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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노트

    위험관리능력을 키워라

    김재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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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의 A사는 한국의 B사에 채권을 가지고 있었다. B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A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채권신고를 하였다. B사가 회생계획에 따른 변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B사의 채무를 보증한 한국의 C사에 대해 보증채무이행을 청구하기로 했다. A사는 박 변호사에게 시효가 충분히 남아 있는지 물었다. 박 변호사가 이에 대한 답을 하려면 준거법, 채권의 성질, 회생절차가 보증채무 시효중단에 미치는 효과 등 여러 쟁점을 검토해야 했다.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런데 심도 깊은 검토를 A사가 원하지 않았다. 고객이 원하지도 않는데 시간을 들여서 검토 작업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박 변호사는 여러 쟁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다음 한국법상 상거래채권의 소멸시효가 5년이고, 회생절차에서 채권신고를 하여 주채무의 시효가 중단되었다면 보증채무의 시효도 중단된다고 간단하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지금 A사에게 중요한 것은 빨리 법적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흘러 일부 채권이 시효로 소멸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A사는 당황해 하면서 "시효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박 변호사에게 항의하듯이 물었다. 물론 박 변호사는 그런 의견을 준 적이 없다.

    모든 변호사들은 이런 상황에 심심찮게 봉착하게 된다. 위의 사례는 가벼운 것이고 심각한 상황도 많다. 의견을 줄 때에는 분명히 의견의 조건을 달았다. 그런데 고객은 이것을 간과한 채 자기에게 유리한 결론만 기억한다.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되면 변호사를 원망하게 된다. 특히 자문업무를 하면 바로 문제가 생기지 않고 1년이나 2년이 지난 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시간차는 변호사들이 상황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위험관리는 모든 변호사들의 숙제이다. 위험관리를 어떻게 하면 될까?

    첫째, 의견을 줄 때 전제조건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변호사가 의견을 줄 때에는 그 의견에 여러 조건이 묵시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예를 들면, '현행 법령에 따를 때', '주어진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할 때' 등등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변호사들은 말이나 글로써 이런 조건들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심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외국변호사들은 다른 것 같다. 외국 로펌의 의견서를 보면 많은 조건들이 언급되어 있다. 심지어 3페이지 의견서에 전제조건이 2페이지가량 달려 있기도 하다. 이들 의견서에 담긴 전제조건의 뉘앙스를 내가 해석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제공받은 자료만을 검토하고 의견을 드리는 것이에요. 우리는 다른 서류를 검토하지 않았고, 다른 서류를 검토할 의무도 없어요. 충분한 서류를 검토하였다고 말하지도 않지요. 우리는 해당 법령만 검토하였을 뿐이에요. 관련 있는 다른 나라 법을 검토할 의무도 없고 검토하지도 않았어요. 오해하시면 안돼요. 주신 서류들은 완벽하고 적법하게 잘 작성되었다고 믿어요. 알려 주신 모든 사실관계는 진실이라고 믿어요. 이 의견은 현재 주어진 사실관계에 국한한 것이에요. 상황의 변경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우리 의견에 반영할 의무가 없어요. 이 의견을 절대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돼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 잘못돼도 절대 우리를 탓하지 마세요."


    얄밉게 보일지 몰라도 이러한 조건을 다는 것은 의견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고객이 오해함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분쟁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변호사들은 의견을 줄 때 의견의 전제조건을 깊이 생각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고객에게 이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고객과 소통을 잘 해야 한다. 고객과의 소통은 업무를 잘 추진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변호사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는데도 필요하다. 그런데 소통을 잘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정확하게 이야기해도 고객은 다르게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의 말을 믿고 일을 했는데 낭패를 보게 되었다며 변호사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변호사는 조력자이며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고객이 져야 한다'는 점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변호사님만 믿겠습니다"라고 고객이 이야기할 때, 이 말을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해서 말해야 할 때도 있다. 고객과 말로 소통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이메일 등 문서의 형태로 소통을 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이렇게 해서 고객과 소통을 잘 하면 결과가 좋지 않거나 패소해도 고객은 변호사를 탓하지 않는다. 고객은 자기를 소외시키고 변호사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여 사건을 망친 것을 탓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고객과 소통을 잘 하는 것은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셋째, 고객이 오해할 때 감정적으로 대처하면 안 된다. 사정을 잘 모르는 고객은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우선 원망하게 된다. 변호사가 말로 설명한다고 고객의 마음이 풀어지거나 달래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친절하게 설명하면 변명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왜 나를 오해하느냐'며 화를 내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고객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고객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한 템포를 늦추고 상황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이 원망한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 차분하게 설명해 주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변호사는 위험관리능력을 쌓게 된다.

    넷째, 정직해야 한다. 변호사가 완벽하게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부인하는 것은 좋지 않은 태도다. 실수를 부인하면 또 다시 실수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이 잘못되어도 정직한 변호사에게는 고객이 분노하지 않는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정직하지 않고 책임을 면하려고 애를 쓰면 상대방은 분노하게 된다. 정직하게 고객과 소통을 하는 것은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나의 제안: 위험관리는 승소보다 더 중요하다. 위험관리에 신경 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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