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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무인사(無人事)가 만사(萬事)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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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천하의 일은 적임자를 잘 찾아 맡기면 절반 이상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새 정부가 출범 초기 장관후보자 인선에 실패한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정실인사가 낳은 폐해나 낙하산과 관피아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는 인사가 만사임을 반증한다. 인사를 잘못하면 망사(亡事)가 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무인사가 만사인 경우도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인사를 아예 안 하는 방법이다. 현 인사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아예 피해가는 소극적인 인사법이다. 사법부가 바로 이런 인사시스템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정공법이지만 모든 법관이 승진을 기대하고 좋은 곳으로 발령 받기를 원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인사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승진과 전보제도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길 밖에는 없다.

    신임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변화와 개혁을 약속했다. 국민들이 갖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법관 독립을 강화하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실현하는 한편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관통하는 단어는 법관인사다. 지금의 사법 불신은 인사문제로 빚어진 것들이다. 승진하기 위해 인사평정자의 눈치를 보거나 기존 판례와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것을 주저해서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침해되고, 평생 법관으로 재직하게 하지 못하는 인사시스템으로 옷을 벗게 되어 전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불리는 이유도 법관인사권 때문이다.

    인사를 최소화하는 제도를 구축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가 난다. 사법부 관료화의 주범인 법원행정처의 역할도 축소될 수 있다. 블랙리스트 논란도 없어질 수 있다. 전관예우도 사라질 수 있다. 법관의 내부로부터의 독립도 확보될 수 있다. 대법원장의 인사권, 법원장의 근무평정권, 승진과 전보제도 등의 인사제도, 법원행정처의 조직과 권한과 같은 유무형의 압력요인들로 인해 법관의 독립이 해쳐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금권이나 권력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영향력을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더 중요하다. 사법부의 관료화가 심화되면서 오히려 사법부 내부, 즉 법관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법 상층부로부터의 개별 법관의 독립이 크게 도전받고 있는 현실이다. 위로부터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마치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처럼 법관(법원)동일체가 될 위험성이 있다. 법관인사제도가 개선되어야 사법조직이 민주화되고 탈 관료화될 수 있다. 평생법관제가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 지방법원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로 이원화하여 승진발탁인사를 없애야 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만 있을 뿐 부장판사는 없어야 한다. 사법개혁이 이루어져 ‘반드시 정의로운 사법부가 되겠습니다’라고 적은 신임 대법원장의 국립현충원 방명록이 6년 뒤에도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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