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유별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집에서 쉬는 것이 가장 좋다. 여행에 대한 특별한 철학도 없다. 그나마 여행을 갈 수 있는 건 아내 덕분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는 남편을 끌고 가기 위해서 대부분의 준비를 다 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짐꾼, 네비게이션, 운전기사의 역할마저 하지 않는 건 아니다.
2016년 12월에 주어진 미션은 대만이었다. 사전 준비를 많이 할수록 여행을 알차게 즐길 수 있다고 하지만,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아내의 계획에 따라 묵묵히 필자의 역할을 다하면서 잘 쉬다 오면 만족스러운 여행이다.
소문난 딘타이펑 소룡포 ‘거대버전
호텔 조식도 잊게 해
대만 도착 첫째 날, 호텔에 짐을 풀고 첫 목적지인 타이페이 101로 향했다. 대만이 원조인 딘타이펑에서 소룡포를 먹기 위해서다. 대기 줄 1시간 따위는… 기다렸다.
대만은 어딜 가든 사람이 많았다. 국토의 대부분이 험한 산지이고, 그 산지를 포함한 인구밀도가 세계 9위, 참고로 우리나라는 13위다(나무위키 기준)
중국식 숟가락에 소룡포, 채 썬 생강, 약간의 쏘스를 얹은 후, 얇은 만두피를 살짝 찢어 놓고, 흘러나오는 육즙을 먼저 느끼며 한 입에 먹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원조의 맛은 1시간의 기다림을 추억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네 만두맛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둘째 날, 평소의 여행루틴대로 살짝 늦은 아침 홀로 산책을 나왔다. 아내 몰래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아니다.
소원 적어 하늘에 날리는 ’풍등‘
간간이 한글도 보여
호텔 인근을 거닐면서 출근 중인 사람들과 길거리를 구경하고 있는데, 만둣집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잠깐동안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들러 만두를 몇 개씩 포장해 가는 게 아닌가. 십여 개를 포장해가는 사람도 있었다. 가격도 쌌다. 호텔로 가져와 아내와 먹었다.
만두는 한국식 왕만두 크기였는데, 보다 얇은 만두피였고, 그 안에는 꽤 많은 소와 함께 전날 먹었던 소룡포의 육즙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마디로, 맛있기로 소문난 딘타이펑 소룡포의 거대 버전이었다. 남은 기간 매일 아침, 호텔 조식이 필요 없었다.
묵었던 호텔과 바로 옆 만둣집(노가궈점)의 구글스트리트 사진, 간판이 매우 낡아보이지만, 2009년 12월부터 영업을 시작했고, 현재도 존재한다. 그동안 호텔은주인이 바뀌었는지, 상호가 변경되었다.
둘째 날의 목적지는 전형적인 관광코스인 스펀과 지우펀. 스펀은 풍등 날리기, 닭날개 볶음밥이 유명하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다.
스펀역, 여기서 풍등을 날리는데, 역시 사람이 많았다. 기찻길이라 걱정이 되었는데, 기차는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느린 속도로 달렸다.
풍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로 날린다. 간간히 한글이 보여 유심히 보았는데,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빼고는 전부 ‘건물주’였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투자의 적절한 시기를 아시는 분들이었다.
풍등, 다행히 날씨가 좋았고, 풍등은 잘 올라갔다
지우펀은 애니메이션의 배경지로 유명한데, 원래는 9개의 가구만이 살던 마을에서 1920년대 아시아 최대 탄광촌(금광)이었다가 쇠락했다가 영화촬영지로 뜨면서 관광지로서 당시의 모습이 보존됐다고 한다.
옛 탄광촌이던 ’지우펀‘은
지금도 1920년대 모습 간직
홍등이 켜지는 17시 30분(여름: 18시 30분)가 되면, 좁은 골목길, 산등성이에 빽빽하게 서있는 나무 소재의 집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 은은한 불빛이 더해져 과거의 탄광촌 시절이 이랬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우펀 바다, 지우펀에서 바라보는 바다 쪽 경치도 아름답다
셋째 날, 유명한 관광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고, 숙소 주변을 넓게 돌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초등학교, 고층아파트, 고층빌딩, 대형 공원, 아울렛, 백화점 등이 사진에 남아있다. 우리나라와 사는게 특별히 달라 보이진 않았다.
고층아파트, 식물을 좋아하는 분이 사시나 보다.
대만의 산타 조형물, 12월 평균 기온이 17도여서 대만의 산타는 눈 위가 아닌 물 위를 달린다
다만, 대만의 도로 사거리에는 종종 우리나라에는 없는 흰색 네모칸들이 있었다. 오토바이들이 자동차들 사이를 소위 칼치기로 뚫고 와서 사거리 맨 앞의 흰색 네모칸을 차지하고, 신호가 바뀌면 가장 먼저 출발한다.
오토바이 주차장도 곳곳에 있다. 이러한 교통정책 때문인지 오토바이를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용자전거와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었다.
도로, 자전거도로, 인도, 사거리의 오토바이 우선구역이 구분되어 있는 모습
넷째 날, 귀국길이다. 이번에도 잘 쉬었다. 헐렁한 계획으로 다녀오는, 가끔의 여행도 나쁘지 않다.
백상현 변호사 (법무법인 해율)