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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판결, 비판과 불복 사이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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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내려졌다. 더 이상 법적 불복방법은 없다. 결정에 대한 근거 있는 비판만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판결에 대한 승복을 전제로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분쟁의 종착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법 규정에 대한 다양한 이해 가운데 정의의 기준에 따른 법해석·적용의 예시가 법원의 판결이다. 그러나 현실의 판결이 언제나 정의의 모범은 아니고 무결점도 아니다. 그래서 판례의 발전을 위해서는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비판적 검토는 판결에 대한 승복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판결불복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탄핵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며 헌재발 역모와 반란으로 폄훼하거나 양심상 탄핵결정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법률가들이 있다. 아무리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국가라 하더라도 지나치다. 그 중 한 명인 검사출신 국회의원은 “우리 모두가 헌재 결정에 동의하고 재판관들을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피청구인이 청와대에서 나와 삼성동 자택으로 갔다는 것 자체가 승복이라고 우긴다. 왠지 법률가답지 않다. 또 다른 한 명은 대한변호사협회의 협회장을 지낸 대리인단의 변호사다. 그의 신문광고나 칼럼 내용, 집회에서의 발언을 보면 판결 비판으로 포장했지만 탄핵결정에 불복한다는 취지가 드러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대한변협회장 시절 초청한 미국변호사협회(ABA) 스티븐 잭(Zack) 회장은 ‘판결에 대한 승복 문화가 미국 사법시스템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2000년 미국 대선 때 앨 고어 측에 서서 ‘플로리다주 1차 표 불복 소송'의 변호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번 대통령 탄핵사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틀 속에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을 운영했는지의 문제다.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렀다면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 보수 쪽에서 들고 일어나야 했다. 사인에게 국정을 맡겨 벌어진 국정농단과 대통령의 헌정농단에 대해서 애국심으로 무장된 그들이 먼저 나서서 대통령에게 진실을 밝히라고 외쳤어야 했다.

    “헌재는 헌법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헌재 결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대통령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어록이다. 일관성 있는 언행이 지도자의 덕목이자 신뢰의 원천이다. 한 때 박 전 대통령에게는 ‘신뢰와 원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으므로 탄핵결정에 대해서 명백하게 승복 선언을 했어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려면 신념과 행동, 말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표리가 부동하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권위에 대해서 입장을 밝혔다면 일관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도 그 입장을 고수하려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공개적으로 이를 번복하면 그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주일이 지나도록 칩거하며 침묵하는 이유는 아예 죄의식이 없거나 이전의 입장이 자신의 신념·가치관에 따른 것이 아니었거나 이전의 발언을 까맣게 잊어버려서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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