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월요법창

    공부의 즐거움

    이의영 고법판사 (서울고법)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67461.jpg

    공부는 즐겁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책을 읽고 배우며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는 기쁨을 느낀다. 삼각형과 사각형, 동물과 식물, 태양과 별, 지리와 역사, 언어와 예술. 막막해 보이는 수학 문제도 차분히 개념과 조건에 따라 '생각의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르면 해답에 이르게 되고, 그 즐거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 지식과 정보가 쌓이는 속도는 엄청나고 부족한 능력에 아무리 노력해도 다 배울 길이 없다. 인공지능(AI)라면 모를까, 21세기에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없을 것이다. 법학만 하더라도 곳곳에서 쏟아지는 법률 이론과 문헌, 판례를 다 따라잡는 일은 불가능하다. 경험이 다소 축적된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기도 벅차다. 

     

    매일 접하는 다양한 사건 기록에서도 종종 낯선 개념과 복잡한 수식이 등장하기도 한다. 해석(解釋)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는 당사자가 작성한 계약서에서부터 법률, 헌법, 국제협약, 때로는 외국법까지 다양하다. 그 해석을 두고 주장이 대립하고, 수많은 문헌 자료와 판례가 제출된다.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반대의 시각에서도 돌아보며 생각의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내리지만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반복된 독해를 통해 잠정적인 이해에 도달하더라도 확신이 어려울 때도 있다. 결론의 무거움까지 더해, 그 순간은 공부의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다. 그렇다고 해답 찾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이때 효용을 발휘하는 것이 말, 대화(對話)이다. 오늘날 법조인에게 필요한 소양이 아닌가 싶다.

     

    듣고 질문하고 다시 듣는 과정에서, 때로는 남들이 논쟁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의해서도 텍스트의 해석이 명확해진다. 처음 막막했던 사건도 결국 이해와 논리적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그랬듯, 말이 주는 힘이다. 인내심 있게 대화에 참여한 모두의 덕분이다. 공개된 법정에서 이루어진 대화와 토론이니,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해석 과정에 함께한 셈이다. 과정의 투명함은 결론에도 힘을 보태주리라. 해답을 찾기 위해 모두가 최선(最善)을 다했던 것이니까. 

     

    오늘도 새 책이 나오고, 함께 연구하자는 제안과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공부의 즐거움은 끝이 없다.

     

     

    이의영 고법판사 (서울고법)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