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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오의 법학에 대한 단상(斷想)

    양창수 석좌교수 (한양대·전 대법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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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오는 1945년 이후 우리 법학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학자 중 한 분이다. 우리는 그를 헌법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 외에도 쉬운 예를 들면 그는 1950년대 중고교의 교과서('정치와 사회', '국가생활', '국제생활' 등)의 단독집필자로도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또 그는 1945년까지는 사람들에게 주로 소설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학문(문학이 아니라)에 대하여도 아직 모르는 것이 적지 않다.


    그가 처음으로 헌법에 대하여 쓴 논문 기타 글들을 모아 펴낸 '헌법의 기초이론'은 1950년 1월에 발간되었다. 1949년 11월, 그러니까 1906년에 태어난 그가 43세 때에 쓴 그 책의 '서(序)'에서 그는 자신의 학문적 역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저자는 대학 시대에 법률학과를 수업하였고, 계속하여 3, 4년간 연구실에서 형법학과 법철학을 전공하였으며, 그 후로는 교단에서 주로 헌법, 행정법, 국제법 등을 강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강의'가 아니라 연구의 성과인 논문은 어떤가 하여 1975년에 나온 그를 위한 '고희 기념 논문집'의 '저작 목록'을 보면, 'II. 논문·시사평론'란은 1938년에 발표된 '서구 문제는 곧 조선 문제'라는 글에서 시작되고, 헌법에 관한 것은 그에 이어지는 1947년의 '권력분립제도의 검토'(위 '헌법의 기초이론'에 수록되었다)가 처음이다. 유진오 스스로가 위의 '서(序)'에서 "해방된 조국은 각 방면에서 사람을 부르게 되매, …사람 얻기 어려운 이 나라의 사정은 근 20년간 법률학을 강의한 경력이 있다는 것만을 이유로…무슨 학계의 선배나 되는 같은 위치에 세워 놓았다. 저자는 되나마나 전력을 기울여 노를 젓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헌법학에 대한 저자의 연구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의 헌법학 연구가 1945년 8월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야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해방 당시의 우리 법학계에 대하여 "도저히 독립한 단위를 가진 학계라고는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그의 평가(고대신문 60호(1954년 11월 24일자), 3면)도 자신의 체험과 숙고에 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흔히들 그가 기초(起草)하였다고 하는 제헌헌법은 그의 헌법 연구가 성숙하기 훨씬 전에 만들어졌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료에 기하여 어떠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근자에 무슨 문헌을 읽다가, 일본의 현행 헌법(1947년 11월 공포, 1948년 5월 시행)에서 양성평등, 나아가 혼인에서의 부부 평등를 정한 제14조 제1항, 제24조 제1항이 당시 불과 23세였던 미국인 여성 베아테 시로타(Beate Sirota)(결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 B. S. Gordon)가 애쓴 결과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생인데 어렸을 때 10년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라서 일본 사정을 잘 알고 또 일본어에 능통하였는데, 1945년 12월에 연합군최고사령부 민정국 소속의 여성문관으로 일본에 돌아와 헌법 개정작업을 구체적으로 수행한 실무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 두 규정(그리고 다른 규정들)의 초를 잡았고 그 채택을 위해서도 애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헌법의 위 규정들과 구조, 내용 그리고 지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 제헌헌법 제8조 제1항 및 제20조는 틀림없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아마도 시로타와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현행 헌법도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의존하고 있는 제헌헌법 규정들의 '연유(緣由)'를 제대로 파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창수 석좌교수 (한양대·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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