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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로펌의 역사… 법무법인 김장리 창설 50년

    판사출신 故김흥한 변호사 美 유학후 1958년 귀국
    국내 여성변호사 1호 이태영씨와 함께 사무실 열어
    1965년 장대영 변호사 합류… '김장리'로 본격 활동

    윤상원 기자 news8@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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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법인 김장리가 9월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김장리의 창립 50년은 한국 로펌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평가이다.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불과 5년만인 1958년 경제적·법률적으로나 모든 것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 땅에 서울지법 판사출신으로 1954년 미국유학을 떠나 4년만에 귀국해 국내 최초의 국제거래 전문변호사로 변신한 고 김흥한(조선변시 3회·2004년 작고)변호사가 사무실을 냈다. 김 변호사는 장모이자 국내 여성변호사 1호인 이태영 변호사와 함께 김흥한·이태영 법률사무소의 간판을 광화문 인근 현 코리아나호텔 뒤 골목에 내걸었다.

    당시 변호사업무는 99.9%가 송무사건이었다. 더구나 고시선발인원도 5~수십명에 불과해 전원 판·검사로 임관되는 실정이어서 변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이런 변호사업계에서 기업자문업무를 시작한 것은 매우 생소했지만 국내에 로펌이 태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물론 초기에는 개인법률사무소 형태를 띠었지만 김 변호사는 경향신문 폐간사건 등 일감이 많아지자 미국변호사를 고용하고 영어를 잘하는 교수 등을 파트타임으로 두고 일했다. 1965년 서울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고 장대영 변호사가 합류함으로써 비로소 김장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김장리의 신화는 1961년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직후 외자유치가 본격화되면서 외국기업의 섭외사건 의뢰가 봇물처럼 쏟아지자 본격적인 국제거래 로펌으로 탈바꿈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영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유일한 변호사인 김 변호사에게 걸프오일사를 첫 고객으로 웨스팅하우스, 코카콜라, IBM 등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줄을 섰다. 은행들도 체이스맨해튼, 시카고은행 등 세계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 손들이 김 변호사의 손을 거쳐 국내에 상륙했다. 70년대 중반까지 독점적으로 기업자문사건을 처리한 이 시기는 김장리의 전성기였다.

    김의재 대표변호사는 “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포춘 500’에 드는 거의 모든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당시 김장리는 좋은 고객이 많은 반면 일손이 달리는 형편이었고, 지금 국내 1위의 로펌인 김&장은 우수한 인력에 비해 일감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이같이 국내 최초의 로펌인 김장리를 시작으로 당시 국내 주요 로펌의 설립자들은 한결같이 미국 유학파들이다. 국제거래 변호사 1호인 김 변호사를 비롯, 김신유의 김진억, 김앤장의 김영무, 광장의 이태희, 세종의 신영무, 우방의 윤호일 변호사 등이 모두 국내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식 로펌을 경험하고 국제거래 법률사무실을 열었다. 여기에다 순수한 토종인 태평양의 김인섭 변호사 등을 일컬어 한국로펌의 1세대로 분류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김&장은 우수한 인력과 적극적인 영업활동으로 선두에 올라서게 되고, 김장리와 김신유가 함께 3각 체제를 이루게 된다. 김장리는 81년 황주명 변호사를 영입해 보다 적극적인 사세확장을 도모하려고 했지만 93년 황 변호사가 3분의 2에 해당하는 다수의 변호사와 함께 김장리를 탈퇴, 독립(현재의 법무법인 충정)하면서 김장리는 존폐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김장리는 김의재 대표의 적극적인 영업활동과 새로이 합류한 최경준 변호사의 탁월한 업무능력에 힘입어 불과 3~4년만에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김장리의 약점은 규모가 작다는 점이다. 규모가 로펌의 실력을 말하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들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를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가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김장리 또한 외형적인 확장을 시도, 2005년 송무중심 로펌인 바른과의 합병을 통해 시너지확대를 노렸지만 양 로펌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올 4월 결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안정적인 조직운영을 바탕으로 다시 세무법인 하나와의 업무제휴 및 적극적인 변호사의 영입으로 사세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김장리는 지난 7월에 금융 전문로펌 평산과 합병, 법무법인 ‘양헌’으로 새출발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최근 성사된 현대중공업의 CJ투자증권인수 건에서 김장리와 평산은 합병 전부터 이미 유기적인 공동 법률자문을 통해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창출해냈다. 이 같은 시너지효과는 합병으로 더욱 가시화되고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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