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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시대의 영장주의

    이숙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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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며칠 전 행적을 일정관리 앱, 통화기록, 카톡, 네비게이션을 통해 확인할 때가 있다, 이메일, CCTV·블랙박스 영상, 휴대전화 기지국정보, 교통카드·신용카드·인터넷·TV 사용기록 등을 더하면, 과거는 입체적으로 복구된다. 이렇듯 우리 일상은 무수한 디지털족적을 남기며 범죄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디지털증거의 수집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 지 오래다.

     

    공간을 차지하며 육안으로 식별되어 시간이 지나면 폐기될 운명을 맞는 유형물에 반해, 디지털정보는 별도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며 눈에 띄지도 않는다. 서버 용량 증가와 가격 하락으로 정보의 영구 보관이 오래된 정보의 선별 및 삭제보다 더 쉬워졌다. 저장매체 내에는 온갖 시기와 장르의 정보가 혼재된 채 남아있다.

     

    정보에 대한 광범위한 수집, 분석, 조합을 통하면 과거 행적의 거의 완벽한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실시간 사찰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 그런데 과거 행적을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과거라는 이유만으로 사생활이나 인권침해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범죄와 무관한 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이 제한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내면의 온갖 생각과 양심을 드러내지 않고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 등에 저장된 정보와 내면의 기억 사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뇌의 보조기억장치이자 처리장치로 변모하는 스마트폰에 대해 사용자의 존엄성과 사생활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는 압수수색 절차가 정립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2011모1839 결정에서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를 적법하게 탐색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혐의와 관련된 정보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 더 이상의 추가 탐색을 중단하고 별도의 혐의에 대한 영장을 발부받은 경우에 한하여 그러한 정보에 대하여도 적법하게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영장 발부가 일반화될 경우, 소명이 쉬운 혐의로 일단 영장을 발부받은 후 그 수색과정에서 다른 범죄의 단서를 찾고자 하는 시도가 만연하여 영장주의가 형해화될 우려가 있다. 이에 다음의 제한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별도 혐의 관련 정보는, 최초 혐의 관련 정보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의도적 노력 없이 우연히 발견될 정도로 명백하여야 한다. 다른 증거를 찾으려는 의식적·의도적 노력이 개입되는 순간 최초의 압수수색 절차는 이미 영장에서 허용한 수색의 범위를 넘어 위법해진다. 둘째, 별도 혐의는 테러, 살인 등 중대한 것이어야 하고, 적어도 최초 혐의보다 법정형이 높아야 할 것이다. 소소한 범죄의 처벌을 통해 얻을 공익이 영장주의의 형해화에 따른 손실보다 크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의 특정 사안 관련 상담자료나 검토의견서가 그 피고인의 당해 사안에 대한 유죄 입증의 증거로 취급된다면, 이는 비밀유지권을 논하기에 앞서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다. 변호사가 의뢰인 등과 공모하여 범죄행위의 실행에 가담한 정도가 아니라면, 영장 발부와 집행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2011모1839 결정은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영장주의의 해석을 내놓았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헌법과 형소법의 대원칙을 새롭게 구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이숙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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