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 프놈펜의 코로나 감염 상황이 급격히 악화됨에 따라 4월부터 강력한 도시 봉쇄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통행 금지, 영업 금지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 대부분의 주민이 집 안에 그대로 갇힌 신세가 되었고 거리에는 인적이 끊어졌다. 최근 인도에서 코로나 대량 확산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보면, 감염병에 대처할 인적, 물적 기반이 극히 부족한 나라로서는 이와 같은 극단적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감염환자가 많이 발생하여 레드 존(Red Zone)으로 지정된 구역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식량과 생필품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놈펜 주민 다수가 매일 얻는 수입으로 그날의 생계를 간신히 유지해 나가는 상황에서 봉쇄의 장기화는 큰 부담이 되었고 폭동의 기미마저 있었다. 결국 정부는 지난 주부터 점차 레드 존을 축소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단 몇 주 간의 봉쇄조치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기본적 인권, 그 중에서도 '사회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국제인권규약은 자유권과 사회권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인 전자와 달리 노동, 가정, 사회보장, 의식주, 건강, 교육, 문화에 관한 권리 등으로 구성된 후자는 국가에 적극적으로 급부를 요구하는 권리로서 이를 보장하기 위해 입법, 예산 등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이분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인권선언 채택을 둘러싸고 구 소련 측이 사회권에, 미국 측이 자유권에 중점을 두었던 냉전 시대의 산물일뿐, 이제는 자유권과 사회권이 상호 의존적이고 분리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점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자유권이 그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이 가진 정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에 비해 덜 '자유로운' 사람들의 존재를 바탕으로 발전하여 왔다면, 사회권은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을 인권 담론에 포섭할 수 있게 한다.
UN은 사회권에 대한 사법심사가능성(justiciability)과 그 권리의 즉시 실현 가능성(self-executing)은 구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만일 법원이 전통적 이분법을 내세워 사회권 보호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자신의 권한을 사실상 포기하는 일이라고 한다. 나아가 사회권의 보장은 국가 뿐 아니라 기업의 책임(corporate responsibilities)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 주목하면서, 사회권 규약 또는 이를 반영한 국내법이 적용되는 민사소송의 역할이 피해자 구제에 중요하다고 하였고(E/C.12/GC/24), 한국 사법부가 사회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점에 대하여 개선권고를 한 바 있다(E/C.12/KOR/CO/4, 2017).
우리나라에서 '소수자 보호'는 사법부의 책무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듯 하다. 장애인, 아동, 여성, 노인, 성소수자, 노동, 주거, 환경, 교육, 건강 등 권력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기 쉽지만 개개인의 삶과는 밀착된 문제에 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사회권 규약이 보다 적극적으로 재판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소수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실천 방안이 될 수 있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