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는 편이라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변에서 세 가지 정도의 추출방식을 보게 된다. 우선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하는 방식은 분쇄한 커피를 포터필터라는 용기에 담아 적당한 압력으로 다진 후 추출기에 고정하여 고온·고압의 물로 빠르게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다. 핸드드립 방식은 여과지를 넣은 깔때기 모양의 드립퍼에 분쇄한 커피를 담은 후 주둥이가 좁은 주전자로 적당한 온도의 물을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골고루 따라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다. 커피전문점에서는 이 두 가지 방식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데, 재판진행의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변론준비절차 등을 통해 쟁점을 정리한 후 1~2회의 '집중된' 변론기일에서 증거조사를 한꺼번에 마치고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에스프레소 방식에 가깝고, 1개월 정도의 간격으로 변론기일을 속행하면서 상호 순차적인 공방을 거쳐 증거방법을 정리하고 사건이 무르익으면 증인신문 등 증거조사를 마치고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핸드드립 방식에 가깝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법관들은 사건의 성격에 따라 위 두 가지 방식 또는 그 둘 가운데 어느 지점에 위치한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커피추출법보다는 드물지만 콜드브루 방식도 있는데, 분쇄한 커피를 거름판이 있는 용기에 담은 후 밸브를 이용해 차가운 물을 아주 천천히 내리면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으로, 추출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편이다. 재판에서도 당사자 사이의 특수한 관계(가족, 가까운 지인, 이웃 등)로 인하여 쟁점에 대한 신속한 해결만이 능사가 아닌 경우 또는 소송초기 서로 감정적인 흥분과 대치가 심한 경우 등에는 진행 속도를 조금 늦춤으로써 당사자가 분쟁상황을 객관적으로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재판을 진행하기도 한다.
바리스타가 고객의 기호, 그날의 날씨, 분위기, 재료상태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적정한 커피 분쇄도, 물온도, 추출속도를 정하여 최적의 커피를 추출하는 것과 같이, 재판도 단순히 해당 쟁점에 대한 교과서적 결론만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에 맞는 최적의 절차와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