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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yote Ugly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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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여름 휴가 때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과거 ECCC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에게 연락하여 그가 일하고 있는 파리지방법원을 방문하고 그 날 진행되던 재판도 방청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당시는 휴가철이어서 본안 사건은 없었고 인신 구속 관련 사건들이 심리되고 있었다. 그 전날 체포되어 판사와의 대면이 필요한 사람, 국외 여행허가 등 부과된 조건의 변경을 원하는 사람 등이 주로 출석하였고, 5인의 여성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개개 사건마다 상당한 시간을 투입하여 진술을 청취하고 질문하였다.


    현행 프랑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판사는 구속에 앞서 ‘사법감독조건(Controle Judiciaire)’을 부과할 수 있다. 사법감독조건으로는 장소이동의 제한, 인적 또는 물적 담보 제공, 접근금지 등뿐만 아니라 여권이나 면허증의 압수, 병원 입원, 특정 사회 활동 금지, 수표 발행 제한 등 18가지의 다양한 내용이 정해져 있다. 구속은 특정한 수사의 목적이 이러한 사법감독조건 또는 전자감시장치 아래의 가택 구금으로 달성 불가능한 때에만 최후의 수단으로서 허용된다.

    이러한 프랑스의 제도는 독특한 것이지만, ‘체포된’ 피의자로 하여금 단시간 내에 법관을 대면하게 하는 실무는 국제규범에 부합하는 것이다 [Art. 9(3) ICCPR, Art. 5(3) ECHR 등]. 우리 형사소송법에 영향을 끼친 미국, 일본, 독일 역시 수사기관에 사전 체포 권한을 유연하게 인정하는 대신 체포 ‘직후’ 법관과 대면할 권리를 엄격하게 보장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체포 내지 구속 행위 전에 법관을 대면하는 것이 필수적 권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듯하다. 국제형사재판 실무에서도 체포 이후 선고까지 단계에서 구속상태 유지 여부의 사후적 심사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한국의 실무는 구속에 ‘앞서’ 이루어지는 법관의 심사 부분에만 과도한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사전심사는 피의자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판단의 근거가 될 구체적, 객관적 정보는 아직 부족한 경우가 있다. 또 추후의 사건진행에 맞추어 다양하게 변경이 가능한 유연한 형태가 아니라 어느 한 쪽에 치우칠 위험이 있는 일회적이고 일도양단적인 결정이 내려지는 점도 문제이다. 만일 어떤 판단이 추상적인데다가 불균형성, 경직성까지 수반된다면 그 결론에 상관 없이 비판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오직 황혼(Dammerung)이 깃들어야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는 비유를 통하여 법철학은 사후적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한편 오래 전 프랑스에서는 황혼 무렵을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그 시대의 양치기들은 해질녘에 양떼에 접근해 오는 동물이 개인지 늑대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 한국의 영장법관도 중세의 어스름 속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쉽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앞에 놓인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가 맞닥뜨릴 동물은 개도 늑대도 아닌 코요테(Coyote) 등의 회색적 존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케케묵은 양자택일의 올무만으로는 절대 대처할 수 없는 아예 새로운 종(a whole different animal)일지도 모른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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