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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파산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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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책을 받은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내 행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나는 등을 곧게 펴고 걸었고 안경 밑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모자를 눌러쓰지 않아도 되었다. 미행하는 자가 없는지 살피기 위해 외출 시 주머니에 늘 소지하던 작은 손거울을 빠뜨렸을 때,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10년 만에 출옥한 죄수처럼 낯선 편안함을 만끽했다.”

     

    소설가 김의경은 한 젊은 여성의 파산과 그 극복과정을 그린 소설 '청춘파산'에서 면책에 대한 감회를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서전적 소설에서 작가는 빚으로 인해 사회생활이나 심지어 연애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일상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하루살이 아르바이트다. 그녀에게 면책은 빚이 빛으로 바뀌는 마술이다.

     

    면책은 정당한가. 파산제도가 생긴 때부터 현재까지 늘 따라다니는 딜레마다. 약속은 가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에 도덕적 해이라는 채권자들의 공격이 더해지면 면책은 어느새 멀어진다. 청춘들에게 있어서는 더 가혹하다. 청춘들이 파산면책을 신청하면 충분히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면책에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다. 

     

    올해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학생 수는 작년보다 4.3% 증가하였다고 한다. 청춘들은 학자금 대출로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게 된다. 취업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결혼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청춘들의 빚을 줄여주기 위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청춘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춘들의 빚은 우리 경제에 있어 불랙스완(black swan)이 아니라 회색코뿔소(grey rhino)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이자 장래의 재정원천인 청춘들의 빚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청춘들이 살아야 사회에 활력이 넘치는 것이다.

     

    현재 청춘들의 개인파산면책신청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빚 때문에 고생하는 청춘들은 빚처럼 널려 있다. 법원은 청춘들의 파산에 좀 더 관대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면책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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