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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추사(秋史)와 교육자

    김용섭 교수 (전북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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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秋史) 김정희(1786. 6. 3. ~ 1856. 10. 10.) 선생은 방대한 독서와 절차탁마를 통해 서예가를 넘어 다방면에 최고의 역량을 발휘한 학자이며 교육자이다. 그는 음식남녀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라는 서예작품을 써서 독서를 으뜸으로 하고 남녀를 음식보다 우선하는 발상이 흥미롭다. 추사는 서화에 있어서도 손재주나 기술이 아닌 가슴 속에 만권의 책을 읽은 기운이 서체와 그림에 드러나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를 강조하였다.

     

    추사는 인재설(人才說)에서 태어날 때 모든 인간이 평등하지만 습관이나 교육에 따라 재능과 자질이 달라진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추사의 제자로는 개화사상가 오경석 등 역관 출신과 흥선대원군 이하응, 남병길, 민규호 등 양반 출신 그리고 서화가 소치 허련, 우봉 조희룡 등 다수에 이르고 있다. 추사는 신분에 차별을 두지 않고 인성과 능력을 중시하는 유교무류(有敎無類)와 실사구시의 정신에 입각하여 제자들에게 자상하면서도 엄정한 가르침을 통해 예술혼을 일깨워 주었다.

     

    추사는 정치적 음해에 휘말려 제주도와 북청에서 2차례 힘든 유배생활을 긍정마인드로 자신을 다잡아 학예에 있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시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다량의 서적을 보내오자 세한도의 그림과 발문을 작성하여 선비의 지조와 절개 그리고 변치 않는 고결한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우선아 이것을 감상하게나” 뜻의 ‘우선시상((藕船是賞)’을 쓰고, “오랫 동안 서로 잊지 말자”라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의 낙관을 찍은 추사의 세한도는 조선시대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추사의 창조적 예술형식의 하나가 대련이다. 이것은 2개의 대구로 이루어진 함축적 표현으로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은 푸짐한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를 말하고 최고의 모임은 삼대가 어울리는 가족모임이라는 뜻이다. 그의 말년 과천시절의 작품으로 유배로 점철된 삶의 신산(辛酸) 속에 깨우친 소소한 행복을 말하고 있다. 음식에 관한 대팽(大烹) 부분은 참살이(well-being)를, 만남에 관한 고회(高會) 부분은 노년의 편안한 삶(well-dying)을 상징한다. 또한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은 국가사회를 위해 헌신하려는 공직자에게 귀감이 되는 추사의 대련이다. 이는 훈훈한 봄바람 같은 큰 아량은 만물을 포용하고, 가을 물같이 깨끗한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추사의 예술품은 끊임없는 연찬 속에서 전통을 중시하면서 파격의 미를 추구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통해 얻은 창의적 성과물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잘 그린 것과 졸렬한 것을 넘어 불계공졸(不計工拙)의 경지에서 구도적 정신세계가 표출된 인생의 교훈이 되는 내용이 많다. 무엇보다 추사는 양반관료 사회인 조선시대에 신분을 초월하여 능력에 따른 실사구시적 교육관으로 인재를 길러냈다는 점에서 오늘날 교육자의 롤모델(Role model)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용섭 교수 (전북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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