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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기사

    [202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9. 형법(각칙)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대해 '전파가능성' 법리 그대로 유지
    중요한 동기의 착오 일으켜 간음했다면 '위계 간음죄' 성립

    이주원 교수 (고려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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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의 의미 : 담보물 보관의무와 담보가치 유지의무 제외(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2020. 6. 18. 선고 2019도14340 전원합의체 판결 등 총 4건)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가)
    동산 양도담보 사건(2019도9756) : 갑은 A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서 동산인 골재생산기기 '크러셔'를 점유개정의 방식으로 양도담보로 제공하였다. 그런데도 갑은 3개월 후 그 담보물을 제3자에게 매각하였다. 한편 양도담보계약서에는 '담보목적물은 설정자가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점유·사용·보전·관리하며 그 비용을 부담한다'는 기재가 있다.


    (나)
    부동산 2중저당 사건(2019도14340) : 갑은 A로부터 18억 원을 차용하면서 담보로 갑 소유의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하였다. 그런데도 갑은 6개월 후 제3자에게 그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었다.

     
    위 두 사건은 모두 특정경제범죄법위반(배임)으로 기소되어 제1심과 제2심은 종전 판례에 따라 유죄로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판례변경을 단행하여(10:3, 9:4) 모두 파기환송하였다.


    (2) 판결요지(파기환송)
    (가)
    (2019도9756)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내지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여 이를 채권자에게 양도할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되고 주식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제3자에게 해당 주식을 처분한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나)
    (2019도14340) 채무자가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저당권을 설정할 의무는 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의무이다. 채무자가 위와 같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가 제3자에게 먼저 담보물에 관한 저당권을 설정하거나 담보물을 양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금전채무에 대한 담보로 부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채권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줄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그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3) 평석

    우선 (가) 판례는 채무자가 담보권자인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담보물 보관의무 및 담보가치 유지의무'가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한 예로서 주목된다. 이미 대법원은 계약을 체결하고도 아직 그 권리가 상대방에게 이전되기 전 단계에서 ① 동산 이중양도(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② 대물변제예약 부동산의 임의처분(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의 경우 그 매도인이나 채무자의 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런데 ③ (가) 판결은 권리가 상대방에게 귀속된 이후, 즉 담보권이 설정된 이후에 채무자(담보설정자)의 담보물 보관의무 내지 담보가치 유지의무에 대해서도,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그러한 사정이 없는 한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가) 판결의 법리는 그 후에도 계속 확인되었는데 ④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그 소유의 동산을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동산담보'를 제공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9도14770 전원합의체 판결)라고 한다. 또한 ⑤ 채무자가 '자동차 등 특정동산 저당법' 등에 따라 그 소유의 동산(자동차)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하거나 '저당권'을 설정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공장 및 광업재단 저당법'에 따라 저당권이 설정된 동산을 채무자가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한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2020. 10. 22. 선고 2020도6258 전원합의체 판결)고 한다. 동산 이중양도의 법리는 권리이전에 등기·등록을 요하는 동산, 즉 '자동차 등의 이중양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2020도6258)고 한다. 이러한 (가) 판결의 관점에서 보면 ⑥ 계약을 체결하고도 아직 그 권리가 상대방에게 이전되기 전 단계에 해당하는 '부동산 2중저당'의 경우에도 (나) 판결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판례 경향은 계약위반 내지 계약상 의무 불이행에 대한 형법 투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타인의 사무'범위를 넓게 해석하던 종래의 태도를 버리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형벌법규의 해석을 엄격하게 하는 입장이다. 그 결과 제한물권의 형법적 보호는 이제 배임죄가 아닌 권리행사방해죄(제323조)의 성립 여부에 좌우되게 되었다.
    다만 대법원은 ⑦ 부동산의 이중매매(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의 경우에는 중도금 지급 등 계약이 본격적 이행 단계에 이른 때부터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보아 여전히 배임죄를 인정한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9도16228 판결).


    2.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 : 중요한 동기의 착오 포함(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36세, 남)은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된 A(14세, 여)에게 '고등학교 2학년생 B(가상 인물)'로 행세하며 온라인으로 교제하던 중 B를 스토킹하는 여성 C의 행세를 하며 A에게 '자신도 B를 좋아하는데 좋아하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도발하는 한편 B행세도 하며 A에게 '교제를 지속하고 스토킹하는 여자를 떼어내려면 그 여성의 요청대로 자신의 선배와 성관계 해 달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에 응한 A를 B의 선배로 행세하며 간음하였다.


    제2심에서 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5항의 위계간음죄로 공소장이 변경되었다. 제2심은 위계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착각·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착각·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는 종전 판례에 따라 무죄로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전원일치로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2) 판결요지(파기환송)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피해자가 오인·착각·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3) 평석

    이 판례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대상'과 '위계와 간음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례변경을 통하여 더욱 확장한 예로서 주목된다. 종전 판례에 대해서는 위계의 개념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함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능력이 취약한 아동·청소년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취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위계간음죄의 법정형이 높아진 점 등 입법경위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 필요성에 중점을 두고 성행위라는 결과 자체에 대한 위계는 물론 그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위계도 포함된다고 넓게 인정하였다. 다만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지나친 확장해석을 경계하는 판시를 덧붙이고 있다. 즉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안의 경우 갑이 사이버공간의 1인 3역 연기를 통해 가상의 인물로 가장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동기의 착오 유발행위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성행위에서 상대방이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성행위 상대방에 대한 착오는 곧 성행위 자체에 대한 착오이므로 갑의 행위는 종전 판례에 의하더라도 성행위 자체의 착오로 보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그런데 이 판결에는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인지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외견상으로 존재하는 형식적 동의'와 '자발적이고 진지한 동의'에 대한 구별 기준 역시 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1항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와 비교할 때 제7조 제5항의 위계간음죄는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동일하고 또한 매우 높은데 이러한 해석은 강제적 성범죄에 비해 불법의 정도가 낮은 비강제적 성범죄에 대해 결국 확장해석을 통해 그 처벌범위를 높이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3. 명예훼손죄에서 공연성의 의미 : 전파가능성 법리 유지(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A의 집 뒷길에서 갑의 남편 및 A의 친척 B가 듣는 가운데 A에게 "저것이 징역 살다온 전과자다" 등이라 큰 소리로 말하여 사실을 적시해 A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제1심과 제2심은 명예훼손죄로 인정하였다. 갑은 B가 A의 친척이므로 전파가능성이 없어 공연성이 없다고 주장하여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기존의 전파가능성 법리를 유지하는 다수의견(10:3)에 따라 상고를 기각하였다.


    (2) 판결요지(상고기각)

    명예훼손죄의 '공연히' 또는 '공공연하게'는 사전적으로 '세상에서 다 알 만큼 떳떳하게', '숨김이나 거리낌이 없이 그대로 드러나게'라는 뜻이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여 이른바 전파가능성 이론은 공연성에 관한 확립된 법리로 정착되었다.

     
    공연성에 관한 전파가능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인 측면에 비추어 타당하므로 유지되어야 한다.

     
    (3) 평석

    이 판례는 전파가능성이 인정되면 공연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기존의 판례 법리를 재차 확인한 전원합의체 판결로서 주목된다. 기존의 판례는 전파가능성 법리에 입각하되 이를 제한 없이 적용할 경우 처벌이 확대되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파가능성의 '구체적·객관적인 적용기준'을 세우고 피고인의 '범의를 엄격히' 보거나 적시의 상대방과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관계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부정'하는 등 판단기준을 사례별로 유형화하여 왔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 판례의 타당성을 재확인하는 한편 표현의 자유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전파가능성 법리에 대한 제한 법리를 추가하고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를 넓게 인정하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다. 즉 공적인 인물, 제도 및 정책 등에 관한 것만을 공공의 이익관련성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사실적시의 내용이 '사회 일반의 일부' 이익에만 관련된 사항이라도 다른 일반인과의 공동생활에 관계된 사항이라면 공익성을 지니고 나아가 '개인에 관한 사항'이라도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고 사회적인 관심을 획득한 경우라면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것은 아니며 '사인'이라도 그가 관계하는 사회적 활동의 성질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헤아려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개인의 인격권 보호라는 현실적 측면에 중점을 둔 해석일 뿐 법이론적으로 볼 때 '공연히'라는 법문에 충실한 해석태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반대의견의 적절한 지적과 같이 공연성은 전파가능성을 포섭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전파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하는 것은 '공연히'라는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는 것으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확장해석 내지 유추해석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공연히'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불특정 또는 다수인'은 불특정인이라면 소수라도 상관없고 다수인이라면 특정되어 있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불특정이란 행위 당시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이 특수한 관계에 의하여 한정된 범위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예: 공개된 장소에서의 통행인 등)이다. 따라서 공연성은 '불특정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데 후자의 경우 다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공연히'의 문언적 의미에 해당하며 전자의 경우 또한 특수한 관계에 의하여 한정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연히'라는 문언적 의미에 포섭하는 평가가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특정 소수'의 경우인데 공연성의 의미 내지 인식의 방법과 관한 두 개의 입장, 즉 전파가능성설(다수의견)과 직접인식가능성설(반대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그러나 '특정된 소수'는 일종의 사적 대화로서 '세상에서 다 알 만큼 떳떳하게'라는 공연히의 문언적 의미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된다. '불특정 및 다수인' 내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라는 해석은 모두 공연히라는 문언의 통상적 의미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문언해석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특정된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사적 대화 내지 사담까지도 '공연히'라는 문언의 통상적 의미에 포함될 수 있다는 식의 해석(전파가능성설)은 그 문언해석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특정된 소수'를 상대방으로 한 사적 대화를 '세상에서 다 알 만큼 떳떳하게'를 뜻하는 '공연히'라는 문언의 가능한 의미에 포섭된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처럼 '공연히'의 문언적 해석에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라는 의미가 바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식의 설명은 타당한 논증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전파가능성 법리가 사적 대화 내지 사담을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이 법리가 사실상 사적 대화까지도 대부분 처벌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새로운 판단기준에 의하더라도 사적인 대화 내지 사담이 공익성을 가지는 경우란 대체로 그 상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파가능성 법리는 결국 구성요건으로 규정되지 않은 전파가능성 개념으로 공연성 표지를 대체하는 것이 된다. 전파가능성 법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법리적으로도 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시방법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4. 사전자기록등위작죄에서 위작의 의미 : 권한남용적 무형위조 포함(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9도11294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대표이사)과 을(이사)은 공모하여 A회사가 운영하는 가상화폐거래소에서 매매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회사가 설치하여 사용 중인 가상화폐 거래시스템상 차명계정을 생성하고 그 차명계정에 실제 보유하고 있지 않는데도 마치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원화 포인트와 가상화폐 포인트를 허위 입력하고 이를 위 거래시스템상 표시되게 하였다.

    제1심과 제2심은 사전자기록등위작 및 그 행사죄로 인정하였다. 갑 등은 정보입력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 사전자기록에 허위 정보를 입력하는 것은 '위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사전자기록의 위작에 권한남용적 무형위조도 포함된다는 다수의견(8:5)에 따라 상고를 기각하였다.


    (2) 판결요지(상고기각)
    대법원은 시스템의 설치·운영 주체로부터 각자의 직무 범위에서 개개의 단위정보의 입력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허위의 정보를 입력함으로써 시스템 설치·운영 주체의 의사에 반하는 전자기록을 생성하는 경우도 형법 제227조의2(공전자기록등위작)의 '위작'에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 위 법리는 형법 제232조의2의 사전자기록등위작죄에서 행위의 태양으로 규정한 '위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3) 평석

    이 판례는 사전자기록등의 '위작'에서도 유형위조는 물론 권한남용적 무형위조가 포함된다는 입장을 재차 천명한 예로서 주목된다. 즉, 대법원은 형법 제227조의2(공전자기록등위작)의 '위작' 개념에 무형위조 일체가 아니라 이른바 권한남용적 무형위조는 포함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5. 6. 9. 2004도6132 판결 등 다수). 사전자기록에서도 시스템을 설치·운영하는 주체가 있고 실제 권한을 부여받아 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별개로 존재하는 상황을 전제로 그 업무처리가 권한을 남용하여 허위의 정보를 입력하는 경우(이를 반대의견은 '권한남용적 무형위조'라고 표현)가 '위작'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무형위조가 '위작'에 포함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권한남용적 무형위조가 아닌 일반 무형위조에 대해서는 '위작'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권한남용적 무형위조라고 하여 모두 '위작' 개념에 포함된다는 것도 아니다. 입력 권한자와 시스템의 설치·운영 주체가 일치하는 경우에는 시스템 설치·운영 주체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에서는 시스템상 여러 사람의 의사나 행위가 개재되고 개개의 입력한 정보가 자동으로 기존의 정보와 결합하여 전체로서 새로운 전자기록이 만들어지는 특성이 있다. 다수의견은 전자기록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처벌 필요성에 중점을 둔 입장으로 공감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작'의 개념에 대해서는 형법에 정의규정도 없고 전자기록과 관련하여 사전에도 없고 일반 국민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도 아니다. 공전자기록의 경우와 달리 사적 자치의 영역인 사전자기록의 경우에는 사문서의 무형위조가 원칙적으로 불가벌인 것에 부합하지 않는 점에서 이는 해석의 한계를 벗어난 사실상 새로운 입법에 해당하는 문제가 있다. 전자기록의 '위작' 개념에 대한 일반인의 통상적인 관념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형법 제16조에 의한 법률의 착오가 문제될 수 있다(8:5의 팽팽한 대립).



    5. 범죄집단조직죄에서 범죄집단의 의미(대법원 2020. 8. 20. 선고 2019도16263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무등록 중고차 매매상사(외부사무실)의 대표이다. 이 외부사무실은 회사 조직과 유사하게 대표, 팀장, 팀원(출동조·전화상담원)으로 직책과 역할이 분담되었는데 각자 인터넷 사이트에서 허위 중고차 매물광고를 보고 전화를 건 손님들에게 방문 유인, 계약 유도, 계약 체결 등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고차를 시세보다 비싸게 판 사기범행으로 얻은 수익을 일정 비율로 분배하였고 '텔레그램'을 이용한 대화방을 개설하여 정보 공유, 각종 보고 등을 행하였다.

     
    (2) 판결요지(파기환송)

    형법 제114조에서 정한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란 특정 다수인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구성원들이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범죄를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춘 계속적인 결합체를 의미한다. '범죄단체'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3) 평석

    형법은 종래 제114조에서 범죄단체의 조직 등만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였다가 2013년 4월 5일 개정을 통해 비록 범죄단체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위험성이 큰 '범죄집단'을 구성요건에 추가하였다. 이 판례는 제114조에 '범죄집단'이 추가된 이후 '범죄집단'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설시한 예로 주목된다. 범죄단체는 특히 계속적이고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출 것이 요건이나 '집단'은 단체와는 달리 계속적일 필요가 없고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출 필요도 없다. 그러나 범죄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를 설시하면서 갑이 운영한 외부사무실은 '범죄단체'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형법 제114조의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 법리에 따라 하급심 법원은 박사방 사건 등에서 범죄집단조직죄를 인정하였고 향후 그 적용사례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주원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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