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서초포럼

    One for the Money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67714.jpg

    ECCC의 공동 수사판사들은 2018년 Ao AN 사건에서, 국제 수사판사는 기소를, 국내 수사판사는 불기소를 동시에 하기로 합의하였다. 황당한 결론에 검찰과 피의자 측 모두 불복하였고, 결국 2020년 최종심(Supreme Court Chamber)은, 하나의 사건에서 동시에 이루어진 기소와 불기소는 위법하여 전부 무효이고 이로써 모든 절차가 종결되었다는 판단을 하였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 사이에 사건의 향방에 대하여 첨예한 대립이 있는 상태에서 위법한 타협을 함으로써 아무런 법적 결론 없이 10여년의 수사가 마무리되어 버린 사태에 대하여 국제 수사판사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는 이미 2017년에도 추후 충분한 예산 보장이 안 될 경우 사건종결을 하겠다는 결정을 하여 비판을 받았는데, 돌이켜 보면 위 결정에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즉, 정권의 정치적 압력을 홀로 견뎌내면서 수사를 해야 하는 판사에게 예산조차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법부 독립이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는 외부에 미리 경고하였던 것이다.

     

    톰 빙험이 영국에서 법의 지배 확립에 기여한 역사적 문서로 든 것 중 독특한 것은 고등법원장을 지낸 헤일 판사가 1660년경 판사로서 자신의 맹세를 적은 목록이다. 그 항목 중에는, 개인적 열정이나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동정, 부자에 대한 호의로 인한 편견을 경계할 것, 대중이나 법원 내부의 칭찬, 반감 또는 판결 후 예상되는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것 등 재판의 공정과 독립에 관련된 사항과 함께 '식사를 짧고 적게 할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로부터 360여 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에 걸쳐 '기본적 인권과 소수자의 권리는 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는 전통적 법의 지배 원칙에 대한 거센 도전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한편, 절제를 중시하여야 하는 귀족 신분의 판사보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판사가 늘어나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제기준 중의 하나인 시라큐스 원칙 제24, 25조에서는, 법관의 보수는 다른 소득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준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법관의 보수를 감액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같은 취지의 미국 헌법 제3조 1항 참조).

     

    2019년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전관예우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40, 50대 판사의 정기적 대량사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으로서, 상대적으로 낮은 판사의 보수를 비공식적으로 보충하는 형태로 전관예우가 사실상 용인되어 왔는데, 전관 변호사에 대한 규제 강화는 이러한 편법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한다. 이에 더하여 우리나라 판사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사건을 담당하면서 평생에 걸쳐 짧은 주기로 전국단위 순환근무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에 따른 문제는 앞으로 10년 이상 법조경력자 중에서 판사를 임용하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더욱 크게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건의 합의와 선고가 다가오면 방탄차량이 제공되고 밀착 경호를 받으며, 재택근무 날에는 안부를 확인하는 보안 부서의 전화에 응답하는 생활이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다. 판사 개인에게 부당한 압력과 회유에 맞서는 남다른 용기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극히 평범한 사람도 흔들림 없이 재판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그와 가족의 생계와 안전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일이야말로 사법부 독립의 기초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