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무사시험에서 경력 공무원에 특혜를 주는 세무사법 시행령 개정에 나서자 법무사와 변리사 등 다른 전문 자격사들에 대한 시험에도 손질이 뒤따를지 주목된다.
기획재정부(장관 추경호)는 20일 세무사시험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세무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일반 응시자와 공무원 경력자의 최저합격점수가 달라지게 된다. 세무사시험 과목 일부를 면제받는 공무원 경력자는 과목 간 난이도 차를 고려한 조정점수를 적용받고 일반 응시자와 구분된 정원 외 인원으로 선발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은 합격자 점수와 관련한 부분 가운데 정부가 조속히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합리적으로 바꾼 것"이라며 "(경력 공무원의 시험 과목 면제 폐지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국회 논의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경력자는
과목 난이도 고려 조정점수 적용
국가자격시험의 공무원 특례 제도 개선은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인 만큼 이번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논의가 본격적으로 추진될지 주목된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유출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법무사를 비롯한 세무사, 공인노무사, 관세사, 변리사, 행정사 등 6대 국가자격시험의 불공정한 특례 제도를 재검토하고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올해 하반기에 실태조사를 하고, 내년에 법무사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 2024년부터 새로운 국가자격시험제도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변리사와 공인노무사 등 국가자격시험의 출제·운영을 위탁받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어수봉)도 시험 면제 제도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일반 응시자와는 구분되는
정원 외 인원으로 선발
공단은 지난달 13일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 '나라장터'에 '국가전문자격시험 관리체계 개선방안 연구' 용역 공고를 냈다. 연구 주요 내용에는 10개 자격을 대상으로 한 경력자 시험 면제 제도의 형평성 여부, 경력자 시험면제 제도의 국내·외 입법례, 개선방안 등이 포함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를 비롯한 변호사단체는 전문 자격사 시험에서 공무원 특혜를 폐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서울변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 "6대 전문자격시험의 경우 관련 업무를 담당한 주무 부처 공무원은 1차 시험을 전부 면제받고, 2차 시험 과목 역시 상당수 면제받는 특혜를 누려왔다"며 "사회 전반의 교육 여건과 정보 공유 수준이 현격히 발전함에 따라 정규 시험제도로 선발된 자격사들이 오히려 더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유능하고 공정하게 전문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 같은 특혜 제도는 특정 계층에 대한 명분 없는 특혜 부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모두에게 전문자격 취득을 위한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현직 공무원과 특정 자격사들 간의 유착관계 및 전관예우는 하루빨리 철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사업계에서는 시험의 공정성을 높이면서도 실무역량을 갖춘 공무원 경력자에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시험 제도 개편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변리사·노무사 자격시험도
면제제도 검토 착수
이남철 대한법무사협회장은 "전문 자격사 시험을 공정하게 개선하는 방향 자체는 맞다"면서도 "다만 자격사 간의 시장이나 인력 배출 규모가 다르므로 자격사 간 형평성을 고려해 제도 개선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사무총장인 이충희 법무사는 "공직에서 실무능력을 쌓아온 이들의 경력을 사장시키기는 아깝다"며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도를 보완하면서도 경력 공무원들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법무사는 "법무사시험의 높은 난이도로 (공무원들이) 근무하면서 시험을 준비하기가 어려워 공무원 출신의 법무사 유입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며 "시험 제도를 개편해도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