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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행정기본법의 제정에 따른 행정구제법의 과제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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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처음에 - 행정기본법은 공공법제의 개혁을 위한 기축(基軸)이다.
    행정기본법이 제정된 3월 23일은 실로 행정법의 날이다. 행정기본법은 행정의 원칙과 기본사항을 규정하여 행정의 민주성과 적법성을 확보하고 적정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국민의 권익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동법의 목적은 ‘국민의 권익보호’이고, 그 목표는 ‘행정의 민주성’, ‘행정의 적법성’, ‘행정의 적정성’ 및 ‘행정의 효율성’이다. 이들 목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행정의 민주성’의 확보이다. 민주화는 정치에서의 민주화에 머물지 않는다. 민주화는 자유로운 개인의 주체적 지위를 전제로 하기에, 국민이 통치의 대상에서 벗어나 국가를 상대로 법주체로서의 지위를 갖는 임계점에 행정의 민주성의 실현이 있다. 행정기본법 제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행정소송법 등 기간 행정법제를 ‘행정의 민주성’의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상론: 김중권, 행정기본법의 보통명사 시대에 행정법학의 과제Ⅲ. 공법연구 제49집 제4호, 2021. 6. 30.).


    Ⅱ. 행정소송법의 개혁사항
    1. 제소기간의 과감한 축소
    행정기본법 제36조 4항으로 인해 행정심판의 청구기간과 행정소송의 제소기간의 기산점과 관련한 규정(행정심판법 제27조; 행정소송법 제18조)이 수정되는 결과가 빚어진다(김중권, 행정법, 2023, 685면, 785면). 이의신청을 제기한 경우 기존의 안 날부터의 90일에 최장 54일이 연장되는데(한편 거부처분에 불복하여 민원처리법에 따라 이의신청을 한 경우,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받은 날부터 취소소송의 제소기간이 기산되지 아니한다는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판결은 향후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불복기간의 연장(90일+54일=144일)이 행정법관계의 조속한 안정의 차원에서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행정의 효율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최장 144일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시간관념에 지나치게 길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국민은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이다. 권리구제의 제소기간이 길면 길수록 국민의 권리구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수긍할 점도 있겠지만 단편적이다. 그런 주장의 이면에는 국민을 주체적 개인이 아니라 시혜와 배려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배어 있다. 정당한 법집행에 협력해야 할 국민을 상정하여, 제소기간을 합리적으로 단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필자는 과거 법무부 주관 행정소송법 개정작업에서 집행정지의 원칙을 채택하면서 과감하게 제소기간을 30일 정도로 축소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주효하지 않았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안 날 기준으로 1개월이다(독일 행정법원법 제74조 제1항).

    2. 행정쟁송에서의 집행정지원칙의 채택
    행정행위의 공정력은 행정법관계의 안정을 위하여 실정 근거규정의 존부에 관계없이 실체적 의미를 지닌다. 행정기본법 제15조가 행정행위의 공정력의 존재를 명문화한 이상, 이제는 독일의 경우에 빗대 근거규정이 없음을 이유로 그것을 절차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행정기본법 제15조로 인해 공정력의 본질과 배치된 대법원 1993. 6. 25. 선고 93도277판결 등은 이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 행정행위의 공정력 즉, 하자(위법)와 무관한 효력발생의 인정은 그 자체가 법치국가적 원리에 대한 도발이다(Ehlers/Punder(Hrsg.), Allg. VerwR, 16.Aufl., 2022, §22 Rn.1.). 공정력의 이런 의문점을 소송법상의 집행정지의 원칙이 완화시킨다(Bader/Ronellenfitsch, VwVfG, 2010, §35 Rn.6). 공정력의 명문화를 계기로 행정소송법상의 집행정지제도를 숙고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입법정책의 문제로 본다. 헌법재판소 역시 입법정책의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여 행정행위에 공정력을 부여하는 취지를 감안할 때 현재의 집행부정지의 원칙이 위헌이 아니라고 본다(헌재 2018. 1. 25. 2016헌바208). 하지만 정지효의 원칙을 공법쟁송의 근본원칙으로 보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집행정지와 집행부정지가 원칙과 예외의 관계에 놓이며, 만약 이런 관계를 역전시키는 행정실무는 위헌이라고 한다(BVerfGE 35, 382(402). 잠정적 권리보호는 헌법상의 재판청구권이 표방하는 효과적인 권리보호를 위한 기본요소이다. 그것은 입법자가 임의로 부여하거나 제한하거나 빼앗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헌법상의 명령(원칙)이다(Finkelnburg/Dombert/Külpmann, Vorläufiger Rechtsschutz im Verwaltungsstreitverfahren, 6.Aufl. 2011, Rn.1.). 이제 행정에 유리한 효과를 가져다준 행정행위의 공정력이 명문화된 것을 계기로, 무기대등의 원칙의 차원에서 공정력에 대한 대응기제로서 행정쟁송에서 집행정지의 원칙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일본에서도 집행부정지원칙의 위헌성이 주장된다. 松井茂記, 󰡔裁判を受ける権利󰡕(日本評論社, 1993), 186頁 以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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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국가배상법의 개혁사항
    행정기본법 제20조의 자동적 처분과 관련해서 위법한 그것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면 국가배상책임의 법리가 당연히 통용된다(자동적 처분의 절차법적 대응은 차후에 검토한다). 현행 공법상의 손해보전체제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의한 하자행위 내지 행위불법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 있다(그런데 스위스 국가책임법 제3조 제1항은 직무담당자의 과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완전자동적 행정의 특징은 행정행위의 처분적 본지를 사람인 직무당담자 외에 위치하게 한 것이다. 이런 바뀐 상황이 기왕의 국가배상법을 그대로 통용되기 어렵게 만든다. ‘지능형 횡단보도용 교통안전 시스템’에 원인불명의 장애로 인해 사고가 난 경우에, 과연 현행 국가배상책임법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알고리즘에 대한 민사상의 책임에서 유사하게 공법에서도 책임성립의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디지털 결정의 경우 운영자, 사용자, 제조자 및 프로그래머가 참여하여 각기 역할이 나눠지는데, 문제는 현행 국가배상책임의 과실책임주의에서 이들에게 주의의무위반의 주관적 책임요소가 확인될 수 없는 경우에는 배상책임의 공백이 발생한다. 사법(私法)의 기본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피해자는 행정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 데이터처리의 리스크에 직면한다. 다시 말해 사법에서는 피해자가 스스로 계약의 상대방이 되고자 하여 자동적 데이터처리를 따를지 여부를 정하는 것과 비교해서, 행정과의 관계에서 시민은 행정이 제공하는 절차에 구속된다. 이런 차이점을 여하히 국가배상법제에 반영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처음부터 하자 있는 프로그램에 기반한 경우에는 완전자동화라 하더라도 자율의 리스크는 생기지 않아 책임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지만, 피할 수 없는, 원인불명의 고장과 같이 설치와 관리에서 공무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경우에는 심각한 권리보호상의 공백이 빚어진다. 그리고 현행 국가배상책임의 과실책임주의는 인간의 행위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사람에 의한 인식과정을 AI가 대체하는 경우에는 종래의 이해와 접근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 과실책임주의가 견지되는 이상, 위험책임의 법리를 도그마틱적으로 강구하기 어렵다. 통상의 위험책임의 법리는 사회적으로 효용이 있어 허용되나 위험스러운 사물의 도입(사용)에서 문제되는데, 자동적 처분은 잘못 결정내리는 프로그램의 문제이다. 따라서 자동적 처분에 통상의 위험책임의 법리를 동원하기에는 도그마틱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국가배상법에 자동적 처분과 같은 가상적 행정행위를 대상으로 특별한 법규정을 둘 수밖에 없다. 즉, 행위책임의 구조를 견지하는 한, 위험책임법리의 문제는 실정법적 문제이다. 자동적 처분이 명문화된 이상, 이제 국가배상법에 그와 관련된 특별한 배상책임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와 관련해 참고될 수 있는 것이 -비록 입법권의 결여로 무효로 판시되었지만- 컴퓨터의 고장과 관련해서 위험책임법리에 바탕을 두고서 별개의 책임요건을 규정한 독일 1981년 국가책임법 제1조 제2항이다(행정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장치로 공권력이 독립되게 행사되게 하고 그 고장이 사람의 위무위반에 부합할 경우에는 기계장치의 고장은 의무위반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동 규정은 인공지능기반의 행정결정을 예상하지 않은 것이기에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제3항을 결과책임의 차원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행정기본법 제20조에 의하여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을 포함한다)으로 행한 자동적 처분으로 인하여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나아가 차제에 현행의 국가배상책임체제에서 과실책임주의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Ⅳ. 맺으면서 - 행정법 및 공법에 드리워진 권위주의적 사고의 주술을 하루바삐 제거해야 한다.
    행정기본법의 많은 조항들이 마치 토르소(Torso) 규정처럼 되어 버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이 창대하기 위해서 행정기본법을 행정법 및 공법 전반을 현대화하고 개혁하는 플랫폼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행정의 민주성의 요청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을 공권력행사나 국가적 배려의 단순한 대상(객체)으로 보고서 구축된 행정법제는 태생적으로 행정의 민주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민주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법치국가원리는 관헌(관치)적 법치국가원리일 뿐이다. 자칫 법의 지배가, 바람직하지 않고 허용되지 않는 법률가의 지배(Juristocracy)로 변용될 수 있다. 시간적으로 민주화로부터 멀면 멀수록 법제는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와 부조화된 면이 많다. 행정기본법의 제정을 계기로 행정법 및 공법에 드리워진, 국가주의와 관료주의 즉, 권위주의적 사고의 주술을 하루바삐 제거하여 ‘새로운’ 행정법을 구축해야 한다.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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