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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격랑의 시대, 사법부의 역할 다시 생각한다

    석정희 기자 jsjh7621@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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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은 법령의 최종 해석권한을 가진 기관이다. 국회와 행정부가 제정한 법률과 시행령은 법원이 구체적인 사안에 해석 적용함으로써 현실화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제 사건으로 들어가면 법원의 법령적용권한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법원이 단순히 법령의 해석적용을 넘어 법률의 의미까지 변경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경우에는 입법권의 영역까지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특별한정승인에 관한 사안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19다232918 전원합의체 판결). 쟁점은 미성년자인 상속인의 법정대리인이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의 제척기간이 경과해서 민법 제1019조 소정의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그 상속인이 성년에 이른 다음 새롭게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이미 특별한정승인의 제척기간이 경과한 이상 상속인이 성년이 되었다는 이유로 새로운 특별한정승인 신고를 할 수는 없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하자는 것이었고, 결국 결론을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은 다수의견에 따라 파기됐다. 소수의견은 미성년자인 상속인이 성년이 되면 새로운 특별한정승인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미성년자가 자신이 알 수 없었던 빚까지 상속받아 신용불량자로 성년을 시작하는 게 옳으냐는 의문에서 비롯됐다. 2002년 특별한정승인 제도의 도입 취지를 고려할 때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법원이 법률을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소수의견이 주된 논거였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해당 사건의 쟁점이나 결론을 떠나서 전원합의에 관여한 대법관들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활발한 논의를 거친 것이 판결문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정승인의 제도적 취지, 민법상 대리와 제척기간의 의미와 법률의 통일적 해석, 법적 안정성과 형평,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입법론까지 대법관들이 가지고 있는 소신과 철학이 다수의견, 소수의견, 그리고 그에 대한 보충의견들로 판결문 곳곳에 생생하게 노정돼 있다. 비록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극히 일부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모처럼 판결다운 판결을 받아보는 기분일 것이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난타전이 법조계는 물론 온나라를 격랑 한가운데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그것이 검찰개혁을 위한 길인지, 검찰권력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인지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제기 이후 법원의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법관들이 사기도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법원이 본래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듯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은 꾸준히 좋은 판결로써 말하고 외압과 정치세력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사법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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