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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어주는 변호사] 《외롭지 않을 권리》(황두영 著, 시사IN북 펴냄)

    새로운 가족 제도를 상상해보자

    김소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밝은책방 대표)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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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은 어떤 삶을 선택하는 것일까? 혼자 사는 고독한 삶이 좋아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결혼하지 않는 것은 ‘혼자’가 좋다는 적극적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결혼’이 주는 각종 부담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선택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뿐이지, 외롭게 혼자 사는 삶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한편, 누군가는 결혼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할 수 없기도 하다. 한때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이미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특권’이 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이든, 하고 싶지만 사정상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삶이 좋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결혼하지 않으면 다른 대안은 없다. 그냥 혼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결혼하지 않으면 함께 사는 삶의 즐거움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외롭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하며 ‘생활동반자법’이라는 새로운 가족 제도를 만들자는 논의가 있어왔다. 《외롭지 않을 권리》는 진선미 국회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던 저자가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법안을 직접 만들면서 고민했던 내용들이 담겨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사이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인정하고, 국가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혜택 등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이다. 프랑스 등에서는 이미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어도 나는 나일 뿐, 누구의 아내도 남편도 며느리도 사위도 아니다.”
    - 《외롭지 않을 권리》 197쪽,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중


    책에는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이유,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혼인 형식 외의 다양한 유형의 생활동반자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각종 정책으로 인해 이들이 겪는 불합리부터 구체적인 생활동반자법안의 내용까지 담겨 있다. 직접 이 법안을 준비했던 저자가 쓴 책이기에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생활동반자법이 단순히 젊은 세대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전 연령에 걸쳐 활용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이었다. 저자는 생활동반자법이 노인 계층에서 가장 요긴하게 사용될 제도라고 한다. 노인이 되면 병원에 갈 일도 많고 주민센터 등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을 일도 많아지기 때문에 동거인에게 적절히 권리를 부여하면 요긴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는 동거 커플은 장례 절차에서도 배제되는데, 다른 유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동거인이 있어도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심각한 문제다.

    한편, 생활동반자법은 단순히 혼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가족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돌봄정책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사회는 돌봄을 가족에게 ‘전담’시키고 있다. 부양의무제 문제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 대한 돌봄의 일차적인 책임은 그 가족이 부담한다. 이렇다 보니 사회가 상정하는 ‘정상가족’을 갖지 못하게 되면 곧바로 돌봄 공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서로가 서로를 자발적으로 돌보며 살겠다는 이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은 ‘고독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회의 돌봄망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서로 돌보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을 최대한 모아내야 한다. 혈연가족도 부담스러워하고 혼인도 안하겠다는 현실에서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사회의 보물 같은 존재다.”
    - 《외롭지 않을 권리》 82쪽, 1부 외로운 대한민국 중


    국가는 오래전부터 결혼하고 출산하라고, 그를 통해 ‘가족’을 만들면 된다고 목 놓아 외치고 있지만, 혼인과 출산 기피는 계속되고 있다. 이쯤 되면 이제 혼인 강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혼인제도에 편입되지 않는 사람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가족제도를 고수하는 것은 이들에게 고독한 삶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면 ‘결혼’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중략) 이상적인 부부관계는 남녀가 평등한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결혼은 현대적 이상과 전통적 관습 사이에 끼어 있다. 결혼과 경쟁할 만한 다른 제도가 있을 때 ‘결혼’의 가치에 대해 본격적인 질문이 가능하다.”
    - 《외롭지 않을 권리》 164쪽,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중

    “혼인의 자유와 권리가 자기운명결정권, 행복추구권이라는 더 큰 권리가 실현되는 방식의 하나라면 혼인 외의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보장받아야 한다.”
    - 《외롭지 않을 권리》 174쪽,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중


    누구나 값비싼 비용을 치르지 않고 ‘함께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책은 개인과 사회에 ‘가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상당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또, 다양한 삶의 양식에 관한 제도적 상상력을 넓혀준다. 가족이 부담스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동반자로서 살아가고 싶지만 혼인 제도로 편입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 결혼 너머 다른 동반자관계를 상상해보고 싶은 사람, 무엇보다 정책입안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김소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밝은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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