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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온라인 의무교육 막판 이수기

    천경훈 교수 (서울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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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챙길 사소한 일 중에 교수들에게 법령상 요구되는 각종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는 것도 들어 있었다. 특히 보직을 맡고 있다 보니 다른 교수님들의 이행실적도 신경 써야 했다. 인권·성평등 교육, 청렴 교육, 긴급복지신고 교육, 직장내 괴롭힘 방지교육, 정보보안 교육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교직원과 학생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도 있고 교수에게만 요구되는 것도 있다.


    세 시간에 이르는 '인권·성평등 교육'은 법정의무교육인 4대 폭력예방교육, 즉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카톡방에서 무심코 혐오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깨달음을 주는 좋은 내용이 많다. 하지만 요즘 감수성을 따라가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올해 교육에서는 인싸(인사이더), 아싸(아웃사이더) 같은 말도 '혐오와 차별이 담긴' 표현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밖에 혐오·차별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고 패널들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해당 표현들을 전부 삑삑 처리를 해 놓아서 무슨 표현이 안 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영화에서 예민한 부위를 모자이크 처리할 때는 안 보여도 그게 뭔지는 알았는데, 아예 알 수 없게 해 놓았으니 정말 나쁜 말인가 보다.

    영상에 나온 패널들은 "너 그 옷 색깔 잘 어울린다"는 말도 듣는 사람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는 외모평가 발언이라고 한다. 그런 평가는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만 할 수 있는 말이므로 권력 관계를 내재하고 있어 인권침해적이라고 한다. 방금 대선배 교수님께 목도리 색깔 잘 어울린다고 말하고 온 나는 하극상을 한 건가 싶어 흠칫 놀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매년 실시하는 1시간짜리 '청렴 반부패 교육'도 요즘 교수들 이수율이 낮다고 꾸짖는 공문이 하달되었으니 꾸역꾸역 듣는다. 상한선이 식사 3만 원, 축의금 5만 원, 선물 5만 원, 그런데 농산물은 10만 원(원재료가 50% 이상인 가공품 포함!). 매년 같은 내용이지만 매년 수강 의무가 있다. 청탁금지법이 사문화되었다는 얘기가 많지만 청탁금지법 교육은 사문화되지 않았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최근 신설된 긴급복지 신고 교육은 생계곤란 등 위기상황에 빠져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관계 당국에 신고해서 복지서비스를 받도록 돕자는 내용이다. 매우 좋은 취지인데 이 내용으로 무려 1시간짜리 영상을 만들어 놓았다. 동사무소 업무 매뉴얼에 담겨 있을 깨알 같은 복지혜택을 모노톤으로 천천히 읽어 준다. 역시 매년 들어야 한다.

    이런 의무교육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컴플라이언스가 강조되면서 직원에 대한 교육의무가 강조되는 추세이니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의무교육은 법으로 계속 추가해도 무방한 것일까? 음주방지, 소방, 안전, 생명윤리, AI윤리, 환경보호 등등 좋은 취지라면 법으로 다 교육을 의무화해 버리면 그만일까? 아예 70년대처럼 온라인 애국조회를 개최해서 온라인 훈화 말씀으로 한방에 교육을 실시하면 어떨까? 허겁지겁 의무교육을 이수하며 개인의 자유와 법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천경훈 교수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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