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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문 집사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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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는 중학 시절부터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 체구는 작았지만 다부졌고, 강단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어느덧 육십 줄에 접어든 그는 폭력 전과 16범이다. A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죄책감 같은 불필요한 감정도, 피차 피곤한 무죄주장도 없이 요식행위 치르듯 매끈하게 재판을 끝냈다. 상해죄로 1년 6월을 선고받고도 깍듯이 인사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간 A는 2019년 3월경 출소할 테지만, 필시 그 해를 못 넘기고 재수감될 것이다.

    A가 드나든 문은 회전문(revolving door)이다. 연어처럼 법정을 거슬러 올라 교도소로 회귀한다. A는 리볼버에 장전된 총알이다. 격발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재장전 된다. 이제 누구도 그에게 직업을 구하거나, 알콜중독 치료를 하거나, 가족을 돌보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비밀이지만, A의 사회복귀를 신경써준 사람은 애초부터 없었다. A 뒤로 마약전과 6범 B가, 조울증을 앓는 C가, 도박전과 8범 D가, 여성 속옷만 훔치는 E가, F가, G가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되돌아올 것이다. 그들 앞에서, 무표정하게 출소와 입소시기를 결정하고 절차를 안내하는 P가 있다. 그가 바로 회전문 집사이다.

    J도 마약사범이다. 헤로인에 중독되어 열여섯 때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J는 스물한 살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다시 법정에 섰다. 2년 동안 J는 스물여섯 번 법정에 나와 W에게 치료과정을 확인받고 보호관찰을 끝마쳤다. 약물을 끊은 스물넷의 J는 2017년 10월 7일 천사 같은 아기 앞에서, 마약같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주례는 W였다.

    P는 대전지법 형사단독 판사이고, W는 미국 미네소타 스콧 카운티의 약물법원(Drug Court) 판사, 크리스 윌튼이다.

    소년부와 형사부를 거치면서, 약물법원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치료사법과 문제해결법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부러우면 지는 줄 알면서도, W가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피고인의 사회복귀와 재범방지를 위해 대한민국 법관이 지닌 무기는 일회용 칼(형벌)과 방패(보호관찰)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 형사법 체계로는 2차 산업혁명 시대 범죄조차 관리하기 버겁다. P도 이제, 회전문 집사가 아닌, 레알 멋진 판사 노릇이 하고 싶다.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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