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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만나는 법] 유도로 심신을 다진 ‘검사계의 아이돌’

    정거장 서울중앙지검 검사

    김도언 시인(소설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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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리철학이 낳은 금언 같은 말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가 그것인데, 좀 엉뚱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저 정언적 명령을 개별적 삶 일반에서 가장 철저히 지키는 직업이 아마 검사가 아닐까 싶다. 정거장 검사(37·변시2회)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저 명제가 떠올랐던 것은 그의 말이 거르고 거른 사금처럼 정제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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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   력 ]

    전주고와 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한 정거장 검사는 2013년 제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2017년 3월 부산지검 서부지청 검사로 임관했다. 창원지검 진주지청을 거쳐 2021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발간된 '슬기로운 검사생활'의 저자다.

    밝고 활달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에겐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 불행한 개인사가 있다. 그 사고는 가해자가 존재하는 일종의 ‘사건’이었는데 이에 대한 당시의 감회를 물으려 하자 그가 돌연 조심스럽게 답을 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의 변은 이랬다. 자신의 직업이 검사인데 그 개인적 사건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나중에 유사한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 사건 당사자들로부터 검사로서의 중립적인 태도를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이성적으로 양형기준을 적용해도 당사자들은 검사 개인의 사감私感이 개입되지 않았을까 의심할 수 있다는 것. 거기서 나는 정 검사가 얼마나 삼엄하게 자신을 저울 추 위에 올려놓고 사는 이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부재한 자리는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부족함 없이 메워주었다고 했다.)

    정거장 검사는 올해 8년차 검사이고 법무관까지 치면 11년째 법복을 입고 있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점에서는 교대나 육사 진학 등도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사나 군인은 평생 신분이 정해져 있는, 마치 고정된 직분 같은 것이라 여겨져서 학부에서는 철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그의 내면세계가 흑과 백 같은 양극 성분이나 기계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지만은 않으리라는 짐작은 그래서 타당하리라.

    “태어나기는 전주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독립기념관에서 일하셔서 천안에서 자랐어요. 초등학교도 걸어서 30분 이상 가야 하는 시골이었죠. 거기서 사시사철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봄에는 아카시 향기가 도처에 피어났고 가을에는 밤을 주우러 다녔어요. 부모님은 따뜻한 분들이었고요. 아버지는 마당에 농구대도 만들어주시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저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정 검사는 자연으로부터의 감화를 성장기의 중요한 모티프로 꼽는다. 자연이라는 건 꾸밈이 없는 세계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눈망울은 연옥을 통과한 무구한 동물의 그것처럼 보였다. 부산과 진주에서 근무하던 그는 재작년 검사들이 선망하는 서울지검 발령을 받았다. 평일 늦은 오후였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라곤 없고 막 세수를 한 듯 청신함이 느껴졌다. 청년검사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인상이랄까. 그에게 다짜고짜 검사라는 직업의 만족도를 물었다.

    “(다소 부담스러운) 사회적인 시선, 급여 수준, 근무 환경 등을 생각하면 50점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발전가능성이라든가 업무 수행 중에 느낄 수 있는 보람이나 희열 등을 보면 99점을 주고 싶어요. 요즘 검사들 영역은 과거에 비해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거든요. 각 검사들이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면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에요.”

    유도는 상대방과 함께 땀 흘리고

    몸을 부딪치며 격렬하게 대결
    처음과 마지막에 도복 매무새를 가다듬고

    인사 나누는 모습이 매력

    상대방을 이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 다하지만 상대의 존중과 가치를 잃지 않는 것.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쉬지 않고 달리지만
    법과 양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검사와 닮아.


    정거장 검사가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작년 초 <슬기로운 검사생활>이라는 책을 펴낸 후부터다. 책은 검사 부임 이후 7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검사가 온몸으로 읽어낸 우리 시대의 풍속화라고 할 만하다. 그는 번아웃을 느껴 자신의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치유와 회복을 모색하기 위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책을 쓰던 때의 소회를 물었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글쓰기를 하는 게 어려운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검사로서 직업적 글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이를테면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던 형용사나 부사를 써야 하는 게 낯설었죠. 그리고 한글 워드프로그램으로 글을 쓰다 보면 한 단어가 행갈이 중에 띄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래서 결국에는 공책에 펜으로 글을 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정 검사는 30대 한창 나이의 서울중앙지검 검사다. 검사는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이 보장되고 또 환대와 동경을 받는 직업이다. 그리고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 힘을 개인적인 이익과 욕망의 해소를 위해 쓰고 싶은 유혹도 있을 수 있으리라. 실제로 어떤 검찰 선배들은 그 유혹과의 싸움에서 패해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유혹을 경계하는 것이 바로 윤리적 감수성일 텐데, 이를 위해 정 검사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했다.

    “내게도 그런 욕망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저도 사람인지라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소소한 예지만 수사에 비협조적이거나 불성실한 피의자를 보면 어느 순간 괘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법에서 정해진 양형을 지키는 게 옳은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시와 소설, 문학적인 글을 읽으면서 인간과 삶의 주제에 대한 것들을 성찰하고 윤리적 감수성이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도움이 되었구요.”

    내친 김에 검사 출신들이 정계에 나가 정치를 하는 관행에 대해 현역 검사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마저 물었다. 어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검사라는 직업이 사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을 내리는 일이잖아요. 각자 입장이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종합하는 거죠. 정치 역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에서 검사들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치가 다루는 문제 중에는 법칙이나 논리칙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과 논에 익숙한 검사 출신들은) 대중의 마음과 감정을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소홀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검찰 내부에서는 여전히 인사 부분에서 특정한 부서 출신들이 고과나 평점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지는 모르지만 혁역 검사로서 그가 어떤 체감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제가 아직은 승진 대상이 아니어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저는 일한 만큼 평가가 이뤄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가만 보면 묵묵히 일하는 검사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결국에는 능력을 인정받아서 적절한 보직에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계시더라구요.”

    모범 답안 같아서 아주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그의 눈동자를 보니 또 그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것이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이번에도 다소 난이도가 있는 질문을 던졌다. 법적 정의를 지키려는 세력과 정치적 정의의 목소리를 높여온 세력이 지난 몇 년 간 극한 대립을 했고, 그 결과 법적 정의가 정치적 정의에 의해 위축되어온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의견에 동의한다면) 법률가들이 기울어진 법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낼 수 있는 목소리는 무엇인지.

    “검사로서, 수의 논리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제도를 바꾸는 걸 보면서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럼에도 법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법체계나 법질서 안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자기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차분하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꾸준히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하구요. 목소리를 내면서 집단행동을 하는 건 법률가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내부자로서 정 검사가 생각하는 검찰 조직 내의 개혁 대상은 무어라고 보고 있을까.

    “검찰 내부의 인사 관행에 아쉬움이 있어요. 짧게는 6개월 평균 1년을 텀으로 보직이 자주 바뀌거든요. 그런데 이게 사건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사건이 계속 지연되는 것이거든요. 피해자든 고소인이든 그들은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사건이 지연되면 일상적 삶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담당 검사가 자주 바뀌면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거죠. 근무 환경이나 동료, 주거지가 바뀌는 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요. 사건 당사자들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올해 변호사시험은 12회 합격자를 배출했다. 정거장 검사는 2회 출신이다. 변시 출신 법조인 숫자가 사범시험 출신 법조인 숫자를 넘어선 것도 꽤 됐다. 일각에서는 변시 출신 법조인들의 자질이나 능력의 편차가 좀 심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과 함께 아울러 로스쿨 제도의 맹점에 대해 물었다.

    “비판하신 분도 어떤 주관적 경험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 텐데, 제 주변 변시 출신들을 보면 이렇게 뛰어난 친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능력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변시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분야와 직군에서 법조계로 들어오기 때문에 법률 서비스의 전문성이 강화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와 함께 장학제도도 있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겪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어요. 다만 로스쿨이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대학 및 학부를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한 과정 정도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는 건 한번쯤 되짚어볼 문제인 것 같아요.”

    그의 취미는 뜻밖에도 유도와 낚시라고 했다. 유독 규율이 강하고 높은 수준의 절제력을 요구하는 검찰 조직의 구성원으로 그가 받는 스트레스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검사 선배들은 그가 초임검사로 들어왔을 때 좋은 취미를 가지라는 조언을 했단다. 검사 임관하고부터 시작해 지금은 양손엎어치기가 주특기인 유단자라는 그에게 유도의 매력이 뭔지 물었다.

    “유도는 상대방과 함께 땀 흘리고 몸을 부딪치며 격렬하게 대결을 하지만 처음과 마지막에는 정갈하게 도복 매무새를 가다듬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 속에 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이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잃지 않는 거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달리지만 법과 양심이라는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검사의 자리와 닮아 있어서 유도를 좋아해요.”

    한때 성우와 아나운서를 꿈꾼 적이 있다는 그는 대학 때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도서관에서 녹음 봉사를 해 오디오북 제작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딕션은 아나운서의 그것처럼 또렷해서 가청도가 높았다. 현역 서울중앙지검 검사로서 정 검사는 지금 의료분야 사건을 맡고 있는데, 10년 후쯤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냐고 물으니, 계속 의료 분야를 파고들어서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워낙 신언서판이 뛰어난 그에게 혹시 정치나 공직 쪽에서 제안이 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는 질문에는 그 시점에서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서 결정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세계 팝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K-Pop의 성취는 자신의 재능을 치열하게 보듬고 긴장과 절제 속에서 갈고 닦은 ‘아이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정거장 검사에게 (물론 그는 손사래를 치겠지만) 긍정과 선의의 맥락에서 감히 ‘검사계의 아이돌’이라는 별칭을 붙여보고 싶다. 많은 이들의 기대와 신뢰 속에서 사랑을 받고 성장한 아이돌이 자신의 재능을 우리 사회에 즐거움으로 돌려주고 있듯이, 자신의 직분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정 검사 역시 자신의 달란트와 양심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의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겪은 개인적 아픔을 혹여 공익적 감수성을 해칠까봐 꾹꾹 속으로 삭인 그 마음밭의 넉넉한 넓이와 깊이라고 말하겠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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