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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최선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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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든지 어디선가 한 번씩은 들어봤음 직한, 초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배울 때에 제일 처음 배우는 글귀이다. 인간은 타인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명언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존재 가치 내지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타인의 이익과, 또는 공동체의 이익과 충돌하는 상황도 초래한다.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쾌적하게 살 이익을 누리기 위하여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그에 이웃하여 사는 누군가는 고스란히 그로 인한 소음을 감당하여 쾌적하게 살 이익을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이익의 충돌 간에 자율적인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최종 종착지는 대개 법정이 된다. 법정에서 소송이 진행된 결과 선고된 판결은 미리 정해진 기준인 법에 의하여 그 중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수 있지만, 바로 그와 같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데에 그 한계가 있다. 당사자들은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 서 있고, 그 당연한 귀결로 판결이 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되는 경우란 매우 드물다. 판결에 만족하는 당사자가 있으면 그에 불만족하는 당사자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판결의 결단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형태의 종결이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때도 있다. 양 당사자들이 누려야 할 쾌적한 생활에 관한 이익이 모두 존중되어야 함이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사로 인한 부담을 어느 한쪽만이 지도록 하는 판결로 분쟁을 종결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의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인간은 타인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되새긴다면, 그래서 나도 얼마든지 타인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이익이 완전한 형태로 추구될 것만을 고집할 수 없음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희생될 수밖에 없음을 보다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최선의 답에 이르는 단초가 될 것이다.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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