싼 논의 개관

    일본에서 고령사회의 법 또는 고령자법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위의 성년후견제도와 介護보험제도의 도입이 논의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고령자문제는 사회보장법의 일부분으로 취급되었다. 물론 현재 일본에서 고령자법 및 법학이 이미 성립되어 독자적인 시민권을 획득하였다고는 할 수는 없다. 고령사회의 법제 논의에서 용어도 통일되지는 않았다. 연구자에 따라 ‘高の法’, ‘高者と法’ 또는 ‘高者法/法學’ 등으로 표기되어 오다가 최근에는 ‘고령자법(高者法)’의 용어가 보다 빈번히 사용되는 듯하다. 일본에서 고령사회의 법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첫 학회인 ‘고령자법연구회(高齡者法硏究會)’가 2014년에 설립되었다. 



    Ⅲ. 고령자법의 법이념 

    1. 고령자법의 개념

    일부 학자는 고령자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고령자법은 고령자에 관한 법적과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법 분야이다. 고령자법은 그 대상을 고령자에 특화한 법 분야이고 고령자 특유의 법적 과제에 초점을 둠으로서 고령자의 권리보장을 촉진하고 고령자 존엄의 보장을 지향한다.” 이는 고령자법을 고령자에 관한 각종 법적과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특화된 법 영역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대로, 고령자에 관련되는 법률의 범위가 광범위하여 고령자법 대하여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고령자법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법률이 아직 존재하지 않음으로, 고령자법의 개념과 법이념에 관해서는 성년후견제나 介護제도와 같이 고령사회의 구체적인 법제를 실마리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2. 성년후견제도 도입과 관련한 논의

    일반적으로, 민법의 禁治産·準禁治産제도를 대체하여 도입된 일본의 성년후견제도는 기존제도의 경직성, 선고 사실이 호적에 기재됨으로 생기는 차별성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급속히 전개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특히 고령자와 같이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하여 단순히 그들의 행위능력을 제한함으로써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라 고령자 등 본인의 의사, 자기결정권을 가능한 존중하고 그들에게 남아 있는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민법은 애당초 사적자치를 기본원리로 하고 평등하고 대등한 시민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禁治産·準禁治産제도는 본인보호와 더불어 거래안전의 유지, 본인 가족을 포함한 관계자의 이익보호 등 이유에 의해 합리화되어 왔다. 이에 대해, 성인후견제도는 본인 보호와 더불어 본인 자기결정의 존중, 잔존능력의 활용, 정상화의 이념을 함께 고려한 입법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고령자와 같이 판단능력이 부족한 자를 일률로 민법의 평균적 인간상과 거래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그들의 남아있는 능력을 활용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기타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생활하게 하는 것이다. 


    3. 介護보험제도와 관련한 논의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일본이 1990년대에 성견후견제도와 함께 도입한 介護보험은 고령자가 일정 부분의 자기부담을 전제로 介護서비스 등 보험급부를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전에 일본에서는 행정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나 가족이 없는 고령자들에 대해서는 전문 사회복지시설에 업무를 위탁하여 보살피는 방식을 취해왔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이용자는 각종 서비스를 받을지 여부 및 누구에게 받을지 등 사항에 대하여 비교적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일본에서 이러한 介護보험제도의 도입은 1995년에 시작한 사회복지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 정부 주도하에 마련된 사회복지개혁안에는 향후 일본이 지향해야 하는 사회복지의 기본이념으로 인간존엄과 더불어, 국민 개개인의 자립과 책임을 강조하였다. 介護보험제도도 이러한 복지개혁의 이념과 방향에 맞추어 설계되고 도입되었다. 


    4. 고령자법의 법이념

    성년후견제도에 관련한 민법학 논의, 1990년대 중반 이후 사회보장개혁 및 기타 고령사회 법제 논의에서 공동으로 강조되는 두 가지 기본적인 법이념 또는 원리는 ‘자기결정 존중/자립/자율’과 ‘본인보호/권리보장’으로 개괄된다. 요컨대 고령자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동시에 약자로서 보호,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법이념, 원리는 서로 보완적 역할을 한편 상호 긴장, 충돌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다.



    Ⅳ. 고령자 인권

    1. 생존권과 보호의 원리 

    기존의 사회보장법에서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특별히 배려, 보호하는 헌법적 이유는 헌법에서 요구하는 생존권 등 국민의 사회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일본국헌법은 국가개입의 배제를 요구하는 자유권과 함께 국가로 하여금 국민의 최소한도의 생활수준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사회복지법, 노인복지법을 비롯한 일본의 사회보장법제는 이러한 헌법 원리를 구현하고 국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도입하였다. 


    2, 개인존중,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의 원리

    일본국헌법은 국민이 개개인으로 존중된다는 개인주의원리를 천명하였고 생명,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하였다. 모든 국민은 우선 자신의 행복 등 사항에 관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주체이다. 성인후견제도를 포함한 고령자 관련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정에서 흔히 논의되던 자기결정 존중의 헌법적 근거이다. 고령자 역시 국민의 일원으로 개인으로 존중받고 자신의 행복 등 사항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권에는 국가를 통해 실현하는 사회권적 권리와 국가의 개입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자연권적 권리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고 이는 각각 위의 고령자법에서 논의되는 보호의 원리와 자기결정 존중 원리에 대응한다. 그러므로 고령자 인권 또는 기본권에는 이 두 가지 측면 즉 약자로서의 개인 권리의 보호와 자율적인 개인 자유의 보장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한마디로 인권이라고 하지만 어느 측면을 보다 강조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Ⅴ. 마무리

    일본에서 고령사회의 법 또는 고령자법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사회보장법과 구분되는 고령사회의 법 또는 고령자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고령자법을 주제로 하는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그렇다고 고령자법의 개념, 범위가 명확히 확정되거나 고령자법이라고 하는 법학 분야가 이미 성립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고령자법의 성립가능성은 고령자법 특유의 법이념, 기본원리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기존의 사회보장법은 고령자를 특별한 배려를 필요로 약자로 이해하고 고령자의 생존권 보장에 중점을 두었다. 이른바 보호의 원리이다. 민법개정을 통해 새로 도입된 성견후견제도 및 介護보험 등 사회보장법의 개혁과정에서는 보호의 법리와 더불어 고령자의 자립 또는 자기결정권의 존중의 법리가 강조되었다. 이로써 일본에서 고령자법제의 기본적인 법이념, 기본원리는 ‘자기결정 존중’과 ‘본인 보호’로 개괄된다. 요컨대 고령자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동시에 약자로서 보호,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법이념은 일본국헌법이 보장하는 고령자 인권의 두 측면에 대응한다.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복지국가, 사회국가를 지향하는 일본국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개념에는 국가를 통해 실현하는 사회권적 권리와 국가의 개입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자연권적 권리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두 측면은 서로 보완적 역할을 한편 상호 긴장, 충돌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입법과 사법에 있어서 어느 측면을 보다 강조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향후 일본의 고령자 관련 입법, 논의도 이 두 가지 이념 및 그에 대응하는 인권과 헌법적 가치를 둘러싸고 전개될 전망이다. 



    강광문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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