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월요법창

    직업으로서의 학문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63176.jpg

    1992년부터 14년간 법원에서 근무하다가 2006년 학교로 옮겼는데, 그때로부터 올해가 15년차가 된다. 이제 법원에서 일한 기간보다 학교에서 일한 기간이 더 길어졌다. 언제부터인가 법원에 비하여 학교는 어떠냐는 질문도 잘 받지 않게 되었다.

     

    법조삼륜 중에서 법원은 학교와 유사하다. 조직이 있기는 하나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상명하복을 추구하지 않고, 교원·판사와 직원의 이원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점을 배경으로 구성원 개개인에게 높은 자율성이 보장된다. 

     

    다만, 법원에 비하여 학교의 분위기가 훨씬 느슨하고, 따라서 교수들은 판사들에 비하여 훨씬 개성이 강한 것 같다.

     

    '교수 10명 버스에 태우는 것이 돼지 10마리 트럭에 싣는 것보다 더 어렵다'거나, '교수는 두 부류로 나뉘는데 첫째는 이상한 교수이고, 둘째는 아주 이상한 교수'라는 우스갯소리들은 이를 표현한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나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이기도 했고,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아니 동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명리학에서 학교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절과 같아서 학교에 있으면 세상사의 파고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한다. 참 좋은 점인 것 같다. 가끔 심심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정읍지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고창 선운사의 총무스님께 절에서 지내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 "심심한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 남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꾸 밖으로 나돌다가 대부분 절을 떠나게 됩니다"라고 하셨다. 필요한 경구를 미리 받은 것 같다. 

     

    교수생활의 장점으로는 찾아온 사람에게 잘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점을 빼 놓을 수 없다. 법원에 있을 때는 의사들을 부러워했다. 의사는 환자에게 잘해줄수록 좋지만, 판사가 한 당사자에게 잘해주는 것은 상대방에게는 못해주는 것일 수도 있어서 늘 힘들었다. 다만 이는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육에 한하는 것이기는 하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쓴 책의 제목이다. 학교 구내서점 재고처리행사 때 저자와 제목만 보고 샀는데, 당시 독일 교수사회에 대한 강연을 엮은 책이었다. 내용 대부분이 암호 같아서 앞의 조금만 읽고 말았다. 그 중에 당시 독일에서 어떻게 하면 교수가 될 수 있는지, 즉 교수가 되는 과정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완전히 요행이라고 하였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일관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