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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의 독립에 관한 정치학적 단상 : 최근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하여

    서영민 변호사 (법무법인 정암)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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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지하다시피 헌법 제5장에는 법원(法院)에 관한 사항들이 규정되어 있는데, 그 대강의 내용은 ‘신분이 보장된 전문법관들로 구성된 법원이 외부로부터 압력이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독립하여 심리하고 판단함으로써 사법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법원관계자들은 이를 금과옥조로 여겨, 법원은 독립됨으로써 그 의의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오랜 세월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펼쳐왔는데, 특히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요즈음에는 영장기각 사유로서 부쩍 자주 언급되고 있다.


    원래 법원의 독립이란,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이자 법학자였던 몽테스키외가 자신의 저서인 그 유명한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에서 주창한 삼권분립의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하여 생애의 후반을 바쳤는데, 크게 3가지 유형으로 정체(政體)를 구분하는 당시까지의 전통적 견해에 따르되 그중 공화정을 최고의 실존적 가치인 ‘자유와 독립’을 구현할 수 있는 공동체적 지향으로 설정하였다. 참고로 정체는 기원전 4세기 무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하여 왕정, 귀족정, 민주정 및 그 각각의 변형으로 이미 유형화를 해놓은 개념이었으나,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였던 폴리비오스가 그로부터 200년쯤 후에 그의 저서인 『역사(Historiai)』를 통하여 정체들의 성쇠로 인하여 반복되는 순환이 역사의 본질이며 정체 각각의 요소가 혼합되어 견제와 균형을 이룬 정체(mikte)가 이러한 순환을 극복하고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이론 - 이른바 정체순환론과 혼합정체론으로 알려진 이론이다 - 을 정립함으로써 이후 정치제도에 관한 논의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폴리비오스는 위의 이론에서 고대 로마의 공화정을 최고의 혼합 정체로 상정하였고, 키케로나 마키아벨리와 같은 유수의 정치사상가들은 이를 받아들여 공화정을 심층적·체계적으로 연구하였는데, 몽테스키외는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법이 허용하는 모든 일을 행하는 권리로서의 ‘자유’라는 개념을 도출하는 한편, 이를 권력 분립이 이루어지는 ‘절제된 정부’ 즉, 선진화된 공화정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국가의 권력을 ‘입법권’, ‘만민법에 관한 사항의 집행권(오늘날의 ‘행정권’에 해당한다)’, ‘시민법에 관한 사항의 집행권(오늘날의 ‘사법권’에 해당한다)’의 세가지 종류로 나누었는데, 이들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귀속되거나 서로 결합되지 아니하고 엄격히 분리되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특히 사법권을 행사하는 재판관의 독립을 강조하면서, 만약 사법권이 입법권이나 행정권과 결합된다면 재판관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거나 압제자의 힘을 갖게 될 것인바 이는 곧 사회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자유가 상실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즉, 독립된 사법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을 견제함으로써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만 시민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법원 및 그 관계자들은 몽테스키외의 사상에 근거하여 헌법 제5장을 해석하고 있을까?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절제된 권력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법원의 독립을 내세우고 있을까? 굳이 최근의 사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법원의 일관된 태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유감스럽게도 이를 긍정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법원이 국회와 정부로부터 독립되어야 함은 권력 분립의 원칙상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회와 정부와 헌법재판소, 나아가 언론과 시민사회에 의한 견제를 거부하는 구실까지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현행 헌법이 몽테스키외의 선호와는 다소 다른 형태의 사법부 구성을 예정하고 있기는 하나, 어쨌든 삼권 분립의 기초가 된 그의 사상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견지에서 보건대, 오늘날 불거진 사법농단 의혹의 원인을 그간 법원이 권위주의 정권들에 의하여 뒷받침되던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그 지위와 영향력을 보장받기 위하여 자발적 거래를 해온 관행에서 찾는다면, 언필칭 법원의 독립이란 제왕적 권력에 저항함으로써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용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권력과 타협함으로써 외부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도를 내포한 용어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지는 바이다.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던, 일련의 군사정권을 위시한 권위주의 정권들은 어느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법원의 독립은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 특히 국민 다수의 신임을 직접적으로 받은 최고권력자가 구성한 정부로부터 사법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시사하는 용어로서 여전히 즐겨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법치주의가 성숙한 단계에 이른 오늘날에는, 사법부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입법권과 행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 본연의 의의 - 몽테스키외가 주창한 - 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스스로의 지위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외부의 견제를 거부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회가 점점 민주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국회와 정부는 연일 비판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들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언론, 소셜네트워크, 집단행동 등 참여의 움직임을 통하여 직접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법원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국민들의 눈에 법원이 국회와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리고 그 이전에 법원의 재판사무와 행정사무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법원 또한 국회와 정부와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비판 여론의 도마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맞닥뜨리고서도, 법원 내부에서는 법원의 독립을 우려하는 입장이 여전히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법원이 언제부터 독립을 걱정할 정도로 예속과 견제의 위협을 느꼈다는 말인가? 오히려 언제나 최고의 권위를 스스로 자랑하면서, 심리와 판결에 절대적인 효력을 부여하지 않았던가? 법원의 재판사무와 행정사무에 그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으며, 혹 있었다고 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있었던가? 법원의 독립이란 그 연원에 터잡았을 때 어디까지나 시민의 자유를 전제하는 정치학적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법원은 이를 국가기관 고유의 불가침적/성역적 지위를 표방하는 법적 원리로서 인식해온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이러한 태도에 어떻게 대응할지 심사숙고하면서 기존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적당히 시늉만 하다 그치는 예전의 그것과는 달리 점점 격렬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으며, 청와대와 검찰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예나 지금이나 독립을 외치지만, 국민들은 도대체 뭘 독립하겠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법대에 앉아있는 고명한 판사들이,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재판을 하는 수동적 존재들은 아니지 않은가.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시국 사건들 몇몇을 그렇게 재판했다고 해서 법원 전체가 피해자로 여겨질 리 만무하다. 오히려 권력과의 지근거리에서, 법원 및 그 관계자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권력자들과 수시 결탁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의 우월한 지위와 영향력을 보장받았다는 것이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기억이 아닐까 한다.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대대적 수사와 영장 청구, 그리고 탄핵소추 추진에 당하여 국민여론은 법원의 독립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기는커녕 드디어 사법 정의가 구현되고 있다고 안도 내지는 환호하는 분위기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는 딱히 없어 보인다. 국민들이 몽테스키외가 주창한 법원의 독립의 참된 의미를 법원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영민 변호사 (법무법인 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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