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미국 연방대법관인 올리버 웬델 홈즈 2세(Oliver Wendell Holmes, Jr.)는 “법의 생명은 논리(logic)가 아니라 경험(experience)에 있다”라고 하였다. 2022년에도 대법원은 연륜을 느낄 수 있는 판례를 통해 시대와 호흡을 하려고 하였다. 이하에서는 지면 관계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중요 판결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과 생각해 볼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Ⅱ. 의사능력 유무의 판단1. 쟁점과 판결요지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9다213344 판결은 의사능력 유무의 판단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판단을 하였다. 금융기관인 원고가 지적 장애가 있는 피고에게 굴삭기 구입자금으로 8800만 원을 대출하였는데, 원고의 대여금 청구에 대하여 피고는 의사능력 결여를 이유로 이 사건 대출약정의 무효를 주장한 사안이다. 원심은 피고의 항변을 배척하였다.그러나 대법원은 의사능력을 판단함에 있어서 해당 법률행위의 난이도에 비추어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법률적인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지,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 등에 비추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판시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 대출약정의 복잡성에 비추어 피고가 그 약정의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가 굴삭기를 운전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 비추어 이 사건 대출약정을 할 동기를 찾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대출약정은 무효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보았다.2. 의사능력 유무의 판단기준(1)칸트에게 있어서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 이성의 본질은 자율성(Autonomie)에 있다고 보았다. 민법은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의사에 기하여 자신의 법영역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적 자치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계약의 구속력에 대한 강조도 사적 자치의 원칙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체결한 계약에 대하여는 사적 자치보다는 국가의 후견적 개입이 요청된다. 이에 따라 의사무능력자의 행위는 무효로 보고 있다.(2) 대법원은 그동안 의사능력 유무는 법률행위별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왔다. 정신적인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여러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일률적으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고 각 계약의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비교적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계약에 대하여는 효력을 인정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효로 보기 쉽다. 대상판결에서는 이 사건 대출약정의 내용이 복잡하다는 점을 중요한 고려요소로 삼았다. 즉 이 사건 대출약정은 굴삭기 구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서 굴삭기는 실질적으로 대출금채무의 담보가 되고 대출금은 굴삭기 매도인에게 직접 지급되는 구조이므로, 피고의 지적능력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았다.(3)의사능력에서 말하는 「의사」는 행위 의미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일정한 법률효과를 의욕하려는 의지적 요소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법률행위가 이루어지게 된 동기가 경위 등에 비추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면 그러한 의지적 요소를 인정하기 어렵다. 대상판결에서도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사건 대출금은 피고가 아닌 굴삭기 공급자에게 직접 지급되어 피고가 이를 받지 않았으며, 피고는 굴삭기를 운전할 능력이 없었는바, 피고가 굴삭기 매수를 꾀하기 위하여 이 사건 대출약정을 할 동기를 찾기 어려웠던 사안이다.대상판결은 의사능력 유무에 대하여 세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향후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대출금을 부당이득반환으로 구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이 사건 대출금의 실제 사용경로에 비추어 피고는 이득소멸의 항변을 통해 책임을 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이득소멸의 항변에 대하여는 졸고, 수익증권 매매계약 취소에 따른 부당이득의 법률관계와 이득소멸의 항변, 최근 판시로는 대법원 2022. 10. 14. 선고 2018다244488 판결).Ⅲ. 추가배당과 소멸시효 중단1. 쟁점과 판결요지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80026 판결에서는 추가배당이 실시된 경우에 당초의 배당요구에 의한 시효중단 효력이 계속되는지 문제가 되었다. 피고는 임차보증금반환채권에 기하여 배당요구를 하여 피고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배당표(이하 ‘1차 배당표’)가 2011년 5월 12일 작성·확정되었다. 그런데 위 경매절차에서 가압류채권자에 대하여 배당액을 공탁하였는데 위 공탁금을 가압류채권자에게 전액 지급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19년 6월 4일 추가배당이 실시되었다.원심은, 피고가 1차 배당표가 확정된 날부터 5년이 경과한 2019년에 응소를 하였으므로 피고의 채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추가배당이 실시되어 당초 배당표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배당요구에 의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은 추가배당표가 확정될 때까지 계속된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2. 추가배당이 소멸시효 중단에 미치는 영향배당요구에 대하여는 압류에 준하여 시효중단효를 인정되는데, 배당표가 확정되면 변제효가 발생하므로 배당요구에 의한 권리행사는 종료되고, 배당표 확정일 다음날부터 시효가 다시 진행한다(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8다89880 판결).1차 배당이 이루어지고 나서 추가배당을 하는 경우에 추가배당의 성격이 문제가 된다. 추가배당에 있어서 각 채권자들은 추가배당을 받기 위해 새롭게 배당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 또한, 각 채권자들은 종전 배당절차에서 제출되었던 배당요구의 종기까지의 채권 이상을 보충할 수 없다. 추가배당표에 대하여 배당이의할 수 있으나 추가배당표에 대하여 종전 배당표 확정 시 이전의 사유로는 이의를 할 수 없다(민사집행법 제161조 제4항). 결국 추가배당은 당초 배당절차의 계속인 것이다.따라서 1차 배당 시에 행하여진 배당요구는 추가배당을 위한 권리행사로도 볼 수 있다. 대상판결은 이 점에 착안하여 추가배당이 실시된 경우에는 배당요구에 의한 권리행사가 추가배당표 확정시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판시한 것이다.Ⅳ. 구분소유자의 대지지분권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의무1. 쟁점과 판결요지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7다25706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집합건물의 대지지분권만을 가지는 자가 「적정 대지지분」을 가진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되었다.대법원은 종전에 부당이득반환을 인정한 판례를 폐기하면서 “집합건물에서 전유부분 면적 비율에 상응하는 적정 대지지분을 가진 구분소유자는 그 대지 전부를 용도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있는 적법한 권원을 가지므로, 구분소유자 아닌 대지 공유자는 그 대지 공유지분권에 기초하여 적정 대지지분을 가진 구분소유자를 상대로는 대지의 사용·수익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2. 구분소유관계의 특수성이 부당이득에 미치는 영향(1) 집합건물법 제21조, 제12조에 비추어 구분소유자가 집합건물의 전체 전유부분 면적에서 자신의 전유 부분의 면적비율에 상응하는 대지 공유지분을 가진다면 ‘적정한’ 대지사용권을 확보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적정 대지지분」을 가진 구분소유자가 전유부분 없이 대지지분권만을 갖는 원고에 대해서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는지 문제가 된다.등기부상으로 적정 대지지분 구분소유자는 원고와 대지의 소유권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공유물에 관한 법리(대법원 1991. 9. 24. 선고 88다카33855 판결)를 적용하게 되면, 지분은 있으나 사용·수익을 전혀 하지 않는 원고는 특정부분을 배타적 사용·수익하고 있는 적정 대지지분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그러나 대상판결은 집합건물 대지의 경우에는 이러한 공유물에 관한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집합건물 대지의 공유관계는 일반적인 공유관계와 다른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① 구분소유자들은 공유물인 대지를 전부 사용·수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유부분에 존재하는 토지를 단독으로 사용·수익하며, ② 구분소유자들은 전유부분을 소유하기 위한 목적에서 대지지분을 가지는 것이므로 대지지분은 따로 처분될 수 없고 전유부분에 종속되어 있다는 특수성이 있다.이러한 특수성에 비추어 집합건물 대지에 관한 사용·수익관계는 대지 중 각 전유부분 면적 비율에 상응하는 특정 부분을 점유하면서 사용·수익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대지사용권의 사용·수익관계는 단독소유권과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적정 대지지분 구분소유자는 대지의 점유·사용을 정당화하는 권원을 확보한 것이다. 따라서 원고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지지 않는다.(2) 이와 달리 적정 대지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대지지분권자(‘부족 대지지분권자’)는 대지지분권만을 가지는 자에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부족 대지지분권자가 수인인 경우에 분할채무를 부담하는지 불가분채무를 부담하는지 문제가 된다. 대지사용권의 사용·수익관계는 위와 같이 단독소유권과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분할채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1991. 9. 24. 선고 88다카33855 판결).한편, 부족 대지지분권자가 적정 대지지분보다 많은 대지지분을 보유한 구분소유자에 대해서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지는지 문제가 되는데, 마찬가지로 대지사용권의 사용·수익관계는 단독소유권과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부정해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5. 3. 14. 선고 93다60144 판결).Ⅴ. 계약명의신탁과 소유의 의사1. 쟁점과 판결요지대법원 2022. 5. 12. 선고 2019다249428 판결에서는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신탁자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부동산을 점유하는 경우 소유의 의사가 인정되는지 문제가 되었다. 원심은 명의신탁 약정은 당사자 사이에서는 명의신탁자가 목적물의 소유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명의신탁자에게 소유의 의사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신탁자는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아니어서 소유자를 상대로 이전등기청구를 할 수 없고, 명의신탁자는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자주점유 추정은 깨어진다고 판시하였다.2. 권원 중심의 취득시효 법리와 자주점유 판단(1) 성립요건주의와 등기의 추정력을 인정하는 우리 법제에서는 점유보다는 등기를 우선시하여 물권법 질서가 구축되어야 한다. 성립요건주의에서 취득시효 제도는 등기를 한 자의 권리를 빼앗고 점유를 한 자를 보호하는 제도이므로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 법상으로 취득시효 제도는 어떤 경우든지 등기를 한 자, 즉 소유자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이므로 프랑스와 같이 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운영될 수는 없다. 따라서 「소유의 의사」에 대하여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럼에도 소유의 의사는 어느 물건을 마치 소유자인 것처럼 지배하려는 자연적 의사, 내심의 의사라고 설명하는 견해가 많았는데, 우리와 달리 의사주의를 취하는 프랑스, 일본의 견해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성립요건주의를 취하는 우리 법제에서는 이와 같이 해석할 수 없다. 우리 법제에서 소유의 의사는 소유자를 희생하면서까지 점유자를 보호할 예외적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즉 해당 점유자가 소유권 취득의 원인이 되는 권원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소유의 의사에 기한 점유」는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는 권원에 기한 점유」로 정의할 수 있다(졸고, 권원 중심의 취득시효 법리와 자주점유 판단). 따라서 점유의 원인이 된 법률행위에 의하여 점유자 앞으로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2) 소유의 의사를 내심의 의사로 본다면 계약명의신탁의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소유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 명의신탁자는 명의신탁 대상 토지를 자신의 소유라고 내심 생각하고 점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신탁자는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아니어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계약명의신탁에서 매매계약은 매도인과 명의수탁자 사이에 체결되는 것이고, 매도인이 선의인 경우에는 명의수탁자가 소유권을 취득하고 매도인이 악의인 경우에는 매도인에게 소유권이 인정된다. 명의신탁자는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매도인에 대하여 이전등기를 구할 권원이 없다. 대상판결은 명의신탁자가 소유권 취득이 가능한 법률행위에 기하여 점유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한 것인바, 권원 중심의 취득시효 법리를 정확하게 구현하였다는 점에서 타당하다.Ⅵ. 선관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유치권 소멸범위1. 쟁점과 판결요지대법원 2022. 6. 16. 선고 2018다301350 판결은 유치권자가 선관주의위무를 위반하여 채무자측이 유치권 소멸청구를 한 경우에 유치권이 어느 범위에서 소멸하였는지를 다룬 최초의 판결이다.피고는 갑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 55필지에 관하여 토목공사를 도급받아 시행하였으나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여 왔다. 그런데 피고는 갑의 동의 없이 이 사건 토지 중 8필지를 직접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사용을 허락하였다. 갑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은 원고 측은 피고의 행위가 채무자의 승낙 없는 유치물의 사용, 대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토지 전부(全部)에 대한 유치권소멸을 주장하며 이 사건 토지의 인도를 구하였다.대법원은 “하나의 채권을 피담보채권으로 하여 여러 필지의 토지에 대하여 유치권을 취득한 유치권자가 그중 일부 필지의 토지에 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반행위가 있었던 필지의 토지에 대하여만 유치권 소멸청구가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고 판시하며 이 사건 토지 全部가 아닌 무단 사용이 이루어진 8필지에 대하여만 유치권이 소멸한다고 판단하였다.2. 유치권 소멸청구와 그 범위(1) 대상판결과 같이 동일한 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복수의 토지를 점유하며 유치권을 행사하는 경우 토지들 전부(全部)에 대하여 하나의 유치권이 성립하는지, 아니면 토지별로 하나의 유치권이 성립하는지 문제가 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치권도 물권인 이상 일물일권주의에 따라 하나의 물건마다 하나의 유치권이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도 토지별로 유치권이 성립함이 원칙임을 전제로 판단하였다.(2) 민법 제324조는 유치권자가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채무자의 유치권 소멸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이 사건 토지 중 8필지에 대하여 피고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어 원고 측이 유치권 소멸청구를 한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하여 소멸되는 유치권의 범위이다. 우선 유치권을 각 토지마다 성립한다고 본다면 유치권 소멸 청구도 유치권자가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한 해당 유치물에 한하여, 즉 해당 유치권에 한하여 소멸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유치권 소멸청구와 같은 물권의 소멸 원인은 해당 물권에만 적용되고 임의로 다른 물권까지 확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원고 측은 해당 유치권 외에 다른 토지에 대한 유치권까지 소멸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논거로 「유치권의 불가분성」을 주장하였다. 「유치권의 불가분성」은 복수의 유치물이 있어서 복수의 유치권이 성립하는 경우에 각 유치물은 다른 유치물과 무관하게 채권 전부를 담보한다는 것으로 유치권자의 이익(利益)을 위한 법리이다. 유치권의 불가분성을 근거로 유치권 소멸청구에 의해 소멸되는 유치권의 범위를 확장한다면, 유치권자에게 이익(利益)을 주기 위한 법리가 불이익(不利益)을 가하기 위한 법리로 둔갑하게 된다. 원고 측의 주장은 유치권의 불가분성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오해한 것이다.한편, 유치권 소멸청구는 유치권자의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바, 제재에 있어서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요청된다. 따라서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필지에 대한 유치권만 소멸한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사안을 달리하여 1필의 토지 중 일부에 대해서만 유치권자가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1필지 중 일부에 대해서만 유치권 소멸청구가 인정되는지 문제가 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1필지별로 하나의 유치권이 성립하므로 유치권 소멸청구에 의하여 소멸되는 유치권은 위반이 문제되는 필지별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1필지 전부에 대한 유치권이 소멸한다고 보아야 하며, 대상판결도 이런 전제에서 판단하였다.Ⅶ. 근질권이 설정된 채권에 대하여 전부명령이 내려진 경우의 법률관계1. 쟁점과 판결요지대법원 2022. 3. 31. 선고 2018다21326 판결에서는 근질권이 설정된 임차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하여 임차인의 채권자(피고)가 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아 임대인으로부터 임차보증금 전액을 지급받은 경우에 근질권자(원고)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는지 문제가 되었다.대법원은 근질권자는 여전히 임대인(제3채무자)에게 임차보증금의 지급을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근질권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핵심 판시는 다음과 같다. “질권의 목적인 채권에 대하여 질권설정자의 일반채권자의 신청으로 전부명령이 내려진 경우에도 그 명령이 송달된 날보다 먼저 질권자가 확정일자 있는 문서에 의해 대항요건을 갖추었다면, 전부채권자는 질권이 설정된 채권을 이전받을 뿐이고 제3채무자는 전부채권자에게 변제했음을 들어 질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2.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종전에 대법원은 근질권이 설정된 금전채권에 대하여 제3자의 압류로 강제집행절차가 개시된 경우, 근질권의 피담보채권의 확정시기에 대하여 논하면서 ‘근질권의 목적이 된 금전채권에 대하여 제3자의 압류로 강제집행절차가 개시된 경우, 제3채무자가 그 절차의 전부명령에 따라 전부금을 제3자에게 지급하게 되면 그 변제의 효과로서 위 금전채권은 소멸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9다43621 판결).그러나 ① 근질권이 설정된 금전채권에 대하여 전부명령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질권이 우선하므로 전부채권자는 근질권이 설정된 채권을 이전받은 것으로 보아야 하고, ② 제3채무자가 근질권자의 동의 없이 채무를 전부채권자에게 변제하는 경우에 근질권자에 대항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위 판시는 타당하지 않다.대상판결은 종전의 잘못된 판시를 바로 잡은 판결이다. 제3채무자인 임대인은 근질권자에게 변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채무를 면할 수 없으며, 압류가 있다는 이유로 권리공탁을 통해 면책을 주장할 수도 없다. 따라서 근질권자는 제3채무자가 전부채권자에게 변제하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제3채무자에게 임차보증금의 지급을 구할 수 있으므로 근질권자의 전부채권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손해」요건을 결하여 인정될 수 없다.미국의 판례법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선례의 제한해석(distinguishing)을 통한 발전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선례의 제한해석은 때로는 선례에 대한 부분적 파기(partial overruling)를 의미한다(Eisenberg, The Nature of Common Law). 대상판결을 보며 대법원 판례 형성과정이 미국의 판례법 형성과정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판례의 제한해석을 통한 부분적 파기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Ⅷ. 기타 중요 판결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7다23674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이 현재에도 여전히 관습법으로서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었는데, 대법원은 그 효력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이 인정되는 전형적인 상황, 즉 토지와 건물을 모두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 건물만을 매도한 경우에 토지소유자와 건물양수인의 토지이용관계에 대한 의사를 지상권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상권과 임차권의 차이, 실제 거래에서의 임차권에 대한 선호에 비추어보면 매우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실세계에서 관습법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졸고, 관습법상 법정지상권 법리의 재검토). 한편, 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1다276256 판결은 토지 소유자는 「건물소유자」에 대하여 건물의 철거와 대지 부분의 인도를 청구할 수 있을 뿐, 건물에서 퇴거할 것을 청구할 수 없고, 이러한 법리는 「건물의 공유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았다. 공유자가 공유물의 소유자로서 공유물 전부를 사용·수익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므로 건물을 독점적으로 점유하더라도 그 소유 지분과 관계없이 자기 소유의 건물에 대한 점유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토지 소유자는 「건물 점유자」에 대해서는 퇴거청구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다43801 판결).이계정 교수(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