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도쿄대 혼고캠퍼스 내 야스다 강당에서 열린 ‘AI 법정 모의재판’ 현장.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 판사가 무대 뒷편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 판결을 내리고 있다.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AI가 인간을 심판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은 AI의 법적 판단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본 도쿄대 학생들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실험에 나섰다.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에 판사 역할을 맡겨 모의재판을 열고 '사법권을 AI에 맡겨도 되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한국 법조에서는 AI가 인간 판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챗GPT 판사는 민주주의적일까, 엘리트주의적일까"
NHK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13일 도쿄대학 혼고캠퍼스에서 'AI 법정 모의재판(AI法廷の模擬裁判)'이 열렸다. 챗GPT의 최신형 모델인 'GPT-4'가 판사 역할을 맡고, 변호사와 검사, 피고인 역은 도쿄대학 학생들이 맡았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오카모토 준이치(도쿄대 법대 3학년생) 씨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삼권의 하나인 '사법권'을 AI에게 맡겨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면서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모든 문장을 학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일 수도 있지만, 과거 판례를 학습한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일 수도 있다. 사법부에 AI를 도입한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요구할 것인가. 방청객들이 미래 사법의 모습을 체험해보고, 사법 본연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모의재판은 가상의 사건을 상정해 열렸다. 전 연인에게 성희롱을 당한 여성이 현재 연인에게 이를 알리자 현 연인이 전 연인을 살해했고, 이 여성은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는 설정이었다. 검사는 피고인 친구의 증언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피고인은 살해를 의뢰하거나 살해 계획을 공유하지 않았다. 공모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잘못됐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AI 판사는 모의법정 뒤편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컴퓨터그래픽(CG)으로 등장했다. 기계로 재생되는 음성을 통해 증인 등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AI 판사의 선고가 나오기 직전, 방청객을 대상으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묻는 온라인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기계와 인간의 판단을 비교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응답자 864명 중 559명이 '무죄'를, 305명이 '유죄'라고 답했다.
AI 판사는 피고인이 무죄라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살인죄의 공범이라고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피고인이 (전 연인에게)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살해 계획이나 공모가 확정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을 지켜본 40대 여성은 “판사가 인간이었다면 좀 더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판사가 AI라서 이점도 있는 것 같다. 피고인이나 증인의 외형 등 인간 판사라면 영향을 받는 것들에 대해 AI는 영향을 받지 않으니 더욱 공평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50대 남성 방청객은 "사람의 판결과 기계의 판결을 모두 비교할 수 있어 재밌었다. 현시점에서 형사 재판은 인간 판사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법률가들 "AI, 판결문 학습해 법관 업무 보조할 수 있어"
한국 법조에서는 AI가 법관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한편, 법관들이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강민구 (65·사법연수원 1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법률신문과 법무법인 디라이트가 '생성형 AI'를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챗GPT는 사건 구성이나 해결에 적합한 판례와 법조문을 빠른 시간에 찾아 응답할 수 있다"면서 "판결문 작성이나 준비서면 요약을 돕는 비서로 활용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챗GPT와 같은 언어생성형 AI는 판결문 같은 법률 문서를 많이 학습하면 할수록 활용도가 높아진다. 한국형 법률 AI가 발전하기 위해 법원이 제한적으로나마 판결문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